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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국
- [보도] 교회협 90주년의 의미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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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 총무 김영주) 창립 90주년을 기념하는 예배가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회관에서 드려졌다.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를 주제로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90주년을 축하하며 예배를 기점으로 교회 쇄신과 변화를 통해 사회개혁을 이뤄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행사에 앞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90주년에 대해 김영주 총무는 “감격스럽다. 교회협의 역사는 다양한 교파 전통 속에서 고민하고 때로는 갈등도 겪으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며 “90주년은 단지 과거의 기억과 흐름만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과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두의 생각이 담긴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광야라는 주제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 고난의 현장에 서겠다는 교회의 고백이 담겨있다.”며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과 함께 개혁교회로서 개신교회의 위상과 정체성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방점을 찍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참석한 예배준비위원 유시경 신부는 “한국교회의 현재 모습과 앞으로의 방향에 주안점을 두고 광야라는 이미지를 선택했다”며 “역사적 성찰과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예배 내용에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유 신부는 “교회가 어떻게 공공성에 참여해 왔고, 참여해 나갈 것인가에 중심을 뒀다.”며 “한국교회의 희망이 단순히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예배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임을 고백하는 찬송에 발맞추어 성서와 십자가를 앞세우고 교회대표와 순서자가 함께 걸어 나오는 것으로 시작됐다.
90년 교회협의 역사를 하나님께 바치는 9번의 징 울림으로 예배에 부름 받은 참석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못한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교회가 생명을 키우는 요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회원 교단 대표들이 나와 청년, 일치, 여성, 정의, 인권, 평화, 다름, 생명을 주제로 역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10년을 예배하는 말씀을 선포했다.
이어 쌍용자동차지부 해고노동자 22명이 특별찬양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렀다.
합창이 끝나고 해고노동자 김득중 씨는 “길고 긴 싸움 힘들 때도 참 많았다. 그럴 때 잊지 않고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준 교회협의회로 인해 웃으며 투쟁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특별 찬송에 이어 박종덕 사령관(한국구세군, 교회협 회장)이 90주년 예배 주제인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에 맞추어 말씀을 선포했다.
박종덕 사령관은 “남북한 대립과 단절을 극복하고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이웃으로, 교회 공공성을 회복해야 하는 등 교회협에 몸 바쳐 불살라야 할 과제들이 너무도 많다.”며 “성장에 취해있는 한국교회를 깨우고, 광야에서 회개운동을 시작했던 선지자의 외침과 같이 힘들도 불편하더라고 모두 광야로 나가 참된 교회를 회복하자”고 했다.
특별히 봉헌의 시간에는 고난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교회가 귀 기울이겠다는 의미로 미리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밀양과 청도 송전탑 공사로 고통받는 주민들, 강정 마을 주민들,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있는 현장에서 받은 엽서와 예배 중에 참석자들이 작성한 위로와 격려의 기도가 담긴 엽서를 봉헌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끝으로 참석자들은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는 김영주 총무의 파송의 말씀을 따라 외치며 창립 100주년을 향해 함께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한편, 9월 중에는 ‘교회협 90주년 기념 신학선언문’ 초안이 작성될 예정이다. 신앙과직제위원회가 이를 담당하며, 사회변혁에 앞서 교회개혁을 통한 정의, 평화, 생명의 신학과 운동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선언문은 11월 24일 제63회 총회에서 발표될 계획이다.
2014-09-22 10:55:16
- [보도] NCCK 세월호 참사 대책위 박근혜 대통령 발언에 대한 입장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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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회협회의(NCCK, 총무 김영주 목사, 이하 교회협) 세월호 참사 대책위원회(위원장 이승열 목사)는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
한편, NCCK 세월호 참사 대책위원회는 지난 8월 26일부터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염원하는 촛불기도회를 주말을 제외한 매일 저녁 7시에 농성장 건너편에서 드리고 있다. 또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독계의 통합적인 대응을 위해 본 대책위를 비롯한 교단, 단체들과 원탁회의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원탁회의를 통해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대응책을 모색하는 한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교회와 일반신도들에게 널리 확산시킬 예정이다.
< 우는 사람과 함께 울어 주십시오! >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십시오.”(로마서 12장 15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54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시작한 유가족들의 국회 앞 농성 67일, 광화문광장 농성 65일, 청와대 앞 농성 26일째 되던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라는 말을 통해 세월호 문제를 이제 그만 접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세월호 특별법이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는데 마치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의 진정성마저 부인해 버렸습니다.
본 회는 이러한 대통령의 발언에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눈물과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않고 이젠 세월호 문제는 끝내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갑작스럽게 준비도 없이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슬픔과 아픔 가운데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들의 억울함에도 공감하지 않겠다는 것이기에 안타까움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마저 느낍니다.
대통령의 자리는 국민을 통치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입니다. 또한 대통령의 책무는 큰 상처와 아픔이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억울함을 공감하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을 모독한 것에는 민감하게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면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과 아픔, 고통과 억울함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고 외면해 버렸습니다. 너무나 서글픈 현실입니다. 국민을 버리는 대통령은 없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이 왜 죽었는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호소하는 국민들의 절규를 매몰차게 외면하는 대통령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많은 국민들의 마음에 가시가 되어 삶의 매 순간마다 큰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그렇기에 5백만명의 국민들이 서명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슬픔과 아픔, 고통과 억울한 사람들의 선한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성서의 가르침이자,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우고 자랐던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정부, 사회라면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민생의 기본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먹고 사는 민생 문제보다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민생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십시오. 깊은 상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진정성 있는 협의에 임해 주십시오. 세월호 참사를 단순히 보상으로 마무리하려는 시도는 국민으로부터 지지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라도 모든 정치적 판단을 내려놓고 아무 조건 없이 슬픔과 아픔, 고통과 상처 가운데 신음하는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품어 안아 주십시오.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 주십시오.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죽은 자식 앞에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도록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주십시오. 더 이상 본인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유가족들과의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그것만이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에게 신뢰받고 지지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만약 이와 같은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경우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본회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슬픔과 아픔 가운데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의 선한 이웃이 되어 가족들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끝까지 지켜 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2014년 9월 1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 무 김 영 주
세월호참사대책위원회
위 원 장 이 승 열
2014-09-22 12:13:07
- (중앙일보) 창립 90돌 NCCK … 흔들리는 큰 교회, 다시 광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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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90돌 NCCK … 흔들리는 큰 교회, 다시 광야로 가자[중앙일보] 입력 2014.09.16 01:08 / 수정 2014.09.16 01:27
18일 기념예배 여는 김영주 총무
“한국 교회가 위기를 위기로 못 느낀다. 큰 교회 중심으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큰 교회, 큰 교단이 되려고 해선 곤란하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립 90주년을 맞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15일 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NCCK는 18일 서울 충정로 구세군빌딩에서 창립 90주년 기념예배를 연다. 예배 주제는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다. 김영주(사진) 총무는 “NCCK가 그동안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을 많이 했다. 반면 교회 내부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비판을 덜했다. 앞으로는 교회 내부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겠다는 거다. 그런 메시지가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창립 90주년 기념예배’에는 여러 교단이 참여한다. NCCK는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한국루터회 등 9개 교단과 한국YMCA전국연맹을 비롯한 5개 연합기구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NCCK 홍보실장 강석훈 목사는 “이번에는 현장과 함께하는 예배를 위해서 공을 들였다. 세월호와 밀양 송전탑 주민, 이주노동자 등과 엽서를 통해 요청과 응답을 주고 받는 시간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NCCK는 1924년 9월 24일 새문안교회에서 선교사 중심의 ‘재한개신교선교부연합공의회’와 한국 교회가 주체가 된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가 통합해 출범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가 모체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반공주의 성향이 강했고,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진보적이고 저항적인 성향을 갖게 됐다. 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과 이듬해 ‘긴급조치 9호’에 맞서 주최한 ‘목요기도회’ 등으로 군사정권에 항거하고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김 총무는 “NCCK는 군사독재의 엄혹한 시절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힘을 얻는 산실 역할을 했으며 사회적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둥지 역할을 감당하려고 노력해 왔다. 현재 한국 교회는 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큰 관심을 받은 것은 한국 교회가 그만큼 우리 사회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2014-09-16 10:49:54
- (연합뉴스) NCCK 창립 90주년…'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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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창립 90주년…'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
기사입력 2014-09-15 15:30 | 최종수정 2014-09-1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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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방한> 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와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린 국내 12개 종단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4.8.18 photo@yna.co.kr"정부 비판 못지않게 교회 내부개혁 힘쓸 것"…18일 90주년 기념예배(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이제 정부 비판에만 머물지 않겠습니다. 사회 민주화 등에 쏟아왔던 노력 못지않게 교회 안의 문제 해결과 내부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오는 18일 서울 충정로 구세군빌딩에서 창립 90주년 기념예배를 연다.'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를 주제로 내걸었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약속, 광야 시절의 첫 언약을 회복하자는 것이다.이런 뜻을 담아 예배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특송을 부르고, 세월호 참사와 밀양, 강정마을 등의 현장 목소리가 전달되고 이에 대한 참석자들의 응답이 담긴 엽서도 작성한다.NCCK 총무 김영주 목사는 15일 광화문에서 연 90주년 간담회에서 "다양한 신앙 전통을 가진 교단들이 모여 이해관계를 뒤로하고 교회와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90년 역사를 이어 온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NCCK는 1924년 9월24일 새문안교회에서 선교사 중심의 '재한개신교선교부연합공의회'와 한국 교회가 주체가 된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가 통합해 출범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를 모태로 한다.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 한국루터회 등 9개 교단과 한국YMCA전국연맹을 비롯한 5개 연합기구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NCCK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과 이듬해 '긴급조치 9호'에 맞서 주최한 '목요기도회' 등으로 군사정권에 항거하고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또 기독교의 통일운동도 주도해 1988년 2월에는 이른바 '88선언'이라 불리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내놓기도 했다.김 총무는 "NCCK는 군사독재의 엄혹한 시절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힘을 얻는 산실 역할을 했으며 사회적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둥지 역할을 감당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자평했다.이어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는 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면서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큰 관심을 받은 것은 한국 교회가 그만큼 우리 사회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누려온 성장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신앙의 선배들이 눈물나게 노력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너무 오랫동안 그 성장에 취해 있었음을 회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또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속의 권력에서 벗어나 교회가 가져야 할 영성과 신앙의 힘을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교회 세습, 금권 타락 선거를 통한 성직 매매, 대형교회 건축, 불투명한 재정 운영 등이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김 총무는 "교회가 약자를 위해 써야 할 물질이나 가치를 자신을 살찌우는 데 써버리는 현상을 바로잡는 개혁의 몸부림을 통해 남은 희망의 그루터기를 살려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NCCK가 그동안 활동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미숙하고 지나친 면도 있었지만 한국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시대적 사명을 다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런 기구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NCCK는 오는 11월24일 62회기 총회에서 100주년 기념사업을 중심으로 한 비전 선포식을 연다.kong@yna.co.kr
2014-09-16 11:02:15
- (서울경제) “한국교회, 세속적 권력 벗어나 신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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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세속적 권력 벗어나 신앙으로”
이재유기자 0301@sed.co.kr
입력시간 : 2014/09/15 20:37:57 수정시간 : 2014/09/15 20:37:57
NCCK, 18일 출범 90주년 기념예배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이제 한국교회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속의 권력이나 힘에서 벗어나,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가져야 할 영성의 힘, 신앙의 힘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 세습, 금권 타락 선거를 통한 성직 매매, 대형교회건축이 사회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남은 그루터기를 살려내야 합니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출범 90주년을 맞아 오는 18일 오후 2시 서울 구세군빌딩에서 기념예배를 연다.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라는 주제로, NCCK 관계자는 물론 국내외 에큐메니칼(교회일지)운동 인사와 신학대 교수, 기독교학교 교사, 문화체육관광부 등 500명이 초청된다. 또 11월24일에는 62회기 총회와 함께 미래 100주년 비전선포식도 연다.특히 이 시대 고난받는 이들의 대표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특송을 부르고, 세월호·밀양송전탑·강정해군기지 등 현장에서 받은 엽서에 기도와 헌신을 담아 봉헌하는 의식도 진행한다.홍보실장 강석훈 목사는 “그분들의 현장을 공유해 현장성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응답을 나눠주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성령의 끈 안에서 서로 하나 되는 의식으로 의미깊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NCCK는 엽서로 답지한 목소리들을 모아, 11월24일 비전선포식에도 반영한다는 계획이다.NCCK 총무 김영주 목사는 최근 간담회를 통해 “현재 한국교회는 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며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속의 권력에서 벗어나 교회가 가져야 할 영성과 신앙의 힘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일례로 교단 내부 결속을 해치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교회 세습, 불투명한 재정 등을 지적했다. 또 교회가 지역성을 잃고 광역화되면서 과도한 경쟁을 낳고 있다며 성공회나 천주교 같은 속지주의의 필요성도 지적했다.김 총무는 “그간 NCCK가 실수하고 지나친 면도 있었지만 한국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미래를 만들어 가려 노력해 왔다”며 “앞으로도 그런 기구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NCCK는 1924년 선교사 중심의 재한개신교선교부연합공의회와 한국교회 중심의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를 통합한 조선예수연합공의회(NCC)를 전신으로 한다. 일제강점기 끝 무렵 10여 년 해체됐지만, 해방과 함께 ‘조선기독교연합회’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과 1975년 ‘긴급조치 9호’에 저항하고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또 1988년 이른바 ‘88선언’이라 불리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내놓으며 한국기독교의 통일운동도 주도했다.현재 NCCK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기독교대한감리회·한국기독교장로회·한국구세군·대한성공회·기독교대한복음교회·한국정교회·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독교한국루터회 등 9개 교단과 CBS·대한기독교서회·한국YMCA전국연맹·한국YWCA연합회·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등 5개 연합기구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09-16 10:50:54
- (동아일보) 선교 전통 달라도 하나의 교회 정신 유지해온 건 큰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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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전통 달라도 하나의 교회 정신 유지해온 건 큰 축복”
김갑식기자
24일 창립 90주년 맞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박종덕 회장-김영주 총무 대담《 1924년 9월 24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목회자들이 모여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올해로 90주년을 맞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출발점이었다. 이 단체는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이루며 한국 개신교와 사회발전에 기여해왔다. 현재 예장 통합, 감리교, 기장, 구세군, 성공회, 복음교회, 기하성, 정교회, 루터회(이상 약칭) 9개 교단이 가입해 있다. NCCK는 12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기독교회관에서 ‘한국교회와 국제관계, 그 역사와 변화’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이어 18일 오후 2시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90주년 기념예배를 갖는다. 11일 기독교회관에서 30년 가깝게 NCCK와 인연을 맺어온 김영주 총무(62)와 회장인 박종덕 구세군 사령관(64)을 만났다. 》
11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 박종덕 구세군 사령관(왼쪽)과 총무 김영주 목사. 이들은 20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한국 교회의 뼈를 깎는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90주년, 짧지 않은 세월이다.▽김영주 총무(이하 김)=창립 초기 장로교와 감리교 목회자들이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조선에 하나의 교회를 만들자’라는 취지로 모인 게 씨앗이 됐다. 교단마다 선교 전통이 달라 분열이 있었지만 교회협이라는 하나의 기치 아래 하나의 교회정신을 유지해온 것은 큰 축복이다. ▽박종덕 사령관(이하 박)=총무님만큼 오랫동안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파송 임원과 실행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했고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NCCK는 출범 이후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어 왔다. NCCK는 다른 연합기구와 비교할 때 연합정신을 깨끗하게 구현했고, 비교적 잡음 없이 세상을 품어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김=1990년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본격적으로 단체활동을 시작했다. ‘윤석양 이병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사건’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1993년 통일위원회에 있을 때의 남북 인간 띠잇기 운동도 잊을 수 없다. NCCK 사무실은 당시 군 인권 피해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가 양심선언을 하는 단골 공간이었다. NCCK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힘을 얻고, 흩어지는 산실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다.▽박=회장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지만 큰일을 하지 못해 미안한 감도 있다.(웃음)▽김=NCCK 회장은 한국 교회의 상징이다. 현재 한국 교회에 대한 비난은 신뢰의 부족 때문에 생긴다. 구세군만큼 절제 있는 교단은 드물다. 작지만 강한 교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낮은 행보가 화제가 됐는데 구세군은 항상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해왔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만 계속 낮은 곳에 있으면 잘 안 보이는 법 아니냐. 하하▽박=교황 방한을 계기로 종교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부분이 많다는 것을 절감했다. 빛 없이, 이름 없이 낮은 곳에서 일하는 분이 적지 않지만 아직도 자신을 낮추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교황의 행보가 큰 관심을 받은 것은 그만큼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교회의 위기는 존경받지 못하는 목회자의 위기에서 시작됐다는 지적도 있다.▽박=부인하기 어렵다. 개신교는 교단도 너무 많고 중앙집권적이지 않다. 목회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사회적으로 몰매를 맞아도 그대로 가는 경우도 있다. 목회자의 신뢰 상실은 교회의 큰 아픔이다. 한국 교회가 새로워지는 일에는 목회자 갱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김=요즘 한국 교회가 누리고 있는 성장은 우리 목회자가 잘해서가 아니라 신앙의 선배들이 눈물나게 노력한 결과다. 우리가 지금 욕을 먹고 있다면 후배 목회자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초라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이후 NCCK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김=사회가 교회에 요구하는 투명성이나 민주적 절차 등의 기준은 강화됐는데 교회와 NCCK가 그 변화에 따르지 못했다. 불편한 구석이 있더라도 교회 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개인적 영성뿐 아니라 집단적인 차원에서 모범적인 개신교인, 목회자상이 정립돼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분이 많은데 개신교인 하면 이미지가 나쁜 경우도 있다. ▽박=NCCK의 목소리가 과거처럼 크게 들리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안고 있는 문제 때문이다. 우리가 어떠한 이슈를 주장해도 옛날만큼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주변을 변화시키려면 스스로 거룩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주장을 해도 힘이 없다.―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다.▽박=세속의 권력이나 힘이 교회 속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 부패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진정 있어야 할 것은 영성, 신앙의 힘이다.
▽김=지금 우리 상황이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 상황과 비슷한 것 아닌가. 교회 세습, 금권 타락 선거를 통한 성직 매매, 대형교회 건축이 사회적으로 비판받고 있다. 교회가 사회를 위해 써야 할 물질이나 가치를 내부를 살찌우는 데 써버리고 있다. 한국 교회도 500년 전처럼 대단한 개혁의 몸부림을 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가 부패했다고 해도 남은 그루터기를 살려야 한다. ▽박=종교개혁은 루터가 도화선에 불을 댕겼지만 개인뿐 아니라 여러 사람, 나아가 시대가 공감한 것이다. 개신교의 출발점이자 가톨릭 갱신의 계기가 됐다. 오늘날에도 그 개혁의 힘이 필요하다. 500주년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교회 연합과 갱신을 시작해야 한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2014-09-16 11:06:03
- (뉴스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90년…민주화운동 참여, 통일운동 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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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90년…민주화운동 참여, 통일운동 물꼬
유신치하 횃불 '목요기도회', 기독교 통일운동 척도 '88선언'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2014.09.16 05:30:00 송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김영주 목사)와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 세계교회가 합의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공동기도주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남북공동기도회를 평양 봉수교회에서 열고 있다.(NCCK제공) 2014.08.15/뉴스1 2014.09.15/뉴스1 © News1 염지은 기자다양한 신학과 교리적 배경을 갖고 교파형 교회로 전래됐던 한국 교회는 '한국에서 유일한 하나의 개신교교회를 조직하는 것'을 목적으로 4개의 장로회 선교부와 2개의 감리회 선교부가 협의체인 '재한개신교선교부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를 1905년에 결성했다.하지만 이는 선교사들의 호응에도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1924년 9월 24일, 선교사 중심의 '재한개신교선교부연합공의회'와 한국교회가 주체인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가 통합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Korea National Christian Council)'가 새문안교회에서 창설됐다. 이것이 현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모체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현재 9개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한국루터회)과 5개 연합기구(CBS, 대한기독교서회,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공의회는 창립총회에서 채택한 규칙에서 ▲ 협동하여 복음을 선전함 ▲협동하여 사회도덕의 향상을 도모함 ▲협동하여 기독교문화를 보급케 함을 목적으로 천명함으로써 한국교회의 일치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감당했다.특히 한국교회는 20세기 초부터 다양한 세계 에큐메니칼(교회일치)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현대 선교운동과 교회일치운동의 전환점이 된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에 윤치호가 비공식적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후 이 대회는 '계속위원회'를 구성했고 후에 국제선교협의회로 발전했다. 이러한 세계적인 상황 속에서 공의회는 국제선교협의회의 산하기구인 국가단위의 에큐메니칼 조직으로서 역할하게 됐다. 공의회는 창립 당시에는 한국교회로 조선예수교장로회, 조선미북감리회, 조선미남감리회가 참여했다. 외국 선교부로는 미북장로회, 미남장로회, 호주장로회, 캐나다연합장로회, 미북감리회, 미남감리회가 가입했다. 기교기관으로는 대영성서공회와 조선기독교청년회(YMCA)가 참여해 11개 단체 대표들로 조직됐다.공의회는 이후 1931년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로 이름을 바꿨다. 1937년 해산될 당시에는 11개 회원단체 외에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조선예수교서회, 조선주일학교연합회, 재일본 캐나다장로회선교회, 조선기독교여자절제회도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었다. 비록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이전에 선교사들이 주도했던 각종 사업에 참여하면서 선교사 의존시대를 벗어나 한국인이 주체가 되는 한국교회 형성에 이바지했던 공의회는 일제말 폐쇄돼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라는 단체로 변모됐다. 한국교회는 1945년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통합되고 말았다. 해방과 함께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이 해체되고, 1946년 가을 교파연합운동 기구인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조직됐다. 연합회는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한국기독교연합회'로 명칭을 바꾼다. 연합회는 1948년 9월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에 대표를 파송해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해방이후 직면한 전쟁과 분단 등 연속적인 국가적 혼란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적 노력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61년 국제선교협의회는 세계교회협의회와 합병해 산하기구인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가 되었는데, 이는 선교와 교회는 분리될 수 없으며 교회가 광의의 선교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기독교연합회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로 변화된다. 해방이후 한국교회는 신사참배 등 일제치하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한 회개없이 정권과 유착했다. 이승만 정권에 이어 5.16 군사쿠데타를 지지했으며 이후 한국교회는 삼선개헌에 대한 찬반으로 크게 양분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한국 기독교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을 계기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교단들과 교회들의 저항이 일어났다. 이 해 7월 11일부터 소장파 목사들과 구속자 가족들, 평신도들이 참여하는 '목요기도회'가 시작됐고 1974년 5월 4일 '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한국사회의 인권을 대변하는 역할을 시작했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에 맞서 1976년 1월 15일 '목요기도회'를 부활시켰다. 이후 목요기도회는 유신치하를 밝히는 횃불의 역할을 감당했다. 한편 유신정권은 '빌리 그래함 한국전도대회', '엑스플로 74', '77 민족복음화 대성회' 등의 기독교 대형집회를 지원하며 한국에 종교자유가 있음을 선전했다. 정권의 지원을 받는 보수 기독교인들은 민주화 운동을 용공으로 비난하며 군사정권의 정치적 지지세력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가혹한 탄압에 대항해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한국 기독교의 통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정부의 간섭으로 통일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지 못함으로 1970년대 이후 통일논의는 고착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82년 2월 '통일문제연구원 운영위원회'를 특별위원회로 설치하기로 결의하고 통일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정권의 강력한 탄압에도 1985년 3월 제34차 총회에서 '한국교회 평화통일선언'을 채택한 것을 시작으로 1988년 2월 29일 열린 제37차 총회에서는 조국의 통일문제를 두고 고민해 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회원교회들의 의견을 수렴해 통일에 대한 고백적인 내용을 담아 우리 민족과 온 세계 앞에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을 내놓았다.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은 한국교회가 그동안 진행시켜온 통일 논의를 종합 정리한 것이다. 이제까지 진행된 통일 운동의 성과를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한 기독교 통일운동의 척도였다. 이 선언으로 한국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의 통일 논의도 본격화 될 수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90주년은 비록 교단마다 선교 전통이 달라 때로는 분열의 모습을 보였던 것도 사실인 한국교회적 상황에서 '교회협'이라는 하나의 기치 아래 하나의 교회정신을 유지해온 결실이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군사독재의 엄혹한 시절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힘을 얻고 흩어지는 산실 역할을 했으며, 사회적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둥지의 역할을 감당하려 노력해 왔다. 또한 민족의 시급한 과제임에도 권력의 통제 안에 들어있던 통일에 관한 논의를 시작함으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 등의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 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교회 연합과 갱신에 노력하고 있다. 향후 교회 안으로는 교회개혁의 기치를 들고, 교회 밖으로는 안에서 모아진 그 힘을 바탕으로 사회를 향해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게 생명과 정의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senajy7@
2014-09-16 10:47:57
- 2014 Together with the Churches of the World Sunday Prayer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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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Together with the Churches of the World
Sunday Prayer Worship for the Peaceful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On August 10, the NCCK Committee for Reconciliation and Unification along with 600 people from 11 member churches and affiliated organizations held a joint Sunday prayer worship service, ”The Wave of Peace, Be the Breaker of Unification,” for the peace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t Sejongro Park.
The Korean Church and the World Church have been observing the week that precedes August 15th as a “Joint Prayer Week for Peaceful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1989, the World Church had determined at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held in Moscow to set a joint prayer week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o pray together.
Also at the Busan General Assembly of the WCC held in October 2013, the Word Church adopted the Statement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contains that reconfirmation about churches all over the world observing the “Joint Prayer Week for Peaceful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t has been reemphasized in the communiqué from the International Consultation on Justice, Peace, and Reconcili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held on June 17th - 19th, 2014 in Bossey, Switzerland.
The joint worship began with introspection over the situation of the divided Korean peninsula. People repented that they did not see the suffering and pain of others, focused only on their own benefit, and they made little effort for the peace and reunification of this country while instead blaming the surrounding circumstances. According to the “South-North Joint Prayer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which was co-created by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and Korean Christian Federation last June, people prayed for ending the war through a peace treaty and that we may all of us walk the way of love and truth, serving and sharing. This joint prayer was sent to the World Churches so they may join the suffering and the wishes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e preacher, Rev. Kim, from Deul-Gott-Hyang-Lin Church preached a sermon with the title, “I Am Who I Am,” and sent a message that “when seeing the people and countries of the Bible they always perished surely when they divided and fought each other. So the Christians who believe in the Bible should be the last bastion which is able to create unification.” As a thanks giving and response, lay people took the lead for intercessory prayer. Kim Kyung Yoon from Dong-Nyok Church, prayed for the creation of a peace treaty to put an end to war and for the peace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our prosperity. Also Kim Min Kyung from Gajewool-Noksec Church, prayed, “Let all of us be an apostle of peace so that we may work and cooperate for the peace of the world.”
After that all people shared the body and blood of Jesus with love and sincerity in the Eucharist. People greeted each other with greetings of peace and prayed together.
After the service, all people gathered at the back and joined in the rhythms of Samulnori and Dedongnori which is a traditional Korean percussion quartet.
2014-09-11 11:57:20
- Message from General Secre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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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from General Secretary
The month of August has been quite busy this year. Several large events have transpired and we have done some traveling as well. I particularly want to emphasize the importance of three events.
First,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NCCK) has finally had its first meeting of the Special Committee on the SEWOL Ferry Disaster. Before we could only form a task force, which was smaller. Now, after a meeting of the Executive Committee we can form a full Special Committee that will focus on tasks such as urging the government to pass a special SEWOL law that could give an investigation committee the powers it needs to find the truth and punish those responsible. You have seen Mr. Kim Young Oh, whose daughter died in the SEWOL disaster, has been hospitalized as he continues his hunger strike urging the President and the National Assembly to pass the special bill. Specifically, the bill would remove all hindrances to the committee’s ability to investigate government agencies, which up to now they have been prohibited from doing.
It would also give them the power to indict any officials they found to be responsible for the SEWOL disaster and the mistakes made in the rescue attempt. We believe, along with the families of the victims, that this is the only way to find out the true causes of the accident.
We are seeing our culture coalescing into a system that prioritizes profit over the safety of our people. Our society is becoming more and more hierarchical with competition as a focus so that some people are constantly on the bottom. We have forgotten our roots in a culture that values equality and community all for the sake of theorized economic development. Our system of opposing political parties focuses more on taking from each other than they focus on humanity and the lives of people like the victims of SEWOL. If we do not transform our society and these systems, we are in danger of a similar disaster happening again.
Also, in the second week of August, I traveled with an NCCK delegation to Pyongyang, North Korea where we participated in a joint worship along with the Korean Christian Federation of the North where we prayed a prayer that the NCCK and KCF co-wrote on behalf of the peaceful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is visit was in accordance with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acceptance of the Declaration on Peace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t the Busan Assembly 2013. We sent nineteen delegates including two female delegates and two young adult delegates to improve the diversity of our group. Likewise, the KCF responded with a delegation of female and young adults, and we agreed to push for further exchanges and cooperation with these two groups. Having prayed and worshipped together to observe, along with the WCC and churches of the world, the week leading up to August 15th, Liberation Day, we also agreed to hold an international conference next year in 2015 on the Korean peninsula to mark the 70th anniversary of Liberation Day.
Finally, I had the opportunity to meet Pope Francis on his visit to the Republic of Korea. I was very grateful for his visit because I believe it was an opportunity for Christians in Korea to learn about what our position of Christianity should be. I learned from the pope that we must mourn alongside those who are mourning. We must take action for those who are struggling in the midst of poverty and for those who are denied power in our society. I also learned that we should be working together alongside all those who are suffering. I also took the opportunity to request that the pope have deep concerns for the situation of peace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I suggested to him that if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could set reunification as their highest priority then we could work alongside each other as a united church struggling together for reunification. I asked him to visit North Korea with us some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we will walk hand in hand with the president of the WCC and with the pope to cross the border of North Korea. I hope this may someday come true.
General Secretary Kim Young Ju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2014-09-11 11:33:31
- 10 Years of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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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Years of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Resident Migrant Workers Still in Slavery
August 17th: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has been in operation for 10 years on this day.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was created for the purpose of overcoming the condemned evils of the 1991 Industrial Training System, which could be referred to as modern-day slavery. On August 16th 2003, laws were passed regarding employers and foreign workers, and one year later in 2004, the day of August 17th marked the full implementation of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created for the purpose of overcoming the past abuses, has passed 10 years since its implementation; however, this system has continued to be a matter of discrimination and exploitation for foreign workers.
Migrant workers refer to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as, “The tears of the migrant workers.”
On the 12th of August, the four big religions of Korea held a joint press conference at Gwanghwamun demanding for the abolition of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as well as the abuse of migrants.
In the joint press conference, religious people demanded: withdrawal of the system wherein migrant workers can only receive severance pay after returning to their home country; guarantee of migrant workers’ freedom of movement between places of work; conversion of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into a Labor Permit System; and immediate implementation of Human Rights Commission’s advice in regard to migrant workers engaged in the industries of agriculture, livestock and fisheries .
These people stressed that, “Even though the UN also recommends amending laws and regulations so that migrant workers’ may maintain all their rights in the midst of changing their work placement, the government ignores this.” They also urged that, “The laws that treat people as tools and make people into slaves must disappear.”
Present at the press conference, Rev. Kim Eun Young (Chair of Migrant Workers Small Committee of the NCCK) said, “The 10 years of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was a time of discrimination and exploitation of migrant workers.” Also he stated that, “We strongly condemned the law that seriously violates human rights simply because of the color of a face or the difference of language.”
Udaya Lae (Chair of the Emergency Task Force of the Migrant Workers Union) said, “The expectations of migrant workers were very high that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would improve the abuses of the Industrial Training System which did not treat workers as workers. However, after 10 years, rather than improvement we are gradually returning to the Industrial Training System.”
The biggest change to the Industrial Training System that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was supposed to provide was that migrant workers would acquire the status of “laborer.” Under the first Industrial Training System, their status as “laborers” was not recognized so the Labor Standards Act did not apply.
Especially, the most striking toxin of the Industrial Training System was the inequality in contract terms and the fact they were unable to move to another place of employment over the space of three years.
Surely, the application of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which began in 2004 was the way to improve the toxic provisions. However, Seok Won-Jung, the representative of the Group for Foreign Migrant Workers’ Rights stated, “Up to now, there has not been much difference between the Industrial Training Program and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has been enforced and for several years there were certainly only one-year contracts. However, after some time has passed, they are making their contracts in their home countries for three-year contracts and then they come to Korea. It is the same as the Industrial Training Program. Also, these employment contracts are written up using the Standard Labor Contract rather than the Special Labor Contract. In these contracts there is only basic information such as hours of work and wages. There is no specific information about what the migrants workers will be in charge of, so the workers can find out what work they will do only after arriving in Korea.
Migrant workers mainly perform simple jobs. That is why keeping the probationary period is only a means for cutting wages. At the time of the first Industrial Training System, the probationary period of one year was reduced from six months down to three months through the struggle of the human rights organizations and migrant workers. Under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these same ways of sneaking in wage cuts are wriggling through the system again.
Migrant Workers and human rights organizations have argued that from the end of July, with the implementation of receipt of severance pay after exiting the country, this same context has emerged.
The chair of the Emergency Committee for Migrant Workers’ Rights, Udaya Lae, has said, “I want to let the Korean government know that oppression is not the only way to address these issues. Please struggle together with us so that migrant workers can live in this land with equality.”
2014-09-11 11:4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