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현장소식2
빅데이터를 통한 ‘테러’ 예방
뎡야핑_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의 군사정부(COGAT)는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통치한다. 2017년 1월 기준으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는 이스라엘 군사정부가 설치한 총 98개의 군사 검문소가 있다(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UNOCHA) 집계). 이 중 39개의 검문소가 베들레헴과 칼란디야 등지의 장벽에 위치한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은 장벽의 검문소 중 27 군데에 애니비전(AnyVision)이라는 이스라엘 업체가 만든 안면인식 카메라와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일상적으로 검문소를 지나 학교, 일터, 병원 등에 가야 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생체정보가 담긴 전자 신분증(스마트 신분증)을 발급했고, 장차 이 카드가 없으면 검문소를 아예 통과하지 못 하게 할 예정이다. 2019년 6월 기준 서안지구 주민들에게 382,000 개의 전자 신분증이 발급됐다.
군 당국은 스마트 신분증과 얼굴을 스캔당해 검문소를 통과하는 이들의 정보가 수집돼 다른 용도로도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 장벽 외에 서안지구 안에 설치된 59개의 상시 검문소 중 어디에 애니비전의 카메라가 설치되었는지 역시 밝히지 않고 있다. 또 기습적으로 설치되는 이동식 검문소(mobile checkpoint)라는 것도 있는데,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5,587개, 2,941개 설치되었다(유엔 집계). 카메라의 기종을 불문하고 설치 및 연동, 실행이 간편한 애니비전 안면인식 프로그램의 특성상 이동식 검문소에서도 사용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역시 알 수는 없다. 결국 팔레스타인인은 언제 어디서 자신들이 촬영되는지, 그렇게 촬영된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저장돼 활용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수집 과정과 활용에 대한 통제는 더욱 불가능하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검문소에서 신분증 정보와 전화번호, 차량 정보, 얼굴 사진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자칭 ‘테러 방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왔다. 네타냐후 수상은 여러번 “빅데이터”를 활용해 ‘테러’를 예방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존에 검문소에서 수동으로 일일이 정보를 수집해야 했던 이스라엘 군인들이 높은 업무 강도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제 생체정보가 담긴 ‘스마트’한 시스템의 도입으로 데이터 수집과 신분 확인 절차가 간소화되고 편리해졌다. 일견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피점령민 양자 모두에게 이로운 일처럼 보인다.
안면인식 기술 도입이 의미하는 것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런 안면인식 시스템의 도입을 통해 ‘국경 검문소’, 즉 27개 장벽의 검문소가 “공항 터미널” 같아졌다고 말한다. 같은 인식을 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공유한다. 좁고, 지저분한데다 매일같이 붐비던 검문소가 쾌적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피점령지 주민으로서, 점령당국의 폭력을 매일 면대면으로 경험하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점령군과 접촉이 최소화되는 것만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시의 고도화는 검문소를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상의 일부분으로 만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전력을 다해 시도하는 팔레스타인 점령체제의 정상화·영구화에 이바지한다.
안면인식 기술과 생체정보의 DB화도 문제적이다. 2019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는 미국 최초로 경찰 등 55개 행정기관이 범죄수사를 위해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를 통과시켰고 여러 도시들도 잇따라 같은 내용을 통과시켰거나 논의중이다. 감시 기술이 인권 침해적인데다, 생체정보는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특성 상 피해 발생 시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얼굴사진 등 생체 정보를 저장해서 테러 예방 명목의 거대한 감시 체제를 만들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정보가 어떻게 수집돼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아낼 방법도 없다. 한편으론 이렇게 모인 생체정보들이 빅데이터화돼서 애니비전 같은 이스라엘 업체의 자산이 되고 기술 개발에 활용될 우려도 크다. 안면인식 기술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안면인식 기술 개발을 위해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인터넷 상의 사진을 마구 가져다 데이터셋을 만든 기업들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애니비전이 자랑하는 높은 정확도는 이런 문제제기를 받지 않은 채로, 아무런 통제 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용해 개선되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애니비전의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큰 비판을 받고 있다. MS사는 이전에 미국 이민관리국이 이민자 단속을 위해 MS사의 안면인식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밝히자 비판 여론에 몰렸었고, 곧 기술 제공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일이 있었다. 이와 같은 비판은 애니비전 투자에도 적용된다. MS사는 안면인식 기술 개발과 적용에 관한 윤리적 지침을 만들기도 했다. 이 지침이 애니비전에만 예외가 되어선 안 된다.
매일 일터에 가기 위해, 병원에 가기 위해 일상적으로 검문소를 지나쳐야 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로서는 안면인식을 비롯한 감시 시스템을 거부할 방법이 없다. 반세기 넘게 극악한 점령정책과 경제 말살에 시달린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피할 쉬운 선택지로써 생체정보 제공은 너무나 유혹적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반세기 넘은 점령체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길 바라왔다. 이스라엘의 오랜 바람은 성공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