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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다나오(필리핀) 생태와 건강 웍샵 보고서
- 아시아기독교협의회는 생태와 건강에 관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프로세스의 일환으로 2006년 5월 9일에서 14일까지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웍샵을 개최했다. 필자인 채혜원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해외선교부장을 역임했으며 이번 민다나오 웍샵에는 KNCC 환경위원 자격으로 참여했다.아시아기독교협의회 주최
생태와 건강에 관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프로세스
민다나오지역 생태(기후, 토양, 물)와 건강 웍샵 보고서
채 혜 원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 남쪽 다바오와 코타바토 지역에서 생태와 건강의 문제를 출발점으로 민다나오 지역의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준비하는 웍샵이 2006년 5월 9일부터 14일까지 코타바토에 위치한 남부기독교대학(Southern Christian College)를 중심으로 열렸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가 이끄는 치유와 화해를 위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과정 (Asia Ecumenical Diakonia Process on Healing and Reconciliation) 중 민다나오 포커스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모인 이번 웍샾에는 지역에서 생태운동, 기초공동체건강운동, 산림운동, 생명농업, 평화운동, 토착민운동, 교육운동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필리핀기독교협의회(NCCP)에 소속된 교단들을 중심으로 교파를 초월하여 모였고, 이 지역에 민감하게 잠재된 기독교와 이슬람과 원주민 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슬렘과 원주민 대표 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그리고 인도와 동티모르와 한국에서도 대표들이 함께 참석하여 각기 다른 상황들을 서로 나누며 지역상호간 협력의 틀을 모색하는 기회를 가졌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의 정의, 국제문제, 개발과 봉사국 (국장 이홍정 박사)에서는 식민지배와 냉전시대의 희생양이 되었던 아시아의 생명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들의 치유와 화해를 위한 외침이 하나님의 선교의 새롭고도 본질적인 과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05년 제12차 치앙마이 총회에서 주어진 CCA의 새로운 임무인 모든 생명을 위한 평화공동체 세우기 를 위해 치유와 화해를 위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과정 을 수립하고, 아시아에서의 디아코니아 선교를 통한 에큐메니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나섰다. 이는 만물의 생명의 풍성함을 위해 아시아의 생명 망을 강화 (Empowering the Web of Life in Asia)하는 일련의 지속적 과정이다.
이홍정 박사의 제안에 따르면, 아시아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과정은 세 가지 상호 연관된 주제 영역의 과정들을 포괄한다. 첫째는 자연생태와 인간건강을 통전시키므로 지구생명공동체의 전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생태와 건강에 관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과정으로 여기서는 건강, 환경, HIV/AIDS, 개발, 관광, 생태계 파괴로 인한 생명의 지속성문제 등을 다룬다. 둘째는 소외된 사람들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안전과 자결권을 강화하는 과정인 생명과 평화에 관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과정으로 전쟁과 개발과 재해로 뿌리 뽑힌 사람들, 원주민들, 장애인들이 지닌 세상을 향한 선교문제를 다룬다. 셋째는 지역공동체의 생명경제를 강화하기 위한 대안공동체 에 관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과정으로 세계화, 지속가능한 개발, 생명농업, 생명경제의 과제를 다룬다. 이 세 가지 주제 영역의 과정들이 구체적인 지역 현실 속에서 상호 의존적이며 상호 보완적으로 역할 하므로 정의 에 중심을 둔 치유와 화해 의 생명살림의 역사를 이루어내는 틀이다.
민다나오지역에 초점을 맞춘 이번 웍샵은 각 참가자들이 소속한 지역에서 기후, 토양, 물과 관련된 생태적 관심을 어떻게 소화해내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인간의 욕구와 생명의 망 복원이 균형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였다. 그리고 생태적 정의와 사회 정의 사이의 관련성을 종교간 대화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신앙공동체 안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와의 협력을 통해서, 그리고 민중들의 생태정의평화운동의 차원에서, 민다나오를 중심으로 상호 연관된 생명의 망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정의롭고 생태적이며 건강한 교육과 실천을 위한 헌신의 계획들을 세웠다.
스페인 식민지시대에 주권을 사수했던 민다나오 사람들은 미국과 스페인 전쟁 이후 필리핀의 다른 지역들과 함께 미국으로 양도되어 버린 역사적 과정과 그 이후 일본의 식민 지배와 필리핀 독재정권의 지배와 세계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정치적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과 천연자원의 수탈을 경험하며 생명의 터전을 침식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생명 죽임의 수탈의 와중에서도 민다나오 사람들은 그들의 자결권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번 회의는 민다나오의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지속가능하며 생명력 넘치는 지역생태계를 복원하고, 사람들의 온전한 생명과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을 통해 민다나오의 생명의 망을 복원하고 강화하는 것이, 결국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이끌고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지름길임을 자각하게 하였고, 이를 위한 새로운 헌신에의 다짐을 끌어내는 기회가 되었다. 긴장과 갈등, 테러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지역으로만 알았던 민다나오에서, 생태와 건강의 통전을 통한 치유와 화해의 선교사역을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현장을 방문하고, 특별히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oro Islamic Liberation Front)을 방문하여 평화를 위한 치열한 대화를 나누면서, 민다나오 사람들의 역사적 과제와 정의와 평화를 위한 그들의 투쟁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한 가지 예로, 손자에게 나무타고 오르는 법을 가르쳐주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10년 전에 일본 회사의 벌목으로 황폐해진 임야를 구입한 림(Lim)씨 부부는 지역생태계에 어울리는 나무들과 함께 소나무 등을 심고 생태계복원운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기름진 화산 토양에 힘입어 지금은 생태계 살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회의장소와 쉼터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숲을 잘 가꾸어 놓았다. 덕분에 우리 참가자들은 다바오 공항에서 바로 그곳으로 가서 통나무집 한 채에서 30 여 명이 합숙을 하였고, 아침엔 화산인 아포 산을 바라보며 창조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명상을 할 수 있었다. 언덕 아래에 자리 잡은 경작산림농장에서 우리는 생명의 망이 강화되어 제 역할을 다하기를 기원하며 나무심기에 참여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예를 발전시켜 민다나오의 세 그룹인 기독교인, 모슬렘, 원주민들이 민다나오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함께 참여하는 평화의 숲, 평화의 농장, 평화 생태공동체 등의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특별히 남부기독교대학 학장인 에린다 센튜리아스 박사 (Dr. Erlinda N. Senturias)의 지대한 관심과 헌신, 그리고 각 분야에서 책임적으로 일하고 있는 참가자들의 결의로, 2007년에서 2009년까지의 구체적 활동 계획이 교회의 틀에서, 이웃 종교들과의 대화와 연대의 틀에서, 그리고 민중운동의 틀에서 세워졌고, 각 분야의 일을 맡아서 주관할 책임자까지 선정되었다. 민다나오를 중심으로 한 치유와 화해를 위한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남부기독교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민다나오와 술루 지역의 치유와 화해를 위한 에큐메니칼 하우스 를 출범시키므로 구체화 되었다. 다음에 게재한 민다나오와 술루지역의 치유와 화해를 위한 에큐메니칼 하우스 출범 성명서가 이번 모임의 전반적인 이해와 결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민다나오와 술루 지역의 치유와 화해와
생명망 강화를 위한 에큐메니칼 하우스 출범 성명서
Launching Statement of the Mindanao and Sulu Ecumenical House for Healing and Reconciliation and the Empowerment of the Web of Life
Southern Christian College
Midsayap, Cotabato 9410
Philippines
들어가는 말
민다나오지역에 초점을 맞춘 생태(기후, 물, 땅)와 건강(Ecology and Health)에 관한 회의 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의 정의, 국제문제, 개발과 봉사국 (Cluster on Justice, International Affairs, Development and Service)의 프로그램으로 필리핀기독교교회협의회(NCCP)와 남부기독교대학(SCC) 주관으로 2005년 5월 9일부터 14일까지 필리핀의 남쪽 민다나오 섬 코타바토 미샤얍에서 열렸다. 이 회의를 위하여 건강과 생태, 그리고 생명농업에 관심을 갖고 일하는 필리핀의 여러 교회 대표들과, 이슬람의 대표와 학계 대표들과 해외교회 대표 몇 사람 등 약 30 여 명이 모였다.
다바오 (Kapatagan, Digos, Davao del Sur)의 여러 농업공동체들과 민다나오 침례교 농촌생명살림센타 (Mindanao Baptist Rural Life Center in Kinuskusan, Bansalan), 스폿우드의 감리교 농업센타(Spottswood Methodist Center in Kidapawan City), 미샤얍의 남부기독교대학의 농장(SCC College Hill Farm in Midsayap), 그리고 코타바토의 방사모로 연구소(the Institute of Bangsamore Studies)를 들러 상황보고를 듣고 참가자들은 민다나오 섬의 생명의 망(the Web of Life)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깨닫게 되었다.
또한 참가자들은 그곳의 사람들과 연구소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생태 체계의 원만한 순환 과정을 회복하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생명과 평화와 대안적 공동체의 모색과 생태와 건강의 통전을 위한 대변자들이 되어 살고 있는지를 보았다. 이러한 삶과 행동들이 정의와 치유와 화해로 이르는 생명의 망을 강화시켜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방사모로 연구소의 반타이 리가와산 (Bantay Ligawasan)은 늪지의 천연자원을 인간의 파괴로부터 구해내고 보호하자는 공동체적 접근방식의 프로그램이며, 리가와산 숲의 복원 프로그램은 마을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나무를 심어 늪지를 복원시키도록 하자는데 목적이 있다. 또한 민다나오 침례교 농촌살림센타는 산비탈에서 농작물 경작과 산림을 동시에 하는 법을 교육시키는 동시에 각 사람이 환경을 푸르게 하는 실천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있었다. 생명농업을 증진시키는 민다나오 남부기독교대학의 교육에도 큰 고마움을 느꼈다.
생명의 망이란 창조 세계의 서로 연관됨을 이르는 말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은 이 생명의 망 안에 각기 자기 자리를 잡고 있다. 땅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것들을 필요로 한다. 이 땅의 건강함은 대지와 바다의 모든 살아있는 종들 사이의 균형과 전 우주와 맺고 있는 우리들의 관계에 달려있는 것이다. 생명의 망이라는 개념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조명은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 중심적이기 보다는 창조 중심적으로 접근하게 한다.
필리핀교회협의회에는 환경을 다루는 프로그램과 건강위원회가 있어왔다. 그러나 기구조정과정에서 이 두 프로그램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환경문제에 초점을 둔 지역교회들의 활동은 계속 되었는데, 코타바토와 제네랄 산토스시의 필리핀침례교연맹의 동부 민다나오 카사풀라난 관련 사역 등이 이에 속한다.
생명의 망에 힘을 불어넣어야 하는 시급성을 깨달은 우리는 필리핀교회협의회 안에 신앙과 증언, 그리고 봉사 위원회 산하 협력체제의 전문위원회가 조직되어야 하며, 각 회원교회들은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물 부족의 위기, 토양침식, 산림 황폐, 광산운영과 이로 인한 전 피조물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역점을 두어 다루도록 제안하기로 했다.
마침 때맞추어 NCCP의 회원교단인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UCCP)의 총회가 2006년 5월 24에서 29일까지 디고스 시에서 개최됨에 따라, 우리는 총회의 지도자들과 총대들에게 우리의 생명의 망의 불균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로 했다.
민다나오와 술루 지역의 치유와 화해를 위한 에큐메니칼 하우스 출범의 배경
민다나오 지역의 생명의 망에 대한 심각한 위협은 주로 상업적 벌목과 광물질 채취산업으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환경침해에 기인하며, 이에 대한 시급한 관심이 요청되고 있다. 민다나오는 필리핀 전체의 반 이상의 금속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대법원이 1995년 광산조치령의 효력을 선포한 이래로 2005년 초까지 광산 운영이 외국 투자자들에게 열려져왔었다. 산업 폐기물들과 광산 쓰레기들이 산야의 구덩이와 연못에서부터 강과 바다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쌓여가고 있다. 그리고 남아있는 자투리땅들은 일용작물 생산을 이유로 생물의 다양성을 위협하고, 목초지로 바뀌고, 나무를 베어내고 불로 태워버리는 농업으로 바뀌었으며, 그리고도 남아 있는 나무들은 연료로, 경제적 생존을 위한 숯을 생산해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큰 파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고 또는 수중생물들과 조류들의 번식처 역할을 해주는 우리들의 망그로브 숲은 연료생산으로 심각하게 고갈되었고, 모래사장이나 양어장과 참새우어장 개발로 파괴되어야 했다. 숲의 생태체계의 파괴는 생명의 망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생태적 진행과정을 바꾸거나 변환시키고 페스트나 여러 역병들에 걸리기 쉬운 단일경작(monocultures)을 조성시키기 때문에 생태계의 다양성에 위협을 가한다. 이는 숲의 붕괴, 강들의 퇴적,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물 부족, 토양침식, 토양의 생산성을 감퇴시키고, 자연적 생장발육의 감퇴 등을 초래해 왔고, 불을 지르거나 다른 방식의 숲 훼손을 통해 지표층의 살아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을 죽여 왔다. 우리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우리의 어머니인 대지를 훼손시켜온 것이다.
사막화에 손상된 땅은 이제 더 이상 굶주림과 영양실조, 강제 이주와 이에 연관된 사회적 모순 속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기본적 농업경제를 지원할 수가 없다. 설치류나 조류, 그 밖의 살아있는 피조물들의 주거지 파괴는 인류와 다른 창조세계에 악영향 미치고 있다. 소비자의 교육 부족과 산업용이나 개인용 석탄과 기름, 가스의 마구잡이 사용은 기구의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초래해 왔고, 이는 생명 망을 더욱 더 교란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의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하여,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전 창조세계의 건강에 위협을 주는 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생태(기후, 물, 토양)와 건강을 위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과정에 참가한 우리들은 단순한 삶, 생태적인 삶을 살기로 마음에 다짐을 하며, 2006년 5월 13일 남부기독교대학(SCC)를 주축으로 하여 민다나오와 술루 지역의 치유와 화해를 위한 에큐메니칼 하우스 를 출범시켰다. 우리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이 생명의 망을 활성화시키는 일에 초대한다. 이 집의 구성원들인 우리는 민다나오와 술루지역의 생명의 망이 더욱 풍성한 생명과 봉사를 향해 나아갈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앞으로 생태적으로 건강한 교육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우리 교회 공동체와 종교 간의 대화를 모색하는 공동체들과 민중들의 운동들이 어떻게 하면 지역과 세계를 엮어내며 생명의 망을 활성화 시켜나갈 것인가를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생태적 인식을 강화해내고 활동가들을 키워내며,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포용적인 생태와 건강을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의 지역적 연대를 통한 생명의 망짜기를 위해 우리를 헌신할 것이다. 우리는 교육기관들에 건강과 생태,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에 관한 학과목을 신설하도록 요청한다. 생명의 망을 복원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비정부기구들이나 종교단체들, 원주민과 방사모로 단체들과 같은 시민사회조직체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이나 정부의 관련 부처들이 있음을 안다. 앞으로 5 년 동안의 우리의 계획을 수행함에 있어서 이들 관련 단체들과 협력할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가 민다나오지역에 초점을 맞추어준 것에 감사하며, 이제 민다나오에서 막 출범한 치유와 화해를 위한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과정을 계속해서 지원해 줄 것을 희망한다.
2006-05-26 04: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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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국
- 2006 아시아주일 연합예배
- 국제위원회는 2006 아시아 주일을 맞아 5월 28일 오후 2시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예장 갈릴리 교회(인명진 목사, 국제위원회 위원장)에서 연합예배를 드렸다.예배는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교수)의 사회, 송영자 장로(국제위 부위원장)의 기도, 이원규 목사(감신대 교수, 신학연구위원장)의 설교, 인명진 목사(국제위원장)의 축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갈릴리 교회내 외국인 공동체인 인도네시아교회의 특송과 몽골교회의 헌금송 순서도 있었다.
아시아 주일(Aisa Sunday)은 1959년 5월 24일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가 생기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해마다 특별히 중요한 사안이나, 곤경에 처한 회원교회에 초점을 맞추어 이 주일을 지키게 된다.
특별히 올해는 네팔을 위해 기도했다. 네팔의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다른 종교공동체 사람들과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인권과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사회가 되기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설교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아래는 영어 전문과 한국어 번역본이다.
The Stages of Faith
Dr. Won-Gue Lee
(Methodist Theological Seminary)
Mark 10: 46-52
"Then they came to Jericho. As Jesus and his disciples, together with a large crowd, were leaving the city, a blind man, Bar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 begging.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areth, he began to shout,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Many rebuked him and told him to be quiet, but he shouted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Jesus stopped and said, "Call him." So they called to the blind man, "Cheer up! On your feet! He's calling you. Throwing his cloak aside, he jumped to his feet and came to Jesus.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Jesus asked him. The blind man said, "Rabbi, I want to see." "Go," said Jesus, "your faith has healed you." Immediately he received his sight and followed jesus along the road.
The Bible text we read was about the story of a blind beggar who was healed by Jesus. The story is as following: One day Jesus and his disciples were moving from the city of Jericho. Hearing that Jesus was passing by, a blind man shouted and begged Jesus to help him. Jesus called the blind man and asked him.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The blind man said, "I want to see." Then Jesus healed the blind man and he received his sight.
Here we can learn many lessons from the faith of the blind man. We can learn what the true faith should be. Also we find some stages of faith from the story of the blind man.
First, we should learn from the blind man his eagerness. Faith is eagerness. The blind man might well know about Jesus. He might think Jesus had a power of healing. He might believe Jesus could solve his problem. So, the blind man shouted, "Jesus, have mercy on me!" Many people rebuked him and told him to be quiet. But the blind man did not give up. Rather he shouted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He was very serious and earnest. Faith is like this. The first stage of faith is eagerness.
We are all weak persons. We have a lot of problems in our lives. We may have some economic problem, health problem, family problem, and/or mental problem. Sometimes we feel isolated, disregarded, disgraced, and/or discriminated. At other times, we feel pain. We feel sorry. We feel sad. We feel lonely. When times get rough, when things get hard, what can we do? To whom can we depend on? Where can we get some help?
We should depend on Jesus. We can get help from Jesus. But there is a condition. We should ask him eagerly. Even though we ask Jesus something, nothing might be happened. Then ask Jesus again and again just like the blind man. Shout all the more, "Jesus, have mercy on me!"
Let's see the parable of the persistent widow shown in Luke 18: 1-8. The story is as following:
"In a certain town there was a judge who neither feared God nor cared about men. And there was a widow in that town who kept coming to him with the plea, 'Grant me justice against my adversary.' For some time he refused. But finally he said to himself, 'Even though I don't fear God or care about men, yet because this widow keeps bothering me, I will see that she gets justice, so that she won't eventually wear me out with her coming!" And the Lord said, "Listen to what the unjust judge says. And will not God bring about justice for his chosen ones, who cry out to him day and night? Will he keep putting them off? I tell you, he will see that they get justice, and quickly."
What does this story mean? When people ask God eagerly, God will listen. So will Jesus. Do you want something to be done? Do you want something to be happened? Do you want something to be achieved? Pray to God. Ask Jesus. Ask Jesus again and again. Ask Jesus with all your heart. Never give up. Then Jesus will care of your need and solve your problem.
When the blind man eagerly asked Jesus to have mercy on him, Jesus stopped and said, "call him." Same way if we seek Jesus, he will respond. He will say, "Come to me." Jesus always listen to us when we ask him seriously.
Jesus called the blind man. Then the blind man threw his cloak aside, jumped to his feet, and came to Jesus. This is the second stage of faith. Just as the blind man, we should immediately rush to Jesus when he calls us. Faith is not hesitation. We should not hesitate for his calling. But not a few people hesitate going to Jesus. Why? Sometimes that's because they do not trust Jesus. At other times that's because they do not want to move or to change.
But what did the blind man do when Jesus called him to come. He jumped to his feet and came to Jesus. He responded right away. Faith is immediate response to Jesus. The blind man even threw his cloak aside. His cloak might be the only property the blind beggar had. But he threw it aside. Why? Because he had to hurry to go to Jesus. And because the cloak was not important any more to get mercy from Jesus.
What shall we do when Jesus calls us to come to him? We should rush to Jesus leaving everything aside. When Jesus calls us, we should not cling to worldly things. If we really want to go to Jesus, we should leave our money, power, glory behind. The story of a young and rich man shows the same lesson (Matthew 19: 16-22). One day a man came to Jesus and asked him the way of getting eternal life. Jesus answered, "Go, sell your possessions and give them to the poor." When the young heard this, he went away sad, because he had great wealth.
So often the things we possess such as wealth, honor, and status can be a barrier to get mercy of Jesus.
When the blind man came to Jesus, Jesus asked him,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The blind man said, "I want to see." What a perfect answer it was! That was the correct answer. It was the right answer. This is the third stage of faith. Faith is to ask Jesus the right thing.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the blind man? Money? Job? House? Food? Clothes? These may be necessary. But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be able to see. When Jesus asked the blind man, "what do you want?", he did not answer like these, "Please make me rich, make me famous." To see is the most valuable thing for the blind man. So he said, "I want to see." This was the best answer.
Same thing can be happened to us. If we beg Jesus to do us a favor, he will ask us,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We can answer in these ways, "I want more money. I want a better job. I want a good health. I want promotion. I want security. I want a good luck. And so on." Not bad. But this kind of asking is nothing to do with faith. And that is not the best answer. What will be the right answer for us? As for the question,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how about these answers? "I want to love my neighbors." "I want to console the person filled with sorrow." "I want to encourage the person with despair." "I want to feed hungry persons." "I want to be a friend of lonely persons." "I want to give hope to depressed persons." "I want to care for the sick." "I want to help the handicapped ." "I want to share my money, time, and energy with needed persons."
When Jesus recovered the blind man's sight, Jesus said, "Your faith has healed you." What does it mean? To ask right thing is the very good expression of faith. We should also ask Jesus right thing. What is the right thing? That is to love, do justice, and make peace. If we have right sight, we are able to see how many people are in distress and trouble. We are able to see how many people need for love. We are able to see how many people are hungry and thirsty. We are able to see how many people are sick and lonely. We are able to see how many people are tired from work. We are able to see how many people are discriminated in terms of race, sex, age, class, and so on.
After the blind man received his sight, what did he do? He followed Jesus. This is the final stage of faith. Faith is to follow Jesus. What does it mean to follow Jesus? We call a person who follows Jesus, a Christian. The Christian means the person of Christ. A famous theologian Dietrich Bonhoeffer said that to be a Christian means to be a Christ. In this sense, a Christian is a little Jesus. The Christian is the person who tries to imitate Jesus, who follows the way of life of Jesus, who sacrifice himself to other people, who gives everything to the needed persons.
If Jesus solve our problems, and if Jesus makes us to see the right thing, What shall we do? First of all, we should really thank Jesus. Next, we should follow Jesus as did the blind man long time ago. To follow Jesus is to imitate the life of Jesus. However, it is not easy to follow Jesus. Because it requires self-sacrifice, commitment, endurance, and faithfulness. Nevertheless, we have to be loyal to Jesus since he made us see the truth of love, justice, and peace.
We are weak persons. We need the help of Jesus. So we ask Jesus to help us. When we ask Jesus to have mercy on us, he tells us to come. When Jesus calls us, we should rush to Jesus immediately and leaving everything behind. And When Jesus said to us, "What you want me to do for you?", what shall be our answer? It should be that "I want to be a real Christian. I want to imitate Jesus. I want to become a person who can love, do justice, and make peace." May God bless each of you to become a little Jesus who can make this world the kingdom of God full of love, justice, and peace. Amen.
번역본
신앙의 단계들
이원규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마가복음 10:46~52(공동번역)]
예수와 제자들이 예리고에 들렀다가 다시 길을 떠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그 때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앞 못 보는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예수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여러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그들이 소경을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하고 일러주자 소경은 겉옷을 벗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다가왔다. 예수께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예수의 말씀이 떨어지자 곧 소경은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나섰다.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은 예수님께 고침 받은 거지소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아래와 같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여리고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은 한 소경 남자가 예수님께 자신을 도와 달라고 소리치며 애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소경을 부르시고 물으셨다.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소경은 대답했습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소경을 고쳐주셨고, 그는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소경 남자의 신앙을 통해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한 신앙은 어떠해야 하며, 신앙에는 어떤 단계들이 있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 그의 열심을 배워야 합니다. 신앙은 열심입니다. 그 소경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치유의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래도 그 소경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는 매우 진지했고 열심이었습니다. 신앙이란 이런 것입니다. 신앙의 첫 단계는 열심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문제, 건강문제, 가족문제, 정신적 문제 등 수 많은 문제들에 놓여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소외되고, 무시되고, 수치를 당하고, 차별을 당합니다. 또한 고통과 섭섭함, 슬픔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험난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어디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부터의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열심히 그분께 호소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할지라도, 이 소경과 같이 계속해서 예수님께 간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 큰 소리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8의 끈질긴 과부의 비유를 보십시오. 이 말씀은 아래와 같습니다.
[공동번역]
"어떤 도시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다. 그 도시에는 어떤 과부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늘 그를 찾아가서 '저에게 억울한 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하고 졸라댔다. 오랫동안 그 여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도 결국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 구니 그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와서 못 견디게 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이 고약한 재판관의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실 것 같으냐?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들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들으십니다. 어떤 것을 해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그 일이 성취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예수님께 간구하십시오. 계속해서 간구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간구하십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요구를 들어주실 것이고,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소경이 예수님께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열심으로 간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불러 오너라."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예수님께 간구할 때, 그분은 응답하실 것입니다. "나에게 오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심으로 간구할 때 언제나 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을 부르셨습니다. 그때 그 소경은 자신의 겉옷을 던져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바로 그 소경처럼 우리는 그 분이 우리를 부르실 때 즉각적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신앙은 주저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렇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때때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또는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 소경은 어떻게 했습니까? 벌떡 일어나 예수께로 갔습니다. 그는 곧바로 응답했습니다. 신앙이란 예수님께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소경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던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의 겉옷은 소경 거지에게는 유일한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던져버립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빨리 달려가기 위해서입니다. 겉옷은 예수님의 자비를 얻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예수님께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께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돈과 권력과 명예를 버려야 합니다. 같은 교훈을 마태복음 19:16~22의 젊은 부자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예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에 대해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했습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이 말씀을 들은 젊은이는 슬퍼하며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굉장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종종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부, 명예, 지위 같은 것들 때문에 예수님의 자비를 얻는데 장해가 될 수 있습니다.
소경이 예수님께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소경은 말했습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완벽한 대답입니까! 정확한 답변이고 올바른 대답이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신앙이란 예수님께 올바른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소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돈입니까? 일입니까? 집입니까? 음식입니까? 의복입니까? 이것들 모두는 필요한 것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런 것들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나를 유명하게 해 주십시오" 소경에게는 보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는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고, 이것이 가장 좋은 대답이었던 것입니다.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우리의 소원을 구할 때, 그분은 우리들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이런 대답들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돈을 원합니다. 좋은 일자리를 원합니다. 건강을 원합니다. 진급을 원합니다. 안정을 원합니다. 행운을 원합니다." 등등. 이런 요구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의 행위는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도 아닌 것입니다. 올바른 대답은 어떤 것일까요? "너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런 대답은 어떻습니까? "이웃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슬픔에 차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원합니다."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실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아픈 사람을 돌봐주고 싶습니다." "장애인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나의 재물과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고쳐 주셨을 때, "너의 믿음이 너를 고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올바른 것을 요구하는 것은 신앙의 매우 좋은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올바르게 간구해야 합니다. 올바른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하고, 정의를 행하며, 평화를 이루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시야가 밝아진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뇌와 고통 속에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갈망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있고 외로워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직당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종, 성, 나이, 계급 등으로 차별당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소경은 시야가 밝아진 후에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마지막 단계인 것입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크리스챤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불림 받은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유명한 신학자인 디트리히트 본회퍼는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챤은 작은 예수인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이고,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며,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는 사람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올바른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 진실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는 오래전 그 소경이 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희생, 헌신, 인내, 신실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께 신실해져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사랑과 정의 평화의 진실을 알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자비를 구할 때, 그분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즉시 달려가야 하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너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말씀하실 때, 우리의 대답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진실한 크리스챤이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싶습니다. 사랑하며 정의를 행하고,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충만한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작은 예수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2006-05-30 05:08:50
- 2024년 녹색교회 선정을 위한 공모 안내
- 온 생명을 살리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문화위원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한국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에 동참하기를 바라며, 매년 환경주일(6월 첫째 주일) 연합예배를 드리고 녹색교회를 선정하여 시상해 왔습니다. 지난 2006년부터 선정된 녹색교회가 전국에 114개 교회가 되었습니다. 녹색교회는 푸른 교회 가꾸기, 초록가게, 지구온난화 억제를 위한 실천, 생명밥상 빈그릇 실천, 햇빛발전소 설치, 친환경 조명십자가 등 녹색 실천에 앞장서며 예배, 교육, 봉사, 운영 등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영역에서 창조질서 보전을 위해 노력하는 교회를 말합니다.2024년 제41회 환경주일을 맞이하여 아래와 같이 녹색교회를 공모합니다. 귀 교단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 세상을 지키고 돌보는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교회를 적극 추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4년 녹색교회 선정을 위한 공모 안내
1. 제출기간 : 2024년 4월 5일(금)까지2. 제 출 처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 greenchurch@hanmail.net / 02-711-8905*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 총회 사회봉사부*기독교대한 감리회 : 사회농어촌환경부*한국기독교장로회 : 국내선교부 내 생태공동체운동본부3. 제출서류 :- 신청서(www.kncc.or.kr 또는 www.greenchrist.org에서 다운로드 가능)4. 시 상 일 : 2024년 5월 21일(화) 환경주일 연합예배 시5. 주 최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문화위원회, 기독교환경운동연대6. 문 의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문화위원회(☎ 02-765-1136), 기독교환경운동연대(☎ 02-711-8905)* 첨 부 : 2024년 녹색교회 신청자료
2024-03-25 16: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