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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허원배 목사)는 "오직 공의를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하라"는 예언자 아모스의 외침을 따라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일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라 고백하며, 불법과 불의, 부정과 거짓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세우고, 유린당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자 12월 16일(월) 대한문 앞에서 시국기도회를 개최하고, 아래와 같은 선언문을 발표하였습니다.
![]() 정의,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선언문
“너희가 회당과 통치자와 권력자 앞에 끌려갈 때에 ‘어떻게 대답하고 무엇을 대답할까, 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누가 12: 11-12).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누가 12: 56).
오늘 한국사회는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우리 삶과 관계의 근간이 되는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가 땅에 추락하고 있으며, 모든 곳에서 평화를 외치고 간구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 삶이 평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최근 대학가에서 ‘안녕하십니까?’란 인사에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젊은이들의 대답에서, 절망하고 고뇌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직시하게 되고, 우리 사회의 위기적 한계를 더욱 느끼게 됩니다.
한국 사회는 지난 대선을 통해서 그동안 ‘약속’과 ‘신뢰’의 화신처럼 이야기되어 온 박근혜 후보를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택 했습니다. 하지만 취임 후 대통령의 행보는 기대와 전혀 달라졌습니다. 대통령이 약속파기, 불통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노인 및 학생 자살률, 젊은이의 실업률, 이혼률 등은 한없이 올라가고, 쌍용자동차 사태, 밀양 송전탑 사태로 국론은 분열되었으며, 철도를 비롯한 각종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 방침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 권력기관의 불법 선거 개입 사건이 벌어졌고, 그 일들을 덮기 위해 공안정치를 자행하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에 닿아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현 정권의 불의와 부정들을 은폐시키는 종북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1세기 전 나라를 잃었을 때보다도 더 위험하다는 “망국론”까지 들먹여지는 상황이지만, 남북은 그렇게 집안 싸움에 몰두하느라 자신들이 공동의 운명체라는 것을 잊고 외세에 대처할 힘을 소진해가고 있는 까닭입니다.
최근 우리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를 마쳤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만물(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자 성서의 핵심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인 것을 명백히 선포하였습니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이고 “천문학적 연봉은 탐욕 경제의 상징물”(교황 프란치스코 발언)이라는 말과 같이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서의 경제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는 결코 기독교 복음과 함께 갈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뒤틀려진 정의와 평화의 부재는 기독교적 구원이 완성되지 못한 징표이고, ‘하늘이 땅이 된’ 성탄의 사건 역시 로마의 ‘정치’와 성전의 ‘종교’로 인해 이중고를 겪었던 당대 민중들에게 정의와 평화의 복음이었음을 우리는 잘 기억합니다. 이에 우리 교회는 비록 지금까지 맘몬주의에 편승해 살아왔기에 부끄럽기 한이 없으나 다시금 본래의 사명과 가르침을 회복하면서 다시 새 길을 가고자 합니다.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나라, 돈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지 않아서 가난한 자가 절망하지 않는 나라, 남북 민족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고, 우리 삶의 터무니(地文)가 쉽게 폭력적으로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생생히 보존되는 아름다운 산하(山河)를 가꾸는 일, 바로 이러한 일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들이고 살아야 할 이유라는 것을 다시 확실히 되새기고자 합니다.
이미 지나간 오랜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잘 드러난 대로 기독교와 현실 정치는 나뉠 수도 하나일 수도 없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원칙 아래서 지내왔습니다. 우리는 종교인의 직접적 정치 참여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의와 평화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종교인은 그 어느 집단보다도 그런 불의한 정치 현실에 저항해서 일어납니다. 법이 불법이 되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며 독재와 불통이 일상이 될 때 저항은 그리스도인의 운명이자 실존입니다. 이를 정치 참여라고 매도하지 마십시오. 이는 정치 권력을 얻고자 하는 일이 아니라 모두의 삶과 관계를 다시 바르게 하려는 것이기에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저항과 비판이 불편하다면 옳게 하면 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종교인의 예언자적 역할을 종북 프레임으로 몰고 간다면 우리의 저항은 어떤 바람도 눕힐 수 없는 들판의 풀처럼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현 정부가 더 이상 종교와 적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선 종교는 항상 민중들과 함께 했고, 곧 그것은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민중들의 소리였습니다. 그것은 보수, 진보의 구분을 넘어서 인간의 본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이고,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 우리 시대의 한국 교회도 거듭나서 다시 그 소리의 대변자가 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어떤 현실의 권력도 그것을 이길 수 없고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과거 민주화를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민중들의 힘을 보았고, 그 힘은 바로 정의와 평화를 향한 올곧은 신앙에서 나왔음을 고백합니다. 일시적으로 지는 것 같으나 마침내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민중이었고 그들 편에 선 종교였다는 것을 우리의 민주화 역사가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고언(苦言)대로 이 정권에게 진실을 기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지난 정권의 불법적인 대선 개입을 인정하고 그로 불거진 온갖 거짓과 술수, 폭력을 사죄하는 길만이 지금 풍전등화와 같은 국제 정치의 현실에 놓여있는 한국 민족이 사는 길이고, 현 정권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대통령 자신도 업(業)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지키고자 희생시킨 억울한 이들이 얼마나 큰 고통과 한(限)을 품고 있는지를 위정자들은 깊이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해외 곳곳의 동포들과 교회들 역시 조국이 불법으로 정권을 잇는 국가라는 오명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그를 위해 투쟁하고 입장을 표명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대정신과 호응하지 못하는 권력은 용납될 수 없고, 앞으로 건강한 보수 세력에 의해서도 버림받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불법에 대한 우리의 저항과 항거는 정의와 평화를 원하는 생명의 하나님 사랑과 잇대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시대의 신앙인들은 각자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계속 갈 것이고 하나 둘씩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분명 우리에게 예와 아니오의 답을 명백히 가르치실 것입니다. 지금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그리하여 저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불법과 불의, 부정과 거짓에 대항하는 여정을 더욱 힘차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에 앞서 현 정권이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되돌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간 종교계가 요구했던 사안들이 실행되기를 현 정권에게 재차 촉구합니다.
하나, 현 정권은 지난 대선기간 중 불법선거를 주도했던 국가기관의 관계자들을 직위고하 를 막론하고 찾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이런 불법선거가 자행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깊이 사죄하고 재발방지책을 신속하게 제시하길 촉구한다.
하나, 현 정권은 좌파 / 종북 몰이를 통해 사상과 언론 그리고 집회 자유를 침해하는 공안정치를 종식하고 온 국민이 바라는 특검을 실시하여 작금의 사태와 관계된 검찰과 경찰 그리고 청와대 보좌진들의 진실 은폐 과정을 명백하게 밝혀주길 촉구한다.
하나, 현 정권은 국책사업이란 이름하에 힘없는 민중들에게 폭력과 강제력을 동원하여 그들의 재산권, 집회, 결사권을 비롯한 인권을 해치는 비민주적 처사를 더 이상 지속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한 시대정신에 부합한 법률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하나, 현 정권은 안보라는 미명하에 여론을 오도하고 민주정신을 해치는 일부 공영방송과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종편의 보도행태를 바로잡고 언론에 대한 직간접적 개입을 완전히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하나, 현 정권은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 그리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차별 금지법 등을 통해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이들의 기본적 인권을 위한 법적 안전망을 신속히 구축할 것을 촉구한다.
2013년 12월 16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 외
정의·평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기도회 참가자 일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