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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북한, 일본, 대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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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밥은 하늘입니다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하늘을 몸 속에 모시는 것밥은 하늘입니다아아,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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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북한, 일본, 대만 편
남한-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통계인구 : 4,810만 명정부형태 : 다당제 공화국언어 : 한국어문자해독율 : 남자 99%, 여자 96%종교 : 불교 1,070만 명, 개신교 860만명, 가톨릭 510만명, 그 외 유교, 이슬람교인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한국 성공회(Anglican Church of Korea), 기독교 대한감리회(Korean Methodist Church), 한국기독교장로회(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 대한예수교장로회(Presbyterian Church of Korea)역사 한국인들은 한반도에서 4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뛰어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살아왔다. 원래 한반도에서 독립국으로 존재했던 한국은 20세기 초에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국은 일본의 잔혹한 식민지 통치 아래 있었다. 1948년 한국은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의 군정 아래 있었다. 1950년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한국전쟁이 일어나 3년간 계속되었고, 중국군과 유엔군이 참전하였다. 한국전쟁으로 남북한 사이의 관계가 경직되었고 서로에 대한 공포와 의심의 출발점이 되었다. 1953년 체결된 휴전협정이 현재까지 이르고 있어 실제적으로 휴전상태인 남북한은 콘크리트와 철조망으로 막힌 비무장지대로 인해 공고하게 분리되어있다. 전쟁의 상처에서 서서히 회복하던 중, 1961년 박정희 장군이 군부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그는 여러 가지 개혁정책들을 실시했고 그로 인한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정치적으로 억압적이었고, 1970년대 상당기간을 계엄령 하에 있었다. 1979년 박정희가 암살당한 후, 그 후 10년에 걸쳐 폭력과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되었다. 1987년 민주적인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고 새로운 헌법이 통과되었다. 1991년 남북한은 국제연합(UN)에 동반 가입하였고,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였다.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한국을 크게 강타하면서, 정부가 위기를 맞았고, 민주지도자였던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0년에 김대중은 1953년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대화는 공식적인 통로를 통하여 계속되었으나 진전되는 것은 많지 않았다. 전쟁으로 헤어졌던 남북이산가족들의 상호 방문 또한 시작되었다. 한국의 기독교와의 접촉은 주로 중국과 일본을 통해 수세기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한국인 스스로 선교 사역을 시작함으로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수용하게 되었다. 이들 토착 선교사들은 공식적인 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들을 만나고 기독교 책자들을 가져왔다. 19세기 동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정부의 박해를 받았고, 한국은 외국문물에 대하여 쇄국정책을 실시했다. 1884년 미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의 입국이 허락되었다. 그 후 다른 선교사들도 한국을 찾았고 기독교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개신교회는 독립을 위하여 일본에 저항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에 깊은 관계를 맺었다.한국교회의 토착적인 신학으로 민중 신학이 있다. 민중 신학은 군사정권 통치기에 정부의 억압과 구조적인 인권탄압, 광범위한 빈부격차의 상황에서 발전되었다. 민중 신학은 고난 받는 민중들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민중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응답을 과제로 삼고 있다. 예수교대한장로회는 단일교단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으며, 순복음 교회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토착화를 위해 많이 노력해왔지만, 한편으로 그로 인해 주류 교단들의 분열이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 100개 이상의 교단이 있으며, 그들 중 대다수는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에서 갈라져 나왔고, 다른 교단들은 기독교와 다른 신앙 전통들, 예를 들어 신비주의, 자연주의,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강조하는 유교 등과 혼합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정부의 박해를 많이 받았다. 특별히 억압적인 권력에 저항하던 이들이 많은 고난을 당했다. 현대에 들어와 기독교는 커다란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부에서 참여하고 있고, 군대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들이 열려있다. 기독교는 특별히 도시 지역에 크게 번성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의 성장과 갱신운동이 일어났으며, 특별히 오순절 운동과 성령 은사 운동을 주도하는 교회들의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하였다. 또한 한국교회는 많은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하고 있다. 남북한의 많은 한국인들은 통일을 바라고 있다. 많은 교회와 에큐메니칼 기구들의 참여로 구성된 위원회들은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양쪽 정부에 대화 노력을 계속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단체 중 가장 대표적인 기구는 1924년 설립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NCCK)로, 한국 기독교인의 삼분의 일 이상을 포함하는 일곱 개 주요 교단과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이 협의회가 분명하게 확인하고 선언한 것은 문선명의 통일교가 “기독교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북한-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통계인구: 2,400만 명정부형태: 인민 공화국언어: 한국어문자해독률: 95%종교: 무종교 약 68%, 불교, 유교, 샤마니즘, 기독교, 천도교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역사북한은 1948년 분단 이후 김일성이 이끄는 공산국가였고, 1994년 김일성 사망 후에 그의 아들 김정일이 통치하고 있다. 앞부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동안 남북한의 관계는 대부분 긴장 관계를 유지하였고, 평화조약과 통일 논의에 이어서 무력 충돌이 되풀이 되었다. 공산당 체제는 억압적이며, 체포와 납치, 고문, 살해 등과 같은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다.1994년 이후, 계속된 자연재해(1995년과 1996년의 홍수, 1997년, 2000년, 2001년, 2002년의 가뭄)로 인하여 극심한 흉년을 경험하였고, 국제구호단체의 보고에 의하면 2백만 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극심한 기아상황으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지만, 많은 수가 북한 정부에 의해 붙잡혀 송환되고, 처벌되거나 심지어 사형을 당하고 있다. 2002년, 북한은 핵무기 폐기를 약속했던 1994년의 협정을 철회하고 국제연합의 감시요원들을 추방하였다.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공개적인 종교의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로 무속적인 믿음과 토착종교인 천도교(天道敎) 식으로 종교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초자연적인 믿음과 다양한 종교의식이 혼합된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한국 전쟁 중에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집단학살을 당했고, 학살을 피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남한으로 내려왔다. 오늘날 북한의 기독교는 지하에 들어갔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가정교회 혹은 개인적으로 남한에서 송출되는 기독교 방송을 들으며 예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8년 제 8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 네 명의 북한 기독교 대표가 참석하였다. 이들은 정부의 승인과 지원을 받는 초교파적 기구인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Korean Christian Federation)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은 세계교회협의회에 참석한 최초의 북한 기독교 대표들이었다. 이 회의에서 북한 대표들은 북한의 기독교가 적은 수의 교인들과 교회당을 가지고 있으며, 가톨릭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보고했다. 이들에 대하여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이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도구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일본 (Japan)
통계인구: 1억 2천 8백만 명정부형태: 의회민주제에 기초한 입헌군주제 언어: 일본어문자해독률: 100%종교: 신도(神道) 1억 800만 명 불교 9,500만 명, 기독교 180만 명(일본인들은 대부분 여러 종단에 속해 있다), 그 외 종교 집단 약 1,100만 명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일본 성공회(Anglican Church in Japan), 재일 대한 기독교회(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 일본 정교회(Orthodox Church in Japan), 일본 기독교단(United Church of Christ in Japan)
역사일본은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네 개의 중요한 큰 섬과 대략 3,900여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군도(群島) 국가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을 제외하면, 일본은 평방킬로미터 당 1,500명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이다.역사적으로 1만 년 전에 중국과 한국에서 건너간 이민자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주후 7세기와 8세기에 황제가 이끄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정부에 의해 통일되었다. 이러한 통치는 12세기 경 국내적인 분열과 황제의 통치력 약화로 종식되고, “쇼군”(將軍)이라 불리던 지방 호족들이 중심이 된 무사계급이 강력한 권력을 가진 막부시대로 이어졌다. 1543년 포르투갈 상인들과 선교사들이 도착하였고, 곧 뒤를 이어 네덜란드와 영국 상인들도 일본을 찾아왔다.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일본은 서구열강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으나, 1850년대 미국을 비롯하여 서구 열강들과 일련의 조약들과 협약들을 맺었다. 19세기 말에 봉건제도가 붕괴하기 시작하였고, 천황 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가 출현하였다. 1890년부터 1910년 사이에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또한 이 시기에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1945년까지 통치하였다. 1930년대에 강력한 민족주의 군부정권이 주도하면서, 주변국들을 침략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였고,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의 미해군 기지를 폭격하여 미군이 연합군에 참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10만 명 이상이 사망하면서 전쟁이 종식되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임시정부가 설립되었고, 1947년, 천황을 의전적인 역할만 감당하는 명목상 군주로 격하시키는 새로운 헌법이 공포되고 이에 의거한 정부가 출범하였다. 새로운 일본 정부는 국제분쟁에의 무력개입과 일본군의 무장을 포기하였다. 이후 일본 경제는 1960년대를 거치면서 군사비 지출의 감소와 높은 학력과 성실한 노동력으로 인해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 천황 히로히토가 62년간의 재위를 끝으로 사망하였다. 지난 30년간 전례가 없는 성장을 계속해온 일본경제 역시 1997년 발생한 아시아의 금융위기로 인하여 중대한 타격을 받았다.일본 사회에서 가장 중심적인 종교는 신도(神道)와 불교이다. 신도는 일본에서 시작된 종교로, 일본어로 “가미”라고 부르는 혼령들을 숭배한다. 신도의 다신론적인 전통과 의식, 자연 신앙은 여전히 일본인들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불교, 유교, 도교의 신앙체계와 혼합되어 왔다. 1549년, 프랜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를 비롯한 포르투갈과 스페인 출신의 로마 가톨릭 교회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일부 지역에서 개종자들과 교육사업, 사회사업을 통하여 기독교가 확산되었으나, 1600년대 초부터 기독교를 서구 제국주의와 동일시하며 일본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시각이 나타났다. 개신교 신앙을 비롯한 다른 종교들에 대한 이러한 의심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와 순교로 이어졌다. 19세기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다시 일본을 찾았을 때, 그들은 “카쿠레(숨은) 기독교인들”로 알려진, 수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20세기 초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기세를 올리면서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천황이 아닌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우선적으로 충성한다는 이유로 혹독한 박해를 당했다. 일본 정부의 전제적 통치는 한국의 개신교회를 모두 하나로 묶어 일본기독교단(교단)으로 통합하였고, “교단”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한 교회들은 모두 폐쇄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구 종교법이 폐지된 후에 많은 교회들이 “교단”에서 탈퇴하였지만 여전히 개신교회에서 가장 큰 교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에큐메니칼 상황에서 존속과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기독교인의 절반은 로마 가톨릭 교인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개신교인들이다.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국주의가 저질렀던 잔혹성에 대한 책임고백을 통해 일본의 죄과를 깊이 통감하고 있다. 교단은 “교회가 지난날 죄에 빠졌고 파수꾼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데 소홀했다”면서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의 용서를 구하고 있다.
대만 (Taiwan)
통계인구: 2,270만 명정부형태: 공화국언어 : 중국어문자해독률 : 94%종교 : 불교 43%, 도교 20%, 이-쿠안(I-Kuan) 도교 3.8%, 소수의 기독교와 무슬림, 광범한 유교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대만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Taiwan)
역사대만인들은 중국 해안에 인접한 몇 개의 섬에 살고 있다. 16세기1부터 19세기 말까지 대만은 중국의 영토였고,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 점령되어 “포모사”(Formosa)라고 불렸다. 1949년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만다린어를 사용하는 국민당 계열의 2백만 명이 대만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1946년 헌법을 제정하고 중국 정부라고 공표하였다. 이들은 그 후 50년간 대만을 통치하면서 점차 민주적인 정부를 만들어갔고, 대만의 원주민들도 정치계에 편입되었다. 2000년 국민당 정부가 민주적인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국민당 집권기에 대만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동아시아의 경제적 “대표주자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의 자치권을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본토에 속한 자국영토로 선언하였다. 이로 인해 두 개의 중국의 관계는 적대적인 긴장을 유지해오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는 문제는 대만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1621년 로마 가톨릭교회의 도미니크회 신부들이 필리핀을 통해 처음 대만에 찾아온 기독교 선교사들이었고, 곧이어 네덜란드 개신교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중국계 해적들이 섬을 정복한 후 모든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을 살해하였다. 1865년 장로교 선교사들이 도착하였다. 일본이 1890년부터 1945년까지 대만을 점령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억압 정책을 썼으나, 교회는 일본에 저항하면서 성장하였다. 오늘날 대만 장로교회가 대만에서 가장 큰 단일교단이다. 1991년 대만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가 설립되었으나, 많은 대만 기독교인들은 군소교단과 독립교회에 속해있다. 국민당 정부 시절 대만 장로교회는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정부와 많은 갈등을 빚었고,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감옥에 갇혔다. 최근 들어 기독교회들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감사기도 제목● 대한민국의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교회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개인적인 성공에 높은 가치를 두는 세상적인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증거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남북한이 하나 되는 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자신의 나라에서 소수에 속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김치와 초밥, 차(茶) 온갖 놀라운 해산물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생명의 장단을 울려주는 큰 북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하여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핵무기의 완전한 철폐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인권이 더욱 보장되고, 정치적인 부패가 줄어들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오해와 긴장이 반복되는 이들 지역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영양실조와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북한 주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절망과 빈곤, 폭력만을 경험하는 북한 주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정의롭고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영적인 온전함 대신 권력과 명성, 부를 구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충만하고 새롭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대만의 원주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강력한 지진 이후에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매매춘을 강요당하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오 하나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하여 저희는 이러한 대량살상 무기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무기인지, 얼마나 사람들의 삶을 뿌리부터 파괴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세계는 이전보다 몇 배나 큰 파괴력으로 지구를 폐허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 주님, 제발 모든 인류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모든 종류의 핵무기들을 지구상에서 철거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데이비드 부스크, 나가사키 - David Busk, Nagasaki)
(2)
사랑과 소망의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사람들은 불의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오직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고,패자는 실제로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는 경제적인 법칙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어떻게 소망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멈출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세계화의 주역들에 세운 법칙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더 많은 소프트웨어와 장비들, 그 외의 물건들을 사시오.상점에 오시오, 그러면 당신은 행복해질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주님께 옵니다.비록 우리는 적은 무리이지만, 우리는 아직 사랑의 법칙을 따릅니다.우리가 어떻게 주님 아닌 세속적인 시장의 법칙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온 우주의 하나님, 저희에게 힘을 주옵소서.가장 어두운 골짜기와 길거리에서 피어나는 타이완의 백합화와 같이 참된 정의가 활짝 피어나는 그 날에 대한 소망을 우리가 계속하여 갖게 하옵소서. (왕젠웬, 타이완 - Jen-wen Wang, Taiwan)
(3)
오, 하나님! 일찍이 주님의 손으로 억눌린 자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주님의 백성들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희의 눈을 들어 저희를 둘러싼 공포에 가득한 얼굴들을 보며,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저희는 더 이상 기쁘게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오, 하나님! 우리 땅에서 주님의 승리는 너무나 겸손하고, 조용하고, 작습니다.우리 땅에서는 공포와 절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세상의 엄청난 힘의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소망이 없습니다. 오, 하나님! 일찍이 주님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건축자들의 버린 돌로 머릿돌을 삼으셨습니다!오셔서 저희의 무서워하는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우리가 부를 노래를 가르쳐 주옵소서.“나는 결코 죽지 않네, 나는 반드시 살아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왕젠웬, 타이완 - Jen-wen Wang, Taiwan)
(4)
영원하신 하나님,주님의 공의가 태양처럼 빛나고이 세계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 온 누리에 드러나는 날이 언제입니까?저희의 마음이 간절히 기다리며 외칩니다.더 이상 어둠 속에 숨어있는 손이 없기를!더 이상 대중매체를 통한 언론조작이 없기를!세계시장에서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멈추기를!시간과 공간의 주님,평화와 정의의 주님, 오셔서 우리가 이 세계화된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소서.새로운 세계질서 안에 있는 억압의 모습을 깨닫게 하옵소서.생명의 길을 택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주님을 위하여 저희들 자신을 드립니다. 주님의 빛을 비춰주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왕젠웬, 타이완 - Jen-wen Wang, Taiwan)
(5)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볼 때에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희의 매일의 삶과 일에서,저희 안에 부활하신 당신의 능력을 느낄 수 있다면엄청난 기쁨이 될 것입니다.오, 예수 그리스도시여, 수 십 만의 서로 다른 모습들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 그리고 이 세계에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는 여성의 노동 속에서,사랑과 수고로 논을 돌보는 농부의 노동 속에서주님을 알 수 있게 하옵소서.주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저희를 채워 주옵소서.(왕젠웬, 타이완 - Jen-wen Wang, Taiwan)
(6)
영원하신 하나님,주님께 아침 인사를 드립니다.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이른 아침에, 저희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아침의 꽃과 같이 저희의 몸을 새롭게 하옵소서.아침 햇살이 지난밤을 지배했던 어둠을 물리치는 새로운 빛을 비추는 것처럼저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옵소서. 저희를 사로잡은 모든 허망한 것에서 구하여 주옵소서.하늘의 새들과 같이 자유의 날개를 주셔서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하옵소서.오고 오는 모든 날처럼 쉬임 없이 흐르는 저 강물같이 정의와 자유를 회복하게 하옵소서.이 아침에 주신 은총과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새로운 날로 말미암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사오 타케나카, 일본 - Masao Takenaka, Japan)
(7)
기도! 기도! 기도드립니다!하나님, 몇 달 동안 계속 반복하고 있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제 영혼의 모서리가 더욱 날카롭게 하옵소서.제 가슴이 고통의 몸부림으로 터져버릴 찌라도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하옵소서.고통으로 잠들 수 없어거의 미쳐버릴 것 같은 그 땅, 그 광야로 나가겠습니다. 얼어붙은 겨울 새벽 쏟아지는 별빛이 넘치는 땅입니다.제가 홀로 기도드리게 하시고, 가장 밑바닥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기로제가 홀로 결정하게 하옵소서: 그들과 함께 매 맞고, 그들과 함께 쇠약해지고, 그리고 마지막에 그들과 함께우리의 머리를 높이 들고빛나는 아침 햇살 속에서당당하게 땅에서 다시 일어나기로.제가 홀로 결정하게 하옵소서.(김지하, 대한민국)
(8)
주님이 누구라고 말해야 합니까? 저는 모릅니다.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주님은 - 사로잡힌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복음입니다.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민중과 고통 받는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의 친구이며, 침묵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고문당한 사람들을 치유하며, 낮은 자들을 변호하며,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자기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분입니다. 주님이 누구라고 말해야 합니까? 저는 모릅니다.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주님은 - 억압의 골짜기에 피어난 자유의 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박선원, 대한민국)
(9)
오, 사망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신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에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오, 창조주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저희를 묶어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저희 죄를 고백합니다.주님의 자비를 보여주시고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주님께서 저희를 하나가 되게 하셨지만 저희는 너무 오랫동안 서로 나뉘어 있었고, 지금까지 갈등과 고통으로 찢겨있습니다.우리의 분열을 치유하시는, 오, 예수 그리스도시여!저희를 도우사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할 때마다 한국의 아픔과 슬픔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한국인들을 도우사 통일의 십자가를 높이 들게 하시고그들이 계속하여 왕래하고 협력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그들이 통일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한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악한 권세를 물리치게 하시고하나 된 민족의 이상을 함께 그리며하나의 나라가 되어 살아가게 하옵소서.오, 성령이여, 한국인들을 평화와 통일로 인도하시며, 주님의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고,평화와 일치를 위한 믿음과 희생이 자라게 하옵소서.그들을 인도하사 그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하나가 될 때,모든 창조세계의 조화와동북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게 하옵소서.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대한민국)
(10)피었다가 곧 떨어져 잊혀지는 벚꽃과 같이, 주님의 풍성하신 자비 안에서 저희의 죄가 흘러나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일본)
(11)
주님!저의 마음을 정케 하시고 눈과 같이 희게 하옵소서.저의 믿음을 산과 같이 굳게 하옵소서.저의 인격을 꽃과 같이 아름답게 하옵소서.제가 진리를 위해 싸울 때에,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하옵소서.제가 정의를 위해 고난당할 때에, 어린 양과 같이 온유하게 하옵소서.제가 고난 가운데 봉사할 때에, 들소와 같이 인내하게 하옵소서.오, 하나님, 저의 인성을 회복시켜 주옵소서.(C.M.카오 박사, 타이난 - Dr. C. M. Kao, Tainan)
(12)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 저희 기도를 들어주옵소서.주님은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십니다.주님은 모든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모든 땅에서 주님 백성이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지금, 국제사회에서 불명예를 당하고, 중국의 제국주의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열망하는 대만을 봐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대만을 위한 주님의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모든 대만인들의 얼굴에서 눈물과 수치를 씻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대만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주옵소서.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이 세계에 주님의 평화와 정의가 영원히 충만하기를 기도드립니다.(로콩히 박사, 타이난 - Dr. Kong-hí Lo, Tainan)
(13)
다함께: 정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약한 자들을 선택하셨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불의한 제도와 차별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살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낭독자: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정의와 화해를 세우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장벽을 무너뜨릴 능력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남북한이 통일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화의 길에 우리와 함께 하시옵소서.(남한)
2010-06-22 03: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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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상가포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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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상가포르 편
브루나이 술탄 왕국 (Sultanate of Brunei)통계인구: 36만 5천 명정부형태: 자치적 입헌군주제 언어: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문자해독률: 88%종교: 이슬람교 67%, 불교 9%, 기독교 7%, 중국 부족종교 4%, 유교 2%, 힌두교 1%, 기타 2%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없음역사 브루나이는 남지나해 보르네오 섬의 말레이시아 영토와 접하고 있다. 주후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국가적 영향력이 가장 높았다. 이 시기에 독립적이고 전통적인 이슬람교를 배경으로 한 국왕(혹은 술탄)이 통치하면서 보르네오 섬의 북서쪽 지역과 남부 필리핀까지 영향력이 미쳤다. 1888년을 기점으로 국내적인 분열과 식민세력의 침략, 해적의 창궐 등으로 급격하게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고, 190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차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에 점령되었고, 1945년 오스트레일리아에 의해 해방되었다. 1959년 국왕이 내치권을 되찾았으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Federation of Malaysia)에 편입되었다. 그 후 영국에 방위권과 외교권을 넘겨주었다가, 1984년, 국왕이 통치하는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현재까지 동일한 왕조가 6세기 이상 브루나이를 다스리고 있다. 브루나이는 풍부한 석유 자원과 천연 가스로 인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브루나이 국왕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부자이다. 1997~98년에 찾아온 아시아의 금융위기 속에서, 국제 유가가 두 배 이상으로 등락하면서, 브루나이 경제도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경험하였다. 현재 전문가들은 브루나이에 매장된 석유가 2020년 경 고갈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브루나이는 원유 생산이 주된 수입원이기 때문에 식료품을 포함한 많은 상품들을 수입해야 한다. 비록 브루나이의 국민소득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재화는 국왕에게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직접적인 수입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에게는 남성들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슬람교는 브루나이의 국교이며,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슬람 교인들이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슬람 교인들의 개종을 금하고 있다. 1991년,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부들과 수녀들이 추방되었다. 적극적인 이슬람교인들 중에는 브루나이를 지금보다 더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말레이지아 (Malaysia)통계인구: 2,350만 명정부형태: 입헌군주제언어: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문자해독률: 남성 91%, 여성 83%종교: 이슬람교 48%, 중국 부족 종교 24%, 기독교 8%, 힌두교 7%, 불교 7%, 기타 6%세계교회협의회 회원: 말레이시아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in Malaysia), 사바 기독교회(Protestant Church in Sabah)역사말레이시아는 말레이 반도(서 말레이시아)에 있는 열 한 개 주(州와) 보르네오 섬(동 말레이시아) 북쪽에 위치한 두 개의 주의 열 세 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18세기 영국의 식민지였고, 이차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에게 참혹하게 점령당했다. 1957년 반도에 위치한 열 한 개 주가 독립하여 말레이아 연방(Federation of Malaya)을 구성하였고, 1963년 보르네오 섬의 두 개 주가 편입되면서 말레이시아 연방(Federation of Malaysia)의 구성이 완결되었으나, 같은 해 싱가포르가 탈퇴하면서 공식국호를 말레이시아로 다시 변경하였다. 말레이시아 인구는 삼분의 이 가량의 말레이족, 20퍼센트의 중국계, 9퍼센트의 인도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밖에 원주민들과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찾아온 이민 노동자들이 있다. 그러한 인종적 다양성으로 인해 수년간 폭동과 폭력사태가 이어졌고, 인종차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현재 말레이시아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 1990년대 성공적이었던 경제발전이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말레이시아는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비해 극적으로 경미한 영향을 받았다.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수니파 이슬람교가 말레이시아의 국교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 다시 활성화된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들로 인하여 종교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슬람 교인들의 개종과 배교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기독교 서적이나 용품의 판매와 기부 역시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16세기 초에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의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말레이시아를 찾아왔고, 프랜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 신부는 1540년대에 말레이시아에서 몇 년 동안 체류하였다. 개신교에서는 17세기에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찾아왔으나, 1814년 런던 선교협회(London Missionary Society)가 선교를 시작하기 전까지 말레이인들에게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되지 못했다. “말레이시아 불교, 기독교, 힌두교, 시크교 협의회”(Malaysian Consultative Council of Buddhism, Christianity, Hinduism, and Sikhism)와 “말레이시아 교회협의회”(Malaysia Council of Churches, MCC)를 비롯한 에큐메니칼 단체와 종교간 협력 기구들이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 교회협의회(MCC)와 로마 가톨릭교회 대표들, 그리고 말레이시아 복음주의 기독자 협회(National Evangelical Christian Fellowship)로 구성된 말레이시아 기독자 연맹(Christian Federation of Malaysia)이 있다.싱가포르 공화국 (Republic of Singapore)
통계인구 : 430만 명정부형태 : 1965년 이래로 의회제 공화국언어 : 말레이어, 그 외 중국어, 영어, 타밀어(Tamil), 말레이알람어(Malayalam), 푼자비어(Punjabi), 자바어(Javanese), 힌두어(Hindi)문자해독률 : 남성 96%, 여성 88%종교 : 도교 43%, 이슬람교 18%, 불교 15%, 기독교 12%, 힌두교 5%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싱가포르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in Singapore)
역사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 남단의 섬에 위치한 도시국가이다.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에도 여러 세기 동안 많은 부족의 사람들이 살았다. 14세기에 싱가포르는 말라카 국왕(Malacca Sultanate)의 통치 아래 있었다. 1819년 영국이 싱가포르의 국왕과 지배자들과 공식적인 계약을 통해 이 섬에 대한 통치권을 획득하였고, 이 섬을 영국인들을 위한 거주지로 지정하면서 싱가포르는 말라카와 페낭(Penang)을 묶는 영국 왕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이차세계대전 중에 3년간 일본이 점령하였으나 전후에 영국에 반환되었다. 1959년 영국의 통치에서 해방되었고,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인접한 말레이시아의 영토로 속해있었다. 그 후 싱가포르는 매우 안정적이고 권위적인 정치적 기반 위에서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싱가포르는 고도로 발달된 자유시장과 높은 수출의존도로 상징되는 경제력이 주도하는 나라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싱가포르는 개방적인 사업 환경과 낮은 물가 상승률, 낮은 실업률과 고학력의 노동력 등으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샀다. 싱가포르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민소득과 생산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안정과 성공에는 그에 따르는 부작용들도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속적인 경제적 번영과 다양한 인종과 종교적 배경을 가진 국민들의 화합을 강조하는 반면에 경제와 정치적 변화를 요청하는 개인과 종교적 기구들의 권리를 상당히 억압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사회법(Society Act)에 의해 모든 종교 단체들은 정부에 등록해야 하며, 정부의 세밀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 조사 과정에서 공공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단체들은 해산을 명령하거나 불법단체로 규정할 수 있다. 싱가포르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정치적 반대자들이나 비판세력에 대한 검열에 대해서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의 종교적 표현에 대한 세밀한 검열은 종교들 간의 화합이 추진되고, 개종을 위한 선교가 감소되고, 협력적인 구제 사업이 활성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한편으로 선교적 관점에서 싱가포르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교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1987년 싱가포르에 본부를 두고 있던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 CCA)에 대해 싱가포르 정부가 “해산” 명령을 내리고, 이 단체의 외국인 실무자들을 모두 추방하는 일이 있었다. 이 결정의 실제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싱가포르 정부는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CCA)가 “어떠한 종류의 정치적 행위에도 개입하지 않고, 단체의 기금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종교단체의 등록조건을 위반했다고 공식적인 이유를 발표하였다. 정부는 CCA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의 “해방운동”을 지원하는 기반으로 이용해왔고, 이러한 움직임은 싱가포르 내부의 사회전복 세력에 대한 잠재적인 지원이 된다고 발표하였다. CCA는 1993년 홍콩에 본부를 다시 개소할 때까지 여러 지역에 마련된 사무실에 흩어져 활동하였다. 싱가포르 인구 중 대략 75퍼센트가 중국계이고, 종교 역시 도교를 비롯하여 중국 종교들이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다. 6세기 초 찾아온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의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들이 싱가포르 최초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 후 네덜란드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17세기 중엽 찾아왔고, 이들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억압하였다. 현재 싱가포르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로마 가톨릭교회, 감리교회, 형제단(Brethren), 성공회(Anglican),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독립교회에 속해 있다. 1990년대 들어와 새롭게 세워진 교회들을 통하여 성령은사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싱가포르의 유일한 에큐메니칼 조직으로 개신교회들과 동방정교회가 가입하고 있는 싱가포르 교회협의회는 1948년 조직된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교회협의회(Council of Churches of Malaysia and Singapore)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감사기도 제목● 놀라운 생명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이들 나라들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식물들과 동물들이 있습니다. ● 더욱 좋아지고 있는 경제와 많은 취업의 기회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싱가포르의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는 싱가포르의 다양한 전통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공식적인 종교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억압당하고 있는 종교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시민권을 거부당하고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는 브루나이의 중국계 주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브루나이의 가난한 이들이 건강을 유지하고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의 다양한 인종들 간에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고양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천연자원의 올바른 사용을 계몽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들 중에서 이등 국민으로 취급되는 여성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주 예수님, 주님은 주님 소유의 주택이 없었습니다.주님은 주님 소유가 아닌 집에 머무셨습니다. 주님은 다른 이들의 땅 위에 서서우리의 집을 밀어버리려 하는 불도저의 굉음 소리에 두려워하며잔뜩 웅크려있는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독수리들이 하늘을 맴도는 광야에서 금식하셨습니다.주님은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되면서 굶주림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주님은 우리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우리의 주린 배가 다음 식사가 언제인지 몰라 신음하는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계십니다.주님은 잔인한 사막의 태양 아래 걸으셨으며, 주님은 당신의 등을 태우는 듯한 뜨거움을 느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양철 지붕이 뜨겁게 달구어져 우리를 어지럽게 하고, 우리의 이마 위로 땀이 흘러내리게 하는 그 쏟아지는 태양빛이 얼마나 뜨거운지 아십니다.그러나 주님은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더럽고 추한 우리 속에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십니다. 해가 뜨는 것은 또 다른 곤고한 날의 시작이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힘들여 일해야 하는우리의 삶에 가득한 절망과 고통을 아십니다. 주 예수님, 우리가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주님은 생명의 떡이고, 빛나는 새벽별입니다. 절망의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소망의 빛을 비춰주지 않으십니까? (2)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나는 모든 아버지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잘 먹이고어머니들이 그 아이들을 강하고 부드러운 아이들로 키우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이웃들의 실상을 똑바로 보기 원합니다. 그들이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듣기 소망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신뢰의 기운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젊은 날 깊은 상처를 입은 이들이치유받고 회복되고 활기를 되찾기를 소망합니다.나는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치유와 평화의 물결이 열방으로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나의 형제자매들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들의 춤을 함께 추며, 그들의 시를 암송하기 원합니다.나는 그 울림에 나의 목소리가 더해져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서로를 더 알기 원하는 마음이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녀의 이상. 그의 꿈. 그녀의 힘. 그의 은사들. 그녀의 소망. 그의 열망. 그녀의 걱정. 그의 공포. 그녀의 아픔. 그의 슬픔. 그녀의 분노, 그의 격분. 그녀의 결정, 그의 노력. 그녀의 기쁨. 그의 흥분. 그녀의 발견들. 그의 시작들.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 속에서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기 원합니다. 나는 이전과 다른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친절하게 살아가고, 겸손하게 걷고, 관대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 예수님, 제게 오시옵소서. 항상 오셔서 저를 구원하셔서-주님의 소망이 나의 소망이 되고,주님 안에 살아가는, 온전하게 거룩한 존재가 되게 하옵소서.(3)국내의 정변들로 가정들이 무너지고어린 아이들이 생존을 위하여 거리로 내몰리는 곳,많은 자원들이 무기와 파괴를 위하여 허비되고병들고 굶주린 자들에 대한 관심이 자꾸만 줄어드는 곳에,성령이여 오셔서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모든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소서!재물을 취득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고인간의 가치가 소유의 정도에 따라 정해지는 곳,환경오염이 우리의 공기와 나무들, 그리고 바다를 공격하고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이 우리의 환경을 위협하는 곳에,성령이여 오셔서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모든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소서!부족주의와 인종주의로 갈라진 나라들과무분별한 테러리즘으로 인하여 억울한 희생자들이 생겨나는 곳,나라들 간에 무차별한 전쟁이 계속되고핵무기로 인한 대략살상의 조짐이 수평선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곳에,성령이여 오셔서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모든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소서!(4)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움을 보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창조세계의 무한한 다양성들-하늘과 산들과 계곡들과,들판과 강들과 바다들을 봅니다.창조의 풍성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매일의 삶이 더욱 풍요롭고 섭리 안에 살아가게 하십니다.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선물들과 우리가 창조 세계의 청지기로서 주님의 목적에 따라 함께 나눠야 할 기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영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옵소서.주님의 창조 세계를 보전해야 할 우리의 책임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우리 주님,주님의 살아있는 사랑과 악과 죄와 죽음을 정복하신 주님의 능력을 보다 분명하게 보게 하옵소서.주님,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에게 영감을 주셔서,주님의 세계와 또한 다른 이들에게 속한 자원들을 열망하고 함부로 남용하는 이들의 능력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우리의 마음속에 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모든 인류의 상황을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고, 주께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미래를 볼 때에,역사 속에서 이루신 주님의 일에 대한우리의 믿음과 확신이 더욱 커집니다.주님께서 가난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을 돌보실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주님의 예언자들이 불의에 항거하여 증언할 것이고,주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끌어안을 것입니다.우리는 오직교회가 신중하기보다 더욱 용감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고통당할 때에교회가 침묵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상처 입은 지구가 치유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교회가 “다른 길로 그냥 지나쳐 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5)인생의 소망 없이 소용돌이치는 그 어딘가에 도움의 손길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아멘. (6)하나님, 이 나라에 주신 복들,평화와 정부의 안정성, 풍부한 지하와 바다의 자원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오, 아버지 하나님, 모든 이기주의와 나태함으로부터 주님의 자녀들을 돌보아 주옵소서.우리가 작은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에 응답하는 것으로만족하는 것을 막아주옵소서.주님의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죄의 그늘에 있는 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7)주 예수님,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항상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 우리 주위의 불의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우리가 불의의 희생자들에게 대하여 자비의 마음으로 행하게 하시고,주님의 뜻과 합하여 행동하게 하사, 가장 가난한 이들을 지켜주고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구하게 하소서. 주 하나님, 주님은 무력한 이들, 괴로움 속에 있는 이들, 연약한 이들, 그리고 감옥에 갇혀있는 이들의 존재를 너무나 강하게 느끼시고,그들을 너무나 깊이 사랑하십니다.우리의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억압당하는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게 하시고,공평하고 정의롭고 온전하게 봉사하게 하옵소서. (8)“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펴되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사54:2).오 주님, 우리를 도우사 우리의 포용력과 상상력이 넓어지게 하옵소서.우리를 도우사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우리를 도우사 서로 손을 맞잡고 우리의 범주를 넓히고 서로 용납하게 하옵소서.에큐메니칼한 공간이 보다 넓은 장막이 되고 안전한 광장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공동체들의 필요와 관심이 공유되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토론하는 장이 되게 하시고,우리의 여정이 주님의 말씀으로 인도되는 보다 발전된 제안들이 나누어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개인적인 한계들과 무력함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아진 지혜를 통하여 인류를 향한 당신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더욱 잘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사 우리의 장막을 넓히고 열어놓을 수 있는길고 강한 줄을 다시 붙잡게 하옵소서. 우리의 교회들과 에큐메니칼 기구들을 축복하셔서,그들의 목소리가 멀리 퍼져나가게 하시고, 주님과 주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책임적이고 효과적인 도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도우사 강한 말뚝으로 우리의 넓은 장막을 견고하게 받치게 하사,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깊이 이해하게 하시고,주님의 믿음 안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시고,주님의 말씀을 빨리 붙잡게 하옵소서.흐린 날이나 맑은 날이나우리의 교회들과 기관들이 안전하고 사랑이 넘치는 공간을 만들게 하옵소서.폭풍우 속이나 잔잔한 날이나우리는 주님의 한계가 없는, 넘치는 사랑을 나누는 교제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 되어 행동할 때에이 세계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2010-06-22 03: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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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츠와나 짐바브웨 편
-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유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아무런 공포 없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 자유롭게 서로 만지고, 간지르고, 껴안아도 되는 곳, 자유롭게 자신이 되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세상 말입니다.
나는 우리 청년들의 꿈이 활짝 피어나는 세상을 꿈꿉니다.그들이 잠재력이 현실이 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곳,사람들의 수고가 보상을 받는 곳,누구든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세상 말입니다.
나는 포용력을 가진 교회를 꿈꿉니다.더 이상 내가 미래의 교회를 대표하지 않는 곳,나의 고유한 음정으로 노래해도 되는 곳,나의 자립적인 결정으로 소속하는 교회 말입니다.
나는 후천성 면역결핍증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나는 주님을 찬양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아프리카 청소년들의 만화경 같은 세상을 꿈꿉니다.나는 더 이상 죽음이 없는 충만한 생명을 꿈꿉니다.<모이세라엘레 디빌라(Moiseraele P. Dibeela), 보츠와나>
보츠와나 공화국(Republic of Botswana)
통계인구 : 1백 80만 명정부형태 : 다당제 의회민주제 언어 : 영어문자해독률 : 남자 80%, 여자 82%종교 : 대다수 부족 종교, 기독교 30%, 소수 이슬람교와 힌두교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중앙아프리카 지역교회 (성공회)
역사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프랑스보다 조금 큰 영토를 가지고 있다. 주변에 나미비아, 잠비아, 짐바브웨,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둘러싸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칼라하리(Kalahari) 사막에 포함되어 있으며, 서쪽 국경까지는 모래로 이루어진 고원지대이다. 오카방고(Okavango) 강은 이 나라를 관통하는 큰 물줄기로 북서쪽 국경에 있는 늪지대로 이어진다. 보츠와나 공화국의 원주민인 부쉬(Bush)족은 북쪽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보인다. 부쉬족을 이어 호텐토츠(Hottentots)족이 찾아왔고, 그 다음으로 반투어를 말하는 부족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서로 생산물을 교환하며 평화롭게 공존했다. “보츠와나”라는 이름은 보다 루에 이 지역에 찾아온 츠와나(Tswana) 부족의 이름에서 왔는데, 이들은 15세기 초에 남아프리카에서 올라왔다.
19세기 말엽 보츠와나와 1885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면서 베추아날란드(Bechuanaland)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트란스발(Transvaal)에서 온 보어(Boer, 네덜란드계의 남아프리카 주민들: 역주) 거류민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베추아날란드를 남아프리카 연방으로 끌어들이려는 남아프리카의 시도들이 강한 저항에 부딪혔고, 그 후 자치적인 정부를 세우기 위한 저항의 역사가 오랫동안 이어졌고, 1966년 보츠와나는 독립국이 되었다. 이는 세츠와나(반투어 사용 부족들) 전통에 뿌리를 둔 가장 오래된 민주국가의 성립이었다. 세츠와나 전통은 부족들을 이끄는 추장들의 권력을 관습과 법으로 제한했던 크고틀라(Kgotla, 부족 협의회)의 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보츠와나의 경제는 다이아몬드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광산의 일거리가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광산 노동자들은 남아프리카로 일거리를 찾아 여행하기도 한다. 국가의 상위 20퍼센트 인구가 전체 부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인구의 50퍼센트 이상이 국민총생산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권보장이 잘 되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공교육과 안전한 식수의 확보, 후천성면역결핍증 확산 방지 등이 이 나라의 주된 관심사항이다. 보츠와나는 세계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성인 인구의 40퍼센트에 가까운 이들이 감염되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찾아온 가뭄 역시 보츠와나의 심각한 국가적 문제이다.
이 나라에서는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회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런던 선교협회(London Missionary Society)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연합 회중교회(United Congregational Church)가 중심적인 교단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두 번째로 큰 교단이다. 1990년대에 오순절 계통의 성령갱신운동이 일어났다. 1966년 조직된 보츠와나 기독교 협의회(Christian Council of Botswana, CCB)는 로마가톨릭교회를 비롯한 많은 교단들이 회원으로 가입해있다. 이 기구는 보츠와나의 도시와 농촌 지역의 개발 프로그램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도시산업선교 활동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몇 십 년 사이에 부족 종교들이 감소하면서 기독교인의 숫자가 급속하게 증가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짐바브웨 공화국 (Republic of Zimbabwe)
통계인구 : 1천 2백 90만 명 정부형태 : 의회제 공화국언어 : 영어 종교 : 기독교 60-70%, 부족 종교, 소수 이슬람교와 유대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짐바브웨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Zimbabwe), 짐바브웨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in Zimbabwe), 짐바브웨 개혁교회(Reformed Church in Zimbabwe), 짐바브웨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in Zimbabwe), 중앙아프리카 지역교회(성공회)
역사짐바브웨 역시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보츠와나의 동쪽, 남아프리카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상으로 열대기후대에 속하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높은 고원지대인 까닭에 온건한 기후를 보이고 있다.
짐바브웨에서 발견된 인간의 거주 흔적은 약 5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호이산(Khoisan)족이 가장 일찍 이 지역에서 살았던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반투족이 들어왔고, 그 후에 들어온 쇼나(Shonas)족이 1천 년 전부터 이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1850년대 영국인 탐험가들이 찾아왔을 때, 이 지역은 쇼나족의 후손인 느구니(Nguni)족과 줄루(Zulu)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후 이 지역은 남아프리카 회사를 세운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이름을 따 로데시아(Rhodesia)라고 불렸다. 로데시아는 1923년 자치권을 가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짐바브웨는 충돌과 폭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90년부터 1979년까지 소수인 백인들이 정부를 다스리고 있었다. 1965년 이들 소수파 정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부터, 1979년 여러 부족들이 참여하는 선서를 실시하기로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기까지, 흑인 민족주의 그룹들은 독립을 위하여 무장투쟁까지 벌였고, 국제단체들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정치경제적인 압력을 가하였다. 1980년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이로 승리한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는 국가명칭을 쇼나어로 “돌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짐바브웨로 개명하였다. 그 후 일당 사회주의 체제로 십년 간 통치한 무가베는 1990년 복수정당이 참여하는 자유선거를 실시하였다. 무가베는 이 선거에서 다시 승리하여 정권을 계속 유지하였다. 2002년 무가베는 다시 선거에 승리하여 6년 임기의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투표용지 조작과 국제기구의 감시단들에 의한 비난을 받고 있다. 국제사회는 무가베의 독재가 한 차례 더 연장되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재 짐바브웨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토지의 공정한 분배와 경제정의 실현이다. 짐바브웨 독립전쟁의 참전용사들이 대부분인 무가베의 지지자들은 농장주들에게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혹은 그들을 공격하거나 살해하기까지 하며 이전에 백인들이 소유했던 농장들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2001년 개헌을 통하여 정부는 이전에 백인이 소유했던 농장들에 대하여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국가가 징발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무가베는 이들 농장주들이 영국 통치기에 영국의 법령에 따라 농장을 차지했기 때문에 농장주들이 보상을 청구할 대상은 영국 정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짐바브웨는 계속되는 폭력 사태와 정치 사회적 갈등, 의료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05년 실시된 총선에서는 국민들의 희망이 반영되는 최소한의 자유와 공정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찾아온 가뭄과 홍수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짐바브웨 경제는 거의 초토화되었다. 또한 백인들의 이주와 그에 따른 대규모 농장의 효율적인 경영실패로 인해 식량부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더욱이 다른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짐바브웨도 후천성면역결핍증이 심각한 정도로 유행하고 있다. 국제연합(UN)의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25%가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인 환자들이며, 이미 9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에이즈로 인한 고아들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짐바브웨의 기독교는 인종 간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때때로, 백인들과 흑인 기독교인들을 위한 고립적인 교회 공동체들이 있어왔다. 또한 교인들 중 흑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종 비율이 교단의 지도자들을 세우는데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 나라에는 많은 개신교회와 독립교회들이 있다. 단일 교단으로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교회는 짐바브웨 하나님의 성회(Zimbabwe Assemblies of God)이다. 로마가톨릭교회 역시 많은 교인들이 있고, 그 외에 많은 토착교회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회는 아프리카 사도교회(African Apostolic Church)이다. 오순절 계통 교회들의 성령갱신운동은 이 나라 뿐 아니라 주변나라들로 퍼져가고 있다.
짐바브웨 교회협의회(Zimbabwe Council of Churches), 짐바브웨 복음주의 협의회(Evangelical Fellowship of Zimbabwe), 에큐메니칼 감독 연합회(Episcopal Commission for Ecumenism), 아프리카 독립교회 연합회(African Independent Churches Conference) 등을 비롯한 많은 국제적 초교파 기구들이 활동하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이들 나라에서 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치료와 교육을 준비하고 실시하는 의료 복지 담당자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보츠와나 교회협의회와 짐바브웨 교회협의회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의 악기들, 마림바(marimba, 현악기의 일종), 북, 므비라스(mbiras,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현악기의 일종)와 셰이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에서 가수들이 함께 모여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합창제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짐바브웨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하여 일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삼촌들, 할머니들, 사촌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이들 나라의 정부 지도자들이 경제성장과 국민들을 위한 교육과 의료 제도를 개선하는데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지주들과 토지 사용자들, 그리고 토지개혁으로 자기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짐바브웨에서 인종 간의 화해가 이루어져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에이즈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희망을 가질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보츠와나의 가뭄을 생각하며 드리는 기도오, 하나님,기상 조건으로 인하여 끔찍한 상황이 된 지역에 사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혹독한 추위와 극심한 더위, 그리고 가뭄의 땅들,참혹한 박해와 궁핍의 땅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가축들은 늘 그들을 위협하는 주변 환경과 위험한 요소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모든 것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러한 도움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도드립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손길과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돕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토마스 텔레즈(Thomas Tellez), 보츠와나>
(2)고백의 기도창조주 하나님, 우리는 주님의 창조에 거역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피부색과 성별, 인종과 계급, 성적 정체성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였습니다. 이러한 차별로 인하여 이 사람들이 에이즈에 감염되었고, 평등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가져왔습니다. 주님,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무사 두베(Prof. Musa W. Dube) 보츠와나>
(3)하나님, 주님은 우리를 우리가 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것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서구의 생활방식과 문화를그대로 흉내 내며 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백성으로서 자긍심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주님은 우리를 흑인으로 지으셨으나 우리는 백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언어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노예로 만든 언어를 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어떻게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언어로 주님에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사는 것은 주님에게 속하는 것이고, 또 서로에게, 그리고 자연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주인들이 하는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산다는 것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모으는 것이다”우리가 보토(botho,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 역주)의 생활방식을 다시 배울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분열된 인격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우리는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졌습니다.우리들 자신이 아프리카의 향기와 진정함으로 충만한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모이세라엘레 디빌라(Rev. Moiseraele Prince Dibeela), 보츠와나>
(4)고백의 기도우리의 창조주,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의 자비를 구하며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죄를 범하였고,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었습니다.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하고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교만으로 인하여 연약한 이들을 학대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가 서로 간에, 그리고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모이세라엘레 디빌라(Rev. Moiseraele Prince Dibeela), 보츠와나>
(5)주님, 주님, 당신은 주님이십니다.주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주님은 숲의 주인이십니다.주님은 동물들의 주인이십니다.주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종들입니다.주님은 생명과 사망의 주인이십니다.주님께서 다스리시고 우리가 순종합니다.<칼라하리 부쉬맨(Kalahari Bushman), 보츠와나>
(6)하나님, 모든 인류의 아버지,주님은 지금까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조금도 부족함 없이 행하셨습니다.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친절하게 인도하셨습니다.오, 하나님, 우리는 아버지로서 아프리카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소망합니다.아프리카인들을 이 세계로 데려온 이들을 돌보고 사랑하게 이끌어 주옵소서. 삶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오직 폭력과 학대만 아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그들의 삶은 공허하고 상처로 가득 차 있습니다.아버지, 요셉을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옵소서. <체릴 디빌라(Rev. Cheryl Dibeela), 보츠와나>
(7)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옵소서.우리가 소망이 없이 살아가고,에이즈에 감염되어 그 짐에 눌리고,모욕과 차별의 굴레에 갇혀 있을 때,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우소서.
거룩하신 창조주시여,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옵소서.우리가 에이즈 퇴치 운동을 무시하고,과부와 고아들을 그냥 지나쳐가고,운명과 파괴를 설교할 때,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우소서.
이제 소망의 소식을 듣게 하옵소서.밤이 가장 깊은 후에 달빛이 가장 밝은 것처럼,질병과 고통이 물러가고,모욕과 차별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모든 영광과 찬송을 주님께 돌립니다.소망과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에즈라 치탄도(Dr. Ezra Chitando), 짐바브웨>
(8)돌들을 쌓아 산들을 세우시는 위대하신 성령님,주님께서 돌들을 밟고 설 때에티끌들이 일어나 온 땅을 덮었나이다.하늘을 옷감처럼 짜신 아버지,아래 있는 것들도 함께 짜 주옵소서. 나무들의 가지들이 뻗치는 방향을 알려주시고,솟아나는 줄기들이 곧게 자라게 하십니다.놀라우신 성령님, 주님은 우리가 피할 바위들 사이에 계십니다.주님은 인류에게 비를 주십니다.오, 주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우리가 주님께 구할 때에 자비를 보여주옵소서.은혜로우신 주님, 주님은 위대한 영혼들과 함께 하늘 위에 계십니다.주님께서 푸른 언덕들을 땅 위로 일으키시고 강들을 창조하셨습니다.<쇼나어(Shona) 기도문>
(9)주 하나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주시니 감사드립니다.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가난으로 무너졌습니다.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생명을 선물로 받는 동안우리는 또한 질병과 사망과 파괴에 포위되었습니다.우리는 자주 절망에 빠지지만, 주님께서 돌보시는 것을 알기에 여전히 소망을 가집니다. 우리는 말없이 눈물 흘리며 깊은 슬픔으로 울고 있습니다.우리의 유일한 소망과 요새가 되시는 주님께 나옵니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더욱 힘들어질지라도우리에게 웃음을 선물로 주시니 감사드립니다.오, 주님, 주님과 함께라면, 고난을 당하지만 부서지지는 않을 것입니다.<파라이 치리사(Rev. Farai Chirisa), 짐바브웨> (10)거룩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주님의 능력의 손 안에 우리가 나아갑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주님의 권능의 역사들로 인하여 찬양을 드립니다.우리의 몸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우리의 성적 정체성을 책임적으로 드러내게 하옵소서. 우리가 성령의 전인 것을 인식하게 인도하옵소서. 주님의 창조를 축소시키는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성욕을 남용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옵소서.인간의 몸을 상품화하는 모든 구조들을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성적인 본능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에즈라 치탄도(Dr. Ezra Chitando), 짐바브웨>
(11)지혜의 하나님, 우리의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그들이 분별력을 갖도록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게 하시고, 자신들의 성적 본능을 책임적으로 표현하는 성숙함을 주옵소서.우리의 젊은이들이 생명을 살리는 지식을 추구하게 하옵소서.여성들을 존중하는 성숙한 존재가 되게 하옵소서.악하고 억압적인 구조들을 거부하게 하옵소서.병들고 외로운 이들을 보살피게 하옵소서.지혜로운 존재가 되어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게 하옵소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거부하는 데까지 자라게 하옵소서.마약의 유혹과 알코올의 남용을 피할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주님 손에 들려진 종려나무 가지로 만들어 주옵소서.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참으로 겸손하고 자애롭고 책임 있는 시민들이 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에즈라 치탄도(Dr. Ezra Chitando), 짐바브웨>
(12)창조주 하나님,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린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그들의 아픔과 감정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때때로 그들을 향하여 부도덕하다거나 동정할 필요 없는 이들이라고 비난하며그들을 돌보지 않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우리가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배울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모이세라엘레 디빌라(Rev. Moiseraele Prince Dibeela), 보츠와나>
(13)인도자1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했던 질문을 드리며 기도드립시다. 다같이 하나님, 우리 중에 가장 큰 자가 누구입니까?인도자2 마음으로라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복수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인도자1 그러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다같이 하나님, 우리 중에 가장 큰 자가 누구입니까?인도자2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낮은 신분으로 전락시키는 법을 만들고 지키게 하는 사람 은 아닙니다.인도자1 그러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 다같이 하나님, 우리 중에 가장 큰 자가 누구입니까?인도자2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 권력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인도자1 그러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다같이 하나님, 우리 중에 가장 큰 자가 누구입니까?인도자2 자기 가족들을 폭력으로 다스리고 그들에게 공포심을 주입하는 사람은 아닙니다.인도자1 그러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다같이 하나님, 우리 중에 가장 큰 자가 누구입니까? 힘으로 여인들과 아이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아 지배하고 착취하며, 후천성면역결핍증을 퍼트리는 사람은 아닙니다.오 하나님, 우리를 어린 아이들과 같게 하셔서,겸손과 자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편견없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납하고,보살피고 보호하고,보상을 바라거나 선호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체릴 디빌라(Rev. Cheryl Dibeela), 보츠와나>
(14)파송 자비의 하나님과 함께 가십시오.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가십시오.능력과 불로 우리를 지키고 위로하시는 성령과 함께 가십시오.모든 억압에서 창조세계를 해방하는 길로 가십시오.하나님의 백성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길로 가십시오.<무사 두베(Prof. Musa W. Dube) 보츠와나>
(15)해방과 정의의 하나님,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방패이신 하나님,주님의 보호하심을 구합니다.모든 자원들이 황폐하게 될 때에예언자의 환상과 확신을 우리에게 주옵소서.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하옵소서.고아들에게 먹을 것을 주게 하옵소서.힘 있는 자들의 불의를 고발하게 하옵소서.병든 자들을 위한 약품을 주님께 청합니다. 버려진 자들을 위한 보살핌을 청합니다. 부자들의 낭비를 비판하게 하옵소서.우리의 침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자비로우신 주님,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사람들을 정죄한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주님의 백성들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무관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인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부패한 구조들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우리를 주님의 평화의 도구들로 만들어 주옵소서.우리를 변화의 일꾼들로 만들어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에즈라 치탄도(Dr. Ezra Chitando), 짐바브웨>
(16)주님, 이 땅에서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무엇보다 제 자신이 모순의 대표자입니다.그래서 제 삶에는,사랑과 미움,능력과 약함,빛과 어둠,슬픔과 기쁨, 겸손과 교만,진실과 오류,질서와 혼돈,자신과 이웃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무겁게 저를 누르고 있습니다.그러나 주님,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당신의 세계 안에서,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저를 사용하기로 정하신 줄 믿습니다. 저를 도와주옵소서.제 자신을 보게 하시고,이웃을 보게 하시고,주님의 눈으로 이 땅의 삶을 보게 하옵소서.<루퍼트 함비라(Rupert Hambira), 보츠와나>
(17)학생의 기도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감사의 마음으로 주님께 왔습니다.주님, 주님의 큰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겸손히 구합니다.감긴 눈들을 열어 주사 주님의 나라를 알게 하옵소서.또한 병들고, 가난하고, 여러 가지 위기에 직면한 이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학업을 인도하사 우리의 목적을 이루게 하옵소서.우리의 선생님들과 함께 하시고, 또한 교장선생님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들이 우리 마음 깊숙이 들어오게 하옵소서.이 모든 것을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기도드립니다.<필립 마카무(Phillip Makamu), 짐바브웨>
(18)주님, 비록 우리가 가진 것들을 이웃에게 진심으로 거저 주지 못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주신 많은 것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우리 자신이 남에게 베풀기에 너무나 인색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축복하사 우리의 것을 이웃들에게 조금이라고 나눌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리하여 빈궁한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저희들이 드리는 적은 물질이 가난하고, 굶주리고, 신체적 장애를 갖고, 귀먹고, 눈먼 이들을 돕는데 사용되게 하옵소서. 오늘 이웃에게 베풀지 못하는 이들을 도우사 내일은 그들도 이웃들에게 베풀 수 있도록 하옵소서. 베푸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욱 복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시간에 이곳 짐바브웨의 수용소에 보호되어 있는 난민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오, 주님, 그들에게 필요한 음식과 의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가 주님의 손이 되어 이 나라에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돕게 하옵소서. 특별히 부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어 짐바브웨의 자이로스 지리(Jairos Jiri) 수용소에 수용된 이들을 도와주옵소서. 주님, 이 나라의 청소년들, 특별히 거리에서 배회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그 아이들 대부분이 고아들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옵소서.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주님께서 아시오니 그 아이들을 도와주옵소서. <리디아 믈람보(Lydia Mlambo), 짐바브웨>
2010-06-22 03: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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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프랑스, 독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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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에 혼돈이 있는 것처럼 질서에도 혼돈이 있습니다. 혼돈을 대치하는 것은 질서가 아니라 진리, 곧 하나님의 창조 계획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개인의 삶 속에서, 또 교회의 친교 속에서 형제, 자매를 향한 순종과 사랑이라는 형태를 형성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혼돈에 대해서 이미 준비되어 있는 해결책은 없고, 오직 해방의 복음으로 영감을 얻은 삶이 해결책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이 오직 주님이시라는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마델레인 바로트 (Madeleine Barot)>
프랑스, 독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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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 (French Republic)
통계
인구 : 6,000만 명정부형태 : 의원제 공화국언어 : 프랑스어; 또한 알사스어(Alsatian), 바스크어(Basque), 브레튼어(Breton), 카탈로니아어(Catalan), 코르시아어(Corcian), 프로방스어(Provencal) 문자해독율 : 98%종교 : 기독교 70%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이슬람교 7%, 유대교 1%, 불교 1%, 기타 1%
세계교회협의회 회원교회 : 알사스 로랭의 아우구스부르크 고백 교회(Church of Augsburg Confession of Alsace and Lorraine), 프랑스 복음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of France), 알사스 로랭 개혁교회(Reformed Church of Alsace and Lorraine), 프랑스 개혁교회(Reformed Church of France)
역사
프랑스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접해있다. 북동쪽으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 접해있으며, 동쪽으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가 자리하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안도라(Andorra)와 스페인이 접해있다. 프랑스 역시 프랑스령에 속하는 열 개의 해외 영토를 가지고 있다.
주전 58년 율리우스 시저가 현재의 프랑스 지역을 점령한 후, 이 지역은 500년 이상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다. 1793년까지 여러 왕조들이 프랑스를 지배하였고, 마침내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부패한 왕정이 종식되고“자유, 평등, 박애”를 모토로 하는 공화제가 시작되었다. 이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제 4공화국으로 인식되었다. 프랑스가 재정비되는 기간 동안에 여러 정당들이 짧은 통치하는 방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그 사이 여성참정권이 보장되었고, 프랑스의 과거 식민지들이 독립하였다. 1958년 개헌으로 제 5공화국이 출범하였고, 이때부터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어 프랑스 국민들은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오늘 날 프랑스는 세계의 강대국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농업과 산업이 발달하였고, 프랑스인들은 개인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지난 40년 사이에 5백만 명 이상의 이민자들이 프랑스로 유입되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저임금 업종으로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 있고, 잠재적인 인종차별과 불의에 노출되어 있다. 세계화의 경쟁 때문에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고, 정부는 사회보장 제도 축소 압력을 받고 있다. 그 밖의 문제로는 자동차 증가 때문에 생긴 대기 오염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독일과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유럽 경제연합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프랑스 기독교는 주후 1세기에 로마를 통하여 들어왔다. 프랑크(Frankish)의 왕 클로비스(Clovis)가 496년에 자신의 병사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면서, 기독교는 프랑스 전역에 빠르게 퍼져갔다. 십자군 전쟁, 클러니의 베네딕트(Benedict of Cluny)와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의 수도원 개혁은 중세기를 대표하는 사건들이었다.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생겨났는데, 특별히 알사스와 론밸리(Rhone Valley) 농촌 지역에서 크게 일어났다. 종교 전쟁으로 국가가 분열되었는데, 그 결과 낭트 칙령(Edict of Nanted: 개신교인들에게 가톨릭 교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주는 것을 골자로 한 1598년 앙리 4세의 명령)이 나왔다. 위그노(Huguenots/ 존 칼빈의 추종자들)들은 17세기 내내 다시 박해를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유럽 전역으로 도피했다.
기독교는 세기가 바뀌면서 교세가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명목상 교인이 80%에 달하지만 아직 분명하게 로마 가톨릭 국가이다. 떼제(Taize) 공동체, 포메롤(Pomeyrol) 수녀원, 뢰이이(Reuilly) 공동체가 점점 교회와 개인의 영적인 갱신의 중심이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고 있는 기독교 교단은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이다. 이슬람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이며,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 공동체인데, 그 이유는 대부분 과거 아프리카의 식민지로부터 이민 온 이슬람교인들 때문이다. 프랑스는 또한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의 본거지이다.
독일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Germany)
통계
인구 : 8,200만 명정부형태 : 통일된 연방제 공화국언어 : 독일어; 또한 러시아어, 터키어, 기타문자해독률 : 100%종교 : 기독교인 76%, 이슬람교 4%, 유대교, 바하이교(Baha"i), 불교 및 기타 1%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독일 고(古) 가톨릭교회 가톨릭 관구(Catholic Diocese of the Old Catholics in Germany), 독일기독교교회협의회(Evangelical Church in Germany), 해외 라트비아 복음주의 루터교회(Latvian Evangelical Lutheran Church Abroad), 독일 메노나이트 교회(Mennonite Church in Germany)
역사
독일은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중부 유럽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여러 세기 동안 몇 개의 무역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날 독일의 국경은 북쪽으로는 발틱해와 북해, 덴마크와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체코공화국과 접해있고,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접하고 있다.
19세기말까지 독일은 주(州)들과 공국(公國)들이 엉성한 형태로 모인 지역 통치자들이 독일의 영지들을 다스렸다. 1871년 이 영지들이 통일되었고, 독일은 급속하게 그 지역에서 강대국이 되었다. 20세기 초 독일의 민족주의가 지배욕과 팽창욕이 결합되면서 일차세계대전을 일으켰고, 결국 1918년에 비참한 패전으로 끝났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차대전의 교전국들에 대한 증오가 심화되었고,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집권하였다. 인종적 순수성에 대한 나치의 신념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집단수용소에 격리되었고, 거기서 그들은 조직적으로 학살당했다. 유대인들이 가장 우선적인 대상이었지만, 로마 가톨릭 교인들과 동성애자들, 집시들과 다른 인종 그룹들, 또 정치적 반대자들 역시 학살하였다.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와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로서 독일은 경제적, 정치적, 방위 조직에서 유럽 대륙의 핵심 멤버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의 패전과 1945년 승전 연합군에 의한 점령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재건에 성공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1949년 두 개의 독립된 연방으로 독일이 나뉘어졌고, 나라는 철의 장막으로 분단되었다. 서쪽의 독일연방공화국(서독, Federal Republic of Germany: FRG)은 서유럽의 경제와 방위조약의 중심이 되었고, 반면에 동쪽의 독일민주주의공화국(동독, German Democratic Republic: GDR)은 구소련이 이끄는 바르샤바 조약의 전위대가 되었다. 두 개의 독일은 약 40년간 분단의 길을 갔으나,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 끝나면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고, 1990년 통일로 이어졌다. 그 후 독일은 동독의 생산력과 임금 수준을 서독 수준으로 접근시키기 위하여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고 있다. 1999년 1월 독일과 또 그 외 유럽연합의 열 개 회원국은 유럽의 공용화폐로 유로(Euro)를 도입하였다.
독일의 기독교는 주후 3세기부터 12세기까지 독일 전역에 널리 전파되었는데, 특별히 496년 프랑크 왕 클로비스의 개종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개신교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오늘 날 독일의 기독교인들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로 거의 비슷하게 나뉘어 있고, 여기에 소수의 정교회와 독립교회들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히틀러를 지지하였으나, 고백교회 설립을 이끌었던 소수의 기독교인들은 히틀러의 주장이 기독교의 복음과 반대된다는 신념으로 저항하였다. 이 운동의 많은 지도자들은 집단수용소에 갇히고, 거기서 살해되었으며, 교회는 저항단체가 되어 지하로 숨어들어야 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전후하여, 독일 교회는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면서 나라의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통일 이후, 이전의 동독 지역에서는 교인 수가 증가하고 있고, 반면에 이전의 서독 지역에서는 무종교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이십 년 간 많은 난민들과 이민자들이 크게 유입되면서 국가의 사회 복지를 위한 세금 부담이 커졌고, 소수의 신 나치당 등장과 이민자들을 향한 폭력 대두 현상과 같은 증오가 생겨나고 있다. 다른 중요한 국내 문제에는 실업, 세제개혁, 환경오염이 있다. 산성비 때문에 독일의 방대한 숲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황폐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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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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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기도 제목
●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독일 국민들의 재회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떼제 공동체와 같은 에큐메니칼 센터의 증언을 감사드립니다. 이 공동체들은 예배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는데,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더 그렇습니다.
● 이민자들과 난민들을 위한 관용과 지원 사역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인종에 기초한 증오와 폭력이 근절되고 있습니다.
● 초콜릿 과자, 크라상 빵, 기름에 튀긴 감자, 소금에 절인 양배추, 소시지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장대한 교회 예술과 건축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이것들은 복음서의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중보기도 제목
● 독일 동서 지역이 온전히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이 노력으로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모든 시민들이 제대로 대접 받을 수 있게 됩니다.
● 세속화와 무신론이 팽배한 현실에서 교회가 다시 부흥을 이루기를 기도합시다.
● 환경 문제를 위하여, 노후된 공장들과 오염방지 시설이 부족한 옛 동독 지역의 환경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차별과 인종주의에 직면한 난민들과 이민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실업자들과 세계화의 한 가운데에서 경제적 불안정에 직면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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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 하나님, 만물의 아버지,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명하시기를
가난한 이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곳에 사랑을,
교회가 쇠퇴하는 곳에 기쁨을,
사람들이 분열된 곳에 화해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 입은 몸, 주님의 교회가,
지구상에 있는 가난한 이들과 모든 인류 가족들을 위해서
성찬의 누룩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2)
이 세계의 문제들을 바라볼 때, 오, 주님,
빠른 해결책을 찾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만입이 저마다 다른 진리를 주장할 때,
만인이 저마다 자신의 의를 자랑할 때,
저로 하여금 말하거나 자랑하거나 희망하기 전에 잠시 기다리게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주님께서 제 안에 심어놓으신
영원한 진리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제 안을 보게 하옵소서.
이 진리들은 외부의 수많은 주장들과 말들에서 들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그리고 큰소리 나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소한 것이 금지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로운 것들이 가치가 없는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검은 것이 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로 하여금 그러한 진리들이 주님께 진실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래서 제가 진실 가운데 살고, 주님과 살고, 제 자신은 평화롭게 살게 하옵소서.
(3)
고백의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한 곳에서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길로 떠나도록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포, 의심과 게으름 때문에 하나님의 부름에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로 하여금 우리 등 뒤의 무거운 짐들을 던져버리게 하옵소서.
찬송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혹은“주여 자비를 베푸소서”(Lord have mercy)를 부른다.
하나님, 우리 삶에서 떠나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안주하여 왔고, 거기에서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잘 되는 것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침묵
제 땅을 가지지 못한 라틴 아메리카의 형제, 자매들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그들이 삶이 가난과 폭력으로 위협받고 있지만,
주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전 희구 때문에 우리의 삶을 떠나서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도와주셔서 우리 등 뒤의 무거운 짐들을 던져버리게 하옵소서.
찬송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혹은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Lord have mercy)를 부른다.
하나님,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들에서 얼굴을 돌리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많은 경험들을 의지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 너무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너무나 많은 기대를 하고, 핑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뒤돌아보고 있습니다.
침묵
우리로 하여금 아프리카에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배우게 하옵소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위험과 문제들이 그들 앞에 놓여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로 가득 차 있으며,
미래를 향하여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용기를 내서 하나님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을 많은 것들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도와주셔서 우리 등 뒤의 무거운 짐들을 던져버리게 하옵소서.
찬송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혹은“주여 자비를 베푸소서”(Lord have mercy)를 부른다.
하나님, 주께서 우리를 험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쉽고 편안한 평화를 구하고 있습니다.
침묵
우리로 하여금 인도에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배우게 하옵소서.
그들은 신분의 차이, 정치적, 종교적 갈등의 한 가운데서 주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을 내가 주관하려는 마음 때문에
주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도와주셔서 우리 등 뒤의 무거운 짐들을 던져버리게 하옵소서.
찬송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혹은“주여 자비를 베푸소서”(Lord have mercy)를 부른다.
오늘 우리는 인생의 한 부분을 함께 걸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만남들이 얼마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실상의 한 면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또한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침묵 속에서 주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침묵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심으로,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났고, 그래서 그 분을 통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주님의 길을 따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 삶을 안전하고 의미 있게 하여 주십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가 살아갑니다.
이 일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4)
하나님, 우리 독일의 기독교인들과 유럽의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은
우리들 자신에 대한 확신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한 것들을 잃게 될 것 같은 두려움과
불확실한 새로운 발전들이 우리를 약하게 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교회 안에 존재하는 냉담함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하시고,
그리하여 책임 있는 기독교인으로서 진정한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게 하시고,
그리하여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외국인을 향한 적개심과 민족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통치의 능력 안에서 보다 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말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실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옵소서.
[유럽 바깥에 사는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실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옵소서.
(5)
파송의 말씀
그대들이 가진 것을 떠나보내십시오.
그것들에 작별을 고하고 앞에 놓인 것을 직시하십시오.
그대들 앞에는 가야 할 먼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가는 길에 상대방을 서로 격려합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우리 함께 나갑시다.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우리는 어려움 없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의 징조들을 찾아, 우리는 함께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에 가셨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6)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는 언제나 죄를 짓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죄인들임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므로, 매일 우리는 항상 다음과 같은 악한 존재의 역사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기 보다는
소유에 대한 유혹,
우리 소망의 방향으로 잡아야 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섬김 보다는
권력에 대한 유혹,
오직 우리가 찬양할 가치가 있는 구원의 말씀보다는
우리 자신을 우상화 하려는 유혹이 그것입니다.
악한 존재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악한 존재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는 죄악의 본성을 이기도록 도와주실 것을 기도드립니다.
그 분은 살아계셔서 우리의 유혹을 정복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새 창조의 첫 열매가 되시는 그 분을 따라서
그 분의 은혜를 경험한 여자와 남자처럼 우리가 똑바로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7)
하나님, 제 안에 있는 길들과 제 밖에 있는 길들 속에서,
저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소서.
거룩함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신성의 길들로 저를 인도하옵소서.
그래서 제가 헌신적이고, 신실한 인간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제가 가는 길에 십자가 표식으로
제 안에 있는 바른 길을 저에게 새롭게 보여 주옵소서.
제가 지나온 인생의 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제 앞에 놓인 길들과
아직 밟지 않은 길들을, 제가 평화 가운데 기다립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지루하고, 최후의 여정일 찌라도,
오, 하나님, 주님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견디고 나아가겠습니다.
거룩한 여행의 마지막 여정입니다.
그것이 저를 마지막 목적지, 끝이 없는 길로 인도합니다.
주께서 예비하신 쉴 곳, 주님의 영원한 본향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들은 제 믿음의 길들입니다.
저희 인생은 길이며, 여행인데,
그것은 변함없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한, 오늘의 거리들을 걷는 여행이고,
여러 거리들을 걷는 여행입니다.
오 하나님, 제가 가는 모든 길들의 처음과 끝이 되어주옵소서.
(8)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임재하심의 증거가 되기 원하는 우리의 소망과
주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는 우리의 소망을 잘 아는 분이십니다.
(9)
우리의 기쁨이신 예수님,
우리가 고요한 중에
말없이 기도드릴 때에
주님의 임재하심을 향한 우리의 단순한 소망이 이미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선함, 이기심 없음이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10)
만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시작할 때에,
주님께서는 복음의 생명력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십니다.
(11)
예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충만하기를 소망할 때
우리 마음의 기쁨이 우리 안에서 샘솟아 오르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라고 주님께서 초대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2)
사랑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라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 각자 안에 크든지 작든지 어둠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또한 주님의 현존하심, 곧 성령님이 계십니다.
(13)
부활의 예수님, 우리 인생이라는 땅이 파헤쳐진 곳에
주님은 신앙의 씨를 뿌리려고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작은 씨앗인데,
그것이 우리 안에서 가장 온전한 복음의 실재들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 마음속에 있는 선한 것들이 소진되지 않도록 유지시켜 줍니다.
(14)
인간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자비함이 어떤 경우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여인들, 아이들과 약자들에게도 멈추지 않습니다.
고문자들을 향한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울어야 하는 사람들조차도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 우리는 빨리 눈을 감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고 무언가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 간구합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옵소서.
다른 이들을 위한 우리의 책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15)
또 다시, 또 다시 그들이 나를 못 박고 있다:
내 여자 친구가, 내 남자 친구가…
그들은 나에 대한 모습을 만들어 놓고
나는 그 모습에 맞춰지고 있다. 그 틀에 못 박히고 있다.
그러나 슬프도다, 나는 그 틀에 맞춰질 수 없으니!
그 때문에 우리의 우정은 끝나는구나.
또 다시, 또 다시 그들이 나를 못 박고 있다,
말해다오. 내가 무엇을 마셔야만 하는지,
내가 무엇을 맛봐야 하는지,
어떤 옷이 나에게 가장 좋은 옷인지,
어떤 향기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어떻게 해야 가장 잘 치장하여 내가 멋있게 보이는 것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망치질을 하는구나:
“때리는 것이 맞는 것보다 낫다!”
그리고 “먼저 때리고- 질문은 그 다음에!”하면서.
각 시대 정신이 나의 자유를 못 박고 망치질해서 지독한 구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것들을 나는 십자가에 못 박고 싶다.
그러나 나 또한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못 박고 있는지.
얼마나 나의 것이 아닌 의견들을 그냥 흘려듣는지,
얼마나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얼마나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하는지,
얼마나 내가 나 자신의 짐 때문에 파괴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내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십자가에 못 박고 싶다.
(어떤 강압적인 일이 자신을 못 박았는지, 또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못 박았는지 종이에 적는다. 침묵 가운데 그 종이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예수님, 저의 말들과 생각들이 주님의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 구하오니, 어둠이 올 때에 저를 붙잡아 주소서.
어둠 속에서 저와 함께 하여 주소서.
(16)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 속에 이 세계를 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계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옵고,
우리로 하여금 새 하늘과 새 땅의 이야기들을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 속에 이 세계를 담게 하옵소서.
사랑이 숨어버린 세계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높이 들게 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눈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따스한 사랑을 다시 발견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 속에 이 세계를 담게 하옵소서.
정의가 개들에게 던져진 곳에서
우리로 하여금 저항하는 위험을 무릅쓰게 하시고,
판관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새기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 속에 이 세계를 담게 하옵소서.
평화가 상처입어 누워 있는 곳에,
우리로 하여금 함께 연합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에게 희망을 전하게 하옵소서.
(17)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 안에 충만하고,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지켜주시기를.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에게 비취고, 여러분을 온전하게 만드시기를.
울 때나 웃을 때나,
기쁠 때나 아플 때나,
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2010-06-22 0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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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라,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산마리노, 스위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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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빠를 것입니다.당황하지 하지 마십시오. 모래폭풍에 이성을 잃지 마십시오. 물이 나올 때까지 모래를 파십시오.여러분이 기대했던 것 보다 샘 옆에서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샘을 발견해야만 합니다.용기를 잃지 말고, 신기루에 속지 마십시오.샘을 계속 찾으십시오; 더 깊이 계속 파십시오. 사막에는 또한 샘이 있습니다. 사막에는 또한 물이 있습니다. 사막은 또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첫 번째 물방울을 발견하게 되면, 여러분은 곧 작은 시내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강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막은 잊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그 길을 보여주신 분에게감사드리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그분은 물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셨고,여러분에게 생수를 주셨고,그래서 여러분이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여러분이 살 수 있었고, 여러분이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되었습니다.샘으로 가는 길은 사막을 가로 질러 가야만 합니다. 사막은 때때로 여러분을 슬프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사막에 샘이 숨어 있습니다.그것이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갑니다. 오직 사막만이 여러분을 행복에 다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사막의 길들은 또한 하나님의 동반자들입니다. <“여기에도 물, 저기에도 물”(Water here, Water there), 교회와 환경에 대한 에큐메니칼 공동체 행동(Ecumenical Community Working 0n Church and Environment)>
안도라,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산마리노, 스위스 편
역사서유럽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이 나라들은 주변의 큰 나라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안도라,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산마리노와 스위스는 산악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안도라,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산마리노는 주변의 큰 나라에 거의 연합하고 있는 공국(公國, Principality)들이다. 정부 성립 시기로 보면 이들은 오래된 나라들이다. 산 마리노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일찍이 로마의 통치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험한 산세로 인하여 기독교가 급속히 전파되지 못했지만, 동시에 그로 인하여 이후 천년동안 수많은 침입에도 불구하고 고립되어 있었던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세기에는 수도원들이 학문과 선교의 중요한 거점들이 되었다. 안도라 공국 (Principality of Andorra)통계인구 : 7만 명정부형태 : 1993년 이래 의원제 공국언어 : 카탈루냐어(Catalan); 또한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문자해독률 : 100%종교 : 기독교 94%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기타 2%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역사 안도라는 프랑스와 스페인에 둘러싸인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작은 공국이다.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깊은 계곡과 넓게 펼쳐진 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춥고 눈이 많은 겨울과 건조하고 더운 여름이 있다. 8세기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 통치기에 국가가 수립되어, 1278년 이래 자유 국가로 인정받은 후 그 다음 715년 동안 프랑스 계통 통치자와 스페인의 세오 드 우르젤(카탈루냐어: Seo de Urgell/*역주 카탈루냐 교구)의 주교가 공동영주(Co-Princes)로 지배해왔다. 1993년에 실질적인 통치권을 거의 가지지 못한 공동 영주의 국가 수반권은 인정하면서 의회를 통한 의원제 공국으로 재출발하는 헌법을 공포하였다. 전 인구의 20퍼센트 미만인 순수한 안도라 시민권자들만이 정부에 대표권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고립되어 가난했던 안도라는 이차대전 이후 관광산업을 통하여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합법, 비합법 이주민들이 경제 성장 때문에 많이 유입되고 있다. 은행업이 안도라의 또 다른 주요 산업이 되었고, 수입세가 없어서 부자들의 세금 도피처가 되고 있다. 국토의 절반 이상이 목초지로 이루어져있으며, 고산지대의 과다한 목초지 확대 때문에 토양침식이 생기고 있고, 안도라의 주된 관심이 되고 있다. 숲이 줄어드는 것도 또 다른 환경문제이다.로마 가톨릭 교회가 안도라에서 지배 종교이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공화국 (Republic of Austria)통계인구 : 820만 명정부형태 : 연방제 공화국언어 : 독일어; 또한 슬로베니아어(Slovene), 크로아티아어(Croatian), 헝가리어문자해독률 : 100%종교 : 기독교인 90%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무종교인 7%, 이슬람교인 2%, 기타 1%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아우구스부르크와 헬베틱 고백의 오스트리아 복음교회(Evangelical Church of the Augsburg and Helvetic Confession in Austria), 오스트리아 고 가톨릭교회(Old Catholic Church in Austria역사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산악 국가이며, 국토의 거의 절반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오스트리아는 역사적으로 수 세기동안 여러 민족의 침략을 감내해야 했고, 마침내 주후 8세기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에 의해 부분적으로 연합되기도 하였다. 13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합스부르크(Habsburg) 제국의 중심이었다. 일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군소 공화국으로 추락하였다. 1938년 독일의 나치정권에 의해 점령당했고, 1945년 연합군이 진주하면서 10여 년간 국제적으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1955년 국가조약으로 식민지 상황이 종식되었고, 오스트리아의 독립과 독일의 연합금지 조항이 조인되었다. 같은 해 소련의 군사력을 배제하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하는 헌법이 공포되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오스트리아 국민들 가운데 중립국의 위상에 물음을 제기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1945년 이래 오스트리아는 민주주의와 경제적 성장을 모두 이루고 있다. 때때로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보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기독교의 연원은 714년 로마의 지배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샤를마뉴 대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955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쯔부르크(Salzburg) 주교는 동쪽으로 선교사들을 보냈다. 16세기 종교개혁 기간 중 루터교회와 장로교회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17-8세기 기간 중 반-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개신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개신교는 “지하” 신앙공동체로 명맥을 유지해야 했고, 로마 가톨릭교회는 다시 지배력을 회복하였다. 1781년, 관용령(Edict of Tolerance)이 공포되면서 루터교회와 장로교회가 재건되었다. 관용령은 개신교 뿐만 아니라 수세기 동안 오스트리아에 존재해온 정교회, 유대인, 기타 종교단체들에도 제한적이지만 유사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현재 종교의 자유는 1861년 헌법을 통하여 거의 완전하게 보장되고 있다. 이러한 자유를 통하여 스위스와 아우구스부르크 고백(Helvetic and Augsburg Confession)이 유입되었고, 얼마 후 현재의 오스트리아 복음교회(Evangelical Church of Austria)와 연합하였다. 요제프 2세 (Joseph II, 1765~1790) 치하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국교가 되어 1952년까지 지속되었다. 오늘 날 압도적으로 많은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스스로 로마 가톨릭 교인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의 비중은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개신교인의 대부분은 복음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1958년 오스트리아 에큐메니칼 교회협의회(Ecumenical Council of Churches of Austria)가 결성되어 오스트리아 에큐메니칼 활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현재 루터교회(Lutheran), 장로교회(Reformed Church), 고 가톨릭교회(Old Catholic Church),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성공회(Anglican Church) 동방정교회(Eastern and Oriental Orthodox Church)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공국 (Principality of Liechtenstein)통계인구 : 3만 3400 명정부형태 : 1806년 이래 입헌제 공국언어 : 독일어 문자해독률 : 100%종교 : 기독교 93%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이슬람 3%, 기타 1%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역사 중부 유럽의 알프스 산맥 기슭에 위치한 소국가 리히텐슈타인은 동쪽으로 오스트리아, 남쪽, 서쪽, 북쪽으로 스위스와 접하고 있다. 1719년 신성로마제국 내의 왕조로 처음 출발한 리히텐슈타인은 18-19세기 중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에 병합되어 이차대전으로 합스부르크 왕조가 종식될 때까지 지배를 받았다. 그 후 스위스에 병합되었다가 이차대전을 거치면서 중립국이 되었다. 1938년부터 1997년까지 연립정부가 나라를 이끌었다. 1984년, 여성참정권이 허용되었다. 오늘날 리히텐슈타인은 낮은 세금과 높은 산업화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은행업과 관광산업이 중요한 수입원이다. 리히텐슈타인의 기독교의 발전은 이웃한 스위스와 유사하다. 로마제국이 이 지역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국민의 90퍼센트 가량이 속해있는 국가 종교이다. 1881년 주변 국가들에서 유입된 직물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리히텐슈타인 복음교회(Evangelical Church in Liechtenstein)가 현재 리히텐슈타인에서 가장 큰 개신교회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같이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의 숫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공식적인 에큐메니칼 기구는 없지만 교회들 간의 연대와 협력 관계는 잘 이루어지고 있다. 모나코 공국 (Principality of Monaco)통계인구 : 3만 4천 명정부형태 : 입헌제 공국언어 : 주로 프랑스어 사용, 그 외 영어, 이탈리아어, 모나코 방언(Monegasque) 문자해독률 : 99%종교 : 기독교 93%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무종교 4%, 유대인 2%, 기타 1%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역사 모나코는 바티칸 시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독립국이다. 산악지형인 남쪽으로 지중해와 프랑스에 접해있고 이탈리아와도 근접해있다. 완전한 도시국가로 경작지, 농경지, 목초지, 숲이나 삼림은 전혀 없다. 계절적으로 겨울은 온난하고 비가 많으며 여름은 뜨겁고 건조하다. 은행업과 서비스업, 관광사업과 도박사업 등이 모나코의 주 수입원이며, 관광객들과 이민자들이 모나코 시민들보다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모나코는 1419년부터 그리말디 (Grimaldi) 가문이 다스려왔고, 1962년 이래로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모나코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프랑스에서 세 명의 후보를 추천하고 그 중에 한 명을 수상으로 임명한다. 모나코의 기독교는 주후 10세기 이전에 전래되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국교인 로마 가톨릭 교인들이다. 1925년 설립된 모나코 성공회(Anglican Church of Monaco)에는 주로 이민자들이 모이고 있다. 고요한 산마리노 공화국 (Most Serene Republic of San Marino)통계인구 : 2만 7천 명정부형태 : 의원제 공화국언어 : 이탈리아어문자해독률 : 99%종교 : 기독교 92%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무종교 7%, 바하이교(Baha"i) 1%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역사 산마리노 공화국은 이탈리아 중부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들 중 하나이다. 310년 기독교인 석공들이 산 위에 신앙공동체를 만들면서 세워진 나라이다. 1631년 처음으로 헌법을 제정하였고, 수세기동안 이탈리아에 병합되어 있었으나 언제나 독립국가가 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국민들 중 99퍼센트가 로마 가톨릭 교인들이며, 여호와의 증인이 이 나라에 있는 유일한 비 로마 가톨릭 종교단체이다. 스위스 연방 (Swiss Confederation) 통계인구 : 740만 명정부형태 : 연방공화국언어 :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래티안어(Romansch); 그밖에 스페인어, 영어, 포르투갈어 등문자해독률 : 100%종교 : 기독교 88%, 무종교 7%, 이슬람교 3%, 기타 2%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스위스 고 가톨릭교회(Old Catholic Church of Switzerland), 스위스 개신교회 연합(Federation of Swiss Protestant Churches) 역사 유럽의 서중부에 위치한 산악 국가로 동쪽으로 리히텐슈타인와 오스트리아, 남동쪽으로 이탈리아, 서쪽으로 프랑스, 북쪽으로 독일과 접해있다. 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알프스 산맥에 걸쳐있다. 스위스는 인종적, 언어적으로 다양한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래티안어가 네 개의 주된 언어 공동체이고, 그밖에 많은 소수언어 공동체들이 있다. 스위스의 주민들인 헬베틱(Helvetic) 부족들은 줄리어스 시저에 의해 로마 제국에 합병되었고, 그 후 독일 민족의 영향력 하에 들어갔다. 14-15세기 동안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제국에 병합되는 것에 저항하며 여러 개의 주(cantons)들이 느슨하게 연합한 형태로 있었다. 16세기 동안 주변국들과 갈등을 겪으며 처음으로 중립국을 주장하는 정책이 제기되었고, 그 후 계속되었던 이 주장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크고 작은 지역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1874년 최초의 스위스 헌법이 공포되었다. 오늘날 스위스는 고도로 산업화된 공업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들 중 하나이다. 최근 들어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성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원래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던 스위스는 종교 개혁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518년, 울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의 지도 아래 취리히 주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1536년, 존 칼빈(John Calvin)이 제네바에 새롭게 세워진 장로교회(Reformed Church)의 지도자로 초청되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스위스의 개신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는 경쟁관계에 있었고, 현재는 비슷한 교세로 스위스를 양분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단일 교파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고, 열여덟 개의 독립교회, 주별(州別) 장로교회(cantonal Reformed churches), 제네바 자유교회(Free Church of Geneva), 복음주의 감리교회(Evangelcial Methodist Church) 등이 참여하고 있는 스위스 개신교회 연합(Federation of Swiss Protestant Churches)이 비슷한 교세로 뒤따르고 있다.세계교회협의회(WCC)와 개혁교회 연맹(World Alliance of Reformed Churches), 루터교회 세계연맹(Lutheran World Federation), 기독교 청년회 세계연맹(World Alliance of YMCA), 세계 기독교 여자청년회(World YWCA), 동방정교회 총 주교 센터(Orthodox Center of the Ecumenical Patriarchate), 에큐메니칼 연구소(Institute of Ecumenical Studies)를 비롯한 여러 개의 다양한 에큐메니칼 기구들과 종교간 대화를 주도하는 조직들의 본부들이 스위스에 소재하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 기도 제목● 이들 나라들의 경제적 안정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누리는 높은 수준의 생활과 교육, 의료제도 등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이들 나라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기독교 전통과 증언들, 특별히 이웃을 위한 봉사에 헌신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세계교회협의회와 다른 교회 연합기구들, 기독교 청년회와 기독교 여자청년회 등 제네바에 있는 모든 본부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제네바와 비엔나에 본부를 둔 모든 에큐메니칼 기구들과 국제기구들, 특별히 국제적십자사 본부와 국제연합 기구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퐁뒤(Fondue)와 알폰(Alphorn), 카우벨(Cowbell)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난민들을 환영해온 역사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자신들의 문화를 풍성하게 가지고 오는 외국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알프스 산맥의 웅장한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알프스 산맥의 빙하를 녹이는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고자 온실가스 배출 축소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이들 나라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는 신나치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과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의 주 수입원인 은행업, 재무계통, 관광업과 도박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국가적인 온전함과 책임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들과 평신도들과 성직자들의 활동이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되고, 물질주의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신앙 공동체들이 영적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렇게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과 싸우는 사람들, 특별히 이민자들과 관광업 종사자들, 난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물질적으로 풍부하지만 의미 있는 인생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1)성찬상을 준비함소리 1우리는 주님의 성찬을 준비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에 모였습니다. 주님을 기념하려면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삶을 다른 이들과 나누겠다는 뜻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한 은사들을 경험합니다. 나는 내 자신을 가지고 나옵니다.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그리고 그대들 앞에 나옵니다.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나와 함께 주님의 성찬을 기념하는 이들과 함께 강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여기에 있기를 소망하며, 여기에서 온전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소리 2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상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꽃으로 상을 아름답게 꾸밉니다. 그 꽃들이 우리에게 생명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꽃은 생명이 없는 것인가요? 우리가 그런 것처럼 꽃도 봉오리에서 꽃으로 피어났다가 시들어갑니다. 소리 3우리는 촛불로 상을 아름답게 꾸밉니다. 촛불은 따스한 불빛으로 우리를 비춰줍니다. 우리가 이 빛을 향하여 우리들을 열 때에 우리의 안과 주위는 밝고 따스해질 것입니다. 빛은 따스함과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촛불이 자신을 태우는 것처럼 자신을 내어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소리 4우리는 상 위에 빵을 올려놓습니다. 바구니는 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풍족하게 가지고 있는 빵입니다.우리가 때때로 아무 생각 없이 던져버리는 빵입니다. 매일 굶주림을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부족한 빵입니다. 그 빵을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며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생명의 빵이니,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자는 다시는 배고프지 아니할 것이라”하셨습니다. 소리 5우리는 상 위에 포도주를 올려놓습니다. 항아리들에는 포도주가 있습니다. 그 항아리들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항아리들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흙으로 구워졌습니다.그 흙에서 포도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항아리들은 포도주로 가득 찼고 우리가 이제 함께 마실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하셨습니다. 소리 6우리는 상 위에 컵들을 올려놓습니다. 컵들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인간의 손으로 형체를 가졌습니다.우리가 가져온 이 컵들로 우리는 함께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바구니와 컵들에 가득 찬 것들을 보고, 만지고, 맛보기 바랍니다. 소리 1성찬상이 준비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있는 그대로 성찬으로 초대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이들을 초대합니다. 밝은 마음으로 기뻐하는 이들을 초대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포함하며 젊은이들과 나이든 이들을 초대합니다. 원주민들과 방문객들을 초대합니다.모두 환영합니다. 아무도 제외되지 않습니다.어떤 남자도 제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여자도 제외되어서는 안 됩니다.모든 사람들을 위한 생명의 떡이 여기 있습니다.포도주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한 잔치의 표지입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 모두의 친구입니다.우리는 성령을 위하여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공포와 죄책감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성령을 구합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성령을 구합니다. 우리를 공동체로 이끄셔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소서. 이러한 성령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립니다.
(2)저 푸른 심연 속에서 당신과 함께 합니다. 당신은 그 무한함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실 것입니까?아니면 제가 가는, 목적지를 알 수 없고, 때때로 공포에 사로잡히고, 미쳐버릴 것 같기도 하고, 때때로 고난이 찾아오고, 때때로 눈물로 나를 온통 뒤덮는, 내 영혼이 어둠에 뒤덮이고, 상처로 피투성이가 되고, 굶주린 늑대와 같이 고독하게 서서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울부짖는 그 먼 길을 함께 가시려 합니까?당신은 진실로 물에 빠져가는 나를 당신의 손으로 건져내기 원하십니까?만약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다시 한 번 싸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3)고난 중에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드리는 기도주님,저의 발이 아닌 당신의 오심이,저의 손이 아닌 당신의 우정이,저의 감정이 아닌 당신의 자비가,저의 마음이 아닌 당신의 사랑이,저의 말이 아닌 당신의 말씀이,저의 귀가 아닌 당신의 경청이,저의 눈이 아닌 당신의 관찰이,저의 지식이 아닌 당신의 사색이, 저의 침묵이 아닌 당신의 현존이 함께 하기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4)신앙의 확증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증거와 함께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합니다.세례 요한과 같이 외칩니다.“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안드레와 같이 외칩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도다.”나다나엘과 같이 외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외칩니다.“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줄 앎이라.”베드로와 같이 외칩니다.“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도마와 같이 외칩니다.“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바울과 같이 외칩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전체 교회의 모든 증인들과 같이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외치고 하나님의 찬송을 부릅니다.
(5)복음을 들고 한 걸음씩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자는 행복합니다.그들에게 약속된 새로운 세계가정의의 열매를 향해 열립니다. 성령을 바라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며 평화입니다.주님의 주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은 행복합니다.그들의 갈증은 위대한 것이고 당신은 아십니다.주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오셔서 희망을 부어주십니다.성령을 바라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며 평화입니다.사랑의 갑옷을 입고 싸우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이 모든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옥에 갇힌 이들은 형제자매들이 찾아와 족쇄를 부수는그 날이 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성령을 바라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며 평화입니다.우리의 영원한 소망 속에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다립니다.주님은 우리에게 그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를 알려주십니다.성령을 바라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며 평화입니다.밤과 같은 폭력 속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숨죽여 기다리고 있습니다.슬픔 속에서 그들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주님, 무엇이 태어나고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성령을 바라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며 평화입니다.(6)라티 아메리카 여성들을 위한 시편주님, 주님은 빵 몇 조각으로 부서진 여인들의 운명을 씻어주는새로운 피로 이 땅의 모든 이들의 마음 깊은 곳을 채워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밤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세계를 약속하셨습니다.주님, 라틴 아메리카의 여인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그들의 삶은 우리의 역사와 영토 안에 여기저기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점심때마다 딱딱하게 굳은 빵을 나누어 먹고저녁때마다 땀과 조용한 분노가 섞인 잔을 받습니다.주님, 라틴 아메리카의 여인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그들은 남에서 북으로 당신의 약속과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기 위하여 싸워온 여인들입니다.주님, 주님은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친절과 친밀함, 평등,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비추는 햇살로 채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주님, 그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이미 고단한 인생에 지쳐 굳어진 얼굴로거리에 나선 증조할머니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나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싸우고 있는 누이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매일 병마로 고통당하는 마리나의 몸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시골에 있는 여인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산동네에 사는 여인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주님, 라틴 아메리카의 여인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슬픔으로 인해 강해진 여인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내면에 희망으로 가득 찬 여인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매일 저녁마다 큰 미소로달의 힘을 바라보는 여인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그들에게 새로운 땅을 주옵소서.(7)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나를 당신께 인도하는 모든 것을 주옵소서.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나를 당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버리게 하옵소서.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자신을 위한 욕망을 멀리하고 나의 전부를 당신께 드리게 하옵소서. (8)오, 주님, 교회의 대가족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자신들의 형제자매를 돕기 위하여 그들의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볼 때, 주님의 모든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요!오, 주님, 나라들과 가족들, 혹은 공동체의 책임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부와 생명에 필수적인 요소들의 효율적인 분배를 통하여자신들의 형제자매들을 돕는 길을 찾을 때, 주님의 모든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요!오, 주님, 다른 창조적인 일을 함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는 모든 이들이 실직자들과의 분배를 생각할 때주님의 모든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요!오, 주님, 의사들의 노력과 연구가단순히 고통을 멈추게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주님의 모든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요!오, 주님,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자연과 단순한 인생 속에서주님의 창조의 경이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볼 때,주님의 모든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요!오, 주님, 은퇴한 노인들이 그들의 경험의 열매들을 다른 이들을 위하여 계속하여 제공하는 것을 볼 때,주님의 모든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요!오, 주님, 이 세계를 소유하려는 우리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포기하고 지구상에 살아가고 움직이는 만물 가운데서 우리에게 적합한 장소라는 것을 발견할 때, 주님의 모든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요!우리의 수고와 쉼과, 말과 침묵으로 당신께 영광을 돌립니다.그리고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주신 주님의 사랑을 전하겠습니다.(9)복되신 거룩한 지혜여,나사렛의 예언자, 사람의 아들, 당신의 대사를 세상에 보내사따뜻한 자비를 전하게 하셨습니다.복되신 거룩한 지혜여,그가 상처입고 찢겨진 몸과 영혼들을 고치던 갈릴리로 가는 길에 그와 함께 하셨건만죽어가는 불씨를 다시 살리신 주님의 현존은 너무나 빨리 잊혀졌습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에 이 세계의 한계들이 물러갑니다.위협하던 세력이 변화하여 친절한 이웃이 되듯이간교한 여우가 아닌 어미닭의 따뜻한 날개가 되어줍니다. 자신과 이웃에 대하여 증오하며 살던 이가 자신의 삶이 이웃을 위한 것이라는 조용한 확신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테러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이웃의 운명을 함께 합니다. 복되신 거룩한 지혜여, 나사렛의 예언자, 사람의 아들, 당신의 대사를 세상에 보내사따뜻한 자비를 전하게 하셨습니다.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치유자, 당신의 대사가 더 이상 없고,우리의 인생이 자꾸만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지고,무자비한 폭력과 증오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 주님은 오셔서 당신의 날개로 우리를 품으십니다.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지혜여,주님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가 인생길에서 헤맬 때에 우리에게 오셔서 친구가 되어주시고마침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관계를 풀어주셨습니다. 복되신 거룩한 지혜여, 주님은 우리들 각자 삶의 완성을 이루도록 밀어주시고, 너무나 빨리 잊혀진 주님의 현존의 죽어가던 불씨를 다시 살려주십니다.
2010-06-22 03: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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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이탈리아, 몰타, 포르투갈, 스페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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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차가운 눈 속에 버려져 있는 사람들이 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추위와 목마름 때문에 고통당하고, 누군가가 따뜻하게 돌봐주기를 갈망하며, 사람들로부터 멸시 당하고, 그 인생길에서 꽃 한 송이 본 적도 없이 평생 오직 먼지만 마셨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또 누구에게도 사랑받아본 적 없는, 이제는 웃는 법마저 잊어버린, 어머니조차 없는 그 사람들이 지금 문 두드리고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이, 굳은살이 가득 박이고, 가난으로 거칠어진 손을 가진 사람들이, 선술집에서 취해 주정을 부리고, 칼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이, 편히 쉴 곳도 친구도 없이 운명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 매춘 굴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기억할만한 유년기도 없이 자란 사람들이, 사람들이 지나가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지금 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들이여, 나의 문을 두드리시오. 그리고 들어오시오. 나에게는 그대들에게 나누어줄 사랑이 있습니다.그리고 혹시 내가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면, (나 역시 바깥에서 울며 있어본 적이 있기에, 그 아픈 슬픔을 잘 알고 있지요. 나 역시 불행하기 때문에) 그래서, 혹시 내가 문을 두드린다면, 어서 나와 내게 문을 열어주세요. 나의 불로 나를 따뜻하게 해주세요.내가 잘랐던 그 빵을 나에게 주세요. 그리고 내가 그대에게 준 그 사랑을 주세요.
<세바스티아오 다 가마 (Sebastio da Gama)>
이탈리아, 몰타, 포르투갈, 스페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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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공화국 (Italian Republic)
통계
인구 : 6000만 명정부형태 : 의회 공화국언어 : 이탈리아어; 또한 독일어, 프랑스어, 기타 문자 해독률 : 97%종교 : 기독교 82%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이슬람교 1%, 기타 1%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이탈리아 복음주의 침례교 연합(Evangelical Baptist Union of Italy), 이탈리아 복음 감리교회(Evangelical Methodist Church of Italy), 왈도파 교회(Waldensian Church)
역사
유럽 남쪽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 중간에 위치한 이탈리아는 북쪽으로 프랑스와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와 접하고 있다. 이탈리아 국경 안에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두 국가인 산마리노 공화국(Republic of San Marino)과 바티칸 시티(Vatican City)가 있다. 이탈리아는 한때 전체 지중해 지역에서 경제적, 종교적, 문화적인 중심지였다. 지중해를 장악하는 것이 로마에 기반을 한 초대 제국의 관심사이었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가 시작될 때부터 오랫동안 통제를 하였고, 로마 영토 내에 바울이 세운 여러 교회들과 크게 충돌하였다. 로마의 고대 황제들은 거의 대부분 이방신 숭배자들이었고 때로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자행하였다. 이러한 박해는 300년대 초 기독교로 개종한 콘스탄틴 황제 때까지 계속되었다. 324년에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지정하였고, 신전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옮겼으며, 이때부터 시작된 교회와 국가의 위태로운 협력관계는 현대의 이탈리아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배를 받던 중세기 내내 이탈리아는 강력한 힘을 행사했는데, 탐험가들. 선교사들과, 특히 십자군 전쟁 기간에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복 군대를 보냈다. 16세기에 이탈리아의 국력은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하여, 그 후 3백 년간은 계속하여 이웃 나라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는데, 그 중에는 몇 달 만에 끝난 경우도 있었다.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Sicily), 사르데냐 섬(Sardinia)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도시 국가들로 존재하던 이탈리아는 1861년에 이르러 빅토르 에마뉴엘 2세(Victor Emmanuel II)에 의해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1920년대 초 무솔리니(Benito Mussolini)가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하였을 때 의회에 기초한 정부가 시작되었다. 독일 나치독일과 동맹 관계를 맺으면서 이탈리아는 이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었다. 1946년 민주적인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군주 정체를 대신하였고, 이후 경제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불법이민자들과 조직적인 범죄들, 부패심화와 높은 실업률, 그리고 발전된 북부 지역에 비해 남부 이탈리아의 저임금과 낮은 기술력 등이 이탈리아 사회의 계속되고 있는 문제들이다.
로마에 위치한 바티칸 시티(Vatican City)는, 1984년까지 이탈리아의 국교였던 로마 가톨릭 교회의 행정 중심지이다. 12세기의 종교개혁자 리용의 피터 발데스(Peter Valdes of Lyons)의 추종자들이 튜린(Turin)근처의 “왈도 계곡”(Waldensian Valley)에 이주했고, 이 사람들이 후에 이탈리아 개신교 연합체(federation of Italian Protestantism)의 중심이 되었다. 1975년, 왈도파 교회와 감리교회가 각자의 역사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이탈리아에서 한 교회로 통합하였다. 현재 개신교인 수 보다 여호와의 증인과 오순절 교인들이 수가 더 많다. 오늘 날 이탈리아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 남아 있다.
몰타 공화국 (Republic of Malta)
통계
인구 : 34만 명정부형태 : 의원제 공화국언어 : 말타어(Maltese)와 영어; 또한 이탈리아어문자 해독률 : 96%종교 : 기독교인 98% (대부분 로마 가톨릭교인), 이슬람교, 기타 1%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
역사
몰타는 몰타와 고조(Gozo), 코미노(Comino) 섬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이다. 이 나라는 지중해 시칠리아 섬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바울이 조난당한 후에 상륙한 일(행 28:1)을 기독교의 전래로 삼아, 아직까지 이 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며 축하하고 있다.
몰타는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아라비아, 노르만(Normans),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과 같은 다양한 문명의 지배를 받았다. 1921년 영국으로부터 자치권과 헌법을 부여받았으나, 이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취소되어 계속적으로 식민지로 있다가 1964년에 독립하였다. 1974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의회제 공화국으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십자군 전쟁 당시, 로마 황제 찰스 5세(Charles V)는 예루살렘의 성 요한(St. John of Jerusalem)의 기사들에게 이 섬을 하사하였고, 19세기 영국에게 정복되기까지 그들이 이 섬을 지배하였다. 결국 모든 주민들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고 있는데, 가톨릭이 국교이며 이 섬의 사회적, 문화적 삶을 지배하고 있다. 또한 가톨릭교회는 이 섬 자산의 1/6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일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더욱이 교육과 의료에서도 가톨릭교회가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포르투갈 공화국 (Portuguese Republic)
통계
인구 : 990만 명정부형태 : 의원제 공화국언어 : 포르투갈어; 또한 스페인어, 영어문자 해독률 : 90%종교 : 기독교인 92% (대부분 로마 가톨릭교인), 불교 1%, 이슬람교와 기타 1%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포르투갈 복음주의 장로교회 (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 of Portugal), 포르투갈 루시타니아 교회(Lusitanian Church of Portugal *역주 포르투갈 성공회)
역사
포르투갈은 유럽대륙의 남서쪽에 있는 이베리아(Iberia) 반도에 자리하고 있다. 스페인과 동쪽과 북쪽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과 남쪽으로 대서양에 접해있다. 가장 국운이 가장 왕성했던 15세기와 16세기 이후, 1755년 리스본(Lisbon) 지진, 나폴레옹 전쟁 때 점령, 1822년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독립 등으로 포르투갈의 높았던 국가 위상과 국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1910년 혁명으로 왕조가 물러났다; 그 후 60여 년 간 안토니오 드 살라자르(Antonio de Salazar)와 같은 억압적인 정부가 등장하여 나라를 이끌었다. 1974년 좌파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살라자르의 독재정권을 무너트리고 광범위한 민주개혁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수세기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극도로 억압적인 식민지 정책에 눌려있던 아프리카의 앙골라Angola), 모잠비크(Mozambique), 기니아-비소(Guinea-Bissau), 케이프 베르디 제도(Cape Verdi Islands) 등이 독립하였다. 그 후 이십년 간 포르투갈은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현재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가난한 나라들 중에 하나이고, 많은 젊은이들이 보다 나은 기회를 찾기 위하여 인근 서유럽 국가들로 이민을 떠나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들에 의하면, 사도 야고보와 바울이 포르투갈을 방문했으며, 2세기 말에는 기독교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 속해 있으며, 그래서 예배에 있어서는 매우 전통적이고, 신학은 보수적인 경향이다. 포르투갈 교회는 수십 년간 콩코르닷(Concordat, 교황과 세속 정권 간의 협약)에 의하여 치리를 받았으며, 이는 해외의 모든 식민지에서 마찬가지이었다. 살라자르 체제가 무너지면서 콩코르닷도 종식되었다.
또한 포르투갈에는 유명한 파티마(Fatima)의 성모상이 있는데, 매년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종교개혁기 동안 몇 개의 개신교단들이 포르투갈에 세워졌고, 20세기에 들어와 여러 복음주의적 독립교회들이 세워졌다. 1974년 헌법을 통하여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스페인 왕국 (Kingdom of Spain)
통계
인구 : 4,100만 명정부형태 : 입헌군주제 언어 : 스페인어(공식적인 카스티야[castilian] 스페인어), 카탈로니아어(Catalan), 갈리시아어(Galician), 바스크어(Basque)와 기타종교 : 기독교인 92.5%(로마 가톨릭교회 92%, 개신교 0.2%), 소수의 이슬람교, 유대교, 바하이교(Baha"i)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스페인 복음교회(Spanish Evangelical Church), 스페인 성공회Spanish Reformed Episcopal Church)
역사
이베리아 반도 서쪽에 위치한 스페인은 북동쪽으로 프랑스, 작은 국가인 안도라(Andorra)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포르투갈과 접해 있다. 남쪽과 동쪽으로 지중해와 접해 있으며, 대서양이 북서쪽에 접하고 있다. 또한 내륙은 다양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산맥과 산들의 위치에 따라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푸르고 비옥한 땅들이 있는 반면에 지중해 연안으로 내려가면서 고온 건조한 기후대가 형성된다. 스페인의 중심부는 춥고 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을 특징으로 하는 고원지대이다.
여러 세기 동안 페니키아 제국과 그리스, 로마 제국을 거쳐 서고트 족이 오늘날의 스페인 지역을 식민지로 지배하였으며, 모두 자신들의 종교를 가지고 왔다. 2세기경부터 기독교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7세기 기간 중에 이슬람교 아랍인들이 지브랄타(Gibraltar) 인근 지역을 거쳐서 침입해왔다; 무어인(Moors)인들이 남부지역을 지배했고, 반면에 북부 지역은 기독교인들로 남아있었다. 800년 경, 갈리시아의 북서쪽에서 성 야고보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도시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는 순례의 목적지로 잘 알려졌다. 프랑스에서 시작하는 순례 코스를 따라 많은 호스텔과 수도원들이 지어졌고, 상업이 번창하였으며, 여행 도중 예배하는 여행자들에 따라 문화도 혼합되고 있다. 산티아고는 이슬람으로부터 스페인을 “재정복”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을 모집하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십자군 출정은 중세기 내내 계속되었고, 이슬람, 유대교, 개신교인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 신앙을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죽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았다. 이러한 재정복 전쟁은 1492년 그라나다의 함락으로 종식되었다.
그 후 삼세기 동안 스페인 제국은 세계 여러 곳, 특히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였다. 식민지화는 로마 가톨릭 신앙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토착 문화들을 말살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스페인은 내전과 독재 정치로 고통을 겪었으며, 그중에서 가장 최근 사례는 1939년부터 1975년까지 다스렸던 프랑코(Franco) 장군의 파시스트 통치이었는데, 그는 처절하고 국제적으로 확대된 내전에서 공화파에게 축출되었다. 그 후 스페인은 정치경제적으로 많은 개혁을 단행하였고, 입헌군주제를 회복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문제는 바스크 분리 운동(Basque Separatist Movement)과 협상을 하는 일인데, 이 운동은 스페인 북부에서 바스크 민족의 독립 국가 건설을 추구하고 있고, 종종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 그 밖에 실업, 이따금 흉작, 지중해의 수질 오염 등이 중요한 사회 문제이다.
스페인 역사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스페인 기독교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6, 17세기 스페인 종교재판으로 인해 수천 명의 이슬람교인, 유대인, 개신교인들이 죽음을 당했다. 프랑코 독재 시절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국교였으며, 소수 종파들은 차별과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오늘 날 모든 종교는 헌법에 의해 평등을 보장받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이 두 번째로 큰 종파이며, 그 뒤를 최근 집시 출신 주민들 사이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복음교회(Filadelfia Evangelical Church)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영적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은 성 이그나시우스 로욜라(St Ignatius Loyola)이며, 그는 예수회의 창립자이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영적 훈련』(Spiritual Exercise)의 저자이기도 하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 기도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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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라들 안에서 기독교의 오랜 전통을 세워 나오고, 새롭게 만들어 온 신실한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성 베드로와 바울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을 결국 기독교로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복음의 사역을 감당했던 분들입니다.
● 초대 기독교의 역사를 증언하는 카타콤과 다른 신앙의 기념물들로 우리 신앙을 새롭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 성 야고보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 있는 그의 성당이 현대의 순례자들이 화해된 유럽을 위하여 기도로 하나가 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 성 야고보의 이야기가 이슬람 교인들을 자극하는데 사용되지 않도록 재해석해준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보다 깊은 신앙과 영적 치유를 발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민자들과 난민들을 맞아들이고, 돌보는 사람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고대 유적지에서 펼쳐지는 기타, 탭댄스, 캐스터네츠, 플라멩고 무희들의 춤, 도시의 악사들의 아름다운 노래들, 야외 오페라가 주는 감동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피터 발데스(Peter Valdes), 베네딕트(Benedict),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프랜시스(Francis), 클레어(Clair), 그리고 씨에나의 카테리나(Catherine of Siena)를 포함해서, 교회의 갱신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을 위하여 감사드립니다.
●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축제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예술을 복음 선포에 사용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다빈치(de Vinci), 티티안(Titian), 벨라즈케즈(Velazquez)와 또 모든 사람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 바티칸과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테러와 폭력을 종식을 위하여; 특별히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갈등이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땅과 바다, 하늘의 자원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민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지혜롭고 일관된 원칙이 있기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 젊은이들이 그들의 조국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민자들과 인신매매의 희생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실업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부패와 범죄가 종식되고, 그래서 모든 이들이 정의를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불관용과 증오에 대항하여 계속해서 저항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날이 갈수록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 교회의 영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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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배로의 부름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과 평화를 누립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셨습니다.
우리가 여기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2)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 속에 오셔서
위대함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함이란
사람들이 가난이라 부르는 것이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것이고,
들에 핀 백합화와 같이 단순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르치셔서 우리의 마음을
가난한 삶을 향하여 열게 하시고,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과 함께 걷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오직 주님의 동행하심을 기원하게 하옵소서.
나사렛 예수께서 사신 것처럼
자유롭게 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3)
당신이 부자라면 어떻게 당신이 헐벗고 있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전능하다면, 어떻게 당신이 경멸을 당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왕이라면, 어떻게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까?
당신이 강하다면,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 연약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빛이라면, 어떻게 당신의 빛이 꺼져갈 수 있습니까?
당신이 거룩한 태양이라면, 어떻게 당신이 가려질 수 있습니까?
당신이 말씀이라면, 어떻게 당신이 침묵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생명이라면, 어떻게 당신이 죽음을 당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사람으로서 그 십자가에 달릴 수 있습니까?
당신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옆에 달린 강도에게 천국이 그의 것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습니까?
아, 선하신 예수여, 주님은 사람이며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하나님으로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4)
기원
목말라 생수를 갈망하는
우리 영혼의 외침을 들어 주소서, 오 하나님.
주님의 나타나심을 간구하오니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성령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불러주소서.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립니다.
(5)
주님,
아무리 어둠 속이라고
저는 주님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아직 저를 만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주께서 저를 만져주시고,
향수나 은혜처럼 저를 감싸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
아무리 어둠 속이라고
저는 주님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6)
예배로의 부름
창조주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입니다.
우리가 찬양으로 응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응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부릅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합니다.
(7)
한 지혜로운 랍비가 길을 걸어가다가 나무를 심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랍비가 물었다. “이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몇 년이나 걸리겠소?”그 남자는 대답했다. “70년쯤 걸리겠지요.” 랍비가 다시 물었다. “그대는 나중에 이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그 남자가 대답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저는 조상들이 저를 위하여 심어놓은 나무들에서 풍성한 열매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도 제 아이들을 위해서 같은 일을 하는 것이지요.” (유대인 미드라쉬에서)
주님, 우리 자신만을 위한 집착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과 우리 자신의 일에만 너무나 몰두하여
앞서간 세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선물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주님, 우리의 닫힌 생각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닫힌 생각 때문에 우리가 내일을 바라보는 것을 가로막혀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비옥하고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는 것을 가로막혀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탐욕스러운 이기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할 수 있는 한 끌어 모을 수 있는 것을 꽉 쥐고 있고,
자연 자원들을 고갈시킬 정도로 쥐어짜고 있는
우리의 움켜쥔 손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손을 펼쳐서 나눔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씨 뿌리는 사람의 넉넉한 몸짓을 배우게 하셔서
우리가 뿌린 씨앗의 열매로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를
상관하지 않고 씨를 뿌릴 수 있게 하옵소서.
(8)
믿음의 확증
나는 전적으로 단순하시며 또 그 반대이기도 한
한 분 하나님을 믿음을 확신합니다.
그 분은 무한히 멀리 계시지만
동시에 무한히 가까이 계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측량할 수 없는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설득하고 계십니다.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높으신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또한 전체 창조 질서를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하나님으로서 권리들을 포기하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세우신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9)
예배로의 부름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만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10)
믿음의 확증
우리는 영원을 믿습니다.
또 그 때문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에 대해 대가를 치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룩을 믿습니다.
또 그 때문에 우리는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는 정의를 믿습니다.
또한 그 때문에 우리는 자비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믿습니다.
또 그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께 예배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 그 때문에 우리는 모든 여자와 남자를 존중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 세계가 구원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고, 또한 경험했습니다.
또 그 때문에 우리 영혼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기쁨은 무엇으로도 파괴되지 않고, 어떤 엄청난 위협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다스리심이 어느 날 오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그 때문에,
인간적인 제도들이나 혁명적인 방법을 기다리지 않고,
우리의 재물과 지성, 마음을
정의를 위한 도구, 봉사를 위한 도약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 분은 인간 삶 속에서 태어나시고, 살아가십니다.
또한 그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믿습니다.
이 교회는 건물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를 발산하는 중심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한 그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경험하고 있는
작은 일들로 인하여 기뻐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가장 보잘 것 없고, 비천한 것을 경축하고,
깊이 감동을 누립니다.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한 아기의 탄생이 그것입니다.
(11)
주님, 주님이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에
문을 두드리지 않고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임재는 강요 때문이 아니라 계획에 의해서입니다.
주님은 모든 문의 뒤, 거기에 계십니다.
그러기에 주님과 소통하기 위하여
어떻게 주님의 목소리를 유심히 듣고
문을 열고,
우리 식탁에 초대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 우리를 가르쳐 주옵소서.
우리의 삶을 요동시키는 소리의 우상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분별할 수 있도록 우리의 귀를 여는 방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우리 마음의 문,
우리 가정의 문,
우리 교회의 문을 활짝 여는 방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과, 우리 이웃과
주님을 환영하고,
우리가 드릴 것이 얼마나 적은지
근심하지 않고,
식탁을 준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 말씀의 양식과
주님의 만찬의 빵과 포도주로
우리를 먹이기 위해 주께서 오셨사오니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12)
믿음의 확증
나는 한 분이신 아버지를 믿습니다.
그 분은 당신의 자녀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예복을 주기 위하여,
살진 송아지와
화해의 큰 잔치를 열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말없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한 분 성령을 믿습니다.
그 성령의 능력은 폭풍우와 번개,
혹은 두려운 지진에서 나타나지 않고,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에서 나타납니다.
나는 한 분 독생자를 믿습니다.
그 분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울부짖으심으로
침묵의 능력을 깨뜨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죽음의 침묵을
모든 침묵의 죽음으로 바꾸셨습니다.
2010-06-22 0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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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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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은 그 자신이 평화로 가는 길이며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류 가족을 위해 주신 평화의 선물입니다. 평화를 향한 간구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우리가 회심하고 평화의 도구가 되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는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주체가 되는 것이 모든 시민들의 의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다원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또한 국내적이고 국제적인 차원에서 대화와 일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이러한 덕목들을 충분히 실행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화해와 평화의 선물: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가톨릭 주교단 성명(God"s Gift of Reconciliation and Peace: An Appeal of the Catholic Bishops of Ethiopia and Erit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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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편
에리트레아 (Eritrea)통계인구: 420만 명정부형태: 공화국 언어: 아랍어, 티그리냐어(Tigrinya)문자해독률:종교: 기독교 50% 이슬람교 50%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에리트레안 정교회(Eritrean Orthodox Tewahedo Church)역사에리트레아는 홍해와 인도양에 접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동쪽 뿔 지역의 정상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해변을 따라 낮은 지역에 조성된 건조한 평원지대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구대(地溝帶) 계곡(Rift Valley)의 단층지형과 연결되어 있는 중앙의 고원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으로 수단, 남서쪽으로 에티오피아, 남동쪽으로 지부티와 접경하고 있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예멘과도 가까운 거리이다.에리트레아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6천 년 전 나일강 유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4세기경부터 에티오피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가, 6세기 경 오토만(Ottoman)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나중에는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차세계대전 후 에티오피아의 식민지가 된 에리트레아는 긴 독립전쟁을 통해 1993년 독립하였으나, 다시 무력충돌에 휩싸이게 되는데, 첫 상대인 예멘과의 전쟁에 이어 에티오피아와 다시 한 번 국경 전반에 걸쳐서 국토가 초토화되는 대대적인 무력충돌을 가졌다. 2년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두 나라 도합 수만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에리트레아의 사회적 기반시설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1889년부터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에리트레아는 1941년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1952년 국제연합(UN)은 에리트레아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는 에티오피아와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에리트레아의 열망을 조정하여 에티오피아 연방에 소속하되 자치권을 가진 지역으로 에리트레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10년 후,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Haile Selassie)가 에리트레아를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그 후 32년간의 에리트레아의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독립운동은 에리트레아 인민 해방전선(Eritrean People"s Liberation Front, EPLF)의 결성으로 최고조에 달했고 에티오피아 저항운동과 협력하여 셀라시의 뒤를 이어 집권한 멘기스투 하일레 마리암(Mengistu Haile Mariam)의 공산당 독재를 물리쳤다.1993년 에티오피아의 협조 아래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에리트레아의 국민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독립을 선택하였고, 에티오피아는 다시 내륙국이 되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가 에리트레아 두 항구 마사와(Massawa)와 아삽(Assab)의 사용권을 주장하면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두 항구의 사용권은 두 나라의 가장 심각한 외교문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1998년, 양국의 국경에서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났고, 2000년, 유엔의 개입으로 겨우 종식되었다. 현재 에리트레아에는 유엔군이 주둔하면서 에티오피아와의 국경에 설정한 임시 안전 지역(Temporary Security Zone)의 평화를 감시하고 있다. 2002년, 국경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에티오피아의 반발로 활동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병원과 학교, 기타 건물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적 기반시설들이 파괴되었다. 또한 지뢰로 인해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말라리아와 후천성 면역결핍증(HIV, AIDS)이 확산되고 있다. 평균 기대 수명은 46세에 불과하며, 전체 국민의 25퍼센트는 기근과 전쟁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구호품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다양한 인종적 구성을 갖고 있으며, 국민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인들로, 이들 은 세계교회협의회의 회원교단인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 Church)가 독립할 때까지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1993년, 에리트레아에 사는 정교회 교인들은 정부의 지원 속에 콥틱(이집트) 정교회(Coptic Orthodox Church)의 교황 셰나우다 3세(Shenouda III)에게 에티오피아 정교회와의 분리와 에리트레아 정교회의 자립적인 교단의 지위 부여를 탄원하였다. 1994년 셰나우다 3세는 이들의 탄원을 수락하였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다섯 명의 새로운 에리트레아 주교들을 서품하였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교회는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에서 조약을 맺고 양측의 자치교회의 위상을 재확인하였다. 에리트레아 교회는 수 세기에 걸쳐 독립운동에서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현재 에리트레아 국민의 40퍼센트 정도가 에리트레아 정교회 교인들이다. 국민의 절반은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다. 19세기 말엽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도착하였으나, 이들 교회는 아직 소수에 머물고 있다.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공화국(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통계인구: 6천 9백 90만 명 정부형태: 연방 공화국언어: 암하라어(Amharic)문자해독율: 종교: 이슬람교 45%, 에티오피아 정교회 40%, 개신교 10%, 토착종교, 소수 가톨릭, 힌두교와 시크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메카니 예수 에티오피아 개신교회(Ethiopian Evangelical Church Mekane Yesus),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역사에티오피아 역시 아프리카의 동쪽 뿔 지역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북동쪽으로 에리트레아와 지부티, 동쪽과 동남쪽으로 소말리아, 남서쪽으로 케냐, 서쪽과 서북쪽으로 수단과 접경하고 있다. 주후 1세기 경 에티오피아는 악숨 제국(Aksumite kingdom)으로 알려진 무역 국가였다. (히브리 성경에 의하면 시바의 여왕의 남편이 된 것으로 전해지는 솔로몬의 후손들인) 솔로몬 왕조가 다스렸고, 이들은 주후 4세기 경 콥틱(Coptic)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7세기 초, 자그웨(Zagwe) 왕조에 의해 북부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이 들어왔다. 그 후 13세기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솔로몬 왕조가 다시 집권할 때까지 이질적인 종교와 민족적 배경을 가진 두 개의 그룹은 여러 세기 동안 갈등을 겪었다. 18세기 내내 벌어진 종교적 전쟁과 국지적인 충돌로 인해 국력이 약화되었고, 마침내 티그레이(Tigrayan)와 오로모(Oromo) 왕가가 다스리는 봉토로 분열되었다. 19세기 중엽을 기해 유럽의 팽창주의 정책으로 인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군대가 아프리카 뿔 지역에 상륙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고, 특별히 1889년 이탈리아가 이웃한 에리트레아를 식민지로 점령하였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고대 에티오피아 왕조로부터 시작하여 역사상 한번도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은 것이다. 이탈리아가 두 번이나 식민지로 삼으려고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1952년, 국제연합은 에티오피아와 이웃한 에리트레아의 연방안을 가결하였다. 1962년,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를 자국의 식민지로 편입시켰다. 이 사건으로 인해 1993년 에리트레아의 독립까지 수십 년 동안 무장투쟁이 일어났다. 1974년 데르그(Derg)가 이끄는 군부 쿠테타가 일어나 (1930년부터 에티오피아를 다스려온) 하일레 셀라시 (Haile Selassie) 황제를 몰아내고 군사정부를 세웠다. 그동안 국교와 같은 위치에서 황제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콥틱 정교회는 대부분의 재산과 방대한 토지를 모두 빼앗겼다. 그러나 쿠테타 세력의 분열과 곳곳에서 일어난 저항, 기근과 대규모 난민 등의 문제로 인해 데르그(Derg) 정권은 결국 1991년 반정부군의 연합체인 에티오피아 인민 해방전선(Ethiopian People"s Liberation Front, EPRDF)에 의해 무너졌다. 1994년 헌법이 만들어졌고,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가 실시되었다. 1995년 에리트레아와 국경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2000년 12월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났다. 2000년, 하일레 셀라시 황제의 유물들을 다시 매장하는 의식이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삼위일체 정교회 성당(Trinity Orthodox Cathedral)에서 있었다. 그러나 정교회는 국교의 위치를 다시 회복하지 못했고 빼앗긴 토지도 돌려받지 못했다. 국민들은 충분한 의료 인력의 부족, 불완전한 위생 시설, 영양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국민들의 예상 수명은 남자가 50세이고, 여자가 53세이다. 1999년에는 뇌수막염과 후천성 면역결핍증(HIV, AIDS)이 전염병 수준으로 크게 유행하여 성인 인구의 십 퍼센트 이상이 감염되었다. 폐결핵 역시 급격하게 증가하여, 현재 에티오피아의 사망 요인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기독교가 에티오피아에 처음 들어온 것은 보통 주후 1세기 경, 첫 번째 왕 악숨(Aksum)의 개종(행8:27)을 통해서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전승에 의하면 사도 마태가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5세기에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칼케돈 공의회(451)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련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초대교회와 분리해나간 교회들 중 하나였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슬람교가 널리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는 기독교 국가로 남아있고, 기독교인의 삼분의 이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에 속해있다. 여러 세기동안 교회는 국가의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개신교와 로마가톨릭교회 선교사들은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과 함께 도착하였고, 여러 개의 교회를 세웠다. 1960년대 초부터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 강력한 부흥운동을 시작하였고, 현재 “생명의 말씀 복음교회”(Word of Life Evangelical Church)가 개신교회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다. 세 번째로 큰 교세를 가진 개신교단이 메카니 예수 에티오피아 복음교회(Ethiopian Evangelical Church Mekane Yesus)이다. 메카니 예수는 “예수님이 거하시는”이라는 뜻이다. 이 교회는 세계 루터교회 연맹(Lutheran World Federation)과 세계 개혁교회 연맹(World Alliance of Reformed Church)에 모두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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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기도 제목●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들인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선포하고 있는 고대의 전통과 새로운 가능성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섬기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인제라(injera, 에티오피아의 빵)와 와트(wat, 고기와 야채를 위한 소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중보기도 제목● 이들 나라의 정부가 평화와 정의를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폭력적이 아닌 외교적인 수단으로 국경 갈등이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새로운 식량과 식수가 충분히 개발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피난민들과 자기의 집과 마을을 떠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에이즈와 결핵, 그 밖의 질병으로 고통당하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1)하나님께서 마땅히 넉넉하고 풍성하게 채워주셔야 하는 강들의 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고 추수하셔서 땅에게 허락하신 열매들로 인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복되고 영광 가득한 거룩한 이름을 인하여, 오 성 삼위일체 하나님,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리고 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옵소서.(2)오 영원하신 하나님, 모든 선한 것들보다 더욱 선하신, 모든 공정한 것들보다 더욱 공정하신 주님 안에 고요와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를 서로 갈라놓는 차이들이 하나가 되게 하시고 우리 안에 사랑의 일치를 회복하게 하셔서 주님의 거룩한 성품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게 하옵소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비, 온유함을 통하여 우리 안에, 그리고 서로 간에 영적으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3)달과 별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이 달이 우리의 기쁨과 행복이 되게 하옵소서. 젊은이들이 강하게 하시고, 그 힘을 유지하고 자라게 하시고, 잉태한 여인들이 출산하게 하시고, 자신의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있게 하옵소서. 나그네가 여행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고, 집에 남아있는 이들은 그들의 집에서 안전하게 거하게 하옵소서. 양떼들이 초원에서 배불리 풀을 뜯고 기쁘게 우리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 달이 추수와 송아지들의 달이 되기 원합니다. 이 달이 회복과 건강의 달이 되게 하옵소서.(4)하나님, 우리가 감사드립니다. 음울하고 긴 겨울동안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시고,우리가 꽃들의 신선한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하시고,우리가 가을의 신선한 미풍을 즐길 수 있게 허락하시고,우리가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우리의 영양을 위하여 곡식과 식물을 만들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우리가 기도드립니다.우리의 고향집들과 이웃들, 그리고 조국에 평화가 가득하기를,질병과 페스트, 전염병들을 뿌리 채 없애주시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땅에 굶주림이나 기근이 없기를,그리하여 아이들이 없는 이들이 아이들을 갖게 되기를,그리하여 열심히 수고하는 이들이 번영하고 성공하기를 기도드립니다.다시 기도드립니다.산모의 안전한 출산과 이를 돕는 이들을 위하여,파종기에 필요한 비를 위하여,새로운 작물과 풍성한 추수를 위하여,가뭄, 홍수, 전염병 등의 자연재해의 피해가 줄어들 수 있기를,적대적인 불법침략을 물리칠 수 있기를,병자들의 치유와 건강한 삶을 위하여, 가축의 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도록,송아지와 고기, 우유를 제공하는 소들을 위하여,밭일을 위해 길들여진 일하는 소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5)사랑하는 주 예수님, 우리가 감사를 드립니다.주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도 마땅히 죽어야 하는 삶에서 영생을 주시는 주님과 함께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시기를 청합니다.주님의 성령을 우리 안에 넣어 주셔서,우리가 세상으로 나가게 하시고,평화와 사랑, 기쁨과 행복을 전하는주님의 좋은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6)사랑하는 예수님, 모든 성도들의 선한 목자가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양떼에서 잃어버린바 되었을 때,주님은 우리를 찾을 때까지 결코 주무시지 않으셨고,(우리를 찾으셨을 때) 하늘과 땅에서 기뻐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 상하게 하는 모든 악에서 지켜주시고, 모든 불신자들에게서 지켜주시니 감사드립니다.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7)예수님, 주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경외하고, 경배하며, 예배하게 하옵소서.특별히 서로 사랑하라 하신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하옵소서.우리를 모든 주님의 성령의 열매들의 기초가 되는이 위대한 사랑 안에 들어가게 하시고, 주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오늘과 내일, 그리고 영원토록 주님의 사랑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8)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신 한 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않습니다.그들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습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하나님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십니다.또 그대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누가 그대를 해할 수 있겠습니까?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입니다. 저희의 두려움을 두려워말고,소동치 마십시오.그러나 그대들의 마음에 주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고,그대들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온유와 두려움으로 하십시오.
2010-06-22 03: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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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앙골라, 모잠비크 편
- 이 나라는 전쟁으로 모든 길들이 사라졌다. 길 위에는 하이에나들만 어슬렁거리고 재와 먼지 냄새만 진동하고 있다. 시골마을마다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슬픔과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있다. 그들의 피부는 더럽다. 너무나 더러워서 그들에게서 밝은 모습이나 오랫동안 잊혀졌던 용기를 찾아볼 길이 없다. 이곳에서 하늘의 뜻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 주는 교훈에 순응한 채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졌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길은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난 몇 세기들보다 더욱 굴종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불타버린 자동차 잔해를 따라 약탈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사방이 열대의 대초원으로 둘러싸인 땅에서 오직 바오밥나무 만이 이 세계의 꽃들이 떨어지는 것을 묵상하고 있다.
한 노인과 한 소년이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그들은 마치 걷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처럼 흔들리며 걷고 있다. 그들은 출발지도, 목적지도 없이, 특별히 여행을 연기해야 할 이유도 없이 가고 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해 걷고 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이미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그들은, 그 무엇보다, 평화로운 땅에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여행하고 있다. 그들은 신발도 없이 길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노인의 이름은 투아히르(Tuahir)이다. 그는 몸의 모든 양분이 빠져나간 것처럼 깡말랐다. 젊은이의 이름은 무이딩가(Muidinga)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쫓겨나 흩어질 때부터 줄곧 노인의 앞에서 걷고 있다. 그가 조금 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쪽발이 다른 발보다 조금 늦게 끌리며 가고 있다. 최근에 앓았던 병 때문에 그는 죽음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갔었다. 노인은 어린 시절부터 소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쳤다. 걷는 법, 말하는 법, 그리고 생각하는 법을. 무이딩가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유년기는 생존의 갈급함으로 인하여 더욱 빠르게 지나고 있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는 노래도 하고, 꿈 이야기로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고독과 친해지면서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두 여행자가 함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절망이 주는 무력감과 지친 몸으로 여행하고 있다. <미아 카우토(Mia Couto), 모잠비크>
앙골라 공화국(Republic of Angola)
통계인구 : 1천 5백 50만 명정부형태 : 다당제 공화제 언어 : 포르투갈어문자해독률 : 남자 83%, 여자 54%종교 : 로마 가톨릭 68%, 개신교 20%, 부족종교 12%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앙골라 복음주의 침례교회(Evangelical Baptist Church of Angola), 앙골라 복음주의 회중교회(Evangelical Congregational Church of Angola), 앙골라 복음주의 오순절 선교회(Evangelical Pentecostal Mission of Angola), 앙골라 복음주의 개혁교회(Evangelical Reformed Church of Angola)
역사 앙골라는 남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콩고 공화국, 동쪽으로 잠비아, 남쪽으로 나미비아와 접하고 있다. 대서양 해안 북쪽에 위치한 카빈다(Cabinda) 주는 콩고공화국에 둘러싸여 있는 앙골라의 영토이다. 앙골라는 많은 부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다.
1483년, 스페인 탐험가 디에고 카오(Diego Cao)가 지금의 앙골라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통로를 개척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1504년, 푸르투갈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방문하여 므분두(Mbundu)와 교역을 하며 루안다(Luanda) 평원에서 평화롭게 살며 큰 번영을 누렸다. 그들은 후에 유럽인들에 의해 쫓겨났다. 1520년, 포르투갈 왕의 명령을 받은 선교사가 방문하여 원주민들에게 선교하였다. 앙골라 기독교의 초기 원주민 지도자 느골라(Ngola)는 원주민들을 대표하여 선택의 기로에 섰다. 즉, 개종하고 기독교인으로 삶든지 아니면 멀리 끌려가 노예로 살 것인지의 선택을 요구받았다. 1575년, 포르투갈인들은 루안다(현재의 앙골라 수도)에 항구를 건설하였고, 노예무역은 가장 수익이 높은 수출품목이 되었다. 3백만 명에 이르는 앙골라인들이 노예로 해외에 팔려갔는데, 대부분 브라질로 팔려갔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을 식민지가 아닌 포르투갈령으로 지배했는데, 특별히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그랬다. 그러나 1910년 이후 포르투갈 본국이 대표적인 독재국가가 되면서 해외의 영토들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강력한 언론통제가 실시되고, 비밀경찰들이 도처에서 사람들을 감시하였으며, 정적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뒤따랐다. 모든 앙골라 출신 흑인들은 강제노동에 끌려 나갔고, 지극히 소수의 흑인들이 교육을 받았다. 앙골라가 독립할 당시 전국에 걸쳐 단지 68명의 흑인만이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이차세계대전이 끝나자 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앙골라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작은 규모였지만 참혹한 부족 간 전쟁이 촉발되었다. 정권을 잡으려 했던 세 개의 중요한 부족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소련이나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앙골라 인민해방운동(Popular Movement for the Liberation of Angola, MPLA)은 쿠바와 다른 공산국가의 지원을 받는 마르크스주의 그룹이었다. 앙골라 민족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FNLA)은 복쪽에 본부를 둔 독립운동단체로 미국과 자이레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조나스 사빔비(Jonas Sabimbi)가 이끌던 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맹(National Union for the Total Independence of Angola, UNITA)은 앙골라 남부에 본부를 두고 남아프리카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이들 독립운동 단체들과의 전투를 위하여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였다. 1975년,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앙골라는 독립을 맞이했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독재자 안토니오 살라자르(Antonio Salzar)가 군부 쿠데타로 갑작스럽게 축출되었다. 포르투갈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앙골라를 떠났다. 그들은 들고 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약탈하고, 정치적으로 진공상태(이 때문에 앙골라는 정치적으로 포르투갈이 행사하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요소들로 가득했다)를 만들어놓고 앙골라를 떠났다. 이제 앙골라는 빈곤의 상처와 인구의 급속한 감소, 교육받지 못하고 정부의 구성과 통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의 손에 남겨졌다.
오백 년 간의 식민지 통치가 끝난 후에 앙골라는 더욱 악화된 상황에 빠져들었다. 즉, 국제적인 지원을 받는 세 개의 독립운동 그룹 간에 길고 긴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197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되어 고향을 떠나야 했고, 백오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과 쿠바, 남아프리카가 앙골라에서 철수하였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 의해 1992년 최초의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이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맹(UNITA)의 조나스 사빔비는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전투를 계속하였다. 1997년 연립정부가 구성되었으나 사빔비는 다시 참여를 거부하였다. 마침내 2002년 2월 사빔비가 정부군에게 살해당하고, 그 후 6주 후에 새로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내전이 종식되었다.
거의 50년 동안 계속된 내전이 끝났지만, 앙골라인들의 평균기대수명은 39세에 지나지 않고, 그동안 두 세대가 한 번도 평화롭지 않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오늘날 오십 만에 달하는 인구가 영양실조와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앙골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또 다른 오십만의 사람들이 문명세계와 단절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4백만 명이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에 이웃한 나라들로 이주하였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앙골라 전역에 아직도 5백 만 개의 지뢰와 불발탄들이 묻혀있거나 떨어져 있다. 7만 명 이상이 지뢰로 인해 손이나 발을 잃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국민들의 건강과 의료품 부족현상이다. 국토의 기반시설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깨끗한 식수와 정확한 위생관리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앙골라 주민들이 예방 주사를 맞지 않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말라리아, 소아마비, 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일해 등과 같이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도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하여 성인 인구의 5퍼센트 이상이 감염되어 있다. 정확한 통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앙골라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다. 대규모 유전과 다이아몬드와 기타 광물들,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어종으로 가득한 수산 자원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들을 마구 남용하였고,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정치인들과 무장단체들은 이러한 자원에서 나오는 부를 서로 빼앗아 갔다.
1491년 포르투갈인들이 앙골라에 기독교를 전해주었다. 특히 왕 알폰소(Alfonso) 1세의 개종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널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알폰소 1세의 아들은 로마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노예무역이 번성하면서 알폰소 제국은 붕괴되었고, 기독교 역시 약화되었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예수회, 카푸친 수도회(Capuchines), 프랜시스회, 갈멜수도회, 성령교부의 모든 선교사들이 앙골라를 찾았다. 오늘날, 앙골라 기독교인의 사분의 삼 정도가 로마가톨릭 교인들이다. 개신교회는 19세기 말 도착한 영국, 미국, 캐나다 선교사들을 통해 전래되었다. 앙골라가 독립하기에 앞서 로마가톨릭교회는 협정을 통하여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성립하였다. 독립한 후에 앙골라 정부는 정교분리를 선언하였고, 교회가 세운 학교와 재산들을 모두 국유화하였다. 그 후 몇 년 동안 수많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납치, 살해되거나 추방되었고, 많은 교회들은 공식적인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면서 교회에 대한 정부의 관용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여덟 개 교단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앙골라 기독교회 협의회(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in Angola)는 세계교회협의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잠비크 공화국 (Republic of Mozambique)
통계인구 : 1천 9백 40만 명 정부형태 : 다당제 공화제언어 : 포르투갈어종교 : 기독교 42%, 이슬람 18%, 기타 부족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모잠비크 장로교회 (Presbyterian Church of Mozambique)
역사모잠비크는 아프리카의 남동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 사이에 인도양 해협이 있다. 서쪽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와 짐바브웨, 북쪽으로 잠비아, 말라위, 탄자니아가 자리하고 있다.
1498년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유럽인으로 처음 모잠비크에 도착하였다. 그는 당시 한창 번성하던 소팔라(Sofala) 항구(지금의 베이라 Beira)에 상륙하였다. 그곳은 모노마타파(Monomatapha, 짐바브웨 제국) 왕국에서 황금과 상아를 실은 배들이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인도로 떠나던 항구였다. 다 가마가 발견한 이 해안 들은 모두 수세기동안 이곳을 왕래해 온 아랍인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 모잠비크 역시 노예무역의 중요한 공급지가 되어, 처음에는 아랍권으로 노예를 수출하였고, 후에는 포르투갈로 바뀌었다.
16세기 도착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는 공동으로 이 해안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다. 두 나라는 금광을 차지하기 위하여 내륙지역을 정복하려고 노력했으나 원주민들의 저항과 질병으로 인하여 물러나야 했다. 포르투갈은 식민지 팽창정책을 사용하면서 앙골라의 경우와 같이 모잠비크를 해외에 있는 포르투갈 영토로 삼았다. 당시의 평균적인 식민지 정책에 비해도, 포르투갈의 모잠비크 통치는 가혹했다. 포르투갈은 모잠비크 점령 초기부터 자신들을 위해 일할 인원들만 유지하고 나머지 주민들을 미국에 노예로 파는 정책을 실시하여 주민 수를 줄였다. 19세기에 노예제가 폐지되었을 때 모잠비크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당시 강제노동이란 모잠비크의 모든 흑인들이 6개월간 무보수로 노역에 동원되는 것을 가리켰다. 포르투갈이 광산개발과 농장을 위하여 유럽의 개인 회사들에게 영토사용권을 넘겨주기 시작하면서 이들 회사들이 강제노동의 상당부분을 흡수하였다.
1962년 모잠비크 해방전선(Front for the Liberation of Mozambique, FRELIMO)이 결성되면서 이렇게 불의한 구조에 대한 저항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2년 후에 북부의 두 개 주에서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냈다. 부족 간 전쟁이 일어나 치열해지면서 수천 명이 사망하였지만, 1975년 리스본(Lisbon) 정부를 전복하고 모잠비크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1975년 포르투갈인들은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약탈하여 떠날 때, 모잠비크 국민의 90퍼센트는 문맹이었다. 사십 명도 안 되는 의사들이 모잠비크 전역을 담당해야 했다. 경제는 붕괴되었고, 심각한 식량부족과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아선상에서 고통을 당했다. 마르크스주의로 무장된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을 두려워한 인종분리정책 당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기본적인 시설들을 접수하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 후 모잠비크 해방전선이 짐바브웨 자유의 전사들(Zimbabwean freedom fighters)을 지원하고 있다는 혐의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모잠비크인 광부들을 추방하였고, 자국 내 모든 외국환의 거래를 중지시켰다.
1983년, 모잠비크가 국가적으로 파산하면서 광범위한 기근이 발생하였다. 백인우월주의자 로데시아(Rhodesia)는 짐바브웨의 좌파 저항 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게릴라 부대를 창설하고 기금을 지원하면서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에는 짐바브웨 저항세력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들 반군들은 모잠비크 민족저항군(Mozambican National Resistance, RENAMO)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유럽인들이 로데시아를 포기하자 남아프리카로 내려갔고, 모잠비크는 긴 내전에 들어갔다. 모잠비크 민족저항군(RENAMO)은 농촌지역에서 잔인한 작전을 펼쳐 수천 명의 모잠비크인들을 학살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특별히 교사, 의사, 지식인들, 기술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살해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 대통령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모잠비크 민족저항군(RENAMO)에 대한 지원 중단을 약속하고,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가입을 철회하는 약정서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협정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내전이 계속되었다. 1989년, 마셸이 석연치 않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나자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은 공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였다. 1990년 새로운 헌법이 공포되고, 1992년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1994년과 2000년에 복수정당이 참여하는 선거가 실시되어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이 승리하였다. 그 후로 모잠비크는 정치경제적인 안정을 되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잠비크도 주변의 많은 나라들처럼 막대한 대외채무와 극심한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인구의 대부분은 기초적인 생활수준에 못 미치거나 겨우 충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2000년과 2001년의 우기에는 대홍수가 일어나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많은 농장들이 파괴되었으며, 2002년에는 홍수에 이은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기아에 허덕이는 2백 6십만 명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와 더불어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이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다. 성인 인구 여덟 명 중 한 명이 이미 감염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는 14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이다.
모잠비크 인구의 절반은 아직도 전통적인 부족종교를 믿고 있다. 이슬람교는 10세기 경 아랍의 상인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1561년 쇼나족(Shona)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순교한 예수회 신부가 이 지역에 찾아온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였다. 그 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기독교는 이 지역에 발판을 놓지 못했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인구의 40 퍼센트 정도이다. 헌법은 정교분리를 선언하고, 종교와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모잠비크 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uncil of Mozambique)는 스물 네 개의 회원교회를 가지고 있는 에큐메니칼 조직이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앙골라와 모잠비크 국민들을 돕고 있는 국제연합, 특별히 세계식량계획과 다른 여러 단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내전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받은 이들 나라의 국민들에게 계속하여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 교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서로 적대적인 공동체들 간에 열린 대화를 계속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지뢰들이 발견되는 위험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내전으로 황폐화된 이들 나라의 재건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집 없는 사람들로 남거나 난민으로 떠도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뢰로 손이나 발을 잃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과 앞으로 계속하여 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지금까지 한 번도 평화를 누리지 못한 아이들과 내전으로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상처입고 희생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비와 햇볕이 균형 있게 내려 곡식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보다 풍족한 식량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충분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에이즈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가족들, 그들의 공동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대외 채무로 인한 노예 상태가 종식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오, 하나님, 제 마음을 넓게 하셔서주님의 크신 사랑을 담기에 충분한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제 마음을 멀리 펼치셔서저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온 세계 있는 모든 사람들을제 마음에 담을 수 있게 하옵소서.제 마음을 펼쳐 주셔서 제 눈에 사랑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과제 손으로 마주잡고 싶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담을 수 있게 하옵소서.저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익명의 아프리카 기독교인의 기도>
(2)모든 곳에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우주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아버지,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을 축복합니다.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당신께서 외아들을 보내시고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우리보다 먼저 하늘로 오르시며온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라고주님의 제자들에게 강하게 명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그 복음이 이곳 앙골라에 전해졌습니다.그 복음이 우리의 식구들에게 전해지고 받아들여져서 증오와 질투와 불의와 질병이 이 나라에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앙골라에서 주님을 위하여 일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옵소서. 오, 주님,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에게 보이사복음을 전하고 선포하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메디나 졸라 바야(Medina Zola Baya), 앙골라>
(3)위대하신 하나님, 주님께 축복과 찬양을 드립니다.주님은 이 세계를 창조하신 영원하신 아버지입니다.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고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주님 앞으로 나옵니다.주님, 사람들이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주님은 그들에게 주님의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주님은 모든 자비의 아버지이고, 우리의 모든 고통을 보고 전하는 분입니다.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고통 받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주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주님은 생명이십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분입니다. 억압받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돌보심을 전하겠습니다.모든 대륙과 나라에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그러나, 특별히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기억하여 주옵소서.주님의 복을 기다리며 이 모든 것을 주님께 아룁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메디나 졸라 바야(Medina Zola Baya), 앙골라>
(4)오, 하나님, 외적으로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주님의 놀라우신 소망을 선물로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아프리카의 이 지역에서주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계시며,위험한 시대에 구원하기를 더디 아니하시는 주님의 평화를 인하여 감사드립니다.주님은 우주의 길과 목적을 알려주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조아오 마콘데크아(Joao Makondekwa), 앙골라 성서공회>
2010-06-22 03: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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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편
-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편
“이 세상 어디에선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을 부정하는 이단과 같은 큰 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하나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몽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우리에게 명하신 말씀입니다.” <빌렘 비서트 후프트(Willem Visser"t Hooft)>
역사
네덜란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e of Churches)의 초대 총무였던 빌렘 비서트 후프트(Willem Visser"t Hooft)를 비롯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에 헌신하는 많은 사람들을 배출한 나라이다. 네덜란드란 원래 “낮은 곳에 있는 나라들”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써,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그리고 네덜란드 세 나라를 함께 통칭하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북부의 네덜란드만을 뜻하고 있다. 일찍부터 산업이 크게 발달한 이 세 나라는 모두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며, 특별히 1960년 베네룩스 경제 연합(Benelux Economic Union) 조약을 체결한 이후 보통 베네룩스 3국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
주후 6세기와 7세기 경 이 지역을 찾아온 켈트족(Celtic) 선교사들의 순교를 무릅쓴 선교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그중에서 유트레흐트(Utrecht)는 가장 초기의 중심이 된 선교사들 중 한 사람이었고, 윌리보드(Willibord)와 보니파체(Boniface)는 초기 네덜란드 기독교 지도자들이었다.
중세기 말엽 이 지역은 영주들이 다스리는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북부와 남부 지역이 분리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는 스페인의 합스부르크(Hapsburge) 왕조에 저항하는 세력들과 연합하였고, 루터와 쯔빙글리, 칼빈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 교회의 박해를 피해 북부지역으로 몰려들었다. 80년간의 전쟁 끝에 북부지역은 오랑주의 윌리엄 공(公)(William of Orange)이 이끄는 독립국가로 출범하였고, 남부 지역은 합스부르그 왕조의 통치 하에 남았다. 나폴레옹 시대가 끝난 후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한 나라로 합쳐졌고, 룩셈부르크는 오랑주 가문의 대공국으로 남았다. 벨기에는 1830년에, 룩셈부르크는 1890년에 각각 독립국가가 되었다.
많은 국제기구들과 유럽연합의 본부들이 이 세 나라에 자리하고 있는데,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World Court)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가 대표적이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대략 89퍼센트와 90퍼센트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네덜란드는 31퍼센트의 로마 가톨릭 교인들과 29퍼센트의 개신교인들, 그리고 나머지는 종교를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벨기에 왕국(Kingdom of Belgium)
통계
인구 : 10,300,000 명정부형태 : 입헌군주국언어 :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문맹퇴치율 : 100%종교 : 기독교 88%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이슬람교 4%, 불교, 유대교, 기타 1%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벨기에 연합 개신교회(United Protestant Church of Belgium)
역사
벨기에는 북극해에 인접한 유럽의 북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벨기에보다 북쪽으로 네덜란드, 동쪽으로 독일과 룩셈부르크, 남서쪽으로 프랑스를 접하고 있다. 벨기에 국민들은 플레밍스(Flemish)와 왈로니(Walloons)의 두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플랑드르인(Flanders)으로 알려진 플레밍스인들은 네덜라드어를 사용하며 대부분 북부지역에 살고 있으며, 왈로니인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대부분 남부 왈로니아 지방에 살고 있다. 1831년 제정된 벨기에 헌법은 그 후 여러 번 개정되었고, 가장 최근의 개헌은 1993년에 이루어졌다. 개헌의 주된 이유는 플레밍스인들과 왈로니인들의 긴장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 중에 외교적인 중립을 지키기 위하여 많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 모두 독일의 침략을 받았다. 벨기에는 1993년 11월 체결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의해 설립된 유럽연합(Europe Union)의 일원이다.
벨기에는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며, 전 국민의 97퍼센트가 도시에 살고 있을 만큼 높은 산업화가 이루어진 나라이다. 해마다 북부지역에 찾아오는 홍수가 큰 문제이고, 국가적으로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공기와 수질 오염 등의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불법적인 마약의 생산과 사용도 시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종교 개혁 기간 중 벨기에는 기독교인들은 루터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반종교 개혁(Counter Reformation)으로 인해 많은 초기 개신교인들이 순교하였고, 현재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로마 가톨릭교인들이다. 1830년 네 개의 개신교회가 연합하여 현재의 벨기에 연합개신교회((United Protestant Church of Belgium)가 출범하였다. 벨기에 연합개신교회에는 대부분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을 수용하는 110개의 회원교회가 가입해있다. 벨기에 연합개신교회가 국가의 인정과 지원을 받고 있는데 반해, 퀘이커교와 여러 개의 복음주의 교파들은 1997년 정부로부터 이단(cult)적이라는 판정을 받은 후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고 있다.
룩셈부르크 대공국 (Grand Duchy of Luxembourg)
통계
인구 : 430,000 명정부형태 : 1839년 이후 입헌의회적 대공제(大公制)언어 : 룩셈부르크어, 프랑스어, 독일어문맹퇴치율 : 100%종교 : 기독교인 94% (대부분 로마 가톨릭교인), 이슬람교 1%, 유대교, 기타 1%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
역사
서부유럽의 작은 내륙 국가로, 동쪽으로 독일, 남쪽으로 프랑스, 서북쪽으로 벨기에와 접하고 있다. 10세기에 국가로 형성되었고, 1839년에 대공국이 되었다. 독립하기 전의 19세기 기간에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간섭을 받았다. 두 번의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의 침공을 받았다. 그 후 국가를 재건하였고,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 중 하나가 되었다.
개신교회와 러시아와 그리스 정교회 교인들이 소수가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룩셈부르크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네덜란드 왕국 (Kingdom of Netherlands)
통계
인구 : 16,300,000 명언어 :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터키어, 인도네시아어 등정부형태 : 입헌군주국종교 : 기독교 94%, 이슬람교 4%, 힌두교 1%, 불교, 유대교, 기타 1%문맹퇴치율 : 100%
세계 교회협의회 회원: 네덜란드 메노나이트 교회(Mennonite Church in the Netherlands), 네덜란드 고(古)가톨릭 교회(Old Catholic Church of the Netherlands), 네덜란드 개신교회(Protrstant Church in the Netherlands), 레몬스트런트 형제교회(Remonstrant Brotherhood)
역사
서북부 해안이 북해에 접해있으며, 동쪽으로 독일과 남서쪽으로 벨기에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16세기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독립국가가 되었다.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에서의 홍수는 늘 반복되는 문제이며, 이 때문에 마을과 농장들을 둘러싼 제방구조가 발달하였다. 식민지 팽창기와 동인도 회사 시절부터 시작된 활발한 국제무역과 식민지화 정책은 네덜란드의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수많은 네덜란드 출신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중세기를 거쳐, 북부의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에서 인상주의와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기까지 활동하였다. 19세기 중엽에 현재의 영토와 입헌군주제가 확정되었다. 일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으나, 이차대전 중에는 나찌 독일의 침공을 받아 점령되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 프랑크의 집은 해마다 백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십년이 되기 전에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와 수리남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카리브해에 있는 아루바(Aruba)와 네덜란드령 안틸제도(Netherlands Antilles)는 현재까지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남아있다. 전후 네덜란드의 경제는 다시 크게 부흥하였고, 네덜란드는 1999년 이후 공용화폐가 된 유로화의 사용을 처음 제안한 여섯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환경오염과 불법적인 마약 유통, 이민 정책과 유럽통합,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관계 등이 현재 네덜란드의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들이다.
네덜란드의 기독교는 6,7세기 경 이 지역을 찾아온 켈트족 선교사들을 통하여 전래되었다. 로테르담(Rotterdam)의 에라스무스는 기독교 인본주의의 원리들을 이용하여 서구의 신학을 비평하였다. 16세기에는 칼빈주의가 깊이 뿌리내렸으나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정통성은 17세기에 일어난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에 의해 큰 도전을 받았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가기 전에 네덜란드로 피난을 오기도 했다.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교회협의회가 구성되었고, 로마 가톨릭 교회를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인 네덜란드 교회협의회가 1968년 조직되었다. 그 외에도 두 개의 강력하고 활동적인 이민자와 복음적인 기독교인들의 기구가 있다. 두 개의 큰 개혁교회와 작은 루터교회가 2004년에 연합하여 새로운 네덜란드 연합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in the Netherlands)를 결성하였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 기도 제목
● 네덜란드 개신교회로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이 교회가 계속하여 교회의 가시적인 일치의 증인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 이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 반 고흐, 렘브란트, 브뤼겔, 버미어, 또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준 위대한 화가들로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중보 기도 제목
● 벨기에의 플레밍스인들(Flemings)과 왈로니인들(Walloons)이 서로 관용하며, 존중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마약 중독자들과 마약상들이 물질적인 중독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 위로와 능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신앙에 관심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교회가 생명력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쫓겨나 국경 지대의 수용소를 찾고 있는 수백 명의 난민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들의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 사이에, 이 나라들에서 태어난 이들과 나중에 찾아온 이들 사이에 건강하고 개방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사람들 사이에 인종적 편견을 강화하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사람들이 상대방의 정체성을 존중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상대방을 무관심과 의심으로 대하지 않고, 이웃이 되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졸업 후 미취업 상태인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님은 지지 않고 언제나 새롭게 떠오르는 해와 같은 분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셔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시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주님은 모든 양식의 근원이 되셔서, 우리의 영육을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먹여 주십니다. 주님은 빛이셔서, 실수와 의심의 먹구름을 몰아내주시고, 매일 어느 순간에도 제 앞에 계셔서 저의 생각과 행동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제가 주님의 빛 안에 걸어가게 하시고, 주님의 양식으로 자라게 하시고, 주님의 자비로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하여 주옵소서.
(2)
하나님, 우리가 의와 정직이 있는 곳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은혜로 도우셔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고,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공간과 자유의 하나님, 생명과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강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축복을 말하지만 결국은 악을 가져오는 그런 권세들에 절하며 살지 않게 하옵소서.자유롭고 축복 안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곳에서,주님의 복된 말씀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3)
온유한 이들을 온전하게 하시고상한 이들을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 우리를 주님의 자비를 전하는 도구로 삼아주옵소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다른 이들의 행복으로 향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백성들이 홀로 방황하지 않게 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하옵소서. 오늘부터 영원까지 매일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4)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혈과 육을 가진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세계에서 평화롭고, 정의롭게 살게 하셨습니다. 간구하옵기는 목자와, 인도자 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주님께서는 선한 거처들을 보여주시는 분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를 향하는 길에 부닥치게 되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그리고 우리의 평생 동안 우리 앞에서 걷고 계신 분입니다.
이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5)
주님, 저에게서 어두운 밤의 흔적들이 사라지고죽음의 권세가 물러가게 하옵소서.밝아오는 새날과 같이 저를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주님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하여 주시고오늘 사는 동안 주님의 빛으로 옷 입혀 주옵소서.웃을 수 있는 일들을 주옵소서.
나의 심령이 주님을 우러보게 하옵소서.기쁨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제가 있는 이곳, 현재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이웃들에게 책임있는 존재로 살게 하여 주셔서, 묵상과 열정을 가지고 살게 하옵시고, 고통과 슬픔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하옵시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정의의 날이 하루 속히 오게 하옵소서. 주님, 온 세계의 곳곳에서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어린 아이들이 살해당하고,
이 지구가 우리들로 말미암아 파멸의 위협을 받고, 모두가 광명한 빛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참고 계십니까?더 이상 참지 마옵소서.우리의 양심을 깨워 주시고, 분노와 수치심을 깨워 주셔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옵소서.
(6)
주님 안에서는, 죽음이 없습니다.주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생명 가운데 살아갑니다.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 옆에 계십니다.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어떤 분이 아닌 지를 저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천사들과 복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도 주께서 주시는 행복과 비교하면 작은 불꽃에 불과합니다.- 모든 선한 일이 이루어짐에 기뻐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웃고 또 웃으십니다.
제가 아직 주님 안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제가 아직 주님 안에 살아간다고 감히 할 수 없기 때문에저는 슬픕니다.
(7)
친구들을 배반하라고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는 한,반역자, 이방인, 여자라는 이유로 또 작가들이 단순히 불의를 고발했다는 이유로감옥에 갇혀 있는 한, 이 세계 곳곳에서 고통이 존재하는 한,여자와 남자들이며, 억압자이며 동시에 피억업자인, 우리는 몇 번이고 일어설 것입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우리가 비록 두려워하게 될지는 몰라도 서로를 위하여 일어서는 이 자리에 남아있게 하옵소서.
2010-06-22 03: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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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레소토,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스와질란드 편
- “무엇이 진실이냐?” 이천년 전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섰을 때 그는 물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진실이란 나의 밖이나 나의 너머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지식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진실은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의지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진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개방성이며,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의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정의와 용서를 이야기할 때 진실의 개념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정의는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시작하는 자리에서만 진실을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최선과 최악에 대한 분별, 친구와 적에 대한 구별이 가능합니다. 적들을 최악과 최선으로 구분하는 것은 우리를 용서가 아닌 복수의 자리로 인도할 것입니다. <느존쿨루 느둔가네(Njonkulu Ndungane),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성공회 대주교>
레소토 왕국(Kingdom of Lesotho) 통계인구 : 1백 70만 명정부형태 : 입헌군주제 언어 : 세소토어(Sesotho), 영어.문자해독률 : 남자 74%, 여자 90%종교 : 기독교 90%, 소수 이슬람교, 부족종교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레소토 복음교회(Lesotho Evangelical Church)역사 레소토(본래 발음은 “레-수-투”[Leh-soo-too]로 “산위의 왕국”이라는 뜻) 왕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토에 완전히 둘러싸인 내륙국이지만 섬나라와 같이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19세기 초부터 접경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분리된 국가로 존재해왔고, 줄루(Zulu) 제국의 첫 번째 왕이었던 샤카(Shaka)가 주도하는 정복전쟁 기간에 많은 주민들이 인근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으로 흩어졌다. 1825년 소토(Sotho, 현재의 레소토) 영토에는 마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샤카가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토인 크와줄루 나탈(KwaZulu Natal) 지역을 정복하고 지배하던 시기에 한 부족이나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기도 하였다. 특별히 1824년 바소토(소토)족의 지도자였던 모셰셰(Moshoeshoe)와 그의 마을은 계속적으로 침략을 받았고 마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모셰셰는 주민들을 이끌고 긴 여행길에 올라 마침내 타바 보시우(Thaba Bosiu, “밤의 산맥”)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고산지대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굶주림에 지친 모셰셰의 전사들은 줄루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국을 건설하였다. 50년 동안 계속된 모셰셰의 통치기에 왕국의 영향력은 주변으로 서서히 확장되었다. 모셰셰는 여러 부족의 생존자들을 규합하여 보호를 약속하고, 자신의 도덕적 방식을 공동생활의 새로운 기준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왕국을 바수토란드(Basutholand)라고 불렀는데 대단히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높은 산 정상에는 때때로 눈이 덮혔고 깊은 계곡들 사이로 가파르고 험한 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모셰셰의 영토와 권력을 탈취하려는 백인계 아프리카인들에게 바수토란드는 위협받기 시작하였다. 모셰셰는 왕국을 빼앗기는 대신 영국의 보호령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1868년 영국의 보호령을 들어간 그는 이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영국은 이곳을 직접 통치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양도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독립적인 왕국으로 남아있던 바수토란드는 1966년 레소토라는 국명으로 독립하면서 헌법에 따라 의회를 구성하였는데, 절반은 성인 남자들의 투표로 선출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각 부족의 추장들이 선출한 왕에 의해 임명되었다. 모셰셰 이세(Moshoeshoe II)는 민주주의와 함께 백인들이 지배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암묵적인 지지도 상실하였다. 추장 레아부아 조나탄(Leabua Jonathan)이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나마 명목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왕을 즉각 축출하였다. 쿠데타를 통해 헌정을 정지시키고, 왕의 정치적 권력을 박탈함 것이다. 왕은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1970년부터 1993년 사이에 여러 차례에 걸친 쿠데타를 통해 친 남아프리카 공화국 경향의 군부 독재자들이 집권하였으나, 1993년 새로운 헌법에 기초한 민주적인 정부가 성립되었고, 망명 중이던 모셰셰 이세가 귀국하였으나 일 년 만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 레트시에 이세(Letsie II)가 새로운 국왕이 되면서 레소토는 민주적인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국내의 정치상황이 안정되어감에도 불구하고 레소토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다. 오늘까지도 레소토의 도로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국토의 삼분의 이가 겨우 (수레는 다니지 못하고) 말만 다닐 수 있는 길로 연결되어 있다. 아직도 야자수 잎으로 만든 오두막집들이 산등성이마다 가득하다.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이 심각할 정도로 급속하게 전파되고 있다. 국제연합의 통계에 따르면 전 국민의 31퍼센트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산물 재배가 감소하고 있으며, 2002년도의 가뭄으로 사분의 일 이상의 국민들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1833년 프랑스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도착하여 레소토 복음교회(Lesotho Evangelical Church)를 세웠다. 1862년에 프랑스인 로마 가톨릭 교회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오늘날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며, 그들 중 대부분은 로마 가톨릭 교회 교인들이다. 1964년 조직된 레소토 기독교 협의회(Christian Council of Lesotho)는 레소토의 에큐메니칼 조직으로 이 나라의 건강, 교육, 개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나미비아 공화국 (Republic of Zimbabwe)
인종차별과 분리주의가 준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하나님의 백성으로 모두 조화롭게 사는 것이얼마나 놀랍고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이제 주님의 성령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과 마음에 가득 찰 것입니다.이제 아무도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모든 사람들은 정의와 존엄성에 따라 지배를 받을 것입니다.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함께 이 나라를 재건할 것입니다. 피부색에 따라 다르게 설명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생명의 시작일 것입니다. <제파니아 카미타(Zephania Kameeta)통계인구 : 200만 명 정부형태 : 공화제언어 : 영어문자해독율 : 남성 87%, 여성 83%종교 : 기독교 90% (개신교 62%, 가톨릭 17%), 부족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나미비아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Namibia), 나미비아 공화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the Republic of Namibia), 역사풍부한 광물과 어업 자원을 가진 길고 가늘게 생긴 나미비아는 북쪽으로 앙골라와 잠비아, 동쪽으로 보츠와나, 남쪽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접경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나라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나미브(Namib)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으로 알려져 있고, 해골 모양의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사구로 부딪혀오는 대서양의 푸르른 파도들이 특히 장관이다.약 2만 5천 년 전 산족(San)이 이곳에 처음 찾아왔고, 다음으로 코이코이족(Khoikhoi)이 정착하였다. 그들의 뒤를 이어 15세기 경 오밤보족(Ovambo)과 헤레로족(Herero)이 찾아왔다. 1884년, 나미비아는 (토고와 카메룬에 이어) 독일의 남서아프리카에 복속되었다. 독일은 가장 잔혹한 식민주의 정책을 폈고, 나미비아인들은 독일의 통치 아래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식민지 생활을 겪어야 했다. 심각한 대량학살로 20년도 안 되는 기간에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인구는 12만 명에 달하던 인구수가 4만 명 이하로 줄었다. 주민들의 저항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한 결과였다. 비위생적인 축산업과 토지의 남용으로 원주민들을 극심한 빈곤 상태로 추락하게 하였고, 특별히 산족의 몰락과 남쪽으로의 대량 이주를 가져왔다. 일차세계대전 기간 중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군대가 나미비아에 들어왔고, 1920년 나미비아는 독일의 식민지에서 풀려나 영국에 위임되었다. 영국은 즉각적으로 나미비아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넘겨주었으나 한 나라가 되는 것은 거부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나미비아를 북부의 오밤보스(Ovambos) 흑인자치구로 분리하여 실질적으로 봉쇄하고, 비참한 주거환경과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원주민”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그들이 남아프리카로 이주하도록 강요하였다. 자기 땅에서 쫓겨난 이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광산과 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착취는 결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게릴라전의 기폭제가 되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세력을 몰아낸 오밤보스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이차세계대전 이후에 아프리카에서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들이 물러가면서 나미비아 문제가 국제연합에 넘어갔으나 남아프리카는 1966년 국제연합이 총회에서 나미비아의 독립을 직접 결의할 때까지 나미비아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Southwest Africa People"s Organization, SWAPO)는 나미비아의 독립전쟁을 지원하였고, 보밤보스 주민들은 마침내 복수하였다. 한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50년 이래 나미비아에서의 인종분리정책을 자국보다 더 강력하게 실시하면서, 나미비아를 인종과 사회 정책들의 실험장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국제사회는 잠비아에 망명 중이던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를 나미비아의 정식 정부로 인정하였다. 가장 잔인한 군대인 남아프리카의 군대는 나미비아에서 14년 동안 고문과 살인등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남아프리카는 나미비아의 우라늄과 다이아몬드 광산의 시장성이 떨어지고, 어업량이 감소하면서,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와 계속 전투를 벌이는 것이 실효가 없다고 판단하고 비로소 이 지역에 대한 야망을 포기하였다. 1990년, 국제연합의 중재 아래 독립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고, 나미비아는 마침내 독립국이 되어 헌법을 제정하고, 세계에서 가장 인권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나라가 되었다. 첫 번째 선거에서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SWAPO)의 지도자였던 삼 누조마(Sam Nujoma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제 나미비아는 이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가 되었다. 1990년 이래 4년마다 누조마가 재선되면서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가 계속 집권하고 있다. 나미비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의 경제력과 환경 문제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후천성 면역결핍증이 끔찍할 정도로 퍼지고 있어, 인구의 23퍼센트 가량이 감염되어 있다. 19세기부터 시작하여 영국과 독일, 핀란드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오늘날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고, 그들 중 대부분은 루터교회 교인들이다. 남아프리카의 통치기에 교회는 억압자들에 대하여 저항의 목소리를 높였고, 특별히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저항하였고, 불법구금과 추방, 망명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목회자들과 사제들의 부족이 기독교회의 계속적인 큰 문제이다. 1978년 나미비아 교회협의회(Namibian Council of Churches)가 조직되었고, 독립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수천 명의 망명자들의 귀환과 재활을 지원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Republic of South Africa)
통계인구 : 4천 5백 50만 명 정부형태 : 민주공화제언어 : 영어, 아프리카어(Afrikaans), 영어, 줄루어(Zulu), 코사어(Xhosa), 츠와나어(Tswana), 세소토어(Sesotho), 소토어(Sotho), 페디어(Pedi), 쏭가어(Tsonga), 벤다어(Venda), 느데벨레어(Ndebele), 시스와토어(siSwato) 기타 언어들 문자해독율 : 남성 84%, 여성 81%종교 : 기독교 79.8%, 이슬람교 1.5%, 힌두교 1.5%, 유대교 0.2%, 부족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남아프리카 교회(Church of Province of South Africa), 아프리카 공교회 협의회(Council of African Institute Churches), 남아프리카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Southern Africa), 남아프리카 복음주의 장로교회(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 in South Africa), 남아프리카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of Southern Africa), 남아프리카 모라비안교회(Moravian Church in South Africa), 아프리카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Africa), 남아프리카 연합 회중교회(United Congregational Church of Southern Africa), 남아프리카 연합 장로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Southern Africa), 남아프리카 연합 개혁교회(Uniting Reformed Church in Southern Africa)역사남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가장 남단에 위치하여, 대서양과 인도양을 접하고 있다.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모잠비크, 스와질란드 등이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남아프리카로 밀려온 반투족(Bantu)은 남아프리카의 유일한 정착민으로 석기시대부터 그 지역에 살아온 황인종인 산족(San)과 코이코이족(Khoikhoi)족을 만났다. 이들 새로운 이주민들은 코사족(Xhosa)으로 불렸다. 1780년 경, 이들은 희망봉 북쪽으로 이주하면서 네덜란드 거주민들과 상봉하였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소속의 네덜란드인들은 스스로를 선택된 백성으로 자부하고 인종분리주의(Apartheid,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절대적인 진리로 신봉했다. 이들 반투족과 네덜란드 이주민들은 백년이 넘도록 협약들을 체결하기도 하고, 서로의 가축을 훔치고, 토지를 강탈하고, 서로 전투를 벌였다. 1820년 영국인들이 남아프리카를 정복하였다. 영국인들은 원주민들의 반발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남아프리카의 백인계 주민들(Afrikaners)과 모든 것을 처리하였다. 백인계 주민들은 현재 두 개의 국가를 세웠고, 다른 유럽인들과 결집하여 그들이 소유한 좋은 농장들이 있는 남아프리카 중앙의 평야지대에 살고 있다. 이 국가들은 1899년부터 1902년까지 벌어진 보어전쟁(Boer War)으로 전복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수천 명의 보어인들과 백인계 주민들은 그들의 고향을 떠나야 했다. 영국은 집단수용소들을 건설하여 백인계 주민들을 수용하였는데, 이 수용소들에서 죽어간 여성들과 아이들을 포함한 백인계 주민들이 2만 5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보어인들의 정당한 불만은 백인계 주민들의 고난과 분노, 자기연민적인 민족주의에 함께 들어있다. 1910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이프타운은 북동부의 보어 트란스바알(Boer Transvaal) 주와 동부의 나탈(Natal) 지역과 함께 자치권을 가진 남아프리카 연방(Union of South Africa)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투표권이 없었던 흑인들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았다. 보어인 장군 잔 스무츠(Jan Smuts)는 연방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보어인들로 구성된 남아프리카를 지휘하여 일차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 서서 참전하였고, 이차세계대전에도 다시 한 번 영국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였다. 1948년 보어인들의 민족주의가 고양되면서 처음으로 민족당(National Party)이 구성되었다. 보어 민족주의자들이 정권을 획득하자 그들은 곧바로 모든 “유색인종들”의 시민권과 백인이 아닌 주민들의 투표권을 영구히 박탈하였다. 분리주의는 그들의 암호였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갑자기 그동안 살던 지역에서 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서는 한 마을 전체가 쫓겨나야 했다. 이러한 인종차별의 사회적 적용은 히틀러 치하의 독일서도 볼 수 없던 방식이었다. 1961년 이 나라는 영연방에서 분리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1963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의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감옥에 갇혔다.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국세사회의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개혁을 위한 압력이 높아졌다. 수십 년간의 영웅적인 반대와 저항, 그에 따른 고난의 세월이 지나고, 1990년 인종분리정책을 철폐하면서 민족당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드 클러크(F. W. De Klerk)는 만델라를 석방하였다. 4년간의 치열한 협상을 통하여 처음으로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민주적인 선거가 실시되었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후 세 번의 선거가 이어졌다. 만델라의 뒤를 이어 타보 므베키(Thabo Mbeki)가 대통령이 되었고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한때 무소불위를 자랑했던 민족당을 흡수하였다.은퇴한 성공회 대주교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가 1996년 발족하였다. 이 위원회는 1960년부터 1993년 사이에 모든 진영에서 자행한 끔찍한 잔혹 행위들을 조사하였다. 이 위원회는 진상을 파악한 후에 사면과 보상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위원회는 과거의 희생자들에게 2만 건이 넘는 사례들을 청취하였고, 8천 명을 사면하였다. 위원회의 활동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과거에 대한 치유가 크게 이루어졌다.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상당히 발전된 새로운 헌법을 개정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인권보호국이다.인종분리정책 체제에서 정착된 정치경제적 구조를 개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직도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 백인들과 흑인들, 도시와 농촌 사이에 깊은 간격이 있다. 에이즈의 확산은 심각한 상태로 국민의 20퍼센트 가량이 감염되어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5백만 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수치이다. 인구의 절반은 깨끗한 식수와 위생적인 환경이 부족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 도시지역은 폭력 범죄가 가장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특히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타운이 심각하다. 네덜란드인들이 남아프리카에 처음 찾아온 선교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19세기말까지 네덜란드에서 온 백인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와 목회활동을 벌였다. 18세기 초에 영국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원주민들을 위한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도착하였다. 감리교회와 루터교회는 기독교가 성장하는데 강력한 힘이 되었다. 오늘날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인들이고, 이들은 3천 3백 개가 넘는 교단에 속해있다. 1936년 조직된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South African Council of Churches)는 인종차별과 억압에 대한 반대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교회들 자체가 인종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백인계 주민들이 중심인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인종분리정책을 지지하는 신학을 발전시켰고 결국 다른 세계 교회 연합회들과 함께 인종분리정책을 이단적인 정책이라고 선언한 세계 개혁교회 연맹(World Alliance of Reformed Churches)을 추방하였다. 인종분리정책 시기에 다른 많은 교회들도 이 정책에 대하여 적극적이고 원칙적으로 반대하였고, 그로 인해 박해를 받았다.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인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명을 잃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추방되거나 가택연금, 혹은 감옥에 갇혀야 했다. 교회들은 국제적 차원에서 반대운동을 계속하였고,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인종차별 반대운동(Program to Combat Racism)을 성공적으로 실천하였고,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과 아파르트헤이트의 희생자들을 돕는 재원과 인식을 고양하는 일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200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는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가장 높은 훈장인 올리버 탐보 메달(Oliver Tambo medal, 남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민족운동가의 이름을 딴 훈장: 역주)을 인종차별 반대운동(PCR) 책임자인 불드윈 스졸레마(Baldwin Sjolema)에게 수여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의의 공로를 인정하였다. 1984년 아파르트헤이트의 평화적인 종식을 위하여 평생을 싸워온 공로를 인정받은 투투 대주교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스와질란드 왕국 (Kingdom of Swaziland)통계인구 : 110만 명 정부형태 : 정대왕정제언어 : 시스와티어(siSwati)문자해독율 : 남자 81%, 여자 78%종교 : 시온교회 교인들 40%, 가톨릭 20%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역사스와질란드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왕정이 남아있는 마지막 나라이다. 이 나라의 왕은 실제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혜로운 원로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레소토와 마찬가지로, 남아프리카와 모잠비크 사이에 끼어있는 완전한 내륙국이다. 1840년 므스와지(Mswazi) 왕은 줄루족과의 전쟁에서 도움을 받기 위하여 영국인들을 초청하였다. 그 후 1894년부터 1899년까지 남아프리카의 보호령으로 있던 스와질란드는 1902년 원주민 추장들을 인정해주는 정책을 편 영국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196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86년 므스와티(Mswati) 삼세가 왕이 되었는데, 그의 부친으로 선왕이었던 소부자(Sobhuza) 이세는 공식적으로 60명이 넘는 왕비들이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왕과 전통적인 부족의 원로들로 리코코(Liqoqo)라고 불리는 장관들은 왕립목장 주변에서 회합을 가졌다. 리코코가 모일 때 장관들은 예복과 전통의상을 입었는데, 이 전통의상은 사자 가죽과 화려한 깃털들, 큼직한 장신구들을 달린 의상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관직의 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이 자리에 올 수 있고, 어떠한 문제이든지 청원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소토어를 말하는 국민들은 이러한 정부 형태를 반가워하지 않았고, 새로운 헌법의 제정을 주장하였다. 1978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으나 공포되지 않은 채 아직도 중지된 상태이다. 스와질란드는 경제적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물품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 정도가 자립적인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웃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과잉 농업과 목축업으로 토지의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무분별한 밀렵으로 야생동물들의 생존도 위협을 받고 있다. 홍수와 가뭄은 일상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에이즈는 재앙에 가까운 수준으로 확산되어 인구의 33퍼센트가 감염되어 있으며, 신생아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38세로 떨어지고 있다.1825년 남아프리카에 있던 감리교 선교사들이 스와지(Swazi) 왕의 초청을 받아 찾아왔고, 오늘날까지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개신교회로 남아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토착교회인 시온교회(Zionist)와 다른 독립교회 교인들이다. 1930년대에 이들 교회들을 스와지 민족교회(Swazi national church)로 연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패하였다. 오늘날 이 나라의 기독교회들은 매년 부활절에 왕궁에 모여 연합예배를 드린다. 1976년 조직된 스와질란드 교회협의회(Council of Swaziland Churches)는 유일한 에큐메니칼 단체로 로마가톨릭교회와 아프리카 루터교회, 성공회, 메논파, 아프리카 감리교회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감사기도 제목● 인종분리정책을 종식하고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한 세계의 모든 일꾼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희망의 횃불을 높이 들고 국민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의 모델이 된 넬슨 만델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19세기 초에 처음으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남아프리카의 코사족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한 코사족 선지자 느치카나(Ntsikana)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코사족 형제들을 위하여 만든 찬양들과 그들에게 전한 설교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에이즈로 인하여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에이즈의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하나님의 백성들이 질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성문제를 교회의 문제로 제기한 용감한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정의와 자유, 희망을 선포하는 노래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높은 음정과 동시에 두 음정을 노래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남아프리카에서 노래할 때 함께 연주하는 악기 우하디(Uhadi)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에서 교회의 일치와 정치, 경제, 문화적 도전에 대한 신앙과 선교적으로 일치된 목소리로 응답하려는 에큐메니칼 노력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이들 나라의 정부들이 안정과 정의를 갖추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공평하게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과 비인간적인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 안전한 식수나 위생적인 환경을 갖지 못한 실직자들과 계속되는 기근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이들 나라의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부의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져 외국 자본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고 국민들이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인종 문제로 분열된 이들 나라의 치유와 재건이 계속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인종과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는 토지와 교육 개혁, 경제 정의와 의료보험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여전히 빈곤의 공격을 받으면서 또한 가정과 국내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인들과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에이즈의 치료법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어린 소녀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질병과 영양실조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과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1)주님, 주님은 우리의 땅을 알고 계십니다.주님께서 지상에서 사셨던 지역과 너무나 비슷합니다.때때로 눈에 덮인 높은 산들과 뜨거운 낮은 지역이 대조적입니다.주님은 때로 산 위로 홀로 가셨습니다.주님은 그곳에 신비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주님은 또한 산 아래에서 간절히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알고 계셨습니다.오늘 우리도 산 위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익명의 레소토인>(2)주님, 주님께서 저에게주님의 교회를 지키라고명한 것이 아니라,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저의 생명을 버리라고 명하셨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콜린 윈터(Colin Winter) 감독, 나미비아>(3)주님, 우리에게 당당히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스스로 당당하게 서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서게 하옵소서.우리도 그렇지 못할 때 우리 자신도 당당하게 서게 하옵소서. 주님 외에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주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게 하옵소서.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국가나 정당, 혹은 정부나 교회 등, 주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게 하옵소서.주님이 주시는 평화 외에 다른 평화를 추구하지 않게 하시고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주셔서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해야 할 평화의 일이 무엇인지 항상 알게 하옵소서.<알란 파튼(Alan Paton), 남아프리카 공화국>(4)주님, 우리 앞에 행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우리 옆으로 함께 걸으시며 친구가 되어 주옵소서.우리 위에 계시고 우리를 지켜주옵소서.우리 뒤에 계시고 우리의 길을 보여 주옵소서.우리 밑에서 우리를 지지해 주옵소서.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사랑해 주옵소서.<익명의 남아프리카인이 감옥에서 쓴 기도문>(5)오, 주님, 저를 도우셔서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오, 주님, 저를 도우셔서 불가촉천민들, 나병환자들, 미혼모들, 국가에 반대하는 사람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을 두려움 없이 사랑하게 하옵소서.저를 도우셔서 현실에서 패배한 사람들, 절망한 사람들, 일찍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신앙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저를 도우셔서 저의 사랑으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게 하옵소서.그리고 새로 오는 날 속에서 주님의 평화를 위하여 일하게 하옵소서.<알란 파튼(Alan Paton), 남아프리카 공화국>(6)여기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여기에 와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생각하고 있는 저에 대해서 어느 누가 신경을 쓰겠습니까?
작은 목소리 하나가 여전히 속삭입니다. 그래, 기쁘게 살아야지. 주님은 저의 왕국을 둘러싼 성벽의귀중한 머릿돌이십니다. <해리 알프레드 위제트(Harry Alfred Wiggett), 남아프리카 공화국>(7)고백의 기도주님, 우리는 매일같이 비인간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주님, 주님께 고백합니다.주님, 우리의 가진 것과 우리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지 못한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때로 사랑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 자신이 위험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주님, 주님께 고백합니다.주님, 우리를 서로를 구분하였고 분리의 담을 쌓았습니다.주님, 주님께 고백합니다.주님, 우리는 침묵을 지키거나 무분별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선입견의 담을 쌓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이기심과 동정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웃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시간을 내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성령이여, 우리에게 말씀하옵소서. 우리의 귀가 어두우니용서하라고 명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지금 오셔서 충만케 하시고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옵소서.<로즈위(Rozwi), 남아프리카 공화국>(8)오, 주님, 저의 눈을 열어주셔서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게 하시고,귀를 열어주셔서 그들의 울부짖음을 듣게 하시고,마음을 열어주셔서 그들을 돕게 하옵소서.분노하고 강한 이들에게서 연약한 이들을 지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분노하고 부유한 이들에게서가난한 이들을 지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사랑과 소망과 믿음을 필요로 하는 곳을 알게 하시고,그곳에 사랑과 소망과 믿음을 전하게 하옵소서.저의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새로 오는 날에,주님의 평화를 위하여 일할 수 있게 하옵소서.<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있는 성 조지 성당에서 드린 기도문>(9)주님은 강한 요새입니다.주님은 참으로 (피할) 산성입니다.주님은 가장 높은 곳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저 높은 곳에서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주님은 별들과 성단을 창조하셨습니다.밝게 빛나는 별은 주님의 가르침을 전해줍니다.주님은 소경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에게도 주님의 창조의 목적이 있겠지요?
나팔 소리가 울립니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붙잡는 사냥꾼입니다.주님은 서로를 거부하는 우리를 하나로 모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두 덮으시는 거대한 담요이십니다.
주님의 손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주님의 발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왜 주님의 피를 흘리셨습니까?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피를 쏟으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대속을 치룰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우리에게 주님의 왕국에 들어갈 만한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알란 파튼(Alan Paton), 남아프리카 공화국>(10)주님께서 주님의 목적을 위하여 저의 손을 원하셨습니다.저는 즉시 제 손을 드렸지만,주님의 일이 힘들어서 제 손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불의에 대항하고 고발하라고 저의 입을 원하셨습니다.저는 그러다가 잡혀가는 것은 아니냐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보라고 저의 눈을 원하셨습니다.저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눈을 감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하시려 저의 생명을 원하셨습니다.저는 “깊이 참여하지 않는 선에서” 제 삶의 한 부분을 드렸습니다.
주님, 주님을 섬기는데 계산적이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저는 제가 편할 때만 일했고, 저는 안전한 곳으로만 다녔으며,그리고 저는 일을 잘 하는 사람들과만 일했습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당신의 유익한 도구로 보내주셔서,십자가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옵소서.<느치카나(Ntsikana, 서구의 선교사들이 오기 전에 기독교인이 된 코사족의 선구적인 기독교인)의 찬송>(11)화해의 예식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선하심으로 하나님의 가족의 일치를 거역한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다른 이들을 억누르는 우리의 본성과 억압당하는 것을 깨닫기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게 하옵소서.이 세계를 파괴하는 세력에 대적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과 화해하도록 하옵소서.
물의 축복우리 주 하나님, 뜨거운 태양빛으로부터 우리의 손과 몸을 식혀주는 이 물과 함께 하옵소서.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이 물로 우리 마음의 열기가 고요히 사라지게 하옵소서.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이 물로 우리의 상처 입은 감정을 치유하사고, 과거의 분노가 사라지게 하옵소서.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참과 거짓의 비난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옵소서.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우리의 죄의 더러운 자국들을 깨끗케 하옵소서.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불의하게 죽은 이들의 핏자국을 깨끗케 씻어주옵소서.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정하게 하옵소서.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모든 의심의 흔적이 사라지게 하옵소서.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이 물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옵소서.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이 물로 우리의 마음에 정한 영혼을 채워 주옵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 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서로를 통하여, 또 우리 서로를 향하여, 주님과 화해하게 하옵소서.
물로 예식을 정케 함지유와 화해와 소망의 상징하는 의미에서 깨끗한 물로 얼굴을 씻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얼굴을 씻는다. 이 사이에 회중은 찬송을 부를 수 있다.
사죄의 기도진심으로 회개하는 모든 이들을 용서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죄에서 자유케 하옵소서.모든 선하심 안에서 우리를 확증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영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헌신의 기도우리는 고백하는 것만이 아니라 수백 년 이상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모든 사망의 권세에 대항하는 싸움에 참여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고요한 중에 성령의 말씀을 들으십시오.성령이 무엇을 말씀하십니까?성령이 여러분에 대하여 어떤 제안을 하십니까?여러분의 다음 걸음은 무엇입니까?
침묵<조에 세레마네(Joe Seremane), 남아프리카 공화국>(12)하나님, 우리 아버지,우리가 함께 모여 주님을 높이는 예배를 드립니다.우리를 낮춰 주님의 모든 교회가 함께주님께서 온 세계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을기념하며 기억합니다.우리의 마음에 함께 하셔서 우리가 주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하시고,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고,우리가 평화의 연대 속에서 계속하여 연합하게 하옵소서.그것이 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맺으신 언약인 줄 믿습니다.<제파니아 카미타(Zephania Kameeta), 나미비아>(13)시편 139편주님께서 저를 살펴보셨으므로 저를 아십니다. 주님은 제가 한 모든 일을 아십니다.멀리서도 저의 모든 생각을 아십니다.주님을 고백하거나 부인하는 것을 보십니다.심지어 제가 말하기 전에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십니다.주님은 저의 모든 편에 항상 계십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저를 보호하십니다.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저를 아셨기에 저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깊으십니다. 주님의 지식은 저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그러나 제가 어디로 가서 주님의 평화의 도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얼마나 먼 곳으로 피하여 주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제가 “중립적”인 곳으로 피할 찌라도 주님은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만일 제가 제 사무실의 타자기 뒤에 숨을 찌라도 주님은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만일 제가 억압당하는 우리 국민들의 억압을 피하여 가장 먼 나라에 가서 난민이 될 찌라도 주님은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거기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실 것입니다.저는 고통과 수치를 감출 수 있는 어둠을 원할 수 있습니다.아니면, 제 삶에 주신 주님의 사랑의 빛으로 어둠을 비출 수 있습니다.그러나 저의 고통의 어둔 밤도 주님의 현존의 빛 안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잉태하기 전에 이미 주님의 형상대로 저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주님이 하신 너무나 놀라운 일들과 우리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일들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저를 살피시고 저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옵소서.저를 시험하시고 제 생각을 정하게 하옵소서.제 인생의 혁명을 시작하셔서저를 새롭게 하시고저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옵소서.<제파니아 카미타(Zephania Kameeta), 나미비아>(14) 은총과 능력의 하나님, 경건하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께 속해있기를 주님께서는 바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부모처럼 다가와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피조물을 향하여 사랑과 보호의 마음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주님의 자식들을 오랫동안 지켜와 주셨음에 참 감사드립니다. 충만과 기쁨과 동시에 위협과 유혹과 의심의 시간 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세월의 도전 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음 안에서도 주님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유혹의 화려함에서도 주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눈을 주셨습니다. 박해와 장애와 불행의 시대 안에서도 우리를 희망의 표징으로 불러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는 그의 죽음 앞에서 베다니의 한 여인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공포와 두려움 위에 당신의 말씀과 귀한 치유의 기름과 은총을 부여해 주십니다.
2010-06-22 03: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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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수단, 우간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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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은 누구입니까?… 난민인 우리는 폭력과 전쟁의 희생자들입니다. 우리는 온갖 방식으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기에 조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우리는 보호를 요청하기 위하여 다른 나라들로 피하였습니다. 그러나 난민의 한 사람인… 그대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간입니다. 그대는 극심한 재해를 견뎌야 하지만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오, 조국을 떠난 그대는 마치 꼬리 없는 강아지와 같이 사랑받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앤드류 마약(Andrew May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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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우간다 편
수단 (Republic of Sudan)통계인구: 3천 5백 50만 명정부형태: 이슬람 군사정부 언어: 아랍어문자해독률: 남자 71% 여자 52%종교: 이슬람교 70%, 가톨릭 10%, 나머지 20%는 콥트교, 개신교, 부족종교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수단 아프리카 내지 교회(Africa Inland Church-Sudan), 수단 성공회(Episcopal Church of the Sudan), 수단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the Sudan)역사북동 아프리카 홍해에 접해 있는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또한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극심한 폭력과 빈곤으로 고통 받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195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로 내전과 주민들의 대량 이주가 없던 기간은 단지 1972년부터 82년 사이의 10년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내전의 뿌리 깊은 원인은 북부지역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남부의 비이슬람, 비아랍인들인 수단인들을 지배해온 데 있다. 국제연합과 교회가 추산한 바에 의하면, 1983년 다시 내전이 발발한 이후로 약 2백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4백에서 5백만에 이르는 주민들이 전쟁과 기근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2003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서 다르푸르(Darfur) 지역의 흑인 마을을 습격하여 수천 명을 죽고 15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반인륜적인 참사가 일어났다.수단의 북부지역은 오랫동안 아랍과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고, 최근에는 강력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지배를 받았다. 대부분 북부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 아랍계 주민들이 인구의 4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다양한 부족 배경을 가진 아프리카 흑인들과 외국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남부지역의 주민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거나 토속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남부와 북부의 주된 분열은 독립 이전부터 존재했다. 1955년,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일 때, 남부의 주민들은 북부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의 지배에 맞서 저항운동을 시작하였다. 군인과 민간인으로 구성된 정부들이 이어서 구성되었지만 남북 간의 긴장을 해결할 능력은 없었다. 17년간 격렬하게 진행되었던 내전은 전 아프리카 교회회의(All Africa Conference of Churches)와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그리고 이웃 나라들의 대표들이 중재한 평화협정으로 중단되었지만, 평화협정은 10년 만에 깨지고 말았다. 그 시기에 남부 수단에 자치권이나 독립적인 정부를 수립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부족 간의 전쟁이 온 나라를 뒤덮었고 가축들로 인해 국토는 더욱 황폐해졌다.1983년 남부지역에서 발견된 유전에 대하여 카르토움(Khartoum) 정부가 세금 징수를 요구하면서 내전이 다시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수단에 평화는 없었다. 1989년부터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엘리트들과 근본주의 이슬람교 정당이 수단을 지배하고 있다. 1999년 군부는 국회를 해산하였고, 헌정을 중지시켰다. 2002년부터 평화협정이 시작되어, 2005년, 남부지역의 갈등 해결을 위한 몇 가지 협정들이 만들어졌다. 수 십 년에 걸친 내전은 수많은 국민들은 피난민으로 내몰았고, 국토의 대부분 지역에 수백만 개에 달하는 지뢰들이 매설되었다. 소년들을 납치하여 강제로 군인으로 훈련시키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또 다른 놀라운 인권유린의 증거인 노예제도가 30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아랍인들과 아랍계 무어인(Moors)들은 흑인 혈통의 아프리카인들은 노예무역을 통해 매매하고 있다. 국토는 가뭄과 흉년, 사막화, 토지 침식, 멸종위기에 빠진 야생동물들에 대한 밀렵, 과도한 사냥행위 등으로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다. 수단 남부지역의 유전들은 외국 회사들이 개발한 것이지만, 원유에 대한 막대한 로열티를 요구하는 남부지역 주민들의 과도한 압력의 원인이 되고 있다. 수단 국민들의 지배적인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그러나 수단은 긴 기독교 역사도 가지고 있다. 주후 4세기 경 콥틱(Coptic) 선교사들의 도착을 시작으로 주후 543년 멜카이트(Melkite)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14세기까지 기독교가 크게 전파되었으나, 이슬람교도들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그들은 모든 기독교인들을 말살하고자 하였다. 1861년 로마가톨릭교회 선교사들이 도착하였으나, 1881년 폭동이 일어나면서 선교 사업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1898년 로마가톨릭교회가 다시 성립되었고, 곧이어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도 찾아왔다. 현재 로마가톨릭교회, 성공회, 장로교회가 수단에서 단연 커다란 교세를 가진 교회들이다. 또한 콥틱 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도 있다. 1965년 카르토움에 본부를 둔 수단 교회협의회(Sudan Council of Churches)가 조직되었고,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개신교단들과 성공회가 참여하고 있다. 수단 교회협의회의 소속으로 외국으로 추방된 이들이 조직한 뉴 수단 교회협의회(New Sudan Council of Churches)는 케냐의 나이로비에 본부를 두고 있다. 본래 이 두 개의 교회협의회는 함께 하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 전쟁과 파괴로 인하여 남부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체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그동안 가능하지 않았다. 뉴 수단 교회협의회는 남부지역의 교회들과 정기적인 접촉을 유지하면서, 이 지역의 교육, 인권보호, 난민 지원, 로마가톨릭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회들 간의 영적인 일치운동을 영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산산조각 찢어진 이 나라의 에큐메니칼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우간다 공화국 (Republic of Uganda)통계인구: 2,780만 명 정부형태: 다당제 공화제 언어: 스와힐리어(Swahili),영어문자해독율: 남자 77%, 여자 58%종교: 기독교 84%(로마 가톨릭은 42%, 개신교는 42%), 이슬람교 12%, 부족 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우간다 교회역사우간다는 사면이 완전히 육지로 둘러싸인 중앙아프리카의 내륙국이다. 농업 중심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비옥한 고원에 위치한 열대기후 지역이다. 동쪽으로 케냐, 남쪽으로 탄자니아와 르완다, 서쪽으로 콩고 민주주의 공화국, 북쪽으로 수단과 접하고 있다. 4만 년 이전에 이 지역에 수렵채집꾼들이 거주했다는 증거가 있으며, 우간다 대부분의 지역 사람들은 목축과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19세기까지 우간다에는 여러 개의 작은 왕국들이 있었고, 그중에서 바간다(Baganda) 왕국이 가장 유명하다. 1894년, 영국이 우간다를 보호령으로 공포하면서 유럽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부족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였다.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우간다는 목화, 커피, 차를 기반으로 한 경제와 활발한 관광산업의 발전으로 커다란 번영을 구가하였다. 우간다의 명문대학인 마케레레(Makerere) 대학교는 세계적인 수준의 학자들과 교수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분열과 지배 정책이 계속 유지되었고, 부패하고 타락한 지도자들의 실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내전은 거의 우간다 전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1969년부터 1986년 사이에 밀튼 오보테(Milton Obote)와 이디 아민(I야 Amin)의 폭압적인 독재 권력으로 인해 50만 명에 달하는 우간다 국민이 사망하였다. 이들의 군부 통치는 우간다 시민들과, 특별히 학생들과 지식인들을 살해하고 고문하면서 우간다의 고유한 문명이 거의 말살될 정도로 파괴하였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들 가운데 순교자 야나니 루움(Janani Luwum)은 우간다 성공회의 수장으로 아민에게 살해당했다. 아민이 탄자니아를 침공하고 결과적으로 탄자니아의 공격을 받아 축출되는 과정에서 경제도 급격히 추락하였다. 그 후 우간다 정부는 사분오열하였고 나라는 무정부상태와 곳곳에서 벌어지는 게릴라전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86년,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가 이끄는 우간다 저항군(National Resistance Army)이 확실한 통치권을 장악하면서 안정되었고 느리지만 이전의 질서를 다시 찾아가고 있고, 민주적인 개혁조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1995년 새로운 헌법은 정치적 권력을 갖지 않는 조건으로 지방의 왕족들을 다시 세웠고, 1996년, 정당조직의 참여 없이 전국적인 선거를 실시하였다. 1990년대 내내 우간다는 내부적으로 부족 간 전투가 계속되었고, 외부적으로 수단, 르완다, 콩고 민주주의 공화국 등의 주변 국가들과 무력 충돌에 휘말렸다. 최근 우간다의 국내적인 안정은 부패와 군부에 의한 시민들의 인권유린, 집회의 자유의 유보 등으로 다시 위협받고 있다. 우간다 북부지역의 상황은 국제사회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인 불안정에 더해서, 후천성 면역결핍증(HIV, AIDS)이 전국적으로 창궐하면서 수천 명의 사망자를 냈고, 수만 명의 고아들이 변변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우간다는 전국에 걸쳐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더운 나라의 하나였지만, 이제는 질병의 확산으로 생긴 오명을 떨쳐버리기 위해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첫 번째 나라이기도 하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에이즈에 대하여 이야기했고, 이 병에 대한 계몽과 함께, 우간다는 에이즈와 다른 전염병의 확산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우간다의 기독교는 19세기 말엽 프랑스에서 찾아온 로마가톨릭교회 선교사들과 영국의 성공회 선교사들을 통해 전래되었다. 1887년 므왕가(Mwanga) 왕 통치기에 종교적 갈등이 곧 폭력적인 충돌로 폭발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부정하라는 강요를 받았고, 24명에 달하는 기독교인이 화형을 당하며 순교하였다. 1967년,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디 아민의 독재기에 40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살인부대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실종되었고, 많은 기독교 단체들은 활동을 금지 당했다. 아민은 또한 수십만 명의 아시아계 주민들을 추방하였고, 그들 대부분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1963년, 성공회와 정교회, 로마가톨릭교회를 포함하는 우간다 연합 기독교 협의회(Uganda Joint Christian Council)가 결성되었다. 단일 교단으로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우간다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으며, 우간다 지역 성공회(Anglican Church of the Province of Uganda)가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은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회는 1984년 세워진 우간다 캄팔라 오순절 교회(Kampala Pentecostal Church in Uganda)이다.
함께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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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기도 제목● 수단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고향으로 돌아간 난민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난민들을 보살피는 이들과 국제구호단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수단의 분열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평화의 일꾼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우간다의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에이즈의 확산을 막으려는 우간다 정부의 노력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수단 정부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폭격이 중단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수단의 갈등에 대한 정의로운 해결책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인종과 종교적 이유에서 발발한 내전과 폭력으로 갈라진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다르푸르의 내부와 주변에 있는 난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수단의 남부와 서부, 동부의 참혹한 기근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자기들의 마을에서 진행되는 원유 탐사로 인하여 고향에서 쫓겨난 반투(Bantu), 멜루트(Melut), 아다리얄(Adariyal)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후천성 면역결핍증(HIV, AIDS)으로 고통 받는 이들, 특별히 이 질병으로 인하여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1)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평화의 주님, 사랑의 하나님,부모를 잃고 고난 중에 살아가는 모든 아이들을 위하여우리가 기도드립니다. 그들의 모든 일 가운데 그들을 인도하여 주시고,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사랑을 채워주옵소서.고아들을 돌보는 이들이 고아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께 찬양을 돌리게 하옵소서. (2)오, 주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이들에게 복을 주옵소서.멀리 떨어진 곳에서 귀신의 세계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위하여우리가 기도드립니다. 그들이 이 세계의 구세주이신 주님의 능력을 알게 하옵소서.우리의 땅에, 그리고 불안이 가득한 세계의 모든 곳에평화를 주옵소서.구원의 복음이 모든 인류에게 전파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3)하나님, 주님의 창조를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셨습니다.주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주님께서 해와 달을 만드셨습니다.오직 주님만이 예배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좋은 햇빛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단비를 주셔서 곡식이 자라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풍성한 곡식을 추수하게 하시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우리에게 허락하신 음식들, 바나나와 사탕수수, 콩, 옥수수와 모든 곡식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고기와 우유를 제공하는소와 염소, 양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아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주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니, 우리가 감사드립니다.주님의 자녀인 우리가 주님이 창조하신 열매들로 인하여 기뻐합니다.그래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거룩한 보혜사, 우리의 나라에 평화를 주옵소서.우리의 고향에 평화를 소망합니다.주님께서 사단의 권세에서 구해주신 이 세계에 평화를 주옵소서.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오늘 우리를 축복하여 주옵소서.우리의 아이들이 학교와 집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주님, 우리의 대통령과 나라를 축복하여 주옵소서.(4)오 전능하신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이 세계의 고립된 지역에 있는 십자가의 기치를 높이 들어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우리의 신실한 동료 기독교인들의 연약한 친구들을 자비의 눈으로 지켜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인간의 위로가 그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면, 주님께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그들의 마음에 소망의 영을 넘치도록 부어주옵소서.그리하여 그들이 끝까지 인내하고,자신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5)절망 중에 있는 우리에게 오소서.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사오니, 오 주님, 우리에게 오소서.이 세계의 멍에가 우리를 무겁게 누르고 있습니다.죄악이 우리를 주님의 길에서 멀어지게 합니다.우리를 죄의 용서를, 용서를, 용서를 받았습니다. (6)전능하신 주님, 두려움과 슬픔이 덮을 때에 우리를 지켜주옵소서.모든 시련의 시간에 주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옵소서. (7)예수님, 저의 기도가 다른 많은 이들의 기도와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저희는 몇 개월마다 난민 수용소를 옮겨야 했고, 이제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있습니다.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전혀 없는 끔찍한, 곡식을 가꿀 수도, 물도, 나무도 없는 불모지입니다...!주님, 제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고 제 안에 있는 것도 불타고 있습니다.제 안에서 … 모든 것이 살 수 없는, 지옥, 지옥입니다...!그러나,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그곳에, 저희 곁에 계심을 믿습니다.주님, 저희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든 아프리카의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에 평화와 안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노인들과 청년들,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 여자들과 남자들,모든 사람이 간절히 원하는 평화를 주옵소서. 아멘... 아멘...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8)주님, 제가 기도하는 모든 “아멘”이 이루어지게 도와주옵소서. (9)주님, 우리의 영원하신 하나님,우리의 가족들과 더 넓은 범주에서 친척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저희에게 평화와 자비를 허락하여 주옵소서.저희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주님께서 동행하실 때에 모든 것이 바르게 될 수 있기에평화로운 방식으로 저희가 살아갈 새로운 터전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그곳에서는 우리를 향한 테러가 없고,사단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에게 승리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사오니, 우리의 영혼이 사단의 유혹을 충분히 이길 만큼 강하게 하옵소서.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10)하늘에 계신 아버지,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여인들을 인하여,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과 의료를 위하여 일하는 여인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그들을 인도하셔서 아무 어려움 없이 그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행하게 하옵소서.주님, 그들과 함께 일하는 이들과 함께 하여 주시고,저희에게 성령의 보내주셔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돕게 하옵소서.우리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인도해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10-06-22 03: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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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말라위 공화국, 잠비아 공화국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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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불가촉천민, 혹은 사회적 지위가 아예 없는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거리의 아이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까무주(Camuzu, 말라위의 유명한 거리) 로드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무도 없습니다.어떤 이들은 난민, 혹은 망명자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온 세계가 하나님의 교구입니다.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다고 그러한 비인간적인 이름으로 불려야 합니까? 어떤 이들은 피부색과 언어 때문에 직업을 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사람들을 차별대우하는 분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여자이기 때문에 성직자로 안수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모두 창조하셨습니다.어떤 나라들은 일세계라 부르고 다른 나라들은 삼세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다고 그러한 차별을 받아야 합니까?<굿윈 자인가(Goodwin Zainga), 말라위>
말라위 공화국(Republic of Malawi)
통계인구 : 1천 2백 60만 명정부형태 : 다당제 공화제 언어 : 치체와어(Chichewa), 영어(English)문자해독률 : 남자 75%, 여자 54%종교 : 기독교 70%(가톨릭이 27%), 이슬람교 20%, 부족종교 10%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중앙아프리카 지역 교회(Church of Province of Central Africa)
역사 말라위는 중앙아프리카 동쪽에 위치한 말라위(Malawi)호수(니아사[Nyasa]라고도 불리는)의 한 쪽 면을 둘러싸고 있는 아주 작은 나라이다. 동쪽과 남쪽으로 모잠비크, 서쪽으로 잠비아, 북쪽으로 탄자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들 중 하나이며 국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매우 가난한 나라이다. 말라위 역시 후천성 면역결핍증(HIV, AIDS)이 널리 퍼지며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1898년 영국 보호령인 니아살랜드(Nyasaland)로 출발하였고, 영국이 수월한 식민지 통치를 위하여 남로데시아(현재의 짐바브웨), 북로데시아(현재의 잠비아)와 함께 결성한 로데시아-니아살랜드 연방의 회원으로 있었다. 이러한 계획은 아프리카 전역에 불어 닥친 독립운동의 열풍으로 십년(1952년부터 62년까지)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40년간의 외유를 마치고 1958년,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온 하스팅스 카무주 반다(Hastings Kamuzu Banda) 박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괴팍하고 난폭한 독재자로 꼽히는 지도자였다. 그는 1964년 연방을 깨트리고 말라위의 독립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의사이며 스코틀랜드 교회의 장로였던 반다는 그러한 이력보다 말라위의 독재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언론 통제와 야당 탄압이 강도를 더해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정적들이 실종되었다. 1997년 사망할 때까지 반다는 말라위 경제의 30퍼센트에 이르는 부를 개인적으로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말라위는 말라위 호수(인접한 탄자니아는 니아사 호수라고 부르는)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국립공원들과 무랑제(Muranje) 산 정상에 이르는 보호구역들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간헐적인 홍수와 가뭄으로 인하여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2000년대 말부터 말라위는 세계은행(World Bank)과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극빈 채무국 지원(Heavily Indebted Poor Countries)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였다.
말라위는 이 지역에서도 가장 개발이 안 된 나라이다. 후천성 면역결핍증(HIV, AIDS)이 전염병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성인 인구의 25퍼센트 정도가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유명한 선교사이며 탐험가인 데이빗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이 도착하면서 말라위에 처음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로마가톨릭교회 선교사들과 다른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왔고, 교회는 급속한 성장을 시작하였다. 말라위에 가장 먼저 전래된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현재는 기독교인들이 인구의 7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중앙아프리카 교회(Church of the Province of Central Africa), 장로교회에 속해있다. 외형상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국가 발전을 위하여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교회는 이슬람 교인들과 함께 정부의 정책수행을 비판적으로 감시하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회는 또한 말라위의 교육과 의료, 사회봉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잠비아 공화국 (Republic of Zambia)
“이키보테”(icibote)는 잠비아의 공용어인 벰바어(Bemba)로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뜻입니다. 잠비아 사람들의 모든 공동체에서 이렇게 인사합니다. 정치인들이나 종교인들이나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인사말입니다. 이런 인사를 받은 사람은 “이키보테 치베 나름베”(icibote chibe narmwe)라고 답합니다. “그대에게도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잠비아 사람들이 평화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인사입니다. “이키보테” 없이는 이 땅에 일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특별히 교회 안에서 더욱 확실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평화를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키보테” 없이는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모세 므불로(Moses Mbulo, 잠비아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Zambia])>
통계인구 : 1천 1백 40만 명 정부형태 : 다당제공화제언어 : 영어 (English)문자해독율 : 남자 76%, 여자 60%종교 : 기독교 87%, 부족종교, 소수 이슬람교와 힌두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잠비아 개혁교회(Reformed Church in Zambia) 잠비아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Zambia), 중앙아프리카지역 성공회
역사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팽창과 더불어 아프리카에 온 세실 로즈(Cecil Rhodes)는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를 세웠다. 그는 현재의 잠비아인 이 지역을 로데시아와 요하네스버그 지역의 광산에 값싼 광부들을 조달할 수 있는 근거지라고 생각하였다. 1920년대 북로데시아를 발견한 개척자들이 이 지역에 막대한 양의 구리가 매장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후로 많은 유럽 제국들의 관심을 받았다. 구리광산을 찾아온 많은 영국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광산 지대를 따라 도시들이 건설되었다. 사람들은 광산으로 인해 발생할 것이라는 불확실한 부에 대한 기대로 인해 실제적인 부를 만들어내는 농업을 떠났고 농업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물론 광산회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남겼지만 잠비아 사람들에게 돌아간 것은 많지 않았다. 남아프리카 회사는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억 6천만 달러가 넘는 이익을 챙겼다. 영국 재무부는 6천만 달러 이상을 세금으로 거두었고, 잠비아 사람들에게 투자된 돈은 겨우 1천만 달러 정도였다. 영국은 추가로 대략 2억 달러의 이익을 뽑아내서 남로데시아(현재의 짐바브웨)로 투자하였다. 현재 이 지역의 구리광산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남은 광산들도 대부분 사양길을 걷고 있다.
1964년, 북로데시아 역시 로데시아-니아살랜드 연방을 탈퇴하여 잠베지(Zambezi)강 북쪽 로즈가 소유하던 지역들 중심으로 하여 잠비아로 독립하였다. 잠비아는 주변의 여덟 개 나라, 즉 모잠비크, 짐바브웨, 보츠와나, 나미비아, 앙골라, 콩고 민주공화국, 말라위와 탄자니아에 둘러싸여 있다. 잠비아의 케네쓰 카운다(Kenneth Kaunda)가 이끄는 정당이 집권하였으나 1991년 선거에서 야당이 큰 차이로 승리하였다. 카운다는 기독교 휴머니즘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었기에 주변 나라들의 해방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Lusaka)는 주변의 모잠비크, 앙골라, 나미비아, 짐바브웨, 남아프리카 등에서 망명한 야당 지도자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그들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으로 잠비아는 경제에 타격을 입을 정도로 커다란 희생을 치렀다. 잠비아는 그 후 두 번의 평화로운 정권이양을 통하여 카운다는 남아프리카 지역에 해방을 가져다 준 위대한 지도자이며 원로 정치인들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을 받게 되었다.
오랫동안 구리광산이 잠비아 경제의 기초가 되어오는 동안 농업은 침체 일로를 걸었다. 국유화된 구리광산의 열악한 상황과 구리 가격의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잠비아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동안 도외시해온 것을 후회하는 가운데 농업만이 국가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식량 부족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남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과 같이 후천성 면역결핍증(HIV, AIDS)이 크게 유행하고 있어, 잠비아 성인 인구의 25-30퍼센트 정도가 감염된 것으로 파악되고, 이로 인하여 90만 명 이상의 고아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의료 시설도 심각하게 부족하다. 더욱이 구리광산과 정련시설로 인하여 산성비, 공기와 식수, 토질 오염 등의 환경파괴가 심각하다.
잠비아 국민의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다. 로마가톨릭교회가 단일 교파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고, 개신교회와 독립교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잠비아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Zambia)는 1965년 공식적인 연합으로 생겨난 교회이며 현재 잠비아에서 가장 큰 개신교회이다. 1991년, 카운다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독실한” 기독교인 프레데릭 칠루바(Frederick Chiluba)는 잠비아가 헌법상 기독교 국가라고 공포하였다. 그러나 헌법 상 모든 종교에 대한 자유는 보장되어 있다. 1945년, 잠비아 기독교 협의회(Christian Council of Zambia, CCZ)가 조직되면서 공식적인 에큐메니칼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후 여러 에큐메니칼 단체들이 조직되었고, 그 중에서 잠비아 기독교 개발위원회(Zambian Christian Commission for Development, ZCCD)는 개신교회 뿐 만 아니라 로마가톨릭교회와 토착교회들도 참여하고 있는 가장 대표성을 가진 기구이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말라위와 잠비아의 민주적인 복수정당제도와 평화적인 정권교체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농사에 적합한 풍부한 땅과 환경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의 교회들이 성장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돕는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빈곤과 죽음을 가져오는 외채를 탕감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엄청난 문제들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아프리카의 유머와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말라위와 잠비아의 민주정부들이 소속 정당과 상관없이 국가의 복지와 발전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고통당하는 이들과 에이즈 퇴치를 위하여 싸우고 있는 정부의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정부에서 세운 병원과 보건소 등에 의료 인력과 시설, 약품들이 충분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의 홍수와 가뭄의 피해자들이 다시 풍부한 식량을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날마다 증가하는 학교 중퇴자들과 청년 실업자들, 범죄자들이 그들의 삶에서 희망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경제위기와 실업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이 일자리를 다시 찾고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제가 가는 인생길에 많은 위험들이 있습니다.주님의 빛을 비추셔서 그 위험을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제가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을 돌파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유혹을 이겨내신 주님을 의지함으로위험에서 벗어나고 잘 다룰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모든 방법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죄 없이 태어나신,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어거스틴 무소폴레 목사(Rev. Dr. Augustine Musopole), 말라위>
(2)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죽음과 죄악의 한복판에서 주님은 자비의 눈으로 저희를 보십니다.저희를 보호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저희에게 미소지으시며, 끊임없이 주님의 돌보심을 확인해주십니다.바로 지금 주님의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특별히 우리의 생일을 축하할 때마다주님의 사랑이 생명의 근원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우리의 연수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게 하사, 생명을 주셔서 우리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지혜의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어거스틴 무소폴레 목사(Rev. Dr. Augustine Musopole), 말라위>
(3)주님, 주님, 우리가 죽겠나이다. 모든 사람들을 덮어버릴 듯한 저 무서운 전염병이 보이지 않습니까?후천성면역결핍증의 유행,치료 방법이 없는 전염병이,온 나라를 초토화하고 있습니다.주님, 주님, 통계를 들어주옵소서.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 중에10퍼센트에서 30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이 걸렸습니다. 우리 모두 완전히 지쳤습니다.사랑이 많으신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당신의 품 안에 있는 양들에게 동정심을 베풀어 주옵소서.우리에게 생명과 소망과 치유의 은혜를 허락하옵소서.부활하신 주님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어거스틴 무소폴레 목사(Rev. Dr. Augustine Musopole), 말라위>
(4)우리는 모두 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감염되었습니다.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우리는 가까운 친척들을 잃었습니다.우리의 몸을 치유하여 주옵소서.우리는 가까운 친구들과 이웃들을 잃었습니다.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여 주옵소서.우리는 교회와 직장의 동료들을 잃었습니다.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여 주옵소서.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잃었습니다.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여 주옵소서.우리는 주님을 신뢰합니다.주님은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입니다.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풀라타 로요(Fulata L. Loyo), 말라위, 무사 두베(Musa W. Dube), 보츠와나>
(5)인도자는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서로를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몸의 모든 부분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요청하고, 몸의 각 부분에 손을 대고 조용히 기도하도록 한다. 이러한 동작은 사람들은 우리 몸의 각 부분들처럼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의 각 지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전을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위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의 각 부분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준 후에 인도자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각자의 언어로 기도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풀라타 로요(Fulata L. Loyo), 말라위>
(6)여성의 기도주님의 몸이 우리를 위하여 찢기셨습니다.주님의 피가 우리를 위하여 흘리셨습니다.여성인 우리들은 세례를 통하여 깨끗하게 씻겼고 또 주님의 몸의 지체들을 만들었습니다.우리는 주님의 성령에 속한 성전들입니다.우리를 도우사 이것을 기억하게 하시고우리를 적대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하게 하옵소서.에이즈로 사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를 축복하옵소서.<풀라타 로요(Fulata L. Loyo), 말라위>
(7)예수님께서는 모든 아름다운 집들과,유복한 가정과,베들레헴의 전문가들과,바리새인 가족들과,유대의 아름다운 여인들과,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을 떠나,
말구유에,가난하고 별 볼일 없지만 서로 순종하는 가족 안에,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목수에게,마리아라는 젊은 여인에게,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성령이 우리에게 당신의 오심이 어떤 뜻인지 알게 하십니다.우리의 사명은소외되고가난하고잊혀지고에이즈에 걸려 살아가고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형제들 중 가장 작은이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는 것입니다. <굿윈 자인가(Goodwin Zainga), 말라위>
(8)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너무나 많은 문제들 속에서 도움과 인도하심을 구하며우리의 눈을 들어 주님을 간절하게 바라봅니다. 오셔서 난민들과 억압당하는 이들을 섬기는 방법을 보여주시고,사회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이들과 연대하는 방법을 알게 하옵소서.오셔서, 우리를 신조주의의 사슬에서 해방시켜주시고,화해와 일치의 일꾼으로 만들어 주옵소서.이웃을 사랑하고 섬김을 통하여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을 주옵소서. <잠비아 키트웨(Kitwe)에서 열린 범아프리카 지도자 과정(Pan African leadership course)에 참석한 익명의 여학생>
2010-06-22 03: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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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동 티모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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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시오산들,골짜기들과 샘들,강들과 시내들,돌짝길들과 푸른 초원도모두 침묵하시오.침묵하시오공중의 새들,바다의 파도,불어오는 바람들,그리고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땅 위로 흘러가는 모래들, 모두 침묵하시오.침묵하시오등나무들과 대나무들,수풀과 유칼리나무들,야자수들과 잔디들, 이 작은 섬 티모르의끝없는 푸르름도모두 침묵하시오.지금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위해서, 고향을 위해조국을 위해국민을 위해우리의 해방을 위해생명을 바친 사람들을 위해서 침묵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침묵하시오.<보르자 다 코스타(Borja da Costa)>* 티모르의 저항시인, 1975년 12월 7일 인도네시아의 침공 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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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티모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편
동 티모르 민주공화국 (Democratic Republic of Timor-Leste)통계인구: 92만 5천명 정부형태: 의회제 공화국언어: 테툼(Tetum), 포르투갈어문자해독율: 90%종교: 가톨릭 93.1%, 개신교 3%, 이슬람교 2%, 기타 전통 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동티모르 개신교회 (Protestant Church of Timor Lorosa"e)역사 동티모르는 남아시아의 티모르 섬 동쪽 지역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서쪽 지역 절반은 인도네시아의 영토로 남아있다. 티모르 섬은 인도네시아 군도의 동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수천 년 전부터 티모르 원주민들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중에 티모르 동부 지역이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 티모르는 1975년 11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바로 9일 후에 인도네시아 군대의 침공을 받고 점령되었다. 1976년 7월 동티모르 지역으로 인도네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그 후 이십 년 가까이 “티모르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이에 대한 진압으로 대략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6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카를로스 시메네스 벨로(Carlos Ximenes Belo) 주교와 호세 라모스 오르타(Jose Ramos Horta)가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99년 8월 유엔의 감시 하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동티모르 국민들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결정하였다.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인도네시아의 지원을 받는 독립반대파 군부세력의 무차별 폭력으로 인하여 25만 명의 주민들이 난민이 되거나 국내 곳곳으로 흩어졌다. 2002년 5월, 동티모르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새로운 독립국가로 인정받았고, 21세기 들어와 처음으로 독립한 신생국이 되었다. 2006년 봄에 갑작스럽게 발발한 폭력사태로 인하여 10만 명의 시민들이 난민이 되었고, 호주와 유엔의 평화유지군과 전문 인력이 파견되어 질서회복을 지원했고, 동티모르의 재건과 평화의 과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현재 동티모르는 국내의 기반시설 재건과 안정적인 정부와 경제의 구성, 국내외에 흩어진 난민들의 귀환, 내전 중에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고 사람들을 해친 이들을 법정에 세우는 일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동티모르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저개발 국가이며, 그나마 있던 상인들과 전문 인력 대부분이 인도네시아인들 이었고, 그들 대부분이 인도네시아로 떠나버린 상황에서 이러한 일들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역에 따라 실업률이 80%에 이르는 곳도 있다. 국제연합과 구호 비정부단체(NGO) 직원들이 동티모르 주민들과 함께 난민들과 흩어진 주민들을 돕고, 어린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주고, 의료교육과 직업훈련을 실시하고 있고, 부서진 건물들과 학교를 복구하고 있다.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교인인 인도네시아와 달리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의 영향으로 인해 동티모르의 주민들은 90퍼센트 이상이 로마 가톨릭 교인들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지역에서 정의를 위해 일하고 폭력을 중단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개신교회 여러 교파 출신의 티모르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동티모르 개신교회에 속해있다. 인도네시아 공화국 (Republic of Indonesia)통계인구 : 2억 1,760만 명정부형태 : 의회제 공화국언어 : 인도네시아어(바하사(Bahasa 인도네시아어)문자해독률 : 남성 92% 여성 82%종교 : 이슬람교 88%, 개신교 5%, 가톨릭 3%, 힌두교 2%, 불교 1%, 기타 전통 종교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바탁 기독교 커뮤니티 교회(Batak Christian Community Church), 중앙 술라웨시 기독교회(Christian Church of Central Sulawesi), 숨바 기독교회(Christian Church of Sumba), 미나하사 기독교 복음교회(Christian Evangelical Church in Minahasa), 산기헤 탈루드 기독교 복음교회(Christian Evangelical Church of Sangihe Talaud), 기독교 개신교 앙콜라 교회(Christian Protestant Ankola Church), 인도네시아 기독교 개신교회(Christian Protestant Church in Indonesia), 동자바 기독교회(East Java Christian Church), 할마헤라 복음주의 기독교회(Evangelical Christian Church in Halmahera), 타나 파푸아 복음주의 기독교회(Evangelical Christian Church in Tana Papua), 인도네시아 기독교회(Indonesian Christian Church, GKI), 인도네시아 기독교회(Indonesian Christian Church, HKI), 자바인 기독교회(Javanese Christian Church), 칼리만탄 복음교회(Kalimantan Evangelical Church), 카로 바탁 기독교회(Karo Batak Christian Church), 니아스 기독교 개신교회(Nias Christian Protestant Church), 파순단 기독교회(Pasundan Christian Church), 개신교 바탁 기독교회(Protestant Christian Batak Church), 발리 개신교 기독교회(Protestant Christian Church in Bali), 인도네시아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in Indonesia), 사바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in Sabah), 남동 술라웨시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in South-East Sulawesi), 몰루카스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in Moluccas), 서인도네시아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in Western Indonesia), 티모르 개신교 복음교회(Protestant Evangelical Church in Timor), 시마룽군 개신교 기독교회(Simalungun Protestant Christian Church), 토라자 교회(쌕멈 Church)역사인도네시아의 영토는 13,000개가 넘는 섬으로 군도로, 군도(群島) 국가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또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갖고, 가장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언어만 800개가 넘는다. 또한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인도네시아 군도에 인류가 살았던 흔적은 3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차례에 걸친 중요한 이민 역사를 통해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전래되었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의 지배 아래 있었다. 17세기부터 20세기 중엽까지 네덜란드가 점령하여 현대까지 거의 모든 지역을 통치하였고, 일부 지역은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 후 이차세계대전 중에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면서 수카르노(Sukarno) 장군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국민당(Indonesian Nationals)은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 후 전투와 협상이 계속되었고, 1949년에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종신 대통령직에 오른 수카르노는 “민주주의 지침”(guided democracy) 혹은 “판차실라”(Pancasila, 건국 5원칙 - 신앙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 국가적 통합, 민주주의, 사회정의)라고 불리는 통치철학을 통하여 인종적, 종교적으로 매우 다양한 국가를 통합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수카르노의 군대를 앞세운 철권통치가 강화되면서 1965년 쿠데타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수카르노의 군사령관이었던 수하르토(Suharto) 장군이 이 쿠데타를 진압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30만에서 4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와 중국계라는 죄목으로 목숨을 잃었다. 1966년 수하르토 장군이 권력을 잡았고 1998년까지 대통령으로 있었다. 수하르토는 통치 기간 중 경제성장을 강력히 추진하였지만, 한편으로 야당 해산과 언론 통제, 부패의 증가가 계속되었고, 특별히 수하르토 일가와 측근들의 부패가 심했다. 국민들에 대한 억압과 사회적 무질서, 경제 위기로 인해 수하르토는 1998년 실각하였다. 1999년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가 치러졌으나, 폭력과 부패의 사슬이 계속되었다. 다당제 하의 선거를 치른 후에도 인도네시아의 안정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몇몇 민족들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원했다 (1999년 독립한 동티모르로 인해 많은 민족들의 분리운동이 가속되었다). 이슬람 국가 건설을 원하는 아체족(Aceh)과 2000년에 독립을 선언한 아이리안 자야족(Irian Jaya)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인도네시아의 통치를 받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 군부는 보르네오, 술라웨시, 말루카스 섬의 민족들과 계속 물리적 충돌을 빚고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도네시아 주민들을 인구가 적은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시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이산가족이 되었고 원주민들의 토지는 강제로 수용되었다. 특별히 원주민들과 중국계 시민들이 폭력과 증오의 주된 표적이 되고 있다. 1997년 아시아 경제가 붕괴하면서 인도네시아 경제는 높은 실업률과 불황을 경험해야 했고, 노동자들은 더욱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혼란에 더해서 많은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활화산을 가지고 있고, 지진과 가뭄, 홍수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2004년 발리 섬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테러범들이 설치한 폭발사고가 일어나 대부분 외국관광객인 275명이 사망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쓰나미로 인해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주후 1세기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후한 시기에 불교가 이 지역 섬들에 들어왔다. 13세기부터 16세기 기간에 이슬람교가 인도네시아 군도를 휩쓸었다.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가 1542년부터 1547년까지 동부 지역에서 선교하였다. 1965년부터 종교적 자유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어, 국민들은 정부가 인정하는 다섯 개의 종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다섯 종교는 이슬람교, 개신교, 로마 가톨릭교, 힌두교와 불교이다. 오순절 교회를 비롯한 60개 이상의 회원 교회를 가진 인도네시아 교회 연합 기구(Communion of Churches of Indonesia, CCI)를 포함하여 많은 에큐메니칼 기구들이 있다. 특별히 인도네시아 교회 연합 기구는 설립 목적으로 인도네시아 안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기독교회가 되는 것을 추진하는 것을 명문화했다. 이 기구의 다섯 가지 과제는, 1) 교회들을 향한 공동의 소명, 2)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공동의 이해, 3) 상호 인정과 수용, 4) 인도네시아 교회 연합 기구를 위한 공동 헌법, 5) 신학과 인적, 물적 자원의 자립이다. 유쿠민도(Eukumindo)는 선교를 위한 또 다른 차원의 에큐메니칼 기구이다. 인도네시아 기독교인의 대략 사분의 일은 로마 가톨릭 교인들이다.필리핀 공화국 (Republic of Philippines)
통계인구 : 8,160만 명정부형태 : 의회제 공화국언어 : 필리핀어(따가로그Tagalog), 영어문자해독율 : 남성 95% 여성 94%종교 : 가톨릭 82.9%, 개신교 5.4%, 이슬람교 4.6%, 기독교 소수 종파, 전통 종교, 불교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필리핀 침례교회 연합(Convention of Philippine Baptist Churches), 필리핀 감리교회(Episcopal Church in the Philippines), 필리핀 복음감리교회(Evangelical Methodist Church in the Philippines), 필리핀 독립교회(Philippine Independent Church), 필리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in the Philippines)
역사필리핀은 태평양과 남지나해 사이, 베트남 동쪽에 위치한,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도(群島) 국가이다. 필리핀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1896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이 필리핀 사람들에게 아무런 통보없이 철수하였고, 그 후 미국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이 점령하기도 하였고, 1946년 독립하였다. 1971년 계엄령이 공포되면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가 이끄는 21년간의 일당독재가 시작되었다. 마르코스의 부패와 독재에 저항하는 대중적인 시위가 일어났고, 1986년 미국이 개입하여 필리핀 근해에 대규모 미군과 해군 병력을 출동시키면서 마르코스의 통치가 종식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가 중요한 소위 “피플스 파워”라고 불리는 국민 저항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마르코스의 뒤를 이어 야당 지도자였던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 후로 필리핀은 다당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지만, 계속적인 정치적 불안정과 폭력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독립을 요구하는 민다나오(Mindanao) 섬의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은 스스로 그들이 12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6년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으나 여전히 폭력적인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반정부 단체인 모로 이슬람 해방전선(Moro Islamic Liberation Front)은 2001년 필리핀 정부와 통합협정에 서명했다. (1970년대부터 독립적인 이슬람 국가 건설과 인근 해역에서의 독자적인 어업권을 주장해온) 또 다른 게릴라 단체는 2000년에서 2001년 사이 열 두 명의 사망자를 낸 납치사건으로 인하여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정치적인 불안정과 폭력충돌 문제 이외에도 필리핀의 중대한 문제는 가난이다. 국가적 차원의 불공평한 부의 분배와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인하여 발생하는 극심한 빈곤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또 다른 문제는 삼림훼손과 환경오염이다. 2006년 2월에 일어난 대규모 산사태로 한 마을 전체가 파묻히기도 했다.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로 있던 시기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전래되었고, 현재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가 압도적인 국가이다. 인구의 3분의 2가 가톨릭교회 신자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20세기 초에야 찾아왔다. 1963년 필리핀 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Philippines)가 조직되었고, 당시 인권과 정교분리를 위해 투쟁하던 열 개의 주류 개신교단들이 가입하였다. 이들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집중적으로 강조해온 “교회와 국가의 변화”계획은 많은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피플스 파워 저항운동이 폭발했을 때 수십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마르코스의 군대를 평화적으로 막아섰으며,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 그리고 이슬람교인들 간의 만남과 교제가 이루어졌다. 그 후 필리핀 교회들은 “정의로운 화해”(reconciliation with justice)를 이루는 일에도 참여와 협조를 계속하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감사기도 제목● 이들 나라에서 폭력의 종식을 위해 일하는 이들의 증언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다른 다양한 종교들을 보다 많이 이해하기 위하여 일하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전통악기들, 가믈란(Gamelan), 공스(Gongs), 대나무 부저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기독교인이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자 인형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기름진 땅에 생산되는 쌀과 따뜻한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안정되고 독립적인 국가가 되기 위한 동티모르의 재건사업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종교적 분쟁과 정치적 갈등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이들과 재산을 잃고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인접한 이슬람 교인들과 평화를 누리던 짧은 시간 후에 길고 참혹한 충돌을 견뎌온 암본(Ambon)의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자신의 가족들과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난민들과 흩어진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들이 만남을 통해 증오와 폭력이 아닌 보다 깊은 이해와 인내를 가져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들 나라의 정부들이 부패를 근절하고 모든 국민들을 위한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노력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극심한 빈곤으로 시달리는 이들이 음식과 쉴 곳, 안전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화산 폭발과 산사태, 쓰나미를 경험한 이들의 자신의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오 ,주님, 얼마나 오래,얼마나 오래 농부들이 농사지을 땅이 없이 살아야 하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야 하고, 도시 빈민들이 집없이 지내야 하고,청소년들과 학생들이 의욕도 학교도 없이 살아야 하고, 소수자들이 소외되고 따돌림을 당해야 하고,여성들이 이중의 억압에 시달려야 하고,가난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로 살아야 합니까?오, 주님, 얼마나 오래,얼마나 오래 이 나라가왜곡된 군부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기만적이고 착취적이며 냉혹한 이들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까?오, 주님, 얼마나 오래,국민들의 비탄과 고통의 울음소리가점점 더 커져가는 가운데 정권을 잡은 이들이얼마나 오래 독점적 자본주의에 의지해야 합니까? 얼마나 오래, 오, 주님, 얼마나 오래입니까?(필리핀인)(2)주님, 우리의 기독교가 논과 같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옵소서: 처음 논에 벼를 심었을 때는 벼들이 또렷하게 구별되어 보이지만, 벼들이 자라면서 뿌리를 내리고 키가 자라면, 점차 벼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곧 하나의 넓은 초원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사랑의 뿌리를 내리고, 주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기독교인의 교제와 봉사 안에서 자라갈 수 있도록 도우소서. 우리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필리핀인)(3) 하나님, 주님의 불로써 우리의 죄악과 위선을 태워 주옵소서.주님의 물로 우리 때문에 흘린 우리의 형제자매들의 피를 씻어주옵소서. 주님의 뜨거운 태양빛으로 우리가 상처를 준 사람들의 눈물이 마르게 하시고,그들의 상처 입은 영혼과 마음과 몸을 치유하여 주옵소서.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뿌리내리사우리의 연합이 더욱 자라고우리의 편견과 증오의 메마른 사막이 변하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필리핀인)(4)평화의 축복이 세계에 평화가 있기를이 도시에 평화가 있기를이 마을에 평화가 있기를이 사막에 평화가 있기를이 어머니 같은 지구에 평화가 있기를이 우주에 평화가 있기를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나에게 평화가 있기를나의 이웃에게 평화가 있기를나의 적에게 평화가 있기를관련된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평화, 평화, 평화!(엘리자벳, S. 타피아,Elisabethh S. Tapia, 필리핀인)(5)평화와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 평화의 꽃이전쟁과 역경의 사막에 피어나게 하옵소서,지금부터 영원토록.그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아멘! (엘리자벳, S. 타피아,Elisabethh S. Tapia, 필리핀인)(6)평화의 시편은혜로우신 성령이여,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께 울부짖습니다.전쟁의 상처와 지뢰와 굶주림으로 장애를 입은 어린이들 때문에저의 조국은 간절히 평화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저의 민족은 정의를 구합니다. 오, 주님,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로 저는 우울증과 무력감을 느낍니다. 공포로 인하여 저와 이웃은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핵전쟁과 생화학 테러의 위협이 국경을 넘어 전해집니다.누가, 무슨 이유로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까?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연약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오, 자비로우신 하나님, 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분별의 영을 허락하시고, 용감하고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우리의 독한 마음과 악한 생각을 깨끗이 씻어주옵소서.우리의 공포가 사라지게 하옵소서.우리의 의지가 강해지게 하옵소서.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옵소서.우리의 꿈에 귀 기울여 주옵소서.저는 정의에 기초한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꿈꿉니다.저는 전쟁이 없는 지역과 차별이 없는 나라를 꿈꿉니다.저는 공포없이 여행하는 날을 꿈꿉니다.저는 꿈꾸고, 울고, 소망하고, 기도합니다.하나님의 영, 바탈라(Bathala)여,주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힘을 더하시어,우리가 의롭고 안전한 길을 택하고, 진리의 산에 오르고, 용서의 집에 거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전쟁과 증오의 도구들을 평화와 화해의 도구들로 바꾸기 위하여,모든 피조물들을 미소와 사랑의 친절로 축복하기 위하여,어둔 밤에도 용감하게 생명의 춤을 추기 위하여,나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은혜로우신 성령이시여, 주님을 위하여 춤을 춥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엘리자벳, S. 타피아,Elisabethh S. Tapia, 필리핀인)(7)2005년도 쓰나미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주님, 엄청난 파도가 무서운 기세로 우리를 머리를 덮쳐오고나무들을 쓰러뜨리고 집들을 파괴하고, 논이 물바다로 변하고, 소떼들을 삼켜버리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아가던 그 공포의 순간에 저희와 함께 하옵소서,주님, 그 어두운 순간에 저희와 함께 하옵소서.사망과 그 쏘는 것을 물리치시고,물과 피를 가지고 오시고,세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고,태풍을 잠잠케 하시고,생수를 주시고,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시는부활의 주님을 우리의 눈을 열어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 그 불확실한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 주님의 성령으로 우리를 절망에서 일으켜 주옵시고,우리의 의심이 물러가게 하시고, 강한 믿음을 허락하셔서,우리 안에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마음이 불타오르게 하시고,소망을 전하는 생수가 솟아오르게 하옵소서. (에스더 푸죠 위디시, Ester Pudjo Widiasie, 인도네시아인)(8)주님은 저희의 삶의 근원이십니다.오직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저희가 매일 일할 수 있으며,저희에게 주어진 일을 위해 여행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너무나 분주하여 때때로 잊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저희 곁에 계시며,저희의 모든 걸음에 함께 하시고,저희의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며,주님이 저희가 누구인지 잘 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저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주님을 낯선 사람처럼 대하고, 주님이 저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지 모르신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주님께서 저희보다 저희들에 대해 더 잘 아신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주님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주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저희는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죽음에서 다시 사심으로,주님은 저희가 새롭게 시작하게 하셨습니다.이제 저희는 승리의 주님과 함께 걸어갑니다. 저희는 온 마음으로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주님께서 다시 부활하실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주님은 저희가 주님을 참되게 알게 하셨습니다.주님은 저희를 가르쳐 주십니다.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을 저희가 기억나게 하십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주님은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주님은 저희에게 오십니다.주님은 저희와 함께 계십니다.저희가 이제 알겠습니다.주님께서는 모든 지식으로 충만하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주이십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저희가 이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아이나 시톰풀 박사, Dr. Einar Sitompul, 인도네시아인)(9)창조의 하나님, 태양이 떠오르기 전 잠깐 동안 우리를 깨워주는주님께서 지으신 우주의 놀라운 아름다움과 질서를 노래하는작은 벌레들과 주님의 피조물들이 만들어내는 교향곡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기술문명에 대한 우리의 동경이 줄어들고주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의 온유한 지배자로서우리의 역할을 새롭게 깨닫게 하옵소서. 다양성의 하나님,인간의 본성과 조건, 또 창조주를 찾으려는 마음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비록 저희들이 각자의 신앙 전통과 경제적인 상황, 실재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서로 나뉘어 있지만,저희를 도우사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사원에 바치는 꽃바구니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논에서 힘들게 일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있는,어머니의 등에 업혀있는 아이와나이든 여성 속에 계신 주님을 발견하게 하옵소서.기쁨의 하나님,저희는 기쁨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부유하고 번성한 나라가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개발도상국가들의 정치적인 갈등과 경제적인 불안정 속에서,온전하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그러나 주님께서는 저희의 미래에 드리운 고난의 구름에도 불구하고 저희의 영혼을 높이시는 불꽃으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진심으로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눈물과 땀을 흘려주시고, 특별히 함께 저희에게 웃음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주님의 웃음이 주님의 백성들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마옵소서.부활의 하나님, 저희는 이러한 음성을 고대합니다. “두려워 말라, 너희가 찾는 분은 더 이성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 분은 부활하셨다.”저희는 몸과 영혼의 부활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원합니다.저희를 도우사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저희가 찾는 그 분이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전하게 하옵소서!질병과 죽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특히 적절한 의료적 처치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위로하시는 손길이 함께 하시기를 간구합니다.주님의 말씀과 치유의 손길로,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평화와 치유를 받게 하옵소서.주님의 은혜는 저희의 매일의 필요와 소망을 채우기에 충분하시니저희가 가진 것이 비록 적을 찌라도 관대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부할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우주의 선물들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께 감사하게 하옵소서.(요안네 람, Joanne Lam, 홍콩)(10)인생의 샘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에 감사드립니다.주님께서는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셨고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습니다.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도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셨고 우리로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신하게 하셨습니다.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부르심에 감사를 드립니다-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희망과 우리의 사랑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기쁨 가운데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해 주시옵소서.주님의 능력을 통하여 희망으로 가득찬 인생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시옵소서. 아멘.(인도네시아 인)
2010-06-22 03:3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