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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청년
- “대화마당: 여성과 전쟁 그리고 평화”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목사) 여성위원회(위원장 민숙희 사제)는 급변하는 한반도 동북아 상황 속에서 기독여성들이 평화, 통일 등 우리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대화 마당을 개최합니다. 특별히, “여성과 전쟁, 그리고 평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김엘리 교수를 초청하여 ‘군사주의와 여성 혐오, 탈분단시대의 여성 평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듣고, 기독여성들의 역할과 행동계획 논의하는 대화 시간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아 래 - 일시: 2019년 10월 1일(화) 오후 2시-5시 장소: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 주제: 군사주의와 여성 혐오, 탈분단시대의 여성 평화 강사: 김엘리 교수 (성공회대 실천여성학전공 외래교수) 소개) 여성학 박사, 주로 군사주의, 여성군인, 군대, 남성성, 평화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썼다. 주요 저서는 <탈분단의 길>(공저), <그런 남자는 없다>(공저), <페미니즘 교실>(공저),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는가>(공역), <여성, 총 앞에 서다> 가 있다. *문의: 여성위원회 부장 황보현 목사(02-745-4943)
2019-09-26 13: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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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청년
- “기독청년 정의와 평화의 순례 in 한반도” (Pilgrimage of Justice and Peace)
- 이번 2019년 8월 6-12일까지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와 NCCK 화해통일위원회에서 주최하고,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가 주관하는, “기독청년 정의와 평화의 순례 in 한반도”가 열립니다. 2013년 WCC 부산총회에서 결의된 “정의와 평화의 순례”가 여러 대륙을 거쳐서 2019년 올해 아시아 9개국에서 열립니다. 아시아 9개국 중 한반도가 유일하게 청년순례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본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15개국 등(미국, 캐나다, 스코틀랜드, 독일, 체코, 스웨덴, 브라질, 이집트, 가나, 쿠바, 필리핀, 대만, 홍콩, 일본 등) 기독청년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90여명의 기독청년들이 6박 7일 동안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이슈를 고민하며,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 대전 산내 골령골, 충북 노근리 평화공원, 그리고 파주 DMZ 순례를 통해서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시아를 넘어 세계평화에 귀한 발걸음임을 깨닫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2019-08-01 17: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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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 “청년의제프로젝트 SEASON 2 - 교회 안 청년의제 6+6”
- 청년의제프로젝트 SEASON 2 교회 안, 청년의제 6+6 들어가며 작년 청년의제프로젝트 SEASON 1를 통해서 <기독청년 7대과제>를 발표했었다. 7대 과제는 다음과 같다. 부채, 주거, 최저임금, 비정규직, 교육, 청년복지 그리고 통일이다. 7대과제들 대부분은 여전히 2018년의 중심 이슈다. 특히 주거와 최저임금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전세대 걸쳐 고민거리와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이 7대과제 포함되어 있고, 아직도 뚜렷한 해결책이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 청년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하나로 방점이 찍혀 있다. 바로 일자리 문제이다. 하지만 청년문제는 ‘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선’ 혹은 ‘면’으로 다층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이다. 청년문제의 해결이, 기승전-일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청년들이 왜, N포세대로 명명되는지, 주거-부채-비정규직-최저임금문제가 청년들의 삶을 어떻게 괴롭게 만드는지에 대한 집중적인 논쟁으로부터 구체적인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첩되어온 문제들이, 2018년을 살고 있는 20-30대에게 집중적이고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 안, 청년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전반적인 교회 체계와 구조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 등 중첩된 문제임에 틀림없으며, 그동안 교회 저질렀던 여러 가지 못된 행태들의 결과가 ‘20-30대 감소 혹은 사라짐’이라는 낙제점 성적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4월부터 9월까지 세미나와 워크샵을 통해 교회 안의 청년의제 6+6을 정리했다. 80/90년대에 태어나 IMF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20-30대들은 실패보다는 좌절을 배웠고, 평등보다는 계급을 배웠고, 도전보다는 현실을 배웠고, 비판보다는 비난을 배웠고, 정체성보다는 단계 속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정해진 목표가 있으면 있는 힘껏 달리는 법은 배웠지만, 목표달성 후 배움이나 다음단계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지칠 대로 지쳐있는 셈이다. 지친 몸은 회복할 수 있고, 다친 몸도 회복을 할 수 있지만, 그동안 다쳤던 마음은 쉽사리 회복되지 못한다. 소위 멘탈회복은 장기적인 목표와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독청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기독청년들은 마음을 잃어버렸고, 그러나 누구하나 이 상황이 심각하다는 진단보다는 대수롭지 않거나 하찮게 여기고 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일부 대형교회는 선전하는 것처럼 보이나, 중소형 교회의 청년인원은 거의 절망적이다. 인구총조사(2015년)에서도 볼 수 있듯이, 20년 사이에 개신교인 인구 약 93만명이 줄었다. 이를 1년 단위로 계산해 보면, 1년에 약 4만 6천 명 정도가 빠져나가는 셈이다. 숫자 자체가 어마어마하다. 20년 동안 큰 교단 하나가 통째로 없어진 셈이다. 또한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가 전수조사를 통해서 본 청년인원은 약 6만 명(280만명 중 6만이며, 약 2.1%이다, <2016 장청보고서>)이다. 위에서 살펴보듯이, 기독청년들은 한국사회에서 겪고 있는 청년문제에 더해서 교회의 문제까지 이중고를 겪는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청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교회의 문제는 사회 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현재를 보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칭년이 바라본 교회의 미래는 잿빛을 넘어 흑암에 휩싸여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청년이 교회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없으며, 총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렇다면 청년의 목소리나 의견 혹은 주장을 들을 수 있는 창구는 있는가? 없다. 무엇하나 미래를 생각하는 어떠한 대안도 없다. 이것이 교회의 현주소이다. 신앙의 전수는 가족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70-80년대처럼 소위 비신자가 신자로 개종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모태신앙인들은 가족에 의해 신앙이 전수되고, 이는 가족의 문화가 되고 삶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대부분의 기독청년들은 적어도 10여년 이상 교회에 출석한 이들이며(출처:『한국교회청년이 떠나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나 정보방을 교회를 통해 습득한다. 그런데 교회가 청년들을 밀쳐내고, 배제하며, 하위계급 따위로 생각한다면, 기독청년들의 멘탈은 나가기 십상이다. 때문에 기독청년들은 통상 4개월 이상 오랜 고민 끝에(『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IVP, 정재영) ‘마지막’ 선택으로 교회를 떠나는 결심을 하게 된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청년들이 등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있다. 교회를 등진다는 것은 교회라는 공동체의 필요성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다. 가나안 성도들의 출현으로 알 수 있다. 현재 가나안 성도를 약 2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더 늘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특별히 통제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갓 성인된 이들, 젊은 기독청년들은 ‘자유’가 주어지면서 선택의 기회들이 늘어나고, 자연스레 교회를 ‘부수적인’ 요소로 파악하고 멀리하게 된다. 그러나 ‘부수적인’ 선택이 된 교회가 청년들에게 여러가지 강요를 하고 있다. 사회보다 심한 위압적이고 강압적인 구조들로 청년들을 억압하고, 청년들을 여전히 ‘고등학교 4학년’정도로 이해한다. 이에 기독청년들은 교회를 떠난다. 교회를 떠난 기독청년들은 소속감을 상실한 채 떠돌아다닌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청년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에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한국교회에 다음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교회 안의 기독청년의제, ‘신앙의제’와 ‘청년의제’를 제안하는 바이다. 의제들 <신앙의제_ 기독청년이 ‘존재 자체’로 환대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신앙의 정수를 배우고, 자매형제들과 공동체를 통해 신앙을 유지하는 ‘지구력’을 얻는다. 배움과 공동체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게하는 버팀목이 된다. 청년들은 공동체, 특히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신의 신앙을 형성해간다. 이러한 신앙의 선배가 사라졌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교회는 공동체성이 상실된 신앙을 유지시키기 위해 ‘주일성수’, ‘십일조’ 등의 규율을 강조한다. 결국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수치화되고, 이것이 신앙생활의 잣대가 되어서 판가름하는 형태로 바뀐다. 출근도장 찍듯이, 마일리지 쌓듯이 교회를 오가는 것으로 신앙의 깊이를 잰다. 기독청년들이 보기에는 이질적인 구조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습에 청년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 질문하며, 기성세대 신앙형태를 비판한다. 결국 교회는 질문하는 ‘기독청년’ 자체를 환대하지 않는다. 오늘도 세상 속에서는 여러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다양한 질문과 다양한 고민, 그리고 다양한 제안은 사회를 건강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다. 교회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차단하고 더 나아가 고민 혹은 논의 자체를 막는 정서가 팽배하다. 심지어 이를 교회법을 통해 구조적으로 막기도 한다. 이에 기독청년들은 정서적, 신앙적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교회 안팎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사회와 일상에서 동떨어진 교회, 그런 교회가 말하는 복음은 공허할 뿐이다. 질문과 고민을 몰아낸 교회는 더 이상 교회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민주시민으로서의 덕목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시민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교회는 ‘상식’의 선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연령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성직자중심주의를 바탕으로 교회는 상식의 울타리를 부순다. 교회법을 어기면서 강행하는 세습 교회, 성범죄자를 제대로 치리하지 않는 교회, 혐오와 폭력을 일삼는 교회의 행태들을 살펴보면 인권의 기본소양도 찾아볼 수 없다. 배타성과 폐쇄성이라는 성(城)을 쌓은 채 외딴 섬에서 썩어가는 교회. 한국교회에게 이웃사랑과 시대적 아픔에 동참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20-30대들은 대한민국사회를 ‘헬조선’으로 명명한다. 분명한 것은 “헬조선 담론의 본질은 ‘여기서 살기 싫다’이지 ‘여기서 살기 힘들다’가”아니다(『노오력의 배신』, 창비, 조한혜정 등). 소속감을 상실한 채 무중력상태에 놓인 청년들은 ‘심정적 난민’이 되고만다. 탈교회하는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다니기 힘들다’가 아니라 ‘교회가 싫다’이다. 교회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상실한 기독청년들은 헌신을 빙자한 착취에 몸과 마음이 지쳐가다 ‘기독청년’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고, 언제든지 탈교회 할 수 있는 교회 속 ‘심정적 난민’이 된다. 이에 우리는 상식적인 교회의 첫 단추를 모습을 그려본다. 1. 기독청년이 공동체에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존재 자체’로 환대해야 한다. 2. 신앙생활에 건강한 자양분이 되는 ‘상식적인 설교’와 ‘성경공부’가 필요하다. 3. 이웃과 함께 웃고 우는 신앙(롬 12:15)이 필요하다. 4. 기복적이고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신앙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신앙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5. 세대문제를 해결하고 각기 다른 세대의 신앙을 이해하도록 돕는 지속적인 프로그램과 위계적인 것을 극복하는 친교(코이노니아)가 필요하다. 6. 다양한 신학적, 신앙적 고민에 대해 역동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청년의제_ 청년은 ‘현재’ 지도력이다> 흔히 청년들을 ‘미래’의 지도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현재’이기에, 현재를 살펴보면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현재 각 교단의 청년총대를 살펴보자. 감리교단을 제외한 나머지 교단에는 ‘청년총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0명이다. 그나마 ‘청년총대’가 있는 감리교단도 단 한 명의 총대뿐이다.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청년들의 입장에서 기독청년 전체의 목소리를 개진할 수 있는 청년은 단 한 명뿐인 셈이다. 어쩌면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도 1명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총회희 현상을 개교회에 대입해도 마찬가지이다. 교계 지도자들과 기성세대들은 말한다. “이게 다 청년들이 무관심하기 때문 아니냐!” 하지만, 현재의 교회 구조를 살펴보면 청년들이 교회운영에 관심을 갖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미래’의 잠재적인 지도력인가? 아니다. 현재의 지도력으로 활동하고, 교회의 구조에 참여해야지만, 미래의 지도력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경험’의 중요성, ‘기회’의 중요성이다. 기독청년들은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탁월한 정치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역량도 충분하다. 다만 그것을 발휘할 기회를 빼았겼을 뿐이다. 아니, ‘기회’를 가진 적조차 없다. 청년들에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껏 자신들이 기획한 여러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게 과감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공적인 자리에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과감한 시도들이 요구된다. 청년들의 이야기는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청년들의 ‘신앙이야기’, ‘그들의 목소리’, 그리고 ‘비판’을, 교계 지도자들과 기성세대들은 들어야만 한다. 또한 다양한 현실 속 질문들을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합리적인 성경공부가 필요하다. 이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온 세대가 열린 마음으로 오랜 시간 투자하며, 자신들만의 이해와 답들이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청년부가 조직된 교회는 20퍼센트 안팎(노컷뉴스, 2018년 7월 20일기사)이다. 교회 내, 청년인원을 주일예배 출석교인에 보통 3-7퍼센트로 예상한다. 유초등부 인원보다, 중고등부 인원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각 부서에는 공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교회 안에서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배공간은 둘째 치고, 청년들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청년들은 예배할 공간, 심지어 교회 안에서 쉴 곳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를 위한 ‘공간’이 없을 경우, 청년들은 교회의 소속감이 형성되기 어려움은 물론, 청년들 간에 관계조차도 형성되기 힘들다. ‘실질적’인 공간은 청년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믿음의 자매형제와 함께 신앙생활하는 경험이 쌓인다. ‘공간’은 기독청년만이 쌓을 수 있는 신앙의 경험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기존의 기독청년들의 약 80퍼센트 정도가 10년 이상 교회를 출석한 것(『한국교회 청년이 떠나고 있다』, 동연, 남기평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모태신앙이거나, 한국 개신교의 정서와 문화를 익숙하게 여기는 이들이다. 그런데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청년들마저 교회를 떠나게 된다면, 더 이상 한국교회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개교회와 각 교단이 청년들에게 과감한 투자와 실질적 예산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기독청년들이 교회에 머무른다는 보장은 희박하다. 과감한 투자는 “돈만 많이 줘라”가 아니다. 청년들이 교회의 체계와 구조에 참여하게 하고, 이들이 더 나은 지도력으로 성장할 수 있게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곧 정책적으로 때로는 강제적으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에 우리는 오늘과 내일을 위한 교회의 첫 단추를 제안한다. 1. 청년은 미래의 지도력이 아니라, ‘현재’의 지도력이다. 2. 교회 및 교단의 운영에 청년의 의견을 개진하고 투표할 수 있는 다수의 ‘청년위원’이 필요하다. 3. 기독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교회 안팎의 ‘공간’이 필요하다. 4. 청년들을 위한 실질적인 예산 집행(전체 결산 중 10-15%)이 필요하다. 5.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예배 및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6. 다양한 시대 속 질문들을 열린 마음으로 고민할 수 있는 교육 및 모임이 필요하다. 청년의제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무기력은 이 시대의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 서울연구원, 이충한)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기독청년들도 탈교회를 꿈꾸지 못하기에 ‘무기력’을 선택하는 것이리라. “과격한 무기력”, 현재 기독청년들이 교회에서 버틸 수 있는 유리한 무기이지 않을까? 학원복음화협회(이하 한복협) 에서 발행한 『청년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취업준비시간은 늘고, 아르바이트 비율도 증가했으며 개신교 비율은 떨어졌다. 약 52퍼센트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통계가 개신교, 비개신교의 구분이 없다는 점으로, 오늘날 청년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종교의 필요성은 약 28퍼센트만 답하고 있으니, 종교는 현실세계에서 해결책이 되지 않고 있다. 청년들은 ‘시간’을 저당 잡혔다. 알 수 없고, 불확실한 미래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청년’이라는 정체성은 사라지고, ‘상태’만이 남았다. 빨리 이 시기를 보내서, 지나쳐야 되는 순간이 되어버렸다. <교회 불출석> 이유도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학업, 아르바이트)’가 약 45퍼센트가 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교회란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청년의제프로젝트 SEASON 1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청년들의 의제를 제시했다. 이번 SEASON 2 도 교회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제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청년들이 ‘기독청년’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기본전제들이며,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본토대이다. 한복협에서 조사한 바, “그리스도를 영접한 계기에서 ‘스스로’의 비율이 2.2퍼센트에서 19.5퍼센트로 증가한 것을”(『청년트렌드리포트』, IVP) 볼 수 있는데, 이제는 교회가 청년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서지 못하면, 심정적 난민으로 교회를 출석하는 청년들까지 교회를 떠날지 모른다는 심각성을 하루빨리 인지해야한다. 만일 교회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청년의 감소세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교회 안 청년의제>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한국교회가 기본적인 것들을 청년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실질적으로 움직여주길 간절히 바란다. 한국교회의 청년문제는 ‘재난’상황임을 명시하길 바란다.
2018-10-02 02:42:10
- 교회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입장
- 교회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입장 - S교회 J목사의 성폭행을 규탄하며 - 우리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MeToo, #WithYou 운동을 통해 가부장사회에서 자연스런 일상처럼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들의 폭로와 함께 우리 사회에 감추어져있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위원장 인금란 목사)는 지난 3월 22일(목) “차별과 혐오 피해자를 기억하는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한국교회 여성들은 이 자리에서 직장상사에 의한 성폭행 살인사건 피해자의 어머니 증언과 이주여성들이 당한 성폭력의 실태와 함께 교회 성폭행 피해자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특히 세상과 구별되는 곳이어야 하는 교회 안에서조차 천인공노할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모두가 분노했습니다. 우리는 성폭력을 미연에 방지하고, 가해남성들의 폭력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자신의 아픈 기억을 우리에게 전한 피해 여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그녀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행동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지난 기도회 때 폭로된 S교회 J목사의 성폭력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했습니다. 교회성폭력은 대부분 위계관계 속에서 쉽게 일어납니다. 이 사건 또한 목회자-교인 간의 절대적 위계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런 관계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목회자를 영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길 정도로 목회자에게 절대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폭행 사건이 알려지게 된 후 피해자 이기자(가명) 집사는 이혼을 당했고,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외로 떠나 목회를 그만 둔 줄 알았던 J목사는 7-8년 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목회활동을 버젓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참담한 현실 앞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통탄합니다.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은 폭력과 위협보다는 유인과 위계가 더 많이 작용하고, 마치 친부에 의한 성폭력과 같아서 피해여성이 과감하게 그 피해사실을 밝히기도 어렵습니다. 또한, 목회자가 교회 내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피해를 주장해도 교회는 오히려 목회자를 옹호하며, 피해자를 교회의 평안을 해치는 자로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J목사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대신에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 2차 가해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17년이 지난 일이지만 다시는 이와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스러운 강단을 더럽히는 가해자 J목사가 더 이상 목회를 못하도록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또한 J목사는 노회의 면직처분을 겸허히 수용하여 S교회에서 반드시 사퇴하고, 목회자의 양심에 그 책임을 물어 죄 값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피해자 이기자씨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 NCCK 여성위원회는 교회 성폭력 근절과 이 사건의 빠른 해결을 위해 모든 교회가 함께 해줄 것을 요청하며 다음과 같이 밝히는 바입니다. 1. 백석대신 교단은 교단 내 성폭행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조취를 취하라! 재발방지를 위한 방안을 강구하라! 2. J목사 소속 노회는 J목사를 면직처분에 한 것에 그치지 말고 S교회에서 더 이상 목회하지 못하도록 행정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라! 3. S교회는 J목사의 성폭행 사건을 인정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일을 당장 중단하라! 4. J목사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라! 우리는 아직 밝히지 못한 교회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편에 서서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일상생활의 복귀를 위해 함께 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를 위해 NCCK 여성위원회를 중심으로 상담기관, 법률기관, 공동행동이 가능한 단위들을 중심으로 연대체를 구성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운동을 지속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 성폭력의 재발방지를 위해 교회법 제정, 제도적 장치 마련, 전담기구 설치 등을 위해 협력할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2018년 4월 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2018-04-03 1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