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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통일운동 십자가 진 ‘실천적 그리스도인’ 잠들다

입력 : 2013-10-07 09:29:19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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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 십자가 진 실천적 그리스도인잠들다
 
글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등록 : 2013.10.07 19:04
 
홍근수 목사
 
평화군축운동 홍근수 목사 별세
 
향린교회 담임맡아 교회개혁 실천
평통사 창립·소파개정운동에 앞장
기독교·사회운동 큰 발자취 남겨
 
교회개혁과 사회민주화·평화통일 운동에 헌신해온 홍근수 목사(사진)7일 오전 94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
 
홍 목사는 1987년부터 향린교회 담임목사를 맡으면서 진보적 목회활동을 펼쳐왔다. 1994년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을 창립해 평화군축운동이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 박정희기념관반대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상임대표, 불평등한 소파(SOFA) 개정 국민행동 공동대표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실천적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줬다.
 
홍 목사는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강제징집을 당했다. 법대를 마친 뒤 바로 한신대 대학원에 진학해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신학교 졸업 이후 6년간 시골의 농촌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197437살의 늦은 나이에 가족을 한국에 남겨둔 채 미국 시카고 루서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보스턴한인교회 등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홍 목사는 1987년 고 문익환 목사의 추천으로 향린교회 담임목사를 맡으면서 다시 한반도의 현실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향린교회에서 홍 목사는 교회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목사 및 장로의 임기제를 도입하는 등 교회 개혁에 힘을 쏟았다. 그 자신은 70살 정년까지 향린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교단의 연금을 받을 수 있음에도 65살에 조기 은퇴를 결정했다.
 
홍 목사는 또 목회자로서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주도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의 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선언은 남북 정부 당국이 남북 양쪽에 관한 정보를 독점하거나 통일논의를 독점하지 말 것과 남북한 양측은 체제나 이념의 반대자들이 자기의 양심과 신앙에 따라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도록 최대한 허용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홍 목사는 1991년 티브이 토론에서 소신발언을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 반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한국방송>(KBS) ‘심야토론에 토론자로 나선 그는 유럽 여러 나라들처럼 공산당을 합법화시켜야 비로소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 목사는 1994년 문규현 신부와 함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을 결성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실천이라 할 만하다. 평통사는 평화군축을 목표로 삼는 최초의 대중단체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의 기반이 돼는 군축활동 등을 벌여왔다. 홍 목사는 파킨슨병의 일종인 진행성 핵상마비 증세로 2010년 입원하기 이전까지 평통사 상임대표를 맡으며 평통사를 전국 19개의 지부와 22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큰 조직으로 키웠다.
 
홍 목사가 이끄는 평통사는 매향리 미군 폭격장 폐쇄운동 미군 장갑차에 숨진 미선이·효순이 사건의 사회화 북한에 공격적인 군사무기 도입 반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등을 통해 통일은 전쟁 없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홍 목사는 한반도 평화기반 조성에 힘쓴 일을 평가받아 2006년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 목사와 아들 성산, 성봉, 딸 정화씨를 남겼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특실 303, 발인은 11일 오전 8이며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평통사는 9일 오후 5시 장례식장에서 추모행사를 열고, 을지로2가 향린교회에서는 11월 오전 10시 영결식을 할 예정이다. (02)927-4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