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남측위 신년회, 2020.1.8.
우리는 2019년에, 1919년 3.1운동 100년의 역사적 시공에서 펼쳐진 이 땅의 민초들의 기억의 투쟁 속에 담긴 피눈물과, 고난의 깊음에서 길어낸 사랑과 평화의 샘물로 역사의 갈증을 달래며, 하늘의 명령을 다시 들었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이 이끈 지난 100년의 역사는, 양심과 진리가 인도하는 총체적 역사의 부활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주와 독립, 민주와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 주권재민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2019년 미완의 해방 74년에 맞은 3.1운동 100년에, 부활의 정신으로 분단과 냉전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상생과 통일을 이루라는 하늘의 평화명령을 들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이 하늘의 명령을 이루기 위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2020년을,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의 해인 ‘희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분단과 냉전, 전쟁과 국가폭력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며, 상호의존성을 회복하고 평화공존의 한반도를 재창조하기 위해, ‘희년을 향한 대행진’을 새롭게 출발할 것입니다. 분단과 냉전의 ‘바빌론 포로기’에 형성된 식민적 기득권과 노예적 정체성을 극복하고, 치유되고 화해된 한반도의 평화지형과 해방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분단과 냉전이 한반도 역사의 끝이 아니라는 신앙고백 위에 서서, 치유되고 화해된 한반도,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한반도, 만물의 생명이 풍성함을 누리는 한반도를 회복하고 재창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이 땅에 분단을 강제한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뒤얽힌 냉혹한 국제정치현실의 덫에 걸린 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좌초된 북미관계의 영향으로 남북관계 마저 냉각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한일 갈등까지 심화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프로세스는 암중모색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장벽을 넘기 위해 필요한 남북의 자주적 평화공조도, 외세의 개입과 상호신뢰의 부족으로 답보상태에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에서 한미·미일 동맹체제가 북·중·러 군사협력체제와 형성하고 있는 신 냉전패권구도는, 냉전시대에 형성된 ‘동맹의 덫’에 걸린 채 볼모가 된 한반도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일동맹의 인도-태평양 패권전략은 동아시아 신냉전구도를 강화하며, 한반도 분단체제의 평화적 재구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지난 65 년 간,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의 군사력에 의지하여 국가안보를 유지하면서 분단체제를 강화하는 소극적 평화를 유지해 왔습니다. 1956년 이후 미국은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 남한을 자신들의 핵 기지화하였고, 전략적 냉전식민지로 취급하였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의 과정은 이 지점에서부터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미국이 진정으로 한반도에서 적극적 평화환경을 구축할 의지가 있다면, 비핵화 과정과 평화환경구축과정을 함께 가는 투 트랙으로 설계하고,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실현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남북민간교류재개, 종전선언과 북한체제보장, 경제제재해제와 평화조약체결, 북미수교와 동북아시아공동평화안보체제 구축 등, 일련의 평화적 수단들이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주한미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는 더 이상 비무장지대를 분단지대로 영구화하는 ‘냉전유지군’이 아니라, 남북의 자주적 민간교류와 경제협력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DMZ를 사실상 비무장지대화 하는 ‘평화중재군’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조야가 자신들의 국내 정치의 동학과 군산정보복합체에 좌지우지 되지 말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임해줄 것을 촉구합니다. 특별히 올해 초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중단되어야 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 제재는 철회되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환경구축과정에서 동북아시아 다자간평화안보체제와 비핵지대화를 이루기 위해 샌프란시스코-판문점체제라는 동아시아 냉전의 ‘대 분단선’을 생산적으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인도-태평양 패권전략의 강화를 위해 시도하는 미일군사동맹강화, 한미일 군사삼각편대 구성, 일본의 재무장과 보통국가화,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주한미군 방위비 증가, 한반도에서 유엔사령부의 조직과 역할의 강화 등은, 동아시아 신 냉전구도에 한반도 분단체제를 항구적으로 구속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기독교신앙인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의 주권자이시며 선한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 앞에서, 한반도평화를 저해하는 모든 분단냉전세력들은, 스쳐가는 하나님의 입김에 시들고 지는 한낱 풀이나 마른 꽃과 같은 존재입니다. 강대한 민족들이 모여 제국의 이익을 도모한들, 하나님 앞에서는 허무하여 그 자취도 찾을 수 없습니다. 권력에의 탐욕에 사로잡힌 종교정치집단들이 국민을 볼모로 ‘내전’을 방불케 하는 국론분열을 보이고 있지만, 그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타다 남은 재와 같은 존재입니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히 살아 역사를 주관하심을 믿기에,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로 인한 구원은 영원하고, 진리가 세우는 정의는 넘어지지 않으며, 진리가 맺은 평화는 빛처럼 쏟아져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말라 버릴 풀과 같고, 타다 남은 재와 같은 권력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 속에서 행하신 대로, 이제 팔을 일으키시고 그 팔에 힘을 내셔서 모든 제국의 압제를 물리치시므로, 분단된 한반도의 인민대중이 환성을 올리며 주체할 수 없는 흥겨움과 즐거움으로 돌아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2020년 한국전쟁 70년, 세계종교시민사회와 더불어 “2020 글로벌 희년 평화운동”을 전개합시다. 분단과 전쟁과 냉전의 질곡 속에서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유린당하고 있는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를 구축하라는 명령을 들으며, “희년을 향한 대행진”을 진행합시다. 2020년에 “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공존의 한반도’를 모티브로 한국전쟁 참전국들과 유엔과 세계종교시민사회를 설득하므로, 기필코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체결을 선취합시다. 치유되고 화해된 기억의 유산이 이 땅에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견고한 토대요 이정표가 되게 합시다. 이것이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우리들의 다짐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상호신뢰와 격려가 필요한 전환기적 갈등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기는 없지만 기도와 대화를 통하여 갈등을 평화의 계기로 전환시키며, 사회적 생명자본을 축적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평화는 삶의 온전성과 총체성을 증진시키는 길입니다. 한국사회 안에 깊이 내재된 분단냉전의식의 극복은 마음의 평화 만들기, 일상의 평화적 관계 만들기, 사회적 연대 만들기를 통해 구체적 현실성을 확증해 나갈 수 있습니다. 2020년,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따라,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며, 희년을 향한 공동의 순례의 여정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