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CC

검색
미분류브라질 편
브라질 편
만약 이 길이, 만약 이 길이 나의 것이라면, 나는 굶주림에게 함께 산책하자고 명하고,모든 길모퉁이마다 분명하게 쓸 것이다. “모든 어린이에게 반드시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만약 이 길이, 만약 이 길이 나의 것이라면, 착취자를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명령하고,모든 길모퉁이에서 이렇게 외칠 것이다. “우리 안에 더 이상 폭력은 없다!”만약 이 길이, 만약 이 길이 나의 것이라면, 나는 고독의 숲에서 눈물을 흘리고,새로운 대초원에서 이렇게 외칠 것이다. “이 곳에서 모든 어린이들은 안전하다!” <다니엘 비에이라 라모스(Daniel Vieira Ramos), 브라질> 브라질 연방 공화국 (Federative Republic of Brazil) 통계 인구 : 1억 8천 4백만 명정부형태 : 다당제 연방공화제 언어 : 포르투갈어종교 : 가톨릭 73.6%, 개신교 15.4%, 소수 토착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브라질 기독교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 of Brazil), 브라질 성공회(Episcopal Anglican Church of Brazil), 브라질 복음주의 루터고백교회(Evangelical Church of Lutheran Confession in Brazil), 브라질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in Brazil), 브라질 연합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 of Brazil) 역사 브라질은 대서양에 접해있으며 칠레와 에콰도르를 제외한 남아메리카의 모든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이며 남아메리카에서는 대륙의 오분의 일을 차지하는 가장 큰 나라이다. 아름다운 해변을 가지고 있으며, 장대한 아마존 강과 대륙의 절반에 이르는 울창한 우림지대를 가지고 있다. 또한 막대한 양의 약품의 재료들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밀림과 산악지대와 고원지대, 그리고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대도시들이 있다. 1500년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하기 전까지 브라질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원주민 부족들로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지역이었다.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한 후에 원주민들은 점점 더 대륙 안쪽으로 들어갔다. 포르투갈의 침략과 식민지 과정을 거치면서 브라질 원주민들은 대량학살과 전염병으로 인하여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브라질은 1549부터 1822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었다. 이 시기에 노예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아프리카의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끌려온 수많은 노예들이 브라질로 유입되었다. 포르투갈은 1530년경부터 인디언들과 노예들을 강제로 설탕 산업에 투입하였다. 토지들이 정리되고 삼림을 파괴하여 사탕수수 농장으로 전환하였다. 1558년 투피남바(Tupinamba) 인디언들이 봉기하였다. 그러나 원시적인 활과 화살로 무장한 인디언들은 칼과 총으로 무장한 포르투갈 군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포르투갈은 포로로 사로잡은 모든 인디언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인구가 크게 줄어든 지역을 포르투갈 거주민들에게 넘겨주어 노예들을 동원한 농업을 지원하였다. 주로 해안지역에서 벌어진 노예시장에 나온 노예들의 운명은 참혹한 것이었다. 가족들은 뿔뿔이 찢어졌고, 농장으로 팔려간 어린이들과 여인들은 휴일도 없이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남자들은 하루 종일,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말 그대로 죽도록 일해야 했으나 대가는 겨우 생존할 수 있는 만큼의 양식이었다. 또한 그들은 모두 풍토병에 시달렸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은 3백 5십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노예들을 잡아왔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숫자였다. 예수회 신부들은 이러한 야만의 시대에 브라질에 상륙하여 인디언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을 보호할 수 있을 길을 모색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야만적인 실상을 왕에게 직접 보고하였다. 포르투갈 정복자들은 노예들이 야만적이며 포르투갈 왕실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고하였다. 당시 법에 의하면 전쟁포로는 노예로 삼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 당국은 자신들의 설탕산업에 투입할 노예들을 확보하기 위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전쟁을 일으켰다. 1750년 브라질에서, 그리고 1868년 주변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예수회 사제들이 추방되었다. 남미의 인디언들이 노예로 전락하면서 그들의 생활방식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오늘날 많은 인디언 부족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거나 멸종되었다. 브라질은 1988년에 이르러 비로소 인디언들의 생존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하였다. 비록 계속적으로 선거가 실시되었고, 정부 요직에 민간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는 했지만 브라질의 공화국 체제가 성립된 1889년부터 1986년까지 실질적으로 이 나라를 지배한 세력은 군부였다. 도탄에 빠진 브라질 국민들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을 때 군부는 격렬하게 억압하였다. 1968년부터 1986년까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인사들에 대한 납치와 고문, 암살이 자행되었고, 빈민들을 위해 일하거나 군사독재의 억압에 저항하는 단체들에 대한 공격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막대한 광물과 농업 자원을 가진 잠재적인 부국이며 근대화와 산업화의 길을 가고 있는 브라질은 수십 년 동안 인플레이션과 실업, 부정부패와 막대한 외채 등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 농촌과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의 대규모 빈민굴에 모여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별히 군부가 통치하던 시기에 이들의 삶은 처절한 것이었다.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탄압받는 국민들과 연대하는 용감한 주교들과 사제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편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기도와 성경공부, 부패하고 잔인한 군부와 경제적 지도자들에 대한 저항을 지향하는 단위로 기독교 기초공동체(Christian basic communities) 운동을 시작하였다. 1986년, 드디어 군부통치가 종식되고, 1988년, 새로운 헌법이 공포되었다. 1989년,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가 실시되었으나, 불행하게도 부패한 구정치인 페르난도 콜로 디멜로(Fernando Collor de Mello)가 승리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하면서 사회주의자인 루이스 이나시아 룰라 다실바(Luiz Inacia Lula da Silva)가 디멜로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된 후로 브라질의 정치경제 상황은 안정되어가고 있다. 비록 폭력과 인권유린, 경찰의 과잉진압과 고문이 계속되고 있지만. 2002년 1월에는 야당의 지도자가 피살되었다. 매년 정치인들과 인종적 소수자들, 거리의 청소년들을 비롯한 수백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1994년 경제발전을 위한 레알 플랜(Real Plan, 브라질의 새로운 화폐의 명칭을 따라 지어진 이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르헨티나의 금융위기와 국내적인 부패로 인하여 브라질은 독자적인 금융 불안정을 겪었다. 2002년 국제금융시장에서 2천 5백억 달러의 외채를 들여왔고, 국가 파산의 위험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회복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브라질에서 가장 큰 기독교회로 대략 전체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가톨릭교회는 해방신학에 뿌리를 두고 강력한 평신도 리더쉽을 강조한 기초공동체 운동을 지원하였다. 기초공동체 운동은 정치, 사회적 실천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역할을 지원하고 강화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또한 오순절 성령운동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브라질 교회협의회는 가톨릭교회 외에도 개혁교회, 루터교회, 성공회와 감리교를 포함한 6개의 개신교회가 서로 함께 협력하여 구성되어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 브라질의 교회들, 로마가톨릭주교구에 속한 지도자들과 교인들, 브라질 기독교 협의회의 사역, 오순절 교회와 복음주의 교회의 선교, 그리고 거리와 빈민굴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과 정치경제적 정의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아마존 우림의 아름다움과 생물학적 다양성, 앵무새들과 황금색 갈기를 가진 사자들, 타마린(Tamarin, 사나운 원숭이들)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페이조아다(Feijoada, 콩과 소고기, 돼지고기를 넣어 끓인 브라질의 전통 요리: 역주), 강한 커피, 쌀, 콩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춤추는 카니발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을 위하여, 특별히 발전과 소유의 확대라는 명분으로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거리에서 살아가고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수십만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특별히 그들이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정치적 폭력과 고문, 경찰의 과잉진압이 종식되고, 사람들의 복지와 안전을 책임진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토지를 빼앗기고 자신과 아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농부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이 널리 퍼져 다른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유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주님, 주님의 창조세계가 낭비되고 있지 않습니까?많은 나무들이 곧풍부한 열매들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샘들은 사방으로 물을 퍼트립니다. 태양빛은 눈이 부시도록 발하고 있습니다.주님의 풍성함으로 만지사제 마음이 한없이 넓어지게 하옵소서.주님의 장대함으로 제가 악해지는 것을 막아주옵소서. 모든 것을 풍성하게 내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저도 아낌없이 줄 수 있게 하옵소서...하나님의 자녀로써 말입니다. <돔 헬더 까마라(Dom Helder Camara), 브라질> (2) 생명의 하나님,우리의 손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만질 수 있도록,새롭고 다르게 만질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손이 만질 수 있게 하옵소서. 만남의 손길,깨달음의 손길,소망의 손길,감동의 손길이 되게 하옵소서.많은 사람들이 진부한 몸짓을 보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때 몸짓을 멈춥니다.많은 사람들이 가식적인 태도에 대한 진심 없는 양해를 구합니다. 우리를 담대하게 하사공동체의 새로운 이름을 주옵소서.서로에게 새로운 영향을 주시고,오래된 관계의 방식을 깨트리고, 서로 가까워지는 참되고 의미 있는 길을 가르쳐 주소서. <에르네소토 바로스 까르도소(Ernesto Barros Cardoso), 브라질> (3) 주님, 사망이 아니라 탄생의 아픔으로 신음하는 창조세계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현재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저항하는 울음소리기에 고통 속에서 미래를 위한 언약으로 보게 하옵소서. 의의 싸움 속에서 정의의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보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부활의 길을 보게 하시고, 고통 속에서 기쁨의 씨앗을 보게 하옵소서. <루벰 알베스(Rubem Alves), 브라질> (4) 포르탈레자(Fortaleza)의 강변에서우리는 앉아 콜레라로 숨진 이들을 생각하며 울었네.그곳에 사는 사람들 속에서 슬픔을 보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노래하지 않았네.그들은 기쁘게 살기 원했지만,마실 물도 없고 건강하지 않은 그들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길은 없었네.그러한 고통 한가운데서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만일 우리가 주님을 잊어버린다면 우리 역시 목마를 것이리.만일 우리가 마실 물과 기쁨과 건강을 되찾지 못하고,주님을 잊어버릴 때 우리의 입술이 마르게 되기를.주님, 우리의 인도자들을 심판하여 주옵소서.그들은 태만과 욕심으로 오랫동안 우리를 기만해왔습니다.그러나 포르탈레자와가뭄과 콜레라로 고통당하는 쎄아라(Ceara)에 있는 주님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이 땅이 말라버리지 않게 하옵소서.<나폴레아오 마르꼬스 멘데스(Napoleao Marcos Mendes), 브라질> (5) 주님, 당신의 제단에서 풍성한 물이 흘러넘쳐이 땅을 뒤덮게 하옵소서.우리를 물댄 동산과 같게 하시고,돌보아주시고생명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오, 이 물들을 보내 주옵소서.맑고 힘차게 흘러,권세있는 자들을 물리치고우리의 백성들이 걸어갈 길들을 깨끗케 하셔서, 영원한 기쁨 가운데주님의 말씀과 생명과 자유와그리고 부활을노래하며 기뻐하게 하옵소서!주님, 주님의 제단에서 풍성한 물이 흘러넘쳐,모든 부스러기들을 깨끗이 치우고이 세계를 위하여 행동하고 봉사하고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주님, 주님의 제단에서 풍성한 물이 흘러넘쳐,생명의 불을 다시 밝혀주시고,새로운 창조세계를 보게 하시고,주님의 사랑을실천하게 하옵소서. <에르네소토 바로스 까르도소(Ernesto Barros Cardoso), 브라질> (6) 밭의 주님,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예배합니다.우리가 주님을 축복합니다.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태초부터주님의 사명에 참여하도록 우리에게 소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을 예배합니다.주님의 모든 창조물들이 주님 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을 축복합니다.우리가 수고하여 거둔 것들이 사실은 주님의 은혜의 열매들이기 때문입니다.밭의 주님, 우리가 주님 발 앞에 엎드려주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보내소서.”이제 겸손히 주님께 구합니다.우리에게 소명의 확신을 주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주의 주님이시고,밭의 주님이신 주여.(루이스 까를로스 라모스(Luis Carlos Ramos), 브라질> (7) 주님,주님의 말씀이성령의 거룩한 숨결을 통하여우리의 말들 가운데 있기를,우리의 육체들 가운데 성육신하기를 원합니다.(루이스 까를로스 라모스(Luis Carlos Ramos), 브라질> (8) 성만찬의 기도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떡 다섯 덩이를 축복하사광야에서 굶주린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것과 같이오늘 이 떡을 축복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이 떡을 먹는 모든 이들을 거룩하게 하옵소서.이 떡이 항상 풍족하게 하시고,이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풍족하게 하옵소서. 이 떡이 모든 만물을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시는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성부와 생명을 주시는 성령과 함께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께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루이스 까를로스 라모스(Luis Carlos Ramos), 브라질> (9) 하나님을 섬기며,한 여인이 주님 발 앞에 몸을 숙이고 섬길 때,비누나 물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향수와 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여인이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인이 자신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봉사가 단순히 도와주고 연대하는 것만이 아니라친교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여인의 모습을 통하여,주님은 우리가 서로를 섬기는 법을 보여주셨습니다.우리의 우월함이나 능력, 혹은 힘이 아니라겸손과 부족함과 연약으로 섬기는 것이고,우리가 보다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거나,보다 능력이 있거나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주님의 발과 주님의 모든 사랑 앞에 엎드려 씻어드리는 것 외에우리에게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종으로 만들어 주옵소서.섬기는 삶이 주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루스마리나 깜포스 가르시아(Lusmarina Campos Garcia), 브라질> (10) 하나님, 주님의 이름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간절히 바라는 이름입니다. 만일 나무들이 기도할 수 있다면,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꽃의 형상을 가진 주님의 영을 구할 것입니다.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주님께 있다고 찬양할 것입니다.주님은 나비들 중에 한 나비가 되실 것입니다. 가장 빛나는 색깔을 가진가장 아름다운 나비가 되고,이 우주는 주님의 정원이 될 것입니다.추위에 떠는 사람들은 주님을 “태양”이라고 부릅니다.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주님을 “생수의 강”이라고 부릅니다.고아들은 주님의 얼굴을 “엄마”의 얼굴이라고 말합니다.가난한 사람들은 주님을 “소망의 떡”이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소망의 이름이신 하나님, 주님은 우리의 소망과 소원만큼 많은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주님은 시(詩)이고, 꿈이고, 신비입니다.<루벰 알베스(Rubem Alves), 브라질>
2010-06-22 03:37:56
미분류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편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편
“나의 조국 캄보디아가 대량학살과 폭력으로 상처입었는데, 이 나라에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꿈꾸며 이 세계에 기도를 요청합니다. 나는 캄보디아가 숲의 나라, 깨끗한 공기와 생명으로 가득한 우림, 용서와 자비로 가득한 나라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캄보디아는 경계를 넘어서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베트남, 태국, 그리고 우리들과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만드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나는 캄보디아가 사랑받는 나라, 상처를 치유 받고 전쟁과 증오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되는 것을 꿈꿉니다. 서로 나누고, 서로 이해하며, 서로에게서 배우려는 마음을 가진 한 가족과 같은 민족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우리가 모든 지혜들과 경험들을 하나로 모아 우리의 지구가 하나의 가정으로, 우리가 한 민족으로, 다양성 속에서 하나로 연합하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차스 피어사스(Chath Piersath)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편   캄보디아 왕국 (Kingdom of Cambodia)평화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기본 요소와 똑같다. 평화가 없는 인생은 거의 살만한 가치가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사실 어떤 사람에게는 평화가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많이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화 그럴 때 나는 수동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평화 그럴 때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기본적으로 내면의 안전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이웃과 공동체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고, 진보와 발전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내면의 안전감 없이 우리는 진보를 위하여 일할 수 없다. <도 아웅산 수지(Daw Aung San Suu Kyi)>통계인구 : 1,380만 명정부형태 : 입헌군주제 하의 다당제 민주주의언어 : 크메르어(Khmer)문자해독율 : 남성 80%, 여성 57%종교 : 불교 90% 이상, 이슬람 약 4-5%, 기독교 약 1-2%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 역사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서, 북쪽으로는 태국, 동쪽과 남쪽으로는 라오스와 베트남, 남서쪽으로 태국 만에 접해있다. 1975년의 대량 학살을 포함해서 심각하게 고통을 겪었던 캄보디아의 현대사는 그 이전 시기에 수세기동안의 평화 시기보다 베트남 전쟁의 발발로 인한 캄보디아(혹은 캄푸치아)의 피할 수 없는 참혹한 시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6세기 경 크메르인으로 알려진 민족이 이 지역에 제국을 건설하였고, 여러 세기동안 존립했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프랑스가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캄보디아는 1953년에 독립을 얻었고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기를 지냈지만 인접한 베트남에서 전쟁이 일어나면서 점차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고, 캄보디아에도 크메르 루즈라고 불리는 공산주의 반군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1970년의 쿠데타로 우익성향의 반(反) 베트남 성향 정권이 들어섰고, 캄보디아 내에 거주하던 수천 명의 베트남인들이 학살당했다. 계속된 내전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와 전국적인 파괴가 초래되었다.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 (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통계인구 : 580만 명정부형태 : 인민공화국언어 : 라오스어문자해독율: 남성 76%, 여성 53%종교 : 불교 58%, 전통 원주민 종교 34%, 기독교 2%, 이슬람 1%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역사리오스는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남아시아 반도의 내륙 국가이다. 북쪽으로 미얀마와 중국, 동쪽으로 베트남, 남쪽으로 캄보디아, 서쪽으로 태국에 접해있다.   1975년, 크메르 루즈가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전국적인 통치력을 장악하였고, 극단적인 사회 개혁이 시작되었다. 전 국민들이 도시지역에서 쫓겨나 강제 노역으로 농장에서 일하도록 지방으로 추방당했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사망하였다. 전문직에 있거나 교육을 받은 이들이 거의 멸절되었다: 교수와 교사들 중 75%와 대학생들 중 96%가 살해당했다. 크메르 루즈가 집권했던 4년 동안 적어도 3백만 명의 국민이 죽었다. 크메르 루즈는 모든 종교를 박멸하고자 하였다. 90%에 달하는 불교 승려들과 비구니들이 살해당했고,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기독교인들이 죽었다. 1978년, 캄푸치아 반군의 지원을 받으며 베트남군대가 침략하였고, 크메르 루즈를 외곽지역으로 몰아냈고, 그 때부터 13년간 내전이 계속되었다. 1993년 유엔의 감시 하에 선거가 치러지면서 어느 정도 외형적인 안정을 회복하였고, 1990년대 중반부터 크메르 루즈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쇠퇴되었다. 1998년 전국적인 선거를 통하여 들어선 연립정부는 정치적 안정과 크메르 루즈 군의 항복을 이끌어 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캄보디아에 기독교가 들어왔다. 20세기 들어와 몇 개의 독립교회들이 세워졌으며, 신사도교회(New Apostolic Church)가 현재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다. 14세기 들어와 처음으로 하나의 정부 아래 통합되었다. 1713년 내부적인 갈등으로 라오스는 세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나라는 외부의 침략에 송두리째 노출되었다. 독립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싸워왔지만, 결국 1893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인도차이나 공산당이 결성되면서 다시 독립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인도차이나 공산당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자치권 운동들을 이끌었다. 1947년 라오스는 입헌군주국이 되었고, 1949년 프랑스령 내에서 제한적 자치권을 갖는 나라가 되었다. 라오스의 독립은 1954년 제네바에서 열린 인도차이나 반도의 평화에 대한 제네바 조약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 조약에도 불구하고 라오스 정부는 오랫동안 불안정한 상태이었다. 1954년부터 1975년 동안의 독립을 유지하려는 운동 과정에서 막대한 삼림과 재산의 파괴가 전국적인 차원에서 일어났다. 전투의 주요 양상은 인접한 몇 나라들의 상황과 유사했다. 이들의 전투는 본질적으로 농촌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와 민주적 자본주의의 싸움이었다. 미국이 개입한 베트남전에서 라오스는 미국에 연합하였다. 그로 인해 1975년 미군이 동남아시아에서 완전히 철수하자 베트남이 라오스로 침략하여 6세기 동안 계속되어온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산당이 이끄는 라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라오스는 베트남과 공산주의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으며, 이후 점차적으로 국가 통제 자본주의 형태로 바뀌어갔고, 1997년에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에 가입하였다.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저개발국들 중 하나이다. 현재 라오스에는 철도 시설이 없으며, 전국적으로 포장된 도로는 겨우 2천 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적 기반시설의 부재로 인해 재난에 대비하는 시설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이며, 특별히 일상화된 홍수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 라오스의 일인당 평균 소득은 하루 1달러 미만이다. 전국적으로 묻혀있는 수백만 개의 터지지 않은 지뢰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대표적인 상처이다. 이 지뢰들은 아직도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농장지역과 삼림 속에 묻혀있다. 또한 인근의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웃 태국의 성매매 산업으로 팔려가는 여성들과 아동들의 납치와 인신매매는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라오스 기독교는 17세기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모든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요한 선교단체들은 태국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1950년을 기점으로 가톨릭교회 선교사들은 선교의 중심을 산악지역의 주민들로 바꾸었다. 첫 개신교 선교사들은 스위스 형제단(Swiss Brethren) 소속의 선교사들로 1902년에 도착한 이들은 성서를 라오스어로 번역하였다. 1957년 이래로 해외선교사협의회(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를 중심으로 개신교 선교가 강화되어 왔다. 개신교회들 중에서 라오스 복음교회(Gospel Church of Laos)가 가장 성공적인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1970년대 기간 중 공산당 정부는 모든 가톨릭 학교들과 고아원들, 기숙사와 교회들을 국유화하였고 모든 종교교육을 폐지하였다.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은 강제로 추방되었다. 현행법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정부가 모든 공적인 모임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모든 모임은 신고해야 한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친서구파 혹은 체제전복을 바라는 세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푸른 하늘과 빛나는 태양, 그리고 아이들의 눈동자와 같은 많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이러한 생의 경이로움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경이로운 대상들은 바로 우리 안에, 우리 주위에,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만약 우리가 평화롭지 않다면, 우리는 행복과 평화를 이웃들과 나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와 함께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말이지요. 만약 우리가 평화롭고, 만약 우리가 행복하다면, 우리는 미소지을 수 있고, 꽃과 같이 활짝 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과 전체 사회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우리의 평화로 인해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틱 낫 한(Thich Nhat Hahn)> 통계인구 : 8,220만 명정부형태 : 사회주의 공화국언어 : 베트남어문자해독율 : 남성 94%, 여성 90%종교 : 불교 55%, 가톨릭 5%, 개신교인 18만 명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 역사베트남은 남지나해(South China Sea)에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중국, 서쪽으로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의 기원은 BC 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독립된 단일왕조가 세워진 것은 AD 1400년이었다. 19세기에 프랑스는 베트남과 그 외의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일본의 침공을 받았고,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진행하는 중에 둘로 나뉘었다. 남쪽에는 프랑스의 식민정부가 다시 들어섰으나, 북쪽에는 호치민이 독립을 선언하며 세운 베트남 민주주의 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이 주도하는 민족주의 계열이 장악하였다. 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싼 수십 년간의 전쟁은, 일단 1954년 프랑스가 철수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 후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1961년 미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하여 참전하였고, 1973년 휴전협정 때까지 막대한 군사력을 투입하였다. 1975년, 남베트남은 북베트남 군대에 의해 멸망하였다. 폭력은 계속되어서 베트남은 인접한 캄보디아를 침공하였으나 중국이 개입하면서 퇴각하였다. 전잰 기간 동안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베트남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교류도 거부하였다. 때문에 베트남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나라로 지내야 했다. 1986년 “도이 모이”(경제 개혁)라는 정책이 시작되면서 개인과 집단, 국가의 재산권을 혼합하는 경제정책이 장려되었다. 1994년 국제적인 교류가 재개되었고,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 관계가 회복되었다.   1992년 독자적인 헌법을 제정하였고, 헌법에 따라 5년마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선거를 통하여 뽑힌 의원들이 단원제 의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현재는 베트남 공산당이 유일한 정당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대략 1,300백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고, 아직도 2백만 명이 국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쟁 중 미군이 사용한 환경파괴적인 고엽제로 인하여 베트남 외곽의 광대한 삼림지역 황폐화되었다. 한참 전투가 치열하던 시기에는 전 국토의 2/3에 해당하는 숲이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불법적인 목재 채취와 화전농의 확대로 환경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불교와 유교, 도교는 처음 베트남에 뿌리를 내린 종교들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이 종교들과 함께 여러 종교가 혼합된 민족 민중종교들이다. 1580년 로마 가톨릭교회의 프랑스 선교사들을 통해 처음으로 기독교가 소개되었다. 이들은 여러 세기에 걸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고, 뿌리내리는데 성공하였다.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여전히 베트남의 지배적인 기독교이며, 특별히 남부지역에서 그렇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후 베트남이 분단되는 시기에 많은 가톨릭 교인들이 남쪽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이다. 적지만 개신교회와 복음주의 교회, 등록되지 않은 가정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도 있다. 전쟁의 혼란기 중에 모든 종교 단체들은 많은 고난을 당했다. 1966년 불교인들은 자유선거와 정통성을 가진 정부의 구성을 주장하면서 남베트남 정부를 전복하고자 여러 번 시도했고, 이에 대한 남베트남 정부와 미국의 극심한 탄압이 이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모든 종교단체들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일부 기독교인은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심지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정기적인 모임은 대부분 사라졌고 교회들은 파괴되었다.   함께 드리는 기도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   감사기도 제목● 지뢰 제거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을 보살피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오랜 망명 기간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와 복음을 전하고 새롭게 교회를 시작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내전과 집단학살 혹은 홍수와 자연재해로 인하여 슬퍼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20세기 중엽에 일어난 처참한 내전과 집단학살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고난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자기 나라에서 납치되어 강제로 성산업에 투입되는 여성들과 아동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동남아시아에 경제정의가 세워지고, 부유한 외국에 진 빚을 줄이거나 탕감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캄보디아의 어린이들이 전쟁을 연습하는 대신 평화를 알고, 함께 노는 것을 즐기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들 나라의 국토가 다시 푸르게 되어 나무들이 상처받지 않고 열매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하루 미화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 (1) 우리는 이 세계가 더 이상의 지뢰 생산을 중단할 것을 간구합니다. 우리는 이 세계가 더 이상의 지뢰 매설을 중단할 것을 간구합니다. 우리는 지뢰제거를 위한 기금모금을 간구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가정, 우리의 마을, 우리의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2)폐회바른 길을 따라 사는 것 - 그것이 가장 향기로운 맛을 냅니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제 영혼을 배부르게 합니다. 금 주전자에 인생을 걸지 않고  - 주님의 선한 이름을 지키게 하소서. 돌 판이 닳아 없어지는 것이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것처럼 - 정의도 오래 계속될 것입니다.진리를 향한 신실함을 지키며 영원히 놓지 않게 하소서.덕을 자라게 하소서 - 영영히 쇠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리이다. (3)오, 주님, 우리는 모든 종류의 차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억압을 당하는, 우리의 형제자매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인권을 부정당하는 이들을 위하여,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을 위하여,특별히 고문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잠시라도 그들과 함께 하게 하옵소서.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언제나 그들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4)이어서 드리는 기도들하나님, 모든 슬픔과 절망 속에서주님을 아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캄보디아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격차가 너무나 큰 나라입니다. 부패한 이들은 오직 자신들과 이기적인 탐욕 밖에 모릅니다. 제발, 하나님,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이 나라의 사회적 필요를 증언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옵소서. (5)청년들모든 인류의 하나님, 캄보디아의 청년들을 위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그들은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들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자신의 영혼을 세계무역기구(WTO)에 팔았습니다. 우리의 청년들과 아이들은 그들의 개인주의적인 정책들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제발, 하나님, 캄보디아의 청년을 위하여 울부짖사오니,우리의 미래를 위한 실제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안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우리에게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옵소서.이곳의 모든 구조가 부패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곳의 교사들과 교육 기관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이러한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주님의 은혜로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옵소서. (6)환경공기는 독성으로 가득 차 있고, 강들과 호수들은 사체에서 나오는 냄새와 악취를 옮기고 있습니다.우리의 숲에 있는 나무들은 우리의 환경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오로지 더 많은 부를 원하는 부유한 사업가들의 손에 의해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주님께서 간섭해주시기를 구합니다. 오, 자연은 우리 어머니 격인데 우리가 자연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합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선언할 수 있게 하시고자연이 주는 풍부한 자원의 모든 유익들을 누리게 하소서.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물도 없이 살아가는데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댐들을 만들고 있습니다.제발, 인류의 어머니격인 자연을 위해,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우리의 환경과 자연 자원들을 수확하려고만 하고 자연의 숭고함을 벌거벗기려는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옵소서.
2010-06-22 03:12:46
미분류중국, 홍콩, 마카오 편
중국, 홍콩, 마카오 편
“우리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사랑, 혹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모든 창조물의 배후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은 존재에 대한 신비들을 알 수 있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가르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심을 알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의 능력의 근원을 발견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랑의 우주, 사랑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인류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상호 사랑의 원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의지와 자유를 부수거나 세뇌시키는 강압적이거나 무원칙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지는 사랑의 의지, 친교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바로 이 삼위일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나의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팅 주교(Bishop K. H. Ting)>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 중국, 홍콩, 마카오 편   중국 인민 공화국 (People"s Republic of China)중국어로 평화는 “조화”를 의미하는 “화”(和)이다. 이 말은 “벼, 쌀”을 뜻하는 “화”(禾)와 “입”을 뜻하는 “구”(口)의 두 글자가 합쳐진 형태이다. 모든 입에 충분한 쌀(밥)이 들어가 아무도 굶주리지 않을 때 진정한 평화가 있다는 뜻이다. 통계인구: 13억 명정부형태: 인민공화국언어: 중국어(만다린)문자해독률: 남성 92%, 여성 77%종교: 불교도 1억 명, 도교도 3천만 명, 이슬람교도 2천만 명, 기독교인 4천만-6천만 명, 기타 유교도가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중국 기독교 협회(China Christian Council) 역사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중국 문명은 오랫동안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해왔다.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기록은 주전 2천년 경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하(夏) 왕조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오늘의 중국 영토를 다스리는 여러 왕조들이 출현하였고, 그들 중 일부는 몇 백 년 동안 다스리기도 하였다. 14세기부터 17세기 사이에 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16세기에 포르투갈 출신의 선교사들이 마카오에 정착하였고, 18세기에 영국의 정복자들이 홍콩에 도착하였다. 19세기 들어와 계속된 내전으로 중국은 약화되었고, 1911년 공화국을 설립한 민족주의자들에 의해서 마지막 왕조가 멸망하였다. 그러나 그 후 몇 십 년 동안 중국은 일본에 의해 침략을 당했고, 다시 내전으로 갈라졌다. 1949년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이 민족주의자들에게 승리하면서, 오늘의 중국 체제의 출발을 선포하였다. (많은 민족주의적인 지도자들이 타이완으로 이주하여 중국과 대립하는 정부를 세웠다. 이것이 오늘까지 중국의 긴장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1949년부터 정치, 문화, 경제 분야에서 다양한 “개혁”운동이 진행되면서 때때로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1958년에 시작된 대약진운동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약 2천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하였다. 1966년부터 1976년 사이에 일어난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수백만 명이 사상적인 이유로 사형당하고, 학교들이 폐교되었으며, 사유재산이 몰수되었고, 그 이상의 사람들이 유배되거나 협동농장으로 이주되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였다. 1977년 중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가진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는 공산주의적인 통치이념과 조직을 고수하면서 한편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를 시장 원리와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개방하였다. 1987년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들이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정부군에 의해서 살상되었다. 공식적으로 국가는 무신론 입장이지만, 도교와 불교는 중국의 전통 종교이며, 유교가 중국 사회의 근본적인 철학적 세계관을 제공하고 있다. 7세기 경 네스토리우스파 선교사들이 중국에 처음 기독교를 가지고 왔으나 그들의 선교는 2세기 만에 중단되었다. 그 후 16세기에 찾아온 로마 가톨릭 교회 소속의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세기에 들어선 이후의 일이었다. 1949년 인민공화국이 설립되면서 외국에서 자금 지원을 받게 모든 교회들과 기구들은 정부에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하였고,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을 추방하였고, 1954년부터 개신교회는 삼자애국운동(Three Self Patriotic Movement/ TSPM-“자치(自治,self-goverment), 자양(自養, self-support), 자전(自傳, self-propagation)”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교회는 “애국이라는 전반적인 범주와 원칙” 안에서 일하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 조직이라는 사실을 정부에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이것은 교회 내적으로, 또 해외의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삼자운동은 중국 사회 속에서 교회의 생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가톨릭 삼자협회(Catholic Patriotic Association)는, 1957년에 첫 전국 총회를 열었는데, 지하교회가 바티칸의 지도를 충실하게 따르게 되면서 분열을 경험하였던 로마 가톨릭 교회의 대응체이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모든 교회와 기독교 계통의 대학들이 폐쇄되었고, 교회는 지하로 들어갔다.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중국공산당(Communist Party of China/ CPP)은 이전의 정책들에 대한 일련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국민들에게 보다 큰 자유를 약속하였고 종교적인 자유를 허용되었다. 이러한 정책 수정으로 말미암아 1990년 공산당의 공식 문서에서 조차 사용된 표현인 기독교 열풍이라 불린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현재 중국에는 6,000여개의 교회가 공식적으로 있고, 1,500교회의 집회소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로마 가톨릭과 독립하여 계속 존재하고 있다. 문화혁명 기간 동안 교회는 큰 박해를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박해는 교회들이 연합을 이루는 큰 계기가 되었다. 새롭게 시작된 교회들은 교파주의를 지양하면서, 1980년에 중국 기독교 협의회(China Christian Council: CCC)로 연합하였는데, 이 중국 기독교 협의회는 현재 교회 협의회와 하나의 개신교회 교단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다. 삼자애국운동(TSPM)과 중국 기독교협의회(CCC)는 하나이다. 중국 기독교협의회는 1991년에 세계 교회협의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중국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다섯 개의 종교는 다음과 같다: 도교, 불교, 이슬람교, 개신교, 천주교. 오늘 날 기독교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독교인들이 공개적으로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중국의 교회 지도자들은 중국 내 종교 인구가 1억 이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개신교인들의 수는 상당히 편차가 커서 천 만에서 팔천 만까지 추산하고 있다. 가장 믿을만한 숫자는 대략 천 육백만 명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기독교를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 중의 하나는 애덕기금회(Amity Foundation)인데, 1984년에 설립되었고, 대체로 기독교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애덕기금회는 의료봉사와 농촌지역의 발전을 위한 많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애덕기금회는 중국 교회들이 삼자교회 원칙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사회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외국교회의 지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기금회는 지금까지 3,000만권 이상의 성서를 출판하였다.   홍콩 특별 행정구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e Region)통계인구 : 6백 80만 명정부형태 : 중국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언어 : 중국어(광동어) 문자해독률 : 85%종교 : 대부분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인 10%, 소수의 이슬람교인, 힌두교인, 시크교도, 유대교도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홍콩기독교교회협의회(중국) (Hong Kong Council of the Church of Christ in China)역사중국과 남중국해에 접하고 있는 홍콩은 중국이 영국에게 양도한 1841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의 보호령 아래 있었다. 1997년 영국은 홍콩섬과 카오룽(Kowloon) 반도, 그리고 내륙에 속한 지역을 중국에 반환하였다. 그때부터 홍콩 시민들과 교회들은 특별행정구(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SAR) 치하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정책의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지만 홍콩의 일상적인 생활은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종교적인 자유 역시 기본적으로 이전과 같이 보장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홍콩에서 기독교인은 약 10퍼센트이다.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가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다른 주요 종교들로는 불교, 도교, 이슬람교, 유교 등이며, 어떤 종교도 다수를 차지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전통적인 목회 영역인 복음화와 교회 성장 부분이 계속 커져가고 있다. 많은 교회들과 기독교 조직들이 또한 중국 본토에 있는 파트너 교회들과 기관들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 들어 많은 교회들이 홍콩의 빈곤과 교육 문제에 대하여 새롭게 참여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홍콩 특별 행정구역이 아시아 경제적 혼란 속에서 홍콩의 경제적인 성장을 지속하기 위하여 노력하면 할수록 홍콩 주민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또한 홍콩 지역의 학교들 절반 이상을 후원하면서 교육 개혁에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마카오 특별 행정구 (Macau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통계인구: 44만 9천 명정부형태: 중국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언어: 포르투갈어, 중국어(광동어) 문자해독률: 남성 96%, 여성 91%종교: 대부분 불교도와 가톨릭 교인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없음 역사마카오는 중국에 이어진 작은 반도와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6세기 중엽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 마카오는 유럽국가가 극동지역에 세운 첫 번째 식민지였다.17세기 들어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면서 가장 퇴폐적인 도시로 이름을 떨친 마카오는, 1987년 포르투갈 법이 적용되는 중국 영토가 되었고, 1999년 중국에 반환되어 외교권과 국방권을 제외한 전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특별 행정구역이 되었다. 1600년대 들어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동서양의 문화적 접촉 속에서 마카오에 처음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이곳은 선교사업의 입구 역할을 했고, 로마 가톨릭와 개신교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에 들어온 중요한 선교사들 중에는 예수회 소속의 마테오 릿치(Mateo Ricci)와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가 있다. 성 바울 성당(the Ruins of St. Paul)은 마카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명소로 예수회 선교사들의 수고와 비전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오늘 날 마카오 기독교인의 대부분은 로마 가톨릭 교인이다. 개신교 선교사 로버드 모리슨(Robert Morrison)이 1807년에 마카오에 도착했고, 19세기 중엽에 미국 남침례교회(American Southern Baptist)와 다른 선교사 단체와 개인들이 뒤 따랐다. 마카오의 개신교 공돛체는 매우 연약하며, 그래서 정부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지역의 목회 지도자는 거의 없다. 그 결과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어느 정도 협력하고 있지만, 상호 이해의 부족으로 에큐메니칼 노력들은 자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감사기도 제목● 오랜 기간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교회와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치앙마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CCA)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비참한 현실 속에서 인권을 위하여 일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가정교회에서 모이는 기독교인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교회의 성장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중국 기독교 협의회(CCC), 애덕기금회, 홍콩 교회협의회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고대의 중국 도자기와 옥으로 만든 작품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한문과 중국 붓글씨를 빛나게 하는 먹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북경 오리 요리, 달콤하고 신 양념들과 보양식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가난하고 곤궁에 처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내전과 집단학살 혹은 홍수와 자연재해로 인하여 슬퍼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20세기 중엽에 일어난 처참한 내전과 집단학살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고난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자기 나라에서 납치되어 강제로 성산업에 투입되는 여성들과 아동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동남아시아에 경제정의가 세워지고, 부유한 외국에 진 빚을 줄이거나 탕감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캄보디아의 어린이들이 전쟁을 연습하는 대신 평화를 알고, 함께 노는 것을 즐기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들 나라의 국토가 다시 푸르게 되어 나무들이 상처받지 않고 열매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하루 미화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쉼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 속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쉴 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하시는 주님의 섭리에 감사드립니다. 이 끊임없는 분주함 속에서 우리의 힘과 우리의 눈이 일상의 악함 속에 빠지려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심히 일하여 우리의 몸과 자부심을 지킬 수 있는일용할 양식을 얻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중국 본토의 운명과 다시 연합하는 가운데떨리는 소망과 두려운 기쁨으로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님, 우리를 하나 되게 하옵소서.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모든 이들이 알게 하소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 우리를 강하게 하옵소서.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오늘을 살게 하셔서더 이상 지나간 과거가 미래를 붙잡지 않게 하옵소서.주님의 뜻이 이 도시에서 이루어지이다.주님께서 주님의 나라의 굳건한 표지를 만들어 가고 계신 이 나라와 국민들로 인하여 기뻐하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2)오, 하나님, 지난해에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선하심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주님께 기도하오니우리를 새로운 창조물로 만들어 주옵소서.예수님의 형상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뜻과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오고 오는 날들과 달들 속에서우리가 더욱 많은 사람들과 주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나누게 하옵소서. (3)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많은 이들을 위하여 고향으로 가오니,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말씀이 되게 하셔서,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우리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하옵소서.(4)주님께서 사랑의 근원이시니, 저는 강물이 되어 흐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를 통하여 흐르게 하소서. 그 흐름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파이프로 된 수로들이 물을 나르지만 모든 밭을 적시지 못합니다. 거대한 양자강은 수 천 에이커의 땅에 물을 공급합니다.오, 주님, 저의 마음을 넓히셔서 더욱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5)오 하나님, 빛 되신 아버지, 주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시고,은혜의 창조자이시며 이 세계를 지으신 분이시며,모든 지식의 샘이시고,모든 지혜의 보석이시며, 경건의 스승이시며, 순전한 기도의 선생님이시고, 영혼의 친절히 도우시는 분입니다:주님은 주님을 신뢰하는 영혼들의 연약함에천사들도 흠모하는 귀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주님, 바로 지금 주님의 성령의 오심을 통하여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눈을 밝게 하시고우리의 몸과 영혼과 마음이 속속들이 거룩하게 하옵소서.(6)오 하나님, 사람들이 오늘을 맞이할 때에,잃어버린 사람들,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진 사람들, 알지 못하는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 조국과 집이 없는 사람들, 어디로 돌아가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을 찾게 하옵소서. 하나님, 언제나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찾으셔서암탉이 병아리들 품듯이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옵소서.오 하나님, 사람들이 오늘을 맞이할 때에,굶주림과 절만 가운데 있는,군중들과 공허함 속에 있는,몸은 젖었지만 목말라하는온 세계의 난민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서게 하옵소서. 정의를 부르짖는 가운데그들의 희망과 힘이 되게 하시고, 이 세계가 그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귀울이게 하옵소서.오 하나님, 사람들이 오늘을 맞이할 때에,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자기의 고향에서 쫓겨나온 그들이,그들의 역사가 존중받고, 그들의 은사와 은혜를 기뻐하며,그들의 공포가 사라지는 새로운 고향을 발견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그들의 고향이 되게 하시고,우리가 마음을 열어 그들을 환영하게 하옵소서.오 하나님, 사람들이 오늘을 맞이할 때에,그들이 전쟁과 억압으로부터 도망하지 않아도 되는,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조국과 집을 갖고 있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곳에서우리에게 힘을 주는 노래를 불러주시고,우리를 위하여 새로운 세계의 빛나는 그림을 칠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난민의 삶을 잘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7)오 주님, 우리 하나님, 주님의 교회를 깨우쳐 주셔서주님의 교회가 어디에 있든지교회의 사명을 잃지 않고 신실하게 주님만 섬길 수 있도록 하옵소서.주님의 교회에 지혜와 용기를 주셔서, 모든 장벽을 무너트리게 하시고,모든 인류가 다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8)오, 주 예수님, 저와 함께 거하여 주옵소서.저의 외로움을 물리쳐 주옵소서.아무도 저의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만이 모든 곳에 계시고,언제든지 함께 하시는,제가 사랑하는 유일하신 친구이며 구세주이십니다.길고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캄캄한 길을 갈 때제 손을 붙잡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다른 이들을 저를 잊어버릴 때,주님 영원히 저를 기억하여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9)주님,주님께선는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우리에게 깨어있는 마음을 주시고, 미혹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그리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10)주님, 당신은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이시니, 우리가 누구에게 돌아가리이까? 주님, 당신 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이가 없습니다.우리가 주님께 나아갑니다.(11)아버지 같으신 하나님, 그 허리에서 제가 태어났고,어머니 같으신 하나님, 그 가슴에 제가 매달렸고,주께서 따스하게 보호하시고, 먹여 주셨습니다. 나를 안아주시고 친절하게 인도하셨습니다;저의 길을 언제나 지켜봐 주시니자주 주님의 팔에 의지합니다.저 하늘만큼 크고 넓은 주님의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2010-06-22 03:29:53
미분류미얀마, 태국 편
미얀마, 태국 편
“나는 지금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고난 받고 있는 수십만 명 중의 하나입니다. 언젠가 우리의 고통은 끝날 것입니다. 그래요,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고통이 인간성과 존엄성을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울고 있습니다."<"버마이슈"의 실무자, 태국 (Burma Issues Staff, Thailand)> 미얀마, 태국 편   미얀마 연방 (Union of Miyanmar, 버마(Burma)로도 알려져 있음)평화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기본 요소와 똑같다. 평화가 없는 인생은 거의 살만한 가치가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사실 어떤 사람에게는 평화가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많이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화 그럴 때 나는 수동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평화 그럴 때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기본적으로 내면의 안전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이웃과 공동체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고, 진보와 발전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내면의 안전감 없이 우리는 진보를 위하여 일할 수 없다. <도 아웅산 수지(Daw Aung San Suu Kyi)>통계인구 : 4,270만 명정부형태 : 군부 통치언어 : 버마어, 영어; 또한 샨어(Shan), 카렌어(Karen), 쿠키-친어(Kuki-Chin), 중국어와 100개가 넘는 부언어들 문자해독률 : 83%종교 : 불교도 73%, 부족 종교 13%, 기독교인 8% (대부분 개신교), 이슬람교인 2%, 힌두교 인 2%, 유교도 1%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미얀마지역 교회(Church of the Province of Myanmar), 마라복음교회(Mara Evangelical Church), 북 미얀마감리교회(Methodist Church-Upper Myanmar), 미얀마 침례교회(Myanmar Baptist Convention) 역사 미얀마(예전의 버마)는 1989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동안 권위적인 독재 때문에 많은 나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국토의 생김새에 따라 긴 꼬리를 가진 고양이 모습의 나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미얀마는 인도양에 접한 동남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 인도, 방글라데시와 접경하고 있고, 북쪽과 동쪽으로 중국에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태국, 라오스와 접하고 있다. 그 초기 역사를 보면 미얀마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밀려온 인도와 티벳, 중국의 이주자들이 정착을 했고, 여기에 더하여 몬족(Mon), 퓨족(Pyu), 미얀마족(Burman), 샨족(Shan), 카친족(Kachin), 카렌족(Karen)이 정착을 했다. 오늘날 인종적으로 보면 전 인구의 2/3 이상이 버마족이며, 다른 부족들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있는 소수민족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1826년에 영국인들이 미얀마에 상륙하였고,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이 도시 지역에 정착하였다. 1886년에 영국에 의해 미얀마가 인도에 병합되었는데, 1937년에 별도의 식민지로 분리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에 점령당했다. 미얀마는 1948년에 독립국이 되었다. 2차 대전 이후의 미얀마 역사는 폭력과 민족 간 갈등으로 얼룩져있다. 1962년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되었고, 1966년부터 1978년까지 국가통합을 위하여 외부세계와 단절되었다. 외부세계와 다시 교류를 시작한 것이 1978년이었다. 네윈(1962-88) 장군의 정부가 군사정부에 의해 전복되었다. 1990년 민주적인 선거가 실행되었으나 군사정부는 정부이양을 거부하고 전국적으로 1,000여 명의 민주주의 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하였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아웅산 수지(Daw Aung San Suu Kyi)인데, 그녀는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1991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89년부터 1995년까지, 그리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가택연금을 당했다. 미얀마는 냉전 체제 붕괴 이후 대표적인 인권 침해 국가로 알려져 왔다. 헤로인과 아편의 유통과 보급이 군사정부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군사정부는 광범위한 보안조직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 조직은 구속, 추방, 가택 수색, 살인을 자행하는 방식으로 반대자들을 처벌을 하고 있다. 미얀마에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조직은 없으며, 여성들과 소녀들이 강간당하고, 강요된 노동이나 매매춘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인근 국가들에 성 상품으로 인신매매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대략 인구의 2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와 HIV) 환자의 급격한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군부는 군사력과 강제 노동에 동원하기 위하여 수천 명의 소년들을 납치하고 있다. 외국으로 이민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지만, 주변 국가들 특별히 태국에 미얀마로부터 온 난민들이 많이 있으며, 국내에는 100만에서 200만 명이 유랑민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불교가 미얀마에서 가장 지배적인 종교이며, 민간의 애니미즘(animism/ 물활론 * 역주 모든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과 낫(Nat)으로 알려진 영(靈)들에 대한 믿음과 뒤섞여 있다. 미얀마를 처음 찾은 기독교인들은 10세기의 네스토리아파 선교사들이었다. 로마 가톨릭 첫 선교사들은 1544년에 이 지역에 왔고, 19세기 초에 침례교회 몇몇 선교사들이 미국으로부터 왔다. 오늘날 기독교는 소수민족들, 특별히 카렌족 사이에 가장 활동적이다. 현재 미얀마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기독교 교단은 미얀마 침례교회(Myanmar Baptist Convention)와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미얀마 교회협의회(Myanmar Council of Churches)가 에큐메니칼한 교회 조직인데, 이는 1914년에 설립된 버마지역협의회(Regional Council for Burma)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협의회는 인도기독교협의회(National Christian Council of India)의 한 부분이었다. 태국 왕국 (Kingdom of Thailand) 통계인구 : 6,500만 명정부형태 : 입헌군주제언어 : 태국어; 또한 영어, 라오스어, 중국어, 말레이어, 크메르어, 베트남어와 40여 부족 언어 문자해독률 : 93%종교 : 불교 94%, 이슬람교 5%, 중국 민간종교 1%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태국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in Thailand)역사태국은 인도양과 남중국해의 태국만 양쪽에 해안으로 두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다. 태국은 서쪽과 북쪽으로 미얀마, 남쪽으로 말레이시아, 남쪽과 동쪽으로 캄보디아, 동쪽으로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39년까지 샴(Siam)으로 알려져 있었던 태국은 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경험을 전혀 하지 않은 국가이다. 인종적인 기원은 2천 년 전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전국적인 통치기반을 갖춘 왕국의 역사는 1238년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조의 수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후 계속된 왕조들의 역사는 현대까지 이어졌지만, 20세기 중엽 이후 군부 쿠데타가 여러번 일어났고, 군부가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95년에 새로운 민주정부가 선출되었고, 군부가 차지할 수 있는 의회 의석이 제한되었다. 태국의 전통문화는 국가, 왕조, 불교 그리고 최근까지 태국인들의 삶의 방식인 농경문화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오늘 날에는 기술문명과 세속화가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고, 부패와 범죄가 창궐하고 있다. 불법적인 마약 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부지역에는 양귀비 재배도 늘어나고 있다. 농촌과 인근 지역의 여성들과 아동들에 대한 매매와 납치가 성행하고 있고, 섹스산업을 강요받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태국의 섹스산업이 국내총생산량의 14%가 차지하고 있으며, 10대 소녀들의 20퍼센트 정도가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 또한 태국은 아시아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DIS) 환자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에서 온 많은 수의 난민들이 있다. 환경적으로 삼림 훼손과 홍수가 심각한 문제인데 특별히 북부지역이 심각하다. 이웃 미얀마와 마찬가지로 네스토리아파 선교사들이 10세기경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찾아왔다.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들이 17세기경에 도착했고, 로마 가톨릭교회가 계속 태국 기독교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 1820년대와 1830년대에 유럽과 미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왔다. 태국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in Thailand)가 1934년에 이들 미국 침례교회(American Baptist), 회중교회(Congregational), 그리스도 제자교회(Disciples of Christ)와 장로교 선교회들의 선교의 결과로 설립되었고, 태국의 개신교 기독교인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함께 드리는 기도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 감사기도 제목● 미얀마에서 군사정권과 만족 간 갈등을 비폭력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들어오는 난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태국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아동들에 대한 착취, 특별히 성매매 대상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미얀마 교회협의회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난초들, 칭 찹(ching Chops)(손 심벌즈 금관악기와 같이 생긴 태국의 악기), 배 모양의 하프, 징들, 대나무 피리들, 형형색색의 비단들, 우아한 무희들, 친절한 정신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60개의 줄로 움직이는 버마의 꼭두각시 인형극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오래된 장벽들을 제거하고 공동의 희망과 평화를 발견하고 있는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미얀마의 아동들, 특별히 군인, 고아, 난민이 된 아동들 혹은 노동과 매매춘을 강요받는 아동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불법적으로 구속된 사람들 그리고 물리적, 정신적으로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여성들과 소녀들, 그리고 성폭행과 강제노동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자신들의 풍성한 유산과 언어, 문화들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민족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1-2백만 명의 내륙지역에 떠돌고 있는 유랑민과 난민들을 위하여, 그래서 그들이 필요한 것들: 음식, 의복, 의약품, 담요, 교육과 안전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인도적인 도움과 지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나누는 일에 축복과 보호와 능력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산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차별받고 있는 미얀마의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쓰나미로 파괴된 후에 그들의 삶을 재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부패, 범죄, 마약 사용과 섹스관광이 근절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에이즈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 (1) 힘껏 노력하고, 일함에도 불구하고 영양실조와 질병에 걸린 자녀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전 세계의 여성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합니다. 이 여인들이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들을 배울 기회를 가지도록 기도합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고 돌보지 못하는 여인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중보기도 합니다. 전 세계의 모든 정부와 직장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개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이 세상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 또 모든 사람들이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는 일에 사용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열려진 눈과 마음을 가지고 살 필요가 있는 정부와 기업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전쟁으로 자신들의 삶과 가족들, 가정이 파괴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합니다.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옵소서.전쟁으로 참혹하게 파괴된 잿더미 속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보다 널리 알려지기를, 정의를 실천하는 우리의 헌신이 지치지 않기를, 우리의 자비와 연민이 더욱 강력하고 당당하게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존재의 깊은 내면에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제자들이 구했던 것처럼 저희도 구합니다: “주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2)지극히 높으신 우리 주 하나님, 우리에게 귀한 복음을 들려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친절하심에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불리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를 진실한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복,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시고 수정과 같이 맑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아직도 주님의 존귀한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고, 주님의 빛을 보지 못한 우리의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도우셔서 주님의 일하심에 우리가 자신을 더욱 헌신하게 하시옵고, 또 주님의 빛을 더욱 비출 수 있도록 하옵소서. 우리가 이기적인 되고, 주님의 빛을 흐리게 만드는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위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3)영원하신 하나님, 주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주님의 나라가 하늘에 있는 것처럼 땅에도 임하옵소서.주님의 이름은 위대하고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주님 안에서 우리의 믿음이 성취되어집니다. 사랑의 하나님, 경외와 겸손함으로 주님의 임재하심 앞에 나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영원히 끝나지 않고, 강력하고 자비로우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임재하심을 알고 있기에우리의 마음을 찬양 가운데 높여드립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 고백하건데 우리는 길 잃은 양입니다.우리를 주님의 치유의 물가로 인도하셔서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이 무거운 짐을 벗고 쉼을 얻게 하시고, 우리가 매일 경험하고 있는 혼란과 압박감 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하옵소서. 매일의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인해우리가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음을 느낄 때에 우리에게 용기를 주옵소서. 오,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위로하여 주옵소서.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외아들의 일하심과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주님께서는 우리가 원수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용서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고,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셔서,모든 사람들을 위한 화해라고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가지고 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오,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우리가 혼돈과 아픔 속에서 진리를 분별하게 하시고,평화와 조화의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4)주님! 저의 눈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교회 안에 있는 주님의 사랑만이 아니라또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주님의 사랑을.주님!권력 체제들 때문에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저의 입에게 진리를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주님! 저의 배에게 굶주린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주님! 저의 손에게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자신들의 삶을 위하여땀 흘리며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주님, 저의 발에게 걷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5)사랑하는 주님,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주님께서 나사로를 위해 슬퍼하신 것을 보면서 주님께서 환란 중에 있는 저희들을 위해서도 슬퍼하시는 것을 압니다.주님께서 우리의 길에 빛을 비추어 주시니우리가 주님과 함께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우리가 여러 문제들과 폭력, 차별과 어려움에 직면할 때우리는 종종 주님께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마리아처럼 우리가 말합니다. “만약 주님이 여가에 계셨더라면...”우리의 연약함과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우리가 어떤 처지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주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어둠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우리를 주님 곁에 늘 가깝게 거하게 하셔서 주님께서 사람들이 걷기를 원하시는 그 길을 그들이 볼 수 있도록 비춰주는 빛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는 일들로 주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오며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6)오, 하나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주님이 위대하신 명령과 위대하신 위임을 만드신 이요 근원이십니다. 오늘과 이 새로운 천년시대에 복음화의 비전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가난한 사람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 유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신학생들을 이렇게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 그 신학생들이 주님의 명령과 위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가 세상의 빛이요,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게 하옵소서.화려하고, 장엄한 우리의 모든 신앙 전통 안에서 우리가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겸손하신 갈릴리인을 사람들이 만나게 하옵소서. (7)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사랑과 능력과, 정의의 근원,특별히 지극히 적은 자를,우리 가운데서 가장 고난을 당하고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 하나님, 창조의 주님,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허락하사인간의 곤궁함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게 하옵소서.우리에게 용기와 순종을 허락하사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순종하게 하옵소서.주님, 우리를 도우셔서소망의 유일한 이유가 되시고우리가 그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하나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증언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8)오늘 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이 땅의 모든 좋은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손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성함이 우리 안에서 균등하게 나눠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족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필사적으로 그들의 아이들을 먹이고, 돌봐야 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종종 착취의 희생물들이 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일들을 마음에 둔다고만 해도 우리들 각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오늘 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2010-06-22 03:10:32
(소식)1910 세계선교사대회 백주년 기념대회 소식
  press@edinburgh2010.org Contact: +44(0)7942 461373 +44 (0)7954 711415 "다름의 가치" 관련정보: 03 6월 2010   예배딘버러 2010 개회예배 - 참가자들이 십자가 위에 돌을 올리고 있다. 백파이프 연주로 시작된 개회예배에 이어 다나 R. 로버트 박사의 기조강연과 세션토론이 있었던 대회 둘째날은 다양한 언어, 다양한 생각, 다양한 상황들을 들을 수 있는 날이었다.  개회예배의 설교는 울라프 트베이트 세계교회협의회(WCC)총무와 제프 터니클리프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무가 맡았다. 이번 대회의 일치를 향한 강한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었다. 울라프 트베이트 WCC총무는 “선교와 화합은 하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함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부름, 즉 다양한 교파의 참가자들이 지닌  ‘다름’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말했다. 트베이트에 이어 제프 터니클리프 WEA총무는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면서 "세상 어느 곳도 선교가 종료된 곳은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모두에게 세상 모든 곳에 복음을 온전히 전하라"고 하셨다면서 "이 부르심은 세대를 이어 계속된"다고 했다. “아직 복음을 전혀 접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유럽처럼 재(再)개종이 필요한 곳도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개신교, 정교회, 천주교,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 소속 교단들은 개회예배 이후, 진일보된 신학적 대화를 전개할 것을 기약했고 이번 대회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깊이 하고 서로 기도하고 협력하며 모두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선교 토대 만들기’, ‘선교협력’, ‘타 종파 지역에서의 선교’의 세가지 주제로 나누어 진행된 세션토론에서는 하나같이 "난민, 이주자, 여성, 어린아이, 청년 층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닌 선교의 주체"라는 의견이 나왔다.       에딘버러2010은 1910세계선교사대회100주년을 기념하고 21세기 선교 방향을 모색하는 행사로써, 2010년 6월 2일부터 6일까지 에딘버러에서 진행된다. "이 시대 그리스도를 증거하라"는 주제 아래 60개국 300여명의 서로다른 교회의 참가자가 초대되었다.  
2010-06-07 03:51:42
Tensions in the Korean Peninsula...WCC G.S
Expression of Concern and Solidarity on Tensions in the Korean Peninsula Letter to the Churches and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South Korea Dear sisters and brothers in Christ, It is with deep concern that I write this to you as the people of the Korean peninsula face, yet again, another precarious situation, that is, the recent tragedy of the sinking of the Cheonan in which forty-six sailors lost their lives. We pray that the Lord almighty will console the bereaved families and friends and give them hope and strength to withstand the challenges ahead. While we join with the people and the churches in South Korea in their national grief, we also share your common concern that the unfolding events have endangered the prospects for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also in the entire North East Asia region. The recent events confirm the fears expressed earlier by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that the Korean peninsula remains a flashpoint in the North East Asia region and has the potential to ignite a major conflagration, unles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especially the six-party talk nations, try to ensure lasting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Experience has shown us that violence can never be the way to settle disputes either on the Korean peninsula or anywhere else. Therefore,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reiterates its strong condemnation of all sorts of violence. As you know that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has been playing a pioneering role in initiating and supporting peace,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is regard the WCC has been accompanying the Korean churches for more than a quarter of a century, ever since the Tozanso process was initiated by the Churche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Affairs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The Tsuen Wan / Hong Kong Consultation in 2009 to commemorate the 25th anniversary of the Tozanso process strongly affirmed that “"the gospel of Jesus Christ commits Christians to work against evil, injustice and suffering in all its forms, and to pray and work for God’"s justice, peace and unity in the world. The Korean people have suffered for too long from their forced division. They are one people, one culture, one nation, yet they remain divided. Justice demands that they be reunited in peace and in common commitment to one another.”"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ppreciates and commends the role of the Korean churches in their efforts to continue and strengthen their advocacy for a peaceful resolution even at this time of crisis. In this context, we welcome the statement of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which calls upon all who wield powers to remember that “"even in this difficult time, authorities should not give up an effort of mutual dialogue and of opening a way of reconciliation and co-existence on the Korean peninsula.”" We also take this opportunity to reiterate the global ecumenical family’"s commitment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As the Tsuen Wan Communiqué stated, the need for today is to encourage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allow space and time for direct negotiation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towards a lessening of tensions between them and towards peace,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The WCC, as it has in the past, will continue to extend its solidarity to the people of Korea, North and South, and accompany them in their quest for peace,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of Korea. The present situation presents the churches and Christians in Korea with enormous challenges. As the churches in Korea continue to be engaged in a mission of peace and reconciliation, I assure WCC’"s member constituencies in Korea that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ill continue to pray and accompany you and work together with all of you while you patiently persevere in your struggles for justice, peace,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May the Prince of Peace further empower and equip us in our journey together. Yours in Christ, Rev. Dr Olav Fykse Tveit General Secretary
2010-06-04 01:26:06
(한글)천안함과 관련한 한반도 진장 국면에 즈음한 세계교회협의회 총무 메시지
한반도 긴장국면에 즈음하여 WCC의 연대를 표하며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와 교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최근 46명 장병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의 비극으로 또다시 중차대한 상황에 직면한 한국 국민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전능하신 주께서 유가족과 친구들을 위로하시고 앞에 놓인 도전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희망과 힘을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우리는 국가적 슬픔에 처해있는 한국의 국민들과 교회들과 마음을 같이하며, 진상이 공개된 사건들이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역의 평화를 위한 전망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공동된 인식을 합니다. 최근 사건들은 예전에 세계교회협의회가 이미 발표한 바 있는, 즉 한반도가 또다시 동북아시아에서 발화점으로 남아있어, 만일 국제사회, 특히 6자회담 당사국들이 한반도에서의 지속적인 평화를 확보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중대 재앙으로 치닫을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두려움을 확인합니다.   폭력으로는 한반도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분쟁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어떤 종류의 폭력에 대해서든 지속적으로 강력히 비난합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세계교회협의회는 그동안 한반도 평화, 화해, 통일을 지지하며 이를 위한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점에서 세계교회협의회 국제분과 위원회가 주도했던 도잔소 프로세스 이래도 25년 이상을 한국교회와 함께 해왔습니다.   도잔소프로세스 25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2009년 홍콩 추엔완 국제협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악, 불의, 모든 종류의 고통에 대항해 열심히 일해야 하며, 하나님의 정의, 평화, 세계에서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일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한국의 국민들이 강요된 분단 속에서 너무도 오랜 동안 고통을 받아왔다는 것, 그들은 한 백성이며, 하나의 문화, 한 민족임에도 아직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그들이 평화와 서로를 향한 공동된 헌신의 마음으로 통일이 이루는 것이 바로 정의다”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지금 이 위기의 국면에서 평화적 노력을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는 한국교회들의 역할을 감사히 여기며 지지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성명서를 환영하며, 특히 무력을 휘두르는 모든 이들에게 “이 어려운 시점에서 당국들은 상호 대화를 위한 노력과 한반도에서의 화해와 공존을 위한 길을 열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상기시킨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또한 지금이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헌신을 다시한번 다짐해야 할 시점임을 강조합니다. 추엔완 커뮤니케에 표현되었듯이, 오늘 필요한 것은 “한반도에서의 평화, 화해, 통일을 위해 그리고 남북의 긴장을 풀기 위하여 국제사회는 남북 사이에 직접적인 협상을 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시간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예전에 그래왔듯이, 남과 북의 국민들과 지속적으로 연대의 틀을 놓지 않을 것이며, 평화와 화해, 통일을 향한 그들의 열정과 함께 할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은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막중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평화와 화해의 선교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온 것처럼, 여러분들이 또한 정의와 평화, 화해, 통일을 위한 투쟁을 계속할 때, 세계교회협의회가 여러분들과 함께 기도하고 옆에서 함께 일할 것임을 한국의 WCC 회원교회들에게 확실하게 말합니다.   평화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여정에 힘주시고 함께 하실 것을 기원합니다.   Rev. Dr Olav Fykse Tveit General Secretary
2010-06-04 04:12:21
신학위원회세계인과 함께 드리는 공동기도문-앙골라, 모잠비크
세계인과 함께 드리는 공동기도문-앙골라, 모잠비크
세계인이 함께 드리는 공동기도문, 『하나님 손에』(In God"s Hands) 2010년 6월 둘째 주일 앙골라, 모잠비크 편 이 나라는 전쟁으로 모든 길들이 사라졌다. 길 위에는 하이에나들만 어슬렁거리고 재와 먼지 냄새만 진동하고 있다. 시골마을마다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슬픔과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있다. 그들의 피부는 더럽다. 너무나 더러워서 그들에게서 밝은 모습이나 오랫동안 잊혀졌던 용기를 찾아볼 길이 없다. 이곳에서 하늘의 뜻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 주는 교훈에 순응한 채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졌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길은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난 몇 세기들보다 더욱 굴종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불타버린 자동차 잔해를 따라 약탈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사방이 열대의 대초원으로 둘러싸인 땅에서 오직 바오밥나무 만이 이 세계의 꽃들이 떨어지는 것을 묵상하고 있다. 한 노인과 한 소년이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그들은 마치 걷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처럼 흔들리며 걷고 있다. 그들은 출발지도, 목적지도 없이, 특별히 여행을 연기해야 할 이유도 없이 가고 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해 걷고 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이미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그들은, 그 무엇보다, 평화로운 땅에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여행하고 있다. 그들은 신발도 없이 길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노인의 이름은 투아히르(Tuahir)이다. 그는 몸의 모든 양분이 빠져나간 것처럼 깡말랐다. 젊은이의 이름은 무이딩가(Muidinga)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쫓겨나 흩어질 때부터 줄곧 노인의 앞에서 걷고 있다. 그가 조금 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쪽발이 다른 발보다 조금 늦게 끌리며 가고 있다. 최근에 앓았던 병 때문에 그는 죽음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갔었다. 노인은 어린 시절부터 소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쳤다. 걷는 법, 말하는 법, 그리고 생각하는 법을. 무이딩가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유년기는 생존의 갈급함으로 인하여 더욱 빠르게 지나고 있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는 노래도 하고, 꿈 이야기로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고독과 친해지면서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두 여행자가 함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절망이 주는 무력감과 지친 몸으로 여행하고 있다. <미아 카우토(Mia Couto), 모잠비크> 앙골라 공화국(Republic of Angola) 통계 인구 : 1천 5백 50만 명 정부형태 : 다당제 공화제 언어 : 포르투갈어 문자해독률 : 남자 83%, 여자 54% 종교 : 로마 가톨릭 68%, 개신교 20%, 부족종교 12%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앙골라 복음주의 침례교회(Evangelical Baptist Church of Angola), 앙골라 복음주의 회중교회(Evangelical Congregational Church of Angola), 앙골라 복음주의 오순절 선교회(Evangelical Pentecostal Mission of Angola), 앙골라 복음주의 개혁교회(Evangelical Reformed Church of Angola) 역사 앙골라는 남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콩고 공화국, 동쪽으로 잠비아, 남쪽으로 나미비아와 접하고 있다. 대서양 해안 북쪽에 위치한 카빈다(Cabinda) 주는 콩고공화국에 둘러싸여 있는 앙골라의 영토이다. 앙골라는 많은 부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다. 1483년, 스페인 탐험가 디에고 카오(Diego Cao)가 지금의 앙골라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통로를 개척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1504년, 푸르투갈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방문하여 므분두(Mbundu)와 교역을 하며 루안다(Luanda) 평원에서 평화롭게 살며 큰 번영을 누렸다. 그들은 후에 유럽인들에 의해 쫓겨났다. 1520년, 포르투갈 왕의 명령을 받은 선교사가 방문하여 원주민들에게 선교하였다. 앙골라 기독교의 초기 원주민 지도자 느골라(Ngola)는 원주민들을 대표하여 선택의 기로에 섰다. 즉, 개종하고 기독교인으로 삶든지 아니면 멀리 끌려가 노예로 살 것인지의 선택을 요구받았다. 1575년, 포르투갈인들은 루안다(현재의 앙골라 수도)에 항구를 건설하였고, 노예무역은 가장 수익이 높은 수출품목이 되었다. 3백만 명에 이르는 앙골라인들이 노예로 해외에 팔려갔는데, 대부분 브라질로 팔려갔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을 식민지가 아닌 포르투갈령으로 지배했는데, 특별히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그랬다. 그러나 1910년 이후 포르투갈 본국이 대표적인 독재국가가 되면서 해외의 영토들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강력한 언론통제가 실시되고, 비밀경찰들이 도처에서 사람들을 감시하였으며, 정적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뒤따랐다. 모든 앙골라 출신 흑인들은 강제노동에 끌려 나갔고, 지극히 소수의 흑인들이 교육을 받았다. 앙골라가 독립할 당시 전국에 걸쳐 단지 68명의 흑인만이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이차세계대전이 끝나자 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앙골라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작은 규모였지만 참혹한 부족 간 전쟁이 촉발되었다. 정권을 잡으려 했던 세 개의 중요한 부족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소련이나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앙골라 인민해방운동(Popular Movement for the Liberation of Angola, MPLA)은 쿠바와 다른 공산국가의 지원을 받는 마르크스주의 그룹이었다. 앙골라 민족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FNLA)은 복쪽에 본부를 둔 독립운동단체로 미국과 자이레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조나스 사빔비(Jonas Sabimbi)가 이끌던 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맹(National Union for the Total Independence of Angola, UNITA)은 앙골라 남부에 본부를 두고 남아프리카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이들 독립운동 단체들과의 전투를 위하여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였다. 1975년,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앙골라는 독립을 맞이했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독재자 안토니오 살라자르(Antonio Salzar)가 군부 쿠데타로 갑작스럽게 축출되었다. 포르투갈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앙골라를 떠났다. 그들은 들고 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약탈하고, 정치적으로 진공상태(이 때문에 앙골라는 정치적으로 포르투갈이 행사하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요소들로 가득했다)를 만들어놓고 앙골라를 떠났다. 이제 앙골라는 빈곤의 상처와 인구의 급속한 감소, 교육받지 못하고 정부의 구성과 통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의 손에 남겨졌다. 오백 년 간의 식민지 통치가 끝난 후에 앙골라는 더욱 악화된 상황에 빠져들었다. 즉, 국제적인 지원을 받는 세 개의 독립운동 그룹 간에 길고 긴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197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되어 고향을 떠나야 했고, 백오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과 쿠바, 남아프리카가 앙골라에서 철수하였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 의해 1992년 최초의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이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맹(UNITA)의 조나스 사빔비는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전투를 계속하였다. 1997년 연립정부가 구성되었으나 사빔비는 다시 참여를 거부하였다. 마침내 2002년 2월 사빔비가 정부군에게 살해당하고, 그 후 6주 후에 새로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내전이 종식되었다. 거의 50년 동안 계속된 내전이 끝났지만, 앙골라인들의 평균기대수명은 39세에 지나지 않고, 그동안 두 세대가 한 번도 평화롭지 않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오늘날 오십 만에 달하는 인구가 영양실조와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앙골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또 다른 오십만의 사람들이 문명세계와 단절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4백만 명이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에 이웃한 나라들로 이주하였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앙골라 전역에 아직도 5백 만 개의 지뢰와 불발탄들이 묻혀있거나 떨어져 있다. 7만 명 이상이 지뢰로 인해 손이나 발을 잃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국민들의 건강과 의료품 부족현상이다. 국토의 기반시설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깨끗한 식수와 정확한 위생관리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앙골라 주민들이 예방 주사를 맞지 않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말라리아, 소아마비, 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일해 등과 같이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도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하여 성인 인구의 5퍼센트 이상이 감염되어 있다. 정확한 통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앙골라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다. 대규모 유전과 다이아몬드와 기타 광물들,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어종으로 가득한 수산 자원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들을 마구 남용하였고,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정치인들과 무장단체들은 이러한 자원에서 나오는 부를 서로 빼앗아 갔다. 1491년 포르투갈인들이 앙골라에 기독교를 전해주었다. 특히 왕 알폰소(Alfonso) 1세의 개종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널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알폰소 1세의 아들은 로마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노예무역이 번성하면서 알폰소 제국은 붕괴되었고, 기독교 역시 약화되었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예수회, 카푸친 수도회(Capuchines), 프랜시스회, 갈멜수도회, 성령교부의 모든 선교사들이 앙골라를 찾았다. 오늘날, 앙골라 기독교인의 사분의 삼 정도가 로마가톨릭 교인들이다. 개신교회는 19세기 말 도착한 영국, 미국, 캐나다 선교사들을 통해 전래되었다. 앙골라가 독립하기에 앞서 로마가톨릭교회는 협정을 통하여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성립하였다. 독립한 후에 앙골라 정부는 정교분리를 선언하였고, 교회가 세운 학교와 재산들을 모두 국유화하였다. 그 후 몇 년 동안 수많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납치, 살해되거나 추방되었고, 많은 교회들은 공식적인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면서 교회에 대한 정부의 관용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여덟 개 교단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앙골라 기독교회 협의회(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in Angola)는 세계교회협의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잠비크 공화국 (Republic of Mozambique) 통계 인구 : 1천 9백 40만 명 정부형태 : 다당제 공화제 언어 : 포르투갈어 종교 : 기독교 42%, 이슬람 18%, 기타 부족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모잠비크 장로교회 (Presbyterian Church of Mozambique) 역사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의 남동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 사이에 인도양 해협이 있다. 서쪽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와 짐바브웨, 북쪽으로 잠비아, 말라위, 탄자니아가 자리하고 있다. 1498년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유럽인으로 처음 모잠비크에 도착하였다. 그는 당시 한창 번성하던 소팔라(Sofala) 항구(지금의 베이라 Beira)에 상륙하였다. 그곳은 모노마타파(Monomatapha, 짐바브웨 제국) 왕국에서 황금과 상아를 실은 배들이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인도로 떠나던 항구였다. 다 가마가 발견한 이 해안 들은 모두 수세기동안 이곳을 왕래해 온 아랍인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 모잠비크 역시 노예무역의 중요한 공급지가 되어, 처음에는 아랍권으로 노예를 수출하였고, 후에는 포르투갈로 바뀌었다. 16세기 도착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는 공동으로 이 해안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다. 두 나라는 금광을 차지하기 위하여 내륙지역을 정복하려고 노력했으나 원주민들의 저항과 질병으로 인하여 물러나야 했다. 포르투갈은 식민지 팽창정책을 사용하면서 앙골라의 경우와 같이 모잠비크를 해외에 있는 포르투갈 영토로 삼았다. 당시의 평균적인 식민지 정책에 비해도, 포르투갈의 모잠비크 통치는 가혹했다. 포르투갈은 모잠비크 점령 초기부터 자신들을 위해 일할 인원들만 유지하고 나머지 주민들을 미국에 노예로 파는 정책을 실시하여 주민 수를 줄였다. 19세기에 노예제가 폐지되었을 때 모잠비크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당시 강제노동이란 모잠비크의 모든 흑인들이 6개월간 무보수로 노역에 동원되는 것을 가리켰다. 포르투갈이 광산개발과 농장을 위하여 유럽의 개인 회사들에게 영토사용권을 넘겨주기 시작하면서 이들 회사들이 강제노동의 상당부분을 흡수하였다. 1962년 모잠비크 해방전선(Front for the Liberation of Mozambique, FRELIMO)이 결성되면서 이렇게 불의한 구조에 대한 저항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2년 후에 북부의 두 개 주에서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냈다. 부족 간 전쟁이 일어나 치열해지면서 수천 명이 사망하였지만, 1975년 리스본(Lisbon) 정부를 전복하고 모잠비크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1975년 포르투갈인들은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약탈하여 떠날 때, 모잠비크 국민의 90퍼센트는 문맹이었다. 사십 명도 안 되는 의사들이 모잠비크 전역을 담당해야 했다. 경제는 붕괴되었고, 심각한 식량부족과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아선상에서 고통을 당했다. 마르크스주의로 무장된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을 두려워한 인종분리정책 당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기본적인 시설들을 접수하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 후 모잠비크 해방전선이 짐바브웨 자유의 전사들(Zimbabwean freedom fighters)을 지원하고 있다는 혐의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모잠비크인 광부들을 추방하였고, 자국 내 모든 외국환의 거래를 중지시켰다. 1983년, 모잠비크가 국가적으로 파산하면서 광범위한 기근이 발생하였다. 백인우월주의자 로데시아(Rhodesia)는 짐바브웨의 좌파 저항 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게릴라 부대를 창설하고 기금을 지원하면서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에는 짐바브웨 저항세력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들 반군들은 모잠비크 민족저항군(Mozambican National Resistance, RENAMO)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유럽인들이 로데시아를 포기하자 남아프리카로 내려갔고, 모잠비크는 긴 내전에 들어갔다. 모잠비크 민족저항군(RENAMO)은 농촌지역에서 잔인한 작전을 펼쳐 수천 명의 모잠비크인들을 학살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특별히 교사, 의사, 지식인들, 기술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살해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 대통령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모잠비크 민족저항군(RENAMO)에 대한 지원 중단을 약속하고,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가입을 철회하는 약정서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협정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내전이 계속되었다. 1989년, 마셸이 석연치 않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나자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은 공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였다. 1990년 새로운 헌법이 공포되고, 1992년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1994년과 2000년에 복수정당이 참여하는 선거가 실시되어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이 승리하였다. 그 후로 모잠비크는 정치경제적인 안정을 되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잠비크도 주변의 많은 나라들처럼 막대한 대외채무와 극심한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인구의 대부분은 기초적인 생활수준에 못 미치거나 겨우 충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2000년과 2001년의 우기에는 대홍수가 일어나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많은 농장들이 파괴되었으며, 2002년에는 홍수에 이은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기아에 허덕이는 2백 6십만 명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와 더불어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이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다. 성인 인구 여덟 명 중 한 명이 이미 감염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는 14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이다. 모잠비크 인구의 절반은 아직도 전통적인 부족종교를 믿고 있다. 이슬람교는 10세기 경 아랍의 상인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1561년 쇼나족(Shona)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순교한 예수회 신부가 이 지역에 찾아온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였다. 그 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기독교는 이 지역에 발판을 놓지 못했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인구의 40 퍼센트 정도이다. 헌법은 정교분리를 선언하고, 종교와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모잠비크 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uncil of Mozambique)는 스물 네 개의 회원교회를 가지고 있는 에큐메니칼 조직이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 앙골라와 모잠비크 국민들을 돕고 있는 국제연합, 특별히 세계식량계획과 다른 여러 단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내전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받은 이들 나라의 국민들에게 계속하여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 교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서로 적대적인 공동체들 간에 열린 대화를 계속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지뢰들이 발견되는 위험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 내전으로 황폐화된 이들 나라의 재건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집 없는 사람들로 남거나 난민으로 떠도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지뢰로 손이나 발을 잃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과 앞으로 계속하여 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지금까지 한 번도 평화를 누리지 못한 아이들과 내전으로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상처입고 희생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비와 햇볕이 균형 있게 내려 곡식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보다 풍족한 식량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충분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에이즈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가족들, 그들의 공동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대외 채무로 인한 노예 상태가 종식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오, 하나님, 제 마음을 넓게 하셔서 주님의 크신 사랑을 담기에 충분한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제 마음을 멀리 펼치셔서 저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온 세계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제 마음에 담을 수 있게 하옵소서. 제 마음을 펼쳐 주셔서 제 눈에 사랑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과 제 손으로 마주잡고 싶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담을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익명의 아프리카 기독교인의 기도> (2) 모든 곳에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우주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아버지,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을 축복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당신께서 외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하늘로 오르시며 온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라고 주님의 제자들에게 강하게 명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그 복음이 이곳 앙골라에 전해졌습니다. 그 복음이 우리의 식구들에게 전해지고 받아들여져서 증오와 질투와 불의와 질병이 이 나라에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앙골라에서 주님을 위하여 일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옵소서. 오, 주님,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에게 보이사 복음을 전하고 선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메디나 졸라 바야(Medina Zola Baya), 앙골라> (3) 위대하신 하나님, 주님께 축복과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은 이 세계를 창조하신 영원하신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고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주님 앞으로 나옵니다. 주님, 사람들이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주님의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자비의 아버지이고, 우리의 모든 고통을 보고 전하는 분입니다.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고통 받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분입니다. 억압받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돌보심을 전하겠습니다. 모든 대륙과 나라에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러나, 특별히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복을 기다리며 이 모든 것을 주님께 아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메디나 졸라 바야(Medina Zola Baya), 앙골라> (4) 오, 하나님, 외적으로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님의 놀라우신 소망을 선물로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프리카의 이 지역에서 주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계시며, 위험한 시대에 구원하기를 더디 아니하시는 주님의 평화를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우주의 길과 목적을 알려주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조아오 마콘데크아(Joao Makondekwa), 앙골라 성서공회>
2010-06-04 04:20:20
세계교회협의회 남북 대결 우려 표명
세계교회협의회 남북 대결 우려 표명 천안함 사태 ‘정부 당국이 상호 대화와 평화 공존으로’ 해결해야 입장 밝혀. 세계교회협의회 올라프 총무는 6월 3일 본회 권오성 총무와 회원교단 총무들에게 천안함 사태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긴장 국면에 대한 관심과 연대>라는 제목의 서신을 보내왔다. 올라프 총무는 서신에서 희생자들에 대한 위로와 함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회원교단들이 밝혔듯 “정부 당국이 상호 대화와 평화 공존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에 지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울라프 총무는 동 서신에서 ‘교회의 경험은 폭력이 그 어느 곳에서도 분쟁을 안정시키는 방법이 아님을 알고 있다’말하고 ‘이번 천안함 문제에 대해서도 상호 대화와 평화 공존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WCC는 한반도의 평화와 정의, 화해, 통일을 위한 지속적인 연대와 기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영문) Expression of Concern and Solidarity on Tensions in the Korean Peninsula Letter to the Churches and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South Korea Dear sisters and brothers in Christ, It is with deep concern that I write this to you as the people of the Korean peninsula face, yet again, another precarious situation, that is, the recent tragedy of the sinking of the Cheonan in which forty-six sailors lost their lives. We pray that the Lord almighty will console the bereaved families and friends and give them hope and strength to withstand the challenges ahead. While we join with the people and the churches in South Korea in their national grief, we also share your common concern that the unfolding events have endangered the prospects for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also in the entire North East Asia region. The recent events confirm the fears expressed earlier by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that the Korean peninsula remains a flashpoint in the North East Asia region and has the potential to ignite a major conflagration, unles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especially the six-party talk nations, try to ensure lasting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Experience has shown us that violence can never be the way to settle disputes either on the Korean peninsula or anywhere else. Therefore,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reiterates its strong condemnation of all sorts of violence. As you know that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has been playing a pioneering role in initiating and supporting peace,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is regard the WCC has been accompanying the Korean churches for more than a quarter of a century, ever since the Tozanso process was initiated by the Churche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Affairs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The Tsuen Wan / Hong Kong Consultation in 2009 to commemorate the 25th anniversary of the Tozanso process strongly affirmed that “"the gospel of Jesus Christ commits Christians to work against evil, injustice and suffering in all its forms, and to pray and work for God’"s justice, peace and unity in the world. The Korean people have suffered for too long from their forced division. They are one people, one culture, one nation, yet they remain divided. Justice demands that they be reunited in peace and in common commitment to one another.”"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ppreciates and commends the role of the Korean churches in their efforts to continue and strengthen their advocacy for a peaceful resolution even at this time of crisis. In this context, we welcome the statement of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which calls upon all who wield powers to remember that “"even in this difficult time, authorities should not give up an effort of mutual dialogue and of opening a way of reconciliation and co-existence on the Korean peninsula.”" We also take this opportunity to reiterate the global ecumenical family’"s commitment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As the Tsuen Wan Communiqué stated, the need for today is to encourage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allow space and time for direct negotiation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towards a lessening of tensions between them and towards peace,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The WCC, as it has in the past, will continue to extend its solidarity to the people of Korea, North and South, and accompany them in their quest for peace,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of Korea. The present situation presents the churches and Christians in Korea with enormous challenges. As the churches in Korea continue to be engaged in a mission of peace and reconciliation, I assure WCC’"s member constituencies in Korea that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ill continue to pray and accompany you and work together with all of you while you patiently persevere in your struggles for justice, peace,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May the Prince of Peace further empower and equip us in our journey together. Yours in Christ, Rev. Dr Olav Fykse Tveit General Secretary
2010-06-04 01:21:32
The KCF prepares a special worship
The KCF prepares a special worship : The Korean Christian Federation sent the NCCK a letter dated on 11th of June 2010 praying that coming to the 10th anniversary of June 15 Common Communique, the June 15 Common Communique and the October 4th Statement should be implemented. Furthermore it expressed its support and standing in solidarity with contents of prayers of the Week of National Reconciliation(June 15-25th) and the Joint Prayer Meeting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June 17, 2010) organized by the NCCK. Especially it says that it is preparing <Special Worship Service praying for Implementation of the June 15 Common Communique and Peaceful reunification at Bongsoo Church in Pyungyang> in which all Christians in Pyungyang would be encouraged to attend when we are coming to the 10th anniversary of the June 15 Common communique. Main points are as follows: To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Warm greetings in the name of Christ. The Korean Christian Federation is sending its greeting of solidarity to the NCCK for your righteous activities in various ways for social justice, democracy, and peace and reunification. The KCF fully supports NCCK"s decision to hold the period from June 15 which is the day declared the Common communique by two summits to June 25 as the Week of National Reconciliation and to prepare prayer meeting. And the KCF expresses its solidarity with the NCCK for its <Statement for peace and reunification> which is going to be declared and based on the spirit of National reunification through common effort of both North and South Korea according to the June 15 Common communique. We pray that all the work planned by the NCCK will be successfully processing in accord with expectation of all nation and Christians. We, the Korean Christian Federation, are going to hold <a Special Worship Service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June 15 Common Communique and Peaceful reunification> which encourages all Christian in Pyungyang to attend at Bongsoo Church when we are coming to the 10th anniversary of the historical Declaration. As you know, the June Declaration which is a landmark for the National reunification and the October 4th Statement are now facing with serious challenges. We, the KCF, firmly believe that the NCCK and other churches and Christian organizations which consider concept of love, justice, peace and unity as precious one would positively be active for hindering various wrong-doings against people"s mind and judging its right and wrong. May God"s Blessing fully be with you,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June 11, 2010
2010-06-16 02:48:05
(알림)교육을 통해 교회학교의 희망을
본회 청년‧학생 선교연구와 협력위원회가 입시 교육에 밀려난 교회 10대 교육을 다시 찾기 위한 포럼을 개최한다. 교회학교 교육의 대안을 찾기 위한 것으로 <교회학교 교육을 통(通)하여 희망을 보다>를 주제로 6월 22일 오후 2시 기독교회관 2층 에이레네 홀에서 개최한다. 삶과 동 떨어진 신앙교육 때문에 오히려 신앙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십대들에게 하나님께 헌신하고,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럼은 평화인권기독교교육연구소 이춘선 소장과 소망교회 교회학교 담당 목사인 김용재 목사가 교회학교 교육 새로운 모형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발제하고 이화외고 교목인 김형석 목사와 강동교회 김종훈 전도사가 패널로 참석해 아래와 같이 논찬과 토론을 진행한다. -아 래- 1. 일 시 : 2010년 6월 22일(화) 오후 2시 2. 장 소 : 기독교회관 2층 에이레네 홀 3. 주 제 : 교회학교 교육을 통(通)하여 희망을 보다! 4. 발 제 : 교회학교 교육 새로운 모형은 가능한가? - 단순한 신앙교육에서 치유와 가치 교육으로의 전환  1) 이춘선 목사(평화인권기독교교육연구소 소장)  2) 김용재 목사(소망교회 교회학교 담당 목사) 5. 논찬 및 토론 패널  1) 김형석 목사(이화외고 교목)  2) 김종훈 전도사(강동교회) 6. 참가 대상 : 십대 청소년 교회학교 교육 담당 교역자, 10대 선교 단체 실무자 등
2010-06-16 10:00:33
서울강북경찰서장 경찰개혁 발언에 대한 본회의 입장
경찰은 반인권적 고문∙가혹행위의 근절을 위해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받은 인간에 대한 고문과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더욱이 국민의 생명 보호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는 공권력의 폭력과 고문 등의 가혹 행위는 구 독재정권 시대의 행태로써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최근 양천경찰서에서 있었던 피의자에 대한 고문 의혹에 대하여 우려와 함께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왔다.  그런데 서울강북경찰서 채수창 서장은 6월 28일 “양천서의 가혹행위 사건은 담당 경찰관의 잘못 못지않게, 실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조장한 서울 경찰청 지휘부의 책임 또한 크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또한 ‘이렇게 계속 실적을 강조하는 한 양천서 사건과 같은 유사한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경찰의 실적주의가 고문을 낳고, 인권을 침해했다는 지적과 함께 채 서장은 이와 같은 경찰조직 문화의 개선을 위해 서울 경찰청 지휘부의 사퇴까지 촉구하고 나섰다. 더욱이 최근 불거진 아동대상 성범죄의 경우에는 그 평가점을 낮게 부여함으로 실적 반영에 적게 들어감으로 경찰의 예방과 검거에 소홀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언론의 해설 기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과거 불의한 독재 권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서했던 고문이 소위 민주정부 치하에서 경찰에 의해서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현직 경찰서장으로서 자신도 인권보다 성과에 집착했음을 반성하고, 서장직 사퇴의 뜻을 밝히며, 경찰 조직과 경찰 문화 개선을 지도부에 촉구한 채수창 서장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을 표한다.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법 집행의 책임이 있는 경찰은 앞으로 고문 가혹행위와 같은 반 인권적이며 구태의연한 행태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과도한 실적주의를 포기하고, 인권지향적인 가치관 확립과 내부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경찰청을 비롯한 각 지방청에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과 그 정착을 위한 ‘인권 제도 개선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인권적인 국민 감시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경찰 본연의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책무를 충실히 하여 국민을 위한 경찰로 거듭나고 발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2010년 6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 무 권오성 정의평화위원장 정상복  
2010-06-29 03:53:04
미분류볼리비아, 칠레, 페루 편
볼리비아, 칠레, 페루 편
아이마라족(Aymaran) 여인 태양 아버지와 달 어머니 우리의 형제 별들이 비춰주는자연의 한 복판눈 덮인 높은 산들과 언덕이우리의 쉼터가 되어주는 곳에서,우리는 자유롭게 자랐습니다. 아카킬라스(Achachilas)*와 아위카스(Awichas)**와 친구가 되어안데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쿠에나(quena)***와 삼포나스(samponas)****를 불었습니다.흙과 비가 우리에게 영양분을 주고,우박과 눈, 얼음이 우리를 키워주었습니다.우리의 동료들과 공동체가 보여주는보호와 이해와 사랑이우리를 둘러싸고 있었고, 우리는 파카마마(Pachamama)***** 앞에서 자랐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유린당하고 파괴되면서우리는 함께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우리 안에 불평등을 남겨두는 것을우리는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할 동지와,함께 할 공동체, 평등, 그리고 자유를 찾고 있습니다.<아나 마리아 바르가스(Ana Maria Vargas), 볼리비아> * 볼리비아 지역의 아이마라족이 섬기던 정령: 역주** 볼리비아 지역의 아이마라족이 섬기던 정령, 아이마라어로 “할머니”라는 뜻: 역주*** 원주민들의 피리**** 원주민들의 파이프 피리***** 아이마라어로 땅의 신의 이름 볼리비아 공화국 (Republic of Bolivia) 통계인구 : 9백만 명정부형태 : 민주공화제 언어 : 스페인어 외에 케추아어(Quechua), 아이마라어(Aymara) 문자해독률 : 남자 93%, 여자 81%종교 : 로마 가톨릭 교회 81%, 소수 개신교회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볼리비아 복음주의 루터교회(Bolivian Evangelical Lutheran Church), 볼리비아 복음주의 감리교회(Evangelical Methodist Church in Bolivia) 역사 볼리비아는 북동쪽으로 브라질, 남동쪽으로 파라과이, 남쪽으로 아르헨티나, 서쪽으로 페루와 칠레에 둘러싸인 내륙국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주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잉카(Inca) 문명의 번영에도 불구하고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늦게 독립한 스페인의 식민지 중 하나로, 많은 희생을 치룬 끝에 1825년 독립국이 되었다. 독립하면서 남아메리카 혁명의 대표적인 지도자 사이몬 볼리바르(Simon Bolivar) 장군의 이름에서 국호를 따왔다. 인디언과 메스티조 인구의 삼분의 이 가량이 해발 6천 미터가 넘는 볼리비아 안데스 산맥의 고원지대에 거주하는데, 이들은 이곳에 이만 년 전부터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 라파즈(La Paz)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이다. 볼리비아는 13세기부터 15세기, 스페인 군대에게 정복될 때까지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주변에 근거지를 두고 번성했던 잉카 제국의 영토였다. 스페인이 볼리비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볼리비아에 매장되어 있는 막대한 은(銀) 때문이었다. 실제로 1545년부터 1745년까지 이백 년 간 볼리비아에서 생산된 은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1825년 독립한 이후로 볼리비아는 계속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겪어왔다. 170년 동안 250여개 정부가 들어섰고, 16번이나 개헌이 이루어졌다. 1932년, 파라과이와의 전쟁으로 인하여 9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200번에 달하는 군사쿠데타와 역 쿠데타는 극심한 정치적 불안을 가져왔다. 1952년, 인민혁명운동(National Revolutionary Movement, MNR)이 정권을 잡았다. 이들은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60만 명 이상이 정착하도록 하였고, 주석(朱錫) 산업을 국유화하였다. 이들의 가장 큰 성과는 원주민들과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이다. 군사쿠데타는 1964년을 끝으로 종식되었다. 성공적인 개혁정책을 수행한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심각한 인권유린과 부정부패, 마약매매를 지원한 이들도 있었다. 1980년대 몇 해 동안 마약의 재료인 코카인을 공식적으로 수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볼리비아는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막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2006년 선출된 원주민 출신의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대통령은 모든 에너지 관련 산업시설을 국유화한다고 발표하였다. 볼리비아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빈곤하고, 가장 저개발 되고, 가장 높은 외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또한 현대적인 사업에 종사하는 도시인들과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난한 농부들 사이의 빈부격차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90퍼센트 이상의 어린이들의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 심각한 삼림파괴와 무분별한 토지 개발의 여파로 이 나라의 풍부한 천연자원들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16세기와 17세기 사이에 프랜시스회와 예수회는 볼리비아 전역에 걸쳐 많은 교회와 인디언 협동농장을 세웠다. 이들의 선교의 결과로 현재 볼리비아에는 소위 "대중적인 전통적 가톨릭교회”가 존재하는데, 16세기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당시의 토착종교들이 혼합된 형태이다. 사제들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러한 교리와 전통들의 결합이 더욱 많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농촌지역에서 많이 일어났다. 인구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을 위하여 최근의 기독교회들은 보다 의미있는 신앙과 예배의 표현을 위하여 교리와 실천을 혼합하는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다. 1970년대 볼리비아 정부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Justice and Peace Commission)를 적대시한 이후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여전히 긴장 속에 있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비교할 때, 개신교회 선교사들은 상대적으로 늦게 찾아왔다.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현재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개신교회이다. 오순절 교회가 많이 성장하고 있지만,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하면 느리게 성장하고 있는데, 아마도 도시화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56년 소개된 이래로 바하이교(Bahai)도 볼리비아 국민들 사이에 널리 전해지고 있는데, 특별히 케추아(Quechua) 인디언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칠레 공화국 (Republic of Chile) 통계인구 : 1천 6백 십만 명정부형태 : 민주공화제 언어 : 스페인어문자해독률 : 남자 96%, 여자 96%종교 : 로마가톨릭교회 72%, 개신교회 약 13%, 소수 바하이교, 유대교, 부족 종교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칠레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Chile), 칠레 자유 오순절 선교교회(Free Pentecostal Missions Church in Chile), 칠레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of Chile), 칠레 오순절교회(Pentecostal Church of Chile), 오순절 선교교회(Pentecostal Mission Church) 역사 칠레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태평양에 접한 가늘고 긴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페루와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사실상 왕래가 어려운 장벽으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었던 까닭에 칠레의 중앙 계곡(Central Valley) 지역은 15세기 중엽, 잉카제국이 남아메리카 여러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하던 무렵까지 외부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잉카제국의 군대는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8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사막지역을 횡단하여 마침내 중앙 계곡에 도달하는데 성공하였고, 그 지역에 살던 세 개의 인디언 부족들 중 하나였던 마푸체(Mapuche)족을 만나게 되었다. 잉카의 군대는 마푸체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크게 패하고 말았다. 1541년, 스페인 군대가 같은 경로를 따라 이 지역을 침공하였고, 그들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4백 년 동안, 잉카제국과 같이, 스페인 군대도 중앙 계곡을 중심으로 항상 방어막을 치고 있어야 했다. 마침내, 1817년, 7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칠레는 독립을 쟁취하였다. 스페인 군대에 저항했던 마푸체족은 새로 세워진 독립 정부를 상대로 계속하여 저항운동을 벌였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이 사회적으로 작은 변화들을 가져왔지만, 칠레 사회는 여전히 식민지 시절의 사회 구조와 가족 정책을 유지하였다. 칠레는 직접 투표에 의한 민주주의와 다당제 정치구조를 정립하였다. 후에 정치권력이 좌파 정당으로 이동하면서 로마가톨릭교회는 정부와 상당한 긴장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긴장관계는 팔랑헤당(Falange)의 출현에 도움이 되었다. 팔랑헤당은 강력한 반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였고, 1950년대에 들어와 기독교민주당으로 발전하였다. 1964년 들어선 중도좌파 정부는 중요한 개혁정책을 계획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하였는데, 특별히 교육과 주택, 농업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70년, 칠레 사회당의 지도자였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과 칠레의 부유층, 그리고 군부는 경계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아옌데는 은행을 비롯한 몇몇 중요한 산업들을 국유화하면서 빈곤층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였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와 중앙정보국(CIA)은 아옌데 정부를 견제하기 위하여 칠레 군부와 우파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3년, 미국 CIA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가 아옌데 대통령과 지지자들 2천 명을 살해하고, 대통령궁을 방화하고, 수천 명을 체포하는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군부 세력은 국가안보를 최고의 이념으로 제시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의 정치적 반대자들이 학교와 교회, 정당과 노동조합, 학생단체와 언론 등에 들어가 반정부 운동을 벌이는 것을 막는 것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았다. 군 장교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였고, 선거를 중지하고 의회를 해산하였다. 그들은 피노체트를 대통령으로 세우고(피노체트는 16년 이상을 대통령직에 있었다), 정적들의 제거에 속도를 내면서 모든 단체들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였다. 군부 세력은 아옌데의 국민연합(Popular Unity)을 반드시 근절해야 할 대상인 것처럼 다루었다. 인권이 참혹하게 유린되었고, 수천 명의 시민들이 살해되고, 실종되고, 고문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고, 강제추방을 당했다. 비밀경찰들이 피노체트에게 직접 보고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포의 시절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대학을 정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억압하였고, 책들을 불살랐으며, 정당 활동을 불법화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금지하였다. 1970년대 후반 동안 칠레의 인권상황을 우려하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다른 교회들, 국제단체들은 이러한 폭력적인 조치들을 규탄하며 널리 알렸다. 칠레의 로마가톨릭교회는,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1975년부터 1985년 사이에 각 교구의 지역연대(Vicariate of Solidarity)를 통하여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그로 인하여 교회는 쿠데타 세력과 노골적인 갈등관계를 갖게 되었다. 국민연합은 지하로 들어가거나 망명을 떠나거나, 아니면 야만적인 억압에 고난을 당했지만 조직을 잘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에 가면서 극심한 내부분열 양상을 보이다가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국민연합은 독재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여론을 모아갔고 이는 피노체트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0년대 말에 들어오면서 기독교 민주당까지 독재에 반대하게 되었다. 피노체트와 군부지도자들은 군부세력이 입법부 역할을 맡으면서 피노체트 일인독재체제로 변화를 꾀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모든 현직 장성들은 독재자에게 충성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쿠데타 후 처음 삼년간 미국의 경제지원과 차관이 증가하였지만, 지미 카터(Jimmy Carter)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양국의 관계가 냉각되었다.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칠레 내부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국민들의 저항운동이 계속되었다. 1990년,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인정을 받는데 실패한 피노체트는 정당하게 선출된 파트리치오 아조카르(Patricio Azocar)에게 대통령직을 이양하였고, 민간통치가 회복되었다. 퇴임 후에도 피노체트는 군부와 의회 안에 자기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재임 기간 중 일어난 범죄행위에 대하여 남은 일생동안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을 승인받았다. 1990년대에 칠레는 경제적인 개혁조치들과 실질적인 성장을 즐겁게 누렸다. 오늘날 칠레의 사회운동가들은 과거에 일어난 인권유린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노체트는 아직도 그를 인권 범죄의 책임을 물어 법정에 세우려는 운동가들과 투쟁을 벌이고 있다(피노체트는 2006년 12월 10일, 급성 심장발작으로, 9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역주).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문자해독율과 최상의 건강보험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국민의 30퍼센트 이상이 극빈층이며, 극심한 계층 간 격차가 대단히 심각하다. 또한 테러주의자들과 마약중개상들을 상대로 하는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칠레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는 로마가톨릭교회이다. 1960년 이래 가톨릭교회는 철저한 자기개혁을 수행하였고, 여성공동체들에 대한 대규모 지원과 국가 차원의 사회경제 문제들에 대한 이해와 평가 작업을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다. 칠레의 가톨릭교회는 역사적으로 남아메리카 어느 나라들보다 일찍부터 사회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아옌데 정부 시절에는 정부와 대화하고 협력하는 길을 모색하는 동시에 이념적인 차이성을 분명히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73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참혹한 범죄들이 발생하자, 교회들(감리교회, 정교회, 루터교회, 장로교회, 오순절교회, 로마가톨릭교회)은 유대인들까지 포함하는 에큐메니칼 평화위원회(Ecumenical Peace Committee)를 조직하였고, 이 위원회는 군사정부 치하에서 억압받던 피해자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칠레 국민들을 위한 법률적이고 인권적인 구호활동을 벌였다. 1975년 쿠데타 세력은 이 위원회를 폐쇄하였다. 위원회의 독일 루터교회 담당자는 입국이 금지되었고 직원들은 체포되었다. 개신교회들 역시 1970년대 이전부터 칠레 선교를 시작하였다. 개신교회의 성장은 느린 속도로 진행되어 현재 칠레 인구의 10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오순절교회와 은사운동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특별히 오랜 전통을 가진 교회들 안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 무종교라고 응답하는 사람들과 로마가톨릭교회를 이탈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페루 공화국 (Republic of Peru) 통계인구 : 2천 7백 5십만 명정부형태 : 다당제공화제 언어 : 스페인어, 케추아어(Quechua), 아이마라어(Aymara)문자해독률 : 남자 93%, 여자 82%종교 : 로마가톨릭교회 87,8%, 개신교 3%, 부족종교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페루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of Peru) 역사 남아메리카의 태평양 해안에 자리한 페루는 북쪽으로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동쪽으로 브라질과 볼리비아, 남쪽으로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페루의 역사는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안데스 산맥에 있던 여러 왕국의 후손들인데 가장 마지막 고대왕국이 잉카 제국(Inca Empire)이었다. 1520년대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이끄는 정복자들이 처음 잉카 제국을 정복하였다. 그 후 200년 동안 페루의 수도 리마(Lima)는 남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경제적 중심지가 되었다. 1824년, 페루는 독립국이 되었지만 국경분쟁으로 인하여 20세기 대부분을 칠레와 에콰도르와의 전쟁으로 보내야 했다. 국내적으로는 계속되는 위기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과거 스페인이 개발하였던 금광과 은광이 많았지만,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인구의 삼분의 이 가량이 도시지역에 살고 있으며, 도시 인구의 사분의 일이 리마에 살고 있다. 페루의 땅값은 대단히 높은 편이지만, 경작할 수 있는 땅은 대단히 적으며, 내륙 지역은 험한 바위투성이 땅들이다. 1968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진보적인 장교들로 구성된 군부정권은 토지개혁, 모든 산업의 국유화를 실시했으며, 전국적으로 교육 기회를 확대하여 무상교육과 의무교육, 세속적인 교육정책을 실시하였다. 1985년, 젊고 카리스마를 가진 알란 가르시아(Alan Garcia)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미화 14억 달러에 달하는 페루의 외채를 갚는 상한선을 제시했는데, 일 년 수출액의 10퍼센트를 넘길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서 국제 경제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국제통화기금이 페루에 대한 더 이상의 금융지원을 중단하면서 페루 경제는 더욱 깊은 경제위기에 빠져들었다. 1980년대에는 모택동 노선을 따르는 무장 게릴라 단체 “빛나는 길”(Shining Path)이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여, 군부가 억압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민주적인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페루는 국민들의 저항운동과 파업, 정부의 부패에 대한 반대가 계속되었다. 1995년에는 과거 1980년부터 95년까지 군부가 개입한 인권유린 사건들에 대한 총괄사면이 이루어졌다. 1990년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jimori)가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게릴라 활동이 감소하는 큰 발전이 있었고, 경제도 많이 호전되었다. 그러나 후지모리의 권위적인 통치가 강화되고,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2000년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하였다.  현재 페루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실업률과 빈곤이다. 페루 인구의 삼분의 일 가량이 빈곤층 이하의 삶을 살고 있고, 해마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마약의 원료가 되는 코카인의 불법적인 재배가 늘어가고, 마약 거래가 만연하고 있다. 열대우림지대와 기타 자연 환경의 파괴, 그리고 늘어가는 오염이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몇 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폭우와 홍수로 인한 피해도 커다란 위협이며, 지진의 공포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1546년에 리마가 태평양 연안을 관장하는 대주교 관구로 지정된 이후 오늘까지 로마가톨릭교회는 페루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단체이다. 1845년, 로마가톨릭교회는 공식적으로 국교가 되었다. 그러나 인접한 볼리비아의 경우와 같이, 인구 6천 명 당 겨우 한 명꼴인 사제의 부족이 심각하다. 최근 들어 로마가톨릭교회 사제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정의에 관한 문제들에 대하여 이전보다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루에 가장 먼저 도착한 개신교회 선교사들은 1800년대에 찾아온 성서공회(Bible societies)의 대리인들이었다.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현재까지 계속 선교를 위하여 일하고 있지만, 선교 이론에 대한 노선 차이와 개인적인 갈등들로 인하여 적절한 선교의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오순절 교회는 페루에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자신들을 위하여 남겨놓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음악을 연주하는 차란고스(Charangos, 케추아족의 전통적인 현악기: 역주)와 팬파이프, 여러 가지 북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해방신학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위한 사회정의를 위하여 일하면서 해방신학을 현실에 적용한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리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헌신하여 흑인으로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가톨릭교회의 성자가 된 성 마틴 드포레스(Saint Martin de Porres)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현대세계의 용어가 되면서 또한 옛 정체성을 회복하고 있는 이 지역의 언어와 문화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마추피추(Machu Picchu, 안데스 산맥에 있는 잉카제국의 마지막 도시 유적: 역주)와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안데스 산맥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이들 나라의 원주민들과 메스티조(백인과 인디언의 혼혈 후손들)의 인권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이들 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개혁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의를 가져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볼리비아의 경제가 발전하여 더 이상 그 나라의 국민들이 아이들을 학교를 위하여, 할아버지, 할머니의 의약품을 위하여, 혹은 양식을 위하여 다른 나라로 이주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의 독재 권력의 탄압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해당하거나 실종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의 사람들이 참아야만 했던 모든 상처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들 지역의 마약거래가 종식되고 다른 효과적인 경제수단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의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재물은 없으나 마음은 자유로울 것입니다.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우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외칠 것입니다.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인내와 관용을 보여줄 것입니다.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슬프게 우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싸울 것입니다.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잊는 것이 아니라 용서할 것입니다.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천사처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줄 것입니다.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설 것입니다.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고난을 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제이콥(P. Jacob), 칠레> (2)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빈곤의 현장과,우리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는 빈부격차 속에서,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사람들에게 공평하지 않은 노동과 삶의 환경,페루 국민들을 위한 건강보험, 공평한 제도, 그리고 교육의 기회 속에서,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거리에 난무하는 새로운 폭력들과,청소년 갱단의 등장과 사회적 안전의 부재 속에서,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사회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거짓과 부정부패 속에서,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진리에 기초하는 정의와 평화, 진정한 화해를 위한 서로의 이해 속에서,오, 주님,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복들과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발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들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정치와 경제, 문화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페루를 위한 주교회의 자료집,“살아계신 그리스도와 회심으로 가는 길, 성찬과 연대의 만남을 위한 페루 교회의 목회 지침”(Pastoral Guidelines of the Church of Peru for Meeting with the Living Christ, the Road to Conversion, Communion and Solidarity) 중에서> (3)볼리비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기도오, 볼리비아 땅에 계신 하나님,볼리비아 사람들이 주님께 구합니다. 저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슬픔을 느끼시고, 또한 주님의 눈물인 주님의 백성의 눈물을 보기 원합니다. 생명이 끊어진 무수한 몸뚱이들이가족들의 마음속에 아픔과 슬픔을 남겨놓고   거리에서, 골목에서, 그리고 들판에서,쓰러져 갔습니다.  그러한 아픔으로 그들이 심히 애통할 때에그들에게 위로를 주옵소서.자신들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하시고,그들에게 꿈을 주셔서, 그들의 눈으로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하시고,의의 길을 통하여 생명에 도달할 수 있게 하옵소서.오, 하나님, 군중의 함성을 들어주옵소서.거리와 도로를 행진하는 사람들의 함성을 들어주옵소서.저들은 정의를 위하여 울부짖고 있습니다. 너무나 큰 불행으로 지쳐 있습니다. 실업과 부정부패와 폭력과,국민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결정하고,자신들의 더러운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끌고 가는, 권력자들의 강력한 권위주의에 지쳐있습니다.저들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위하여 허락하신 이 풍부한 천연자원들이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허비되는 것에 지쳐있습니다. 볼리비아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주시고, 저들에게 분별력과 용기를 주옵소서.그리하여 저들이     사랑으로 증오에 맞서고,    공의로 불의에 맞서고,    사람들을 위한 헌신으로 무관심에 맞서고,    일치로 개인주의에 맞서고,    평화로 폭력에 맞설 수 있게 하옵소서.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마음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사,평화의 지식과,정의의 능력과,서로 친밀해지는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공의의 표지가 있는 평화의 길로 모든 사람들이 걷도록 인도하옵소서.오, 하나님, 저들의 소리를 들어주옵소서.그리고 저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의 영원한 평화를 주옵소서.<구스타보 로자, 미렐라 아르만드 우곤(Gustavo Roza and Mirela Armand Ugon), 볼리비아> (4)주님, 은혜를 베푸사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한 명이 완전한 시로 빚어질 수 있도록 하시고, 그녀에게 제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곡조를 주어, 저의 입술이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할 때 그녀가 주님을 위하여 노래하게 하옵소서. 이 시대에 주님의 복음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그 믿음을 살아있게 하는 매일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빛나는 광채를 우리의 작은 학교에 비추시고, 주님을 둘러싼 맨발의 아이들에게 비춰주옵소서. 여인으로, 특별히 가난한 여인으로서 제가 연약함 속에서 강하게 하여 주옵소서. 깨끗하지 않은 세상의 모든 권력들과 주님의 뜻과 상관없이 저를 덮치는 모든 구속들을 조롱하게 하옵소서.  <가브리엘 미스트랄(Gabriela Mistral), 칠레> (5)신앙의 확증생명이 오면슬픔은 사랑의 무한한 공간 속으로 없어질 것입니다.생명이 오면굶주림은 사랑의 나눔 속에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생명이 오면고통은 사랑의 열기 속에 녹아질 것입니다.생명이 오면고독은 사랑의 친절함 속에 물러갈 것입니다. 생명이 오면불신앙은 사랑의 신실함 속에 소멸할 것입니다. 생명이 오면불의는 사랑의 의로움 속에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생명이 오면사랑의 목적이 이루어지고여러분과 나는 사랑의 평등 속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아나 마리아 바르가스(Ana Maria Vargas), 볼리비아> (6)어느 여인의 확증하나님께서 저에게 지극한 감수성을 주어 창조하셨기 때문에제 안에서 이 세계를 다르게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신비 속에서 저를 창조하셨기 때문에저는 별들을 보며 별들이 말하는 것을 느낍니다.하나님께서 저에게 바람에 맞설 수 있는 얼굴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제 민족이 마침내 이기고 나가야 할 고통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진리의 소리를 주어 창조하셨기 때문에저는 저를 움직이는 소리를 크게 외칩니다.    비록 그것 때문에 쫓기는 몸이 될 찌라도 말입니다.하나님께서 저에게 생명과 사랑을 가득 채워 창조하셨기 때문에저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수천 가지의 이유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빛과 진리에서 창조하셨기 때문에저는 시기에 맞는 환상을 심어주기를 원합니다.하나님께서 저를 자유롭게 창조하셨기 때문에제 민족이 그들의 생각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소망합니다.하나님께서 저를 따뜻함과 연약함에서 창조하셨기 때문에저는 그대 안에 숨겨진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저를 고독과 망각에서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에저는 당신을 찾고 당신의 사랑이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하나님께서 저를 여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저는 풍성한 생각을 가지고 이 세계의 비밀이 놓여있는슬픔과 기쁨의 역사를 항해합니다. <아나 마리아 바르가스(Ana Maria Vargas), 볼리비아> (7) 어느 여인의 기도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을 높이지 않으면서,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하지 않으면서,주님의 모든 선하심과 저를 향하신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지 않으면서,어떻게 주님께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저는 주님 앞에 엎드려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구하는 비천한 종입니다. 때때로 주님의 딸이 애통해하며 주님 앞에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시는지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제 자신에게 주님께서 저를 만나주실 시간과 제 모든 상처를 들어주실    시간이 있는지 묻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필요를 아뢰기 위하여     주님 곁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주님께서 사람들의 영적인 죽음을 구원하실        그 분이 되기를 구하며,주님의 옷 가장자리에 손을 대었던    그 여인과 같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여인과 같은 단순함을 가지고,    그 여인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주님께서 저의 고통을 치유하실 것을 구하며 주님 앞에 나오게 하옵소서. 저의 고통스러운 삶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올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주님,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침묵 속에서 고통당하고,    차별과 폭력에 희생당하며,    주님의 겉옷 가장자리라도 만지기를 간절히 소원하지만,    고통이 너무나 커서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하여        심지어 한 발걸음도 쉽게 떼지 못하는 여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주님, 그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주옵소서. 저희에게 필요한 믿음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손으로 붙잡아 일으켜 주옵소서.이 지나가는 세상에 현혹되지 않게 하옵소서.주님의 도우심 속에서 우리의 주위 사람들에게  등불이 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아버지, 저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줄리아 페레즈(Julia Perez), 페루> (8)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이름이 거룩합니다. 매순간마다 주님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하시는     생명의 선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주님의 은혜가 주님의 사랑을 확증합니다. 주님의 손 안에 우리의 목적과 생명이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저희가 페루의 미래를 위하여 기도합니다.때때로 굶주림에 고통 받는 가난한 사람들,자연재해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 그들의 주님께 구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서 예비하여 주옵소서.주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주신 것으로 인하여저희가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우리가 소외된 사람들, 주님과 관계를 갖지 못한 사람들,심지어 주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주님, 사람들의 악이 더 이상 퍼지는 것을 금하여 주옵소서.때때로 교회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부정부패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하옵소서.특별히 페루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저들에게 지혜를 주사 더욱 나은 미래를 계획하게 하옵소서.저희가 또한 정의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의가 부인되는 동안     부자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의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저들에게 용기를 주사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받들게 하시고,  주님의 백성들을 조롱하는, 위선적인 배운 이들도 받들게 하옵소서. 오, 주님, 온 세계에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고,파괴와 살인만을 불러오는 전쟁이 끝나게 하옵소서. 성령의 능력이 저희의 마음에 거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주님의 피난처와 보호하심 아래 살게 하옵소서.저희 가족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주님의 행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주님, 우리의 간구에 주님께서 귀 기울여주시니 감사합니다.저희에게 주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함을 주옵소서.주님의 손 안에 저희의 미래와 생동감이 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과분한 많은 것을 주시니 감사합니다.특별히 저희에게 행복을 주시고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저희의 찬양과 기도를 받아 주옵소서.주님, 저희에게 응답해주시니 감사합니다.<빅토르 아스카니오 후아링가(Victor M. Ascanio Huaringa) 페루>
2010-06-29 03:3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