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팔 양국교회협의회 참가기
작성: 최수산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회원교회와 연합기관을 중심으로 대표단을 구성해 예수의 땅, 팔레스타인에서 2018년 4월 22일(일)-28일(토), 팔레스타인 기독교 그룹과 첫 공식협의회를 하였다. WCC 예루살렘 인터처치 센터(Jerusalem Inter-Church Center)의 Yusef Daher 국장을 중심으로 NCCOP 그룹과 한국 11명의 대표단은 팔레스타인 순례와 양국 교회간의 연대를 다짐하고 대화하였다. 이홍정 목사(NCCK 총무), 이용윤 목사(NCCK 국제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은애 사모, 한미미 선생(NCCK 국제위원회 부위원장, 세계YWCA 부회장), 정현범 목사(감리회 선교국 부장), 박인곤 보제(한국정교회 대교구 비서관), 정주진 선생(평화학 박사), 김흥수 목사(한국YMCA전국연맹 이사, 목원대 명예교수), 이윤희 선생(한국YMCA전국연맹 기획실장), 최수산나 선생(한국YWCA연합회 부장), 황보현 목사(NCCK 부장)이다.
본 글은 예수의 땅 팔레스타인 순례 일정에 따라 만난 그들의 모습과 현황, 그리고 한-팔 교회의 협의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첫째 날 (벳자훌-베들레헴-EAPPI와 JIC만남)
팔레스타인 기독교그룹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공식 만남을 위한 일정은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은 무한한 이상'이라는 공격적인 문구가 대형 전광판에서 화려하게 관광객들을 맞이하였다. 우리를 마중 나온 JIC(Jerusalem Inter-Church Center) 소속 유세프 국장과 전용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의 동과 서를 가르는 분리장벽을 따라 검문소(Check-Point)를 통과하여 숙소가 있는 동 팔레스타인의 벳자훌로 향하였다.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모여 사는 3개의 마을 베들레헴(Bethlehem), 벳잘라(Beit Jala), 벳자훌(Beit Sahour)은 불법적으로 합병된 이스라엘 정착촌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어, 베들레헴 '구역(Area)'으로 불린다. 벳자훌은 베들레헴의 남동쪽으로 예루살렘에 접해 있으며, 마을 중심의 YMCA 건물 앞 '예루살렘 거리'는 한 때 'YMCA거리' 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 한다.
첫 방문지인 목자교회(Shepherd’s Field Church)는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아기예수의 탄생을 알려준 들판에 세워진 곳이며, 프레스코 벽화와 15세기 비잔틴 양식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교회 뜰에서는 예수의 족보에 오른 이방인 여인 룻이 이삭을 줍던 보아스 들판(Boaz Field)이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원래 삼림이었던 곳을 1987년 이후 이스라엘에서 무분별하게 밀고 들어와 형성한 불법 정착촌이 있다. 1948년 5월 15일 대재앙(Nakba, 이스라엘 건국일이자 팔레스타인 대재앙의 날)으로 인해 거주지를 몰수당하고 쫓겨난 팔레스타인은 75만 명에 이른다.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은 요단강 서안지구(West Bank)에 거주한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은 총 60곳으로 파악되며, 서안 19곳, 베들레헴 3곳, 가자 8곳, 요르단·시리아·레바논 등지에 흩어져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분리장벽은 총 길이 700여km이다. 1949년 두 나라 간 협정에 따른 휴전선 ‘그린 라인’은 315km을 명시하지만, 이스라엘은 불법 건설과 점령을 넓혀가고 있다. 베들레헴의 아이다(Aida) 분리장벽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그래피티(graffit)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방문자들에 의해 장식되어 있다. 유명한 그래피티 화가 뱅크시(Banksy)의 작품을 비롯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그림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다 청소년센터 도로 앞에는 큰 문 모양 위에 커다란 열쇠가 설치되어 있는데, 잃어버린 고향 집에 돌아가기 위해 집 열쇠를 계속 보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마음을 상징한다.
Wi'am(‘아가페’의 뜻)센터는, 팔레스타인 땅을 불시 침범하는 이스라엘로부터 땅을 지키기 위해 분리 장벽 바로 앞에 위치한다. 청소년 지도력 강화, 여성들의 직업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 아동 트라우마 치유와 교육, 그리고 비폭력 저항 활동들을 운영하고 있다. 아라빅(arabic) 전통의 커피 명상을 활용한 갈등 해결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 우리도 향이 독특한 아라빅 커피를 대접받고 옥상에서 베들레헴 장벽을 바라보며 마음 속 기도를 한다.
예수탄생교회(The Church of Nativity)를 들어가는 문은 ‘겸손의 문’이라 불린다. 매우 좁고 낮아 몸을 숙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말을 타고 들어오는 외부인의 침범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 성당은 주후 4세기 성 헬레나에 의해 지어졌다가 6세기 완공되었는데, 7세기 초 페르시아군의 침략 시 대부분의 교회가 파괴되었으나, 이 곳 만은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럼에도, 2차 인티파다(Intifada, 이스라엘의 점령과 폭력에 항거한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의 두 번째 해인 2002년에, 이 교회마저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40일 동안 포위당했다고 한다. 예수 탄생의 자리는 가운데 구멍을 남기고 14각의 은을 새긴 별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는 십자가의 길 14곳, 그리고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으로부터 바빌론 유배시대까지 14대, 그 후 예수까지의 14대를 상징한다. 예수 탄생 자리의 기도 인파 속에서, 이 교회를 관리하는 팔레스타인 그리스 정교회 측의 배려로 짧은 줄을 안내받아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예수탄생교회 평화광장 가까이에 있는 우유동굴교회(Milk Grotto Church)는 유아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가는 길에 예수의 가족이 잠시 머문 동굴인데, 벽화에 기대어 입을 맞추고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근방에는, 히브리어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성 제롬의 번역 동굴과 성 카타리나를 기리는 수도원이 함께 있다. 이곳은 매년 봉헌하는 성탄 대축일 미사가 열려 전 세계에 중계된다.
WCC가 팔레스타인 정의 평화 문제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JIC(Jerusalem Inter-Church)와 EAPPI(Ecumenical Accompaniment Programme in Palestine and Israel)의 운영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두 개의 프로그램은, 2002년 팔레스타인의 교회연합들이 이스라엘 불법 활동에 대한 감시와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WCC에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JIC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및 중동교회협의회(MECC)가 예루살렘의 교회들과 연계하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팔레스타인 기독교 교회와 단체들의 일을 조율하고, 카이로스 팔레스타인(Kairos Palestine) 그룹의 신학 작업을 코디하며, 세계교회를 방문하고,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지역 교회들간 조율, 접점 역할을 하고 있다. EAPPI는 정의로운 평화와 점령 종식을 위한 비폭력과 옹호 활동을 임무로 하며, 이스라엘의 불법적 점령과 파괴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고 폭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 각국에서 방문하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에큐메니컬 동반자(Ecumenical Accompaniers)로 불리며, 각 3개월간의 활동을 통해 비폭력과 인권 등에 대한 훈련을 받음과 동시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교하고 시민들이 협박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동행하는 등의 취약계층 보호와 인권침해실태 조사 및 캠페인을 펼친다. 2002년 설립 이후 약 2천 명의 동반자들이 함께 해왔다. 이날 만남에서 두 그룹의 멤버들은 한국교회가 팔레스타인 문제와 기독교인들에게 관심을 보여준 것에 감사하면서, 인간에 대한 존중과 공존, 그리고 평화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연대 책임을 강조했다.
둘째 날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감람산)
둘째 날은 성지순례의 길에 동참하기 위해 아침 일찍 예루살렘 구 시가지를 향하였다. 일반적으로 예루살렘 성지 순례자들은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슬픔의 길)의 총14처를 순서대로 순례하는데, 우리는 대략 역순으로 움직였다.
서쪽에 위치한 욥바문(Jaffa Gate)에서 버스를 내려, 예루살렘 성터의 최초의 흔적이 남아있는 성벽을 지나, 아르메니아 지역을 따라 걷는다. 아르메니안 지역은 현재는 대부분 유대인들에게 침범 당해있다. 시온산을 가기 위해 남서쪽의 시온문(Zion Gate)을 지난다. 이 문은 성문 밖에 다윗왕의 가묘가 있어 다윗문(King David Gate)으로 알려져 있다. 다윗왕의 무덤은 자주색 천으로 덮여있고 다윗의 별인 금박의 별들이 무덤을 덮은 천에 새겨져 있다. 생경스럽게도 남녀의 입구가 따로 있고, 남자 쪽은 넓고 예배 공간도 마련되어 있는 반면, 여자 쪽은 비좁다. 같은 건물의 2층은 마가의 다락방(Coenaculum, Room of the Last Supper)이다.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을 거행하셨고, 부활 후 처음 나타나셨으며, 오순절 성령 강림의 장소로서 의미가 있다. 오토만 제국 당시 모스크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1948년 이스라엘 정부로 넘어가면서 현재는 일 년에 단 한 차례의 정교회 예배만 허락되고 있다고 한다.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앞에서 현지 그리스 정교회 분들의 안내를 받았다. 교회 내부는 그리스정교회, 로마카톨릭교회, 콥트정교회, 아르메니아카톨릭교회 등이 분할해서 관리하고 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 지낸 예수의 무덤(14처)은, 3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 좁은 공간이라 줄을 서서 들어간다. 무덤을 덮은 하늘색 천에는 희랍어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Χριστός ανεστη)’라고 새겨있다. 작은 공간을 따라 나오는 바로 앞에는 예수의 시신이 누였던 돌판(13처)이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예수의 십자가가 꽂혀졌던 골고다 언덕(12처)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있다. 예수가 못 박히신 곳(11처)와 병사들이 옷을 벗겨 나눠가진 곳(10처)까지, 10처부터 14처까지가 성묘 교회 안에 있다. 특별 안내로 들어간 교회 사무실 안쪽에는 성 헬레나가 발견한 예수의 십자가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십자가가 전시되어 있었고, 사무실 뒤편으로는 골고다 언덕의 바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밖으로 나와,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쓰러지신 3개의 장소(9처, 7처, 3처), 베로니카가 땀을 닦아드린 곳(6처),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매어드린 곳(5처), 어머니 마리아와 만나신 곳(4처), 채찍을 맞으신 곳(2처), 빌라도 법정(1처)을 거친다. 비아 돌로로사를 따라 걸으며, 예수의 땅에서 일어나는 약자 팔레스타인의 점령과 세계 곳곳의 분쟁, 그리고 평화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묵상한다.
이스라엘 관리 하에 있는 통곡의 벽(Western Wall)을 가기 위해 체크포인트를 거쳐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으로 따라 들어간다. 벽에 손을 대고 각자 평화의 기도를 하는 중에도, 담 사이에 꽂혀진 기도의 종이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동쪽의 라이언문(Lion Gate)은 스데반이 끌려나가 근처에서 돌을 맞아 순교한 곳이라 스데반 문(Stephan Gate)으로도 불리운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예수의 외조모 안나의 집이자 성모 마리아 탄생지로 추정되어지는 성 안나교회가 예쁜 정원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그 위로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다. 양문(Sheep Gate) 곁에 있는 이곳은, 원래는 희생 제물에 쓸 양을 씻는 곳이었다. 연못이라기보다는, 두 개의 수조로 아래 위가 분리되어 있는 빗물 저장소인데, 환자들이 와서 몸을 씻었다. 38년 된 병자도 이곳에서 안식일에 예수를 만나 병 고침을 받았다. 베데스다 연못을 바라보는 곳에는 어제 만난 EAPPI 사무실이 있다. 건물의 2층 강당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는데, 평화의 이야기들을 담은 워크숍 결과물들이 옹기종기 걸려있었다.
감람산(Mount of Olives)은 동예루살렘 구 시내에서 예루살렘(‘평화의 도시’라는 뜻) 시내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한다. 감람산 서편의 겟세마네 동산에는 마리아무덤교회와 만국교회가 있고, 예수가 마지막 기도 후 체포되신 곳을 기념하는 만국교회 뜰에는 수령이 몇 백 년은 족히 넘는다는 올리브나무들이 처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남쪽으로는 각국의 주기도문이 새겨져있는 주기도문 교회가 있다. 마침 우리 팀만이 교회 안에 남아 주기도문 찬양을 드리는데, 주의 기도가 가슴 속에 아프고 깊게 울린다. 예수의 십자가의 길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로 돈과 권력을 따라 북적인다.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며 미 대사관을 이전하여 분쟁에 불을 붙인다. ‘평화의 도시’를 바라보는 감람산에서 예수의 기도를 기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