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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e뉴스 14호) 감시 프로젝트, 검문소가 선진화 되다?!

입력 : 2019-10-30 16:49:35 수정 : 2019-10-31 16: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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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e-news

생생한 현장소식1

 

감시 프로젝트, 검문소가 선진화 되다?!

 

뎡야핑_팔레스타인평화연대

 

어느 날 갑자기 서울을 둘러싸는 8m 높이의 장벽이 생긴다면 어떨까? 학교에, 직장에, 동네슈퍼에 갈 때마다, 친지를 만나러 갈 때마다 이 장벽에 설치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면? 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게 외국인 군인들이라면? 게다가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생체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면?

 

잠깐만 상상해도 놀랍고 두려워지는 한편, 요즘에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주민들이 지금 현재,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이다. 특히 올해 이스라엘 군사정부가 검문소 등지에 안면인식 카메라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통제가 더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왜 이런 일을 지금 겪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 해 온 역사를 간략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팔레스타인 즉 서안지구·가자지구·동예루살렘과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군사점령했다. 그러고는 동예루살렘과 골란 고원을 자국 영토로 불법 편입했고,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많은 부분도 자국 영토로 불법 편입시켰다(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병합한 땅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한 채 생필품, 의약품 등 물자와 인구 이동을 통제하면서 주기적으로 침공해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은 점령 이래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곳곳에 제네바 협약상 금지되는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자국민을 이주시켰다. 2002년부터는 주로 8미터 높이의 콘트리트 장벽으로 서안지구를 둘러싸는 공사를 시작해 거의 완공했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막겠다는 명분이었다. 장벽 건설은 2004년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로부터 불법이라는 결정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이 장벽이 서안지구와 이스라엘 사이의 ‘국경선’이라도 되는 양 장벽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는 ‘국경 검문소’라 부르고 있다. 장벽은 실제로는 서안지구 안쪽 땅을 깊숙이 침범하며 세워졌고, 많은 팔레스타인 마을이 장벽 때문에 갈라졌다. 이스라엘은 또다시 그 땅을 불법 병합했다.

 

장벽의 검문소는 서안지구 안 곳곳에 세워진 검문소와 함께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군사점령 만행의 장소로 꼽힌다. 우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 중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 점령 정책을 실행하는 모든 기관은 이스라엘 군에 속해 있고, 검문소 역시 군인들이 관리한다. 즉 모든 검문소는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군사 검문소이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검문 정책 때문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검문소에서 일상적으로 군인들에 가로막히곤 한다. 때문에 검문소에서 임산부가 출산을 하거나 결국 병원에 가지 못한 임산부나 환자가 사망한 예가 적지 않다. 물론 사망자 중엔 어린이들도 있다.

 

또 매일 아침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로 출퇴근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4시간 가까이 검문소에 줄을 서서 통행을 허가받기 위해 대기해야 했다. 올 초 이스라엘이 1천여 억 원을 들여 검문소를 ‘선진화’한 덕분에 노동자들의 대기 시간은 4시간에서 10분으로 줄어들었다. 검문소에 안면인식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생체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며 가능해진 것인데, 팔레스타인 주민 감시의 디지털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 e뉴스에 싣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애초에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출퇴근 길 도합 8시간을 대기하면서까지 왜 이스라엘로 일하러 갔던 것일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노동자들로 이스라엘을 위한 거대한 하부 인력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한 뒤 팔레스타인의 산업을 파괴하고 국경과 수출입을 통제해 경제를 고사시켰다. 이스라엘 화폐가 기본 통화로 지정되고 이스라엘로부터 공산품을 구입하도록 강제되며 팔레스타인의 물가는 이스라엘에 맞춰졌다. 이스라엘의 물가는 한국보다도 높다.

 

그리고 이스라엘 유대인이 꺼려하는, 즉 임금이 적고, 힘들면서 법적인 보호 장치가 적은 직업군에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노동자를 데려오기 시작했다. 같은 일을 하고도 팔레스타인 노동자의 임금은 유대인 노동자 임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지만, 팔레스타인에 제대로 된 산업이 성장할 수 없었고, 따라서 실업률 역시 몹시 높았기 때문에 많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스라엘로 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군사점령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이 많다는 이유로 2000년대 중반부터 노동자의 출입을 엄격히 관리하기 시작했고 노동 허가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스라엘군은 검문소에서 이스라엘로 출근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의 몸을 수색하고 노동 허가증을 소지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 과정 때문에 팔레스타인 노동자는 매일 아침 적어도 출근시간 4시간 전부터 검문소에 줄을 서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소위 ‘테러리스트’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장벽과 검문소를 세웠다. 팔레스타인 사람 중에 테러리스트가 있다고 치더라도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군사점령 정책은 국제법상 금지되는 ‘집단 처벌’에 해당할 뿐이다. 또 애초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하고 주민들을 주기적으로 학살하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자신의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테러’를 감행할 이유가 없다. 테러가 원인이고 장벽 건설과 검문소 설치가 결과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원인이고, 테러를 비롯한 그에 대한 저항이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인과관계가 명백할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군사점령지 전역에서 철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