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너무나 큰 아픔의 잔을
마셔야 할 때,
고통의 강이
우리를 덮칠 때,
우리의 눈에서 슬픔의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릴 때,
그러한 때를 보낸 후에야
우리 이웃들의
깊은 한숨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훌리아 에스키벨(Julia Esquivel), 과테말라>
마셔야 할 때,
고통의 강이
우리를 덮칠 때,
우리의 눈에서 슬픔의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릴 때,
그러한 때를 보낸 후에야
우리 이웃들의
깊은 한숨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훌리아 에스키벨(Julia Esquivel), 과테말라>
벨리즈 (Belize)
통계
인구: 2백8십3만 명
정부형태: 의회제 공화국
언어: 영어
문자해독률:
종교: 로마가톨릭 53%, 개신교 28%, 소수 이슬람, 힌두교, 유대교, 전통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카리빅 중앙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감리교, 서인디아 지역 교회(성공회)
역사
벨리즈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작고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이다. 동쪽으로 카리브해, 남쪽과 서쪽으로 과테말라, 북서쪽과 북쪽으로 멕시코와 접하고 있다. 이 나라에 남아있는 수많은 유적들은 250년부터 900년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던, 백만 명 이상의 마야 인디언들이 모여 살며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문명의 발달상을 보여준다. 오늘날 적은 수의 후손들이 벨리즈에 살고 있다. 이들은 특별히 최남단에 위치한 톨레도(Toledo)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1638년, 베이맨(Baymen)으로 알려진 영국인 목재업자들이 이 지역에 처음 정착한 유럽인들로 알려지고 있다. 베이맨들은 마야 인디언들을 사로잡아 로그우드(logwood)를 벌목하는 노예로 부렸다. 로그우드는 보라색과 붉은색 염료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이들 초기 정착민들은 그 후 150년간 주변 나라들에 정착한 스페인 정착민들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1763년 파리조약으로 베이맨들이 귀국하는 길이 열렸으나, 스페인 정착민들은 계속하여 공격하였다. 1798년 영국 해군의 지원을 받은 베이맨들이 큰 승리를 거두면서 스페인 정착민들과의 전투가 종결되었다.
영국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서서히 확대시켜갔고 1840년 영국령 온두라스를 건설하였다. 그 후 벨리즈는 이웃한 과테말라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갈등을 빚다가 1981년에서야 독립국이 되었다. 과테말라는 벨리즈는 자국의 영토로 간주해왔다. 오늘날 벨리즈는 영국 연방의 일원이며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OAS)의 회원국이다.
벨리즈는 적은 인구수와 관광산업의 잠재력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이 지역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높은 수준의 생활을 해왔고,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카리브해 국가들과 보다 많은 공통점을 공유해왔다. 인권은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되고, 법적으로 권장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여성부(Women"s Bureau)가 설치되어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
1848년 멕시코에서 인디언들의 폭동이 일어나자 멕시코의 로마가톨릭교회 선교사들이 벨리즈로 건너온 것이 처음 기독교가 전래된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로마가톨릭교회는 벨리즈에서 가장 큰 기독교이다. 1825년 영국의 감리교회가 선교를 시작하였고, 그 뒤를 성공회가 뒤따랐고, 이들이 현재 벨리즈에서 두 번째, 세 번째 큰 교세를 가진 교회가 되었다.
과테말라 공화국 (Republic of Guatemala)
나는 원주민들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가 보다 강력해지는 것을 소망합니다. 그들의 잠재력과 수용하는 마음이 결합하여, 이 지구상의 생명들이 불평등한 구조에서 해방되는 일에 기여하는 것을 꿈꿉니다. <리고베르타 멘추 툼(Rigoberta Menchu Tum), 과테말라, 1992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
통계
인구: 1천2백30만 명
정부형태: 공화제
언어: 스페인어와 키체어(Quiche), 카키켈어(Cakiquel), 맘어(Mam), 켁치어(Kekchi), 영어, 그밖에 40여 개 기타 언어들
문자해독률: 남성 75%, 여성 63%
종교: 로마가톨릭 60%, 개신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없음
역사
과테말라는 동쪽으로 카리브해, 남서쪽으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북쪽으로 멕시코와 벨리즈와 접하고 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나라이며, 인구의 55% 이상이 마야 인디언으로, 대부분 농촌지역의 고산지대나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에 살고 있다. 라디노스(Ladinos, 혼혈후손들이나 백인들)들은 과테말라시티와 해안지역, 그리고 동쪽의 저지대에 살고 있다.
과테말라는 15세기까지 마야 문명의 중심지였다. 대부분의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과테말라도 1523년부터 스페인의 통치를 받기 시작하여, 1821년에 독립국이 되었다. 그 후 국내적으로 계속된 야만적인 군사독재자들의 폭정으로 고통을 받았다. 두 차례의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는데, 아레발(Areval) 대통령 재임기(1945-51)와 아르벤스(Arbenz) 대통령 재임기였다. 이 시기에 봉건제를 폐지하고 농민들을 지원하는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아르벤스 대통령이 제정한 토지개혁법은 과테말라 경제의 십분의 일을 차지하면서 1901년부터 면세품목으로 분류되어 특혜를 누려오던 바나나 농장을 소유한 미국인 농장주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아르벤스 대통령이 과테말라 정부에 세금을 낼 것을 요구했을 때, 과테말라에 55만 에이커의 바나나 농장을 가지고 있던 미국 과일회사(United Fruit Company)는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둘레즈(John Poster Dulles)와 그의 동생이었던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알렌 둘레즈(Allen Dulles)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1954년 6월, 미 중앙정보국은 아르벤스가 공산주의라고 선전하면서 과테말라 반정부군을 지원하였다. 아르벤스는 대통력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그 후 미국 바나나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대통령들과 독재자들, 장군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왔다. 인디언들과 민주화 운동세력에 대한 억압이 시작되어 20세기 말에 가서야 약화되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미 중앙정보국과 반공위원회(Committee Against Communism)가 7만 여명의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검거목록을 작성하면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었다. 수백 명의 반정부 인사들이 암살당했다. 노동조합 집회를 습격하여 2백 명의 노조 지도자들을 살해한 날도 있었다. 1960년 초 과테말라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6천 5백만 달러 이상의 군사원조를 받기 시작하였고, 자신들의 군장교들을 파나마에 있는 미군 기지로 보내 미군 교관들에게 군사훈련을 받게 하였다. 저격조 또한 조직되었다. “하얀 손”이라는 뜻의 마노 블랑카(Mano Blanca)는 독재자들과 집권당이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뒤를 봐주던 열 두 개의 저격조들 중 하나였다. 이들은 언론에 재갈을 물렸고, 사제들과 수녀들, 개신교 목회자들과 일반 기초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공포정치를 전개하였다. 1970년까지 1만 명에 달하는 비무장 민간인들이 반정부인사들에 대한 야만적인 보복 폭력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8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루카스 가르시아(Lucas Garcia)장군이 대통령이 되면서, 노골적인 폭력과 공포정치가 시작되어 1982년까지 계속되었다. 사제들과 노조 지도자들, 지식인들과 언론인들, 법조인들과 학생 지도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암살당했으나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인디언들이었다. 1만 명 이상의 인디언들이 루카스 가르시아 재임 중에 살해당했고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천 명의 인디언들이 알티플라노에서 추방되었다.
가르시아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리오스 몬트(Rios Montt) 장군은 거듭난 (born-again)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야만적인 “총알과 콩알”(bullets and beans) 정책으로 2만 명 이상을 살해하였다. 그가 집권한 이후 과테말라는 두 번의 대통령 선거 실패, 두 번의 군사쿠데타, 두 번의 국가비상조치, 두 번의 헌법개정, 11개월의 헌정중단, 네 차례에 걸친 대사면 기간과 네 명의 국가수반이 등장하였는데, 그들 중 세 명이 장군들이었다. 미국의 그린베레 특공대가 과테말라의 군사고문으로 있으면서, 7만 명의 농부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초토화 작전과 전략적인 부락 건설, 민간인 감시단 조직 등을 전수하였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군사독재 기간 내내 침묵을 지키며 이러한 잔학한 실상들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로마가톨릭교회의 진보적인 신자들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활동가들이 이러한 참상을 알리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삼십 명 이상의 사제들과 수많은 신자들이 살해당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참상을 고발하기 위하여 폭력사태에 대하여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간하였다. 고문과 체포, 살해 위험에서 살아남은 6천 5백 명의 생존자들과 인터뷰가 “역사적 기억의 회생 계획”(Project to Recover Historic Memory, REMHI)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고, 1998년, 과테말라 로마가톨릭 주교인 후안 게라르디 코네데라(Juan Gerardi Conedera)가 동일한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코네데라 주교는 이 보고서가 출판된 지 이틀 후에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 이후에 이 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어가는 듯 했으나 기본적인 전제정치 구조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교회들과 에큐메니칼 단체들을 난민들과 추방된 사람들이 귀향하여 다시 정착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국제연합의 화해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지원하고 있다.
오늘날 전체 인구의 75% 이상이 로마가톨릭교회 교인들이며, 가톨릭교회는 국교 차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신자들 대부분은 인디언들인데 반해 교회의 지도력은 대부분이 외국인들이기 때문에 오는 날카로운 긴장이 로마가톨릭교회 내부적으로 자주 일어난다. 또한 계급적인 독재체제를 지지했던 교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는 편에 섰던 많은 교인들 사이에도 긴장이 존재하고 있다.
지난 이십년간 오순절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하나님의 성회는 현재 과테말라에서 두 번째로 큰 기독교회가 되었다. 과테말라의 교회들은 국민들을 위하여 건강보험 제도와 문맹퇴치 운동,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온두라스 공화국 (Republic of Honduras)
통계
인구: 7백1십만 명
정부형태: 다당제 공화제
언어: 스페인어
문자해독률: 남성 80%, 여성 80%
종교: 가톨릭 80%, 소수 성공회 침례교 바하이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없음
역사
온두라스는 북쪽과 동쪽으로 카리브해, 남쪽으로 니카라과, 남서쪽으로 태평양, 서쪽으로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와 접하고 있다. 과테말라와 그 밖의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같이 한때 신세계에 건설된 스페인 제국의 일부였던 온두라스는 마야문명의 자랑스러운 중심이었다. 1524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고, 1821년에 독립하였다.
독립 후에 1978년까지 온두라스를 통치한 독재자들은 초기에는 관대한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점차 독선적이고 군사적으로 정부를 운영하였다. 1982년, 온두라스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다당제 공화국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온두라스는 미국의 과일회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1980년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 반군이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하려고 전투를 벌일 때 이 지역을 배후기지로 삼았다. 미국 역시 온두라스를 군사적 필요에 따라 사용하였고, 이 지역에서 저강도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 위하여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군대를 훈련시키는 기지들을 건설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지원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온두라스는 언제나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으며, 때때로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와 전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수십 년 동안 폭력을 피해 조국을 떠난 수천 명의 난민들이 찾아들었다.
또한 이 지역은 잦은 홍수와 태풍, 가뭄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곳이다. 1998년, 허리케인 미치(Mitch)가 강타하여 1만3천 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고, 2백만 명이 집을 잃었고, 미화 50억 달러 이상의 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당시 온두라스는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실정으로 인한 경제와 정치적 위기가 계속되면서 항상 불안정한 상태였다. 2000년에 찾아온 가뭄은 더욱 비참한 상황을 초래하였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 경제개혁과 정부 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민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쉼터와 식수, 위생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국가의 활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하여 로마가톨릭교회가 전래되었고, 오늘까지 온두라스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로 남아있다. 1860년 개신교회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감리교인들이 찾아왔으나, 현재 온두라스에서 가장 큰 개신교회 세력은 독립교회들이고, 그 중에서도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다. 1881년부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교회는 때때로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발언하고 있으며, 특별히 교육과 의료제도 개선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멕시코 합중국 (United Mexico States)
통계
인구: 1억4백만 명
정부형태: 연방공화제
언어: 스페인어
문자해독률: 남성 92%, 여성 90%
종교: 가톨릭 90.4%, 개신교 5,2%, 소수 바하이, 유대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멕시코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in Mexico)
역사
멕시코는 세계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가장 큰 나라이다. 이 지역에 인류가 처음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만1천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올멕(Olmec), 마야(Maya), 톨텍(Toltec)의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늘날 수도 멕시코시티가 자리하고 있는 테노크티틀란(Tenochtitlan)에서 발상한 아즈텍 문명은 군사력과 예술, 철학이 발달한 사회였다.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스(Hernan Cortes)가 침략하여 아즈텍과 멕시코를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1810년 멕시코의 독립을 위한 봉기에서 승리하였고, 1821년 독립을 성취하였다.
1836년, 멕시코로부터 텍사스가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 후 멕시코와 미국의 전쟁(1846-48)의 결과로 멕시코의 영토의 절반가량을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1857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로마가톨릭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교육시설들을 환수하였고, 주교들이 가지고 있던 광대한 토지들을 매각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내전이 발발하였고, 전투는 4년간 계속되었다.
19세기 말까지 계속된 독재정권의 실정에 실망한 국민들의 분노가 1910년 멕시코 혁명으로 폭발하여 7년간 혼란이 계속되었고, 1917년 개헌 작업을 시작하면서 종식되었다. 그 후 20세기 남은 기간 동안 멕시코는 명목상으로 민주주의 국가였지만 실제로는 부정부패와 민중들의 항거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계속되었다. 1929년, 제도혁명당(Institutional Revolutionary Party, RPI)이 결성되었고,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그 후 이들은 한번도 정권을 내주지 않고 계속하여 70년간 집권하면서 점차 부패하고 독재적인 정부가 되었다. 1938년, 멕시코 역사상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라자로 까르데나스(Lazaro Cardenas) 대통령이 멕시코의 정유산업을 국유화하였다. 이는 미국을 격노하게 한 사건이었다. 또한 국민들의 열망을 만족시키는 정책들을 시행하여,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고,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토지를 지주들에게서 취하여 가난한 농부들에게 재분배하였다.
1990년대 사이에 멕시코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기를 겪었고, 특별히 남부의 치파스(Chipas) 지역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 수많은 과테말라 난민들이 자국의 폭력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고 막강한 지주들의 착취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몰려들었던 것이다. 1994년, 사파티스타스(Zapatistas)라는 인디언 무장단체가 몇몇 마을을 점령하고 정치경제적 개혁을 요구하였다. 같은 해 말에는 대통령 후보와 고위 정치인들이 잇달아 암살을 당했다. 1996년, 또 다른 반정부 단체인 인민혁명군(Popular Revolutionary Army, PRA)은 추모예배 장소와 경찰서 등을 습격하였다. 멕시코 정부는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요구에 응답하여 1999년, 처음으로 민주적인 예비 선거를 실시하였고, 이 선거에서 제도혁명당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패배하였다.
멕시코의 도시 지역에 사는 소수의 부자들이 미국과 유럽에 버금가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광대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빈민굴에서 생활하고 있다. 농촌 지역의 생활은 1910년 혁명기에 비하여 겨우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시민연합으로 불리는 제도화된 혜택을 보장하는 발달된 사회보장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실업과 영향실조, 기아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1970년대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면서 일시적인 경제적 호황을 누렸지만, 1980년대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경제가 다시 후퇴하였다. 1985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멕시코시티의 여러 지역을 파괴하였다.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과밀화가 가져온 심각한 공기와 토양, 수질 오염은 멕시코가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사회문제들이다.
헌법 상 국교가 없는 세속국가이지만, 멕시코는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로마가톨릭교인들이다. 이들 중에는 영세를 받은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포함이 되는데, 이들은 민속 가톨릭교(folk-Catholicism 가톨릭교와 전통적인 아메리카 인디언 종교가 혼합된)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기존교단이나 독립적인 많은 개신교회 선교 활동이 있었지만, 오늘날 여전히 적은 비율이고, 몰몬교와 여호와의 증인도 멕시코에서 활동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로마가톨릭 교인들을 흡수하고 있다. 교회의 내적인 구조와 사회적 기능에 관한 규정과 제한을 둔 법령도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반-성직자적인 법령들이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고, 국가와 로마가톨릭교회는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 이들 나라에서 난민들과 망명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에서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에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용감하게 증언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에서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의 또띠아(Tortillas), 베리또(Burritos), 엔칠라다스(enchiladas), 선인장, 옥수수, 콩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 과테말라와 벨리즈의 국경분쟁이 평화롭게 정리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과테말라에서 살해당하고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들과 친지들이 위로받고 치유되며, 또한 살인자들에 대한 법과 정의에 따른 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에서 군부에 의한 인권유린이 종식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마야 인디언들과 다른 원주민들의 정의와 교육, 발전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실직자들과 힘들고 위험한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거리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의 교회들과 기독교 지구들에게 능력과 지혜, 인내를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당신은 지금 거리에 계십니다.
우리가 매일 당하는 일상의 투쟁 속에 계십니다.
주님의 이름과 뜻이 드러나기 원합니다.
정의가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누라 하신 것들이 살아나게 하시고,
이 나라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과
다른 나라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양식을 얻게 하시고,
모든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존엄성을 인정받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저희에게 주옵소서.
남자들과 여자들이 새로운 방식의 관계성 안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옵소서.
교만한 마음과 권력을 탐하는 마음에서
저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굶으시고 동행하셨던 것처럼
저희도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수님, 저희를 지켜보아 주시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저희에게 힘을 주사
돈과 특혜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하시고,
이 사회의 소비주의와 위장된 안전에 저항하게 하옵소서.
저희 안에 일치의 영을 불어넣어 주셔서
모든 시험을 이겨내게 하옵소서.
<멕시코 남부의 원주민 여성단체의 기도문>
(2)
선한 목자이신 주님, 주님의 죽음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모범의 인도하심을 따라 저희가 주님을 따릅니다.
진리와 정의를 연단하며,
침묵의 노래에 소리를 불러주며,
유랑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해주며,
가난한 사람들의 시대에 빛을 비춥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그림자 - 힘과 거짓 -로
주님의 형상을 가리려 하지만 쓸모없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빛 가운데 온전하게,
너무나 선명한 모습으로,
평화의 만드는 사람들 편에 계십니다.
주님은 살아있는 교회이며,
새로운 과테말라입니다.
<페드로 카살달리가(Pedro Casaldaliga), 브라질 주교>
(3)
예수님, 저희에게 믿음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옷 입혀주시고, 서로 사랑하며 또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자비로운 눈으로 그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그들의 문제를 저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때에 그들에게 도움의 손을 빌려주어 저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하옵소서. 저희의 마음과 뜻을 열어 모든 장애물을 넘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필요한 도구들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치유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는 진정한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세계기도의 날 과테말라 위원회, 1993년 기도문>
(4)
빈들에서 드리는 기도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시는, 오, 하나님,
언덕들의 주님,
계곡들의 주님,
숲의 주님,
저를 참아 주옵소서.
모든 일들은 제가 막 하려고 할 때 이미 끝나있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제게 경고하려는 것을
주님께 약속드립니다.
저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래 참으시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저는 살기 위하여 주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어떠한 동물도 저를 쫓아오지 않게 하시고,
뱀이나, 전갈이나, 말벌이 저를 괴롭히지 않게 하시고,
큰 나무가 쓰러지거나, 도끼나 벌목용 칼이 저를 상지 않게 하옵소서.
온 마음으로 주님을 위하여 일할 것입니다.
<켁치 마야(Kekchi Maya), 과테말라>
(5)
저는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나라와 교회들 안에 있는
많은 여인들과 같이 성장에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나를 부르셨던 그 자리에까지,
실질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나라와 교회들 안에 있는
많은 여인들과 같이 평등에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나를 위하여 지불하셨던 높은 대가만큼 존엄성으로,
그러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나라와 교회들 안에 있는
많은 여인들과 같이 이해에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순전한 은혜로 내가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나의 소명을 발견하고, 일하고 건설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나라와 교회들 안에 있는
(가장 야만적이고 가장 교묘한 폭력에 희생된)
많은 여인들과 같이 정의에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저는 더 이상 강간과 학대, 침묵하거나 암살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저와,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저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과 모습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의 예배문에서>
(6)
필요한 단 한 가지
오, 주님, 저희가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우리를 취하셔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많은 사명들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위로를
우리 또한 간절히 구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불공정한 경쟁에 깊이 개입되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업적인 문화에 현혹되어
주님의 현존이 복을 잃어버렸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를 도우서, 저희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 주님의 현존을 보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위로와 감동과 헌신을 주사
주님의 통치를 위하여 일하게 하옵소서.
확신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그 어떤 일이나 사람도
주님과 저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베티 헤르난데스 까릴로(Betty Hernandez Carrillo), 멕시코>
(7)
생명의 씨앗
주님, 이 세상에서
우리의 딸들과 아들들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생명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천천히 소리 없이 자라는 씨앗들입니다.
소망의 능력을 주는 열매를 맺을 씨앗들입니다.
그러나 잡초의 씨앗들도 뿌려졌습니다.
그 씨앗들의 열매는 슬픔과 애통과 사망입니다.
그 열매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모든 노력을 죽이려고 합니다.
저희가 기도 가운데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오니,
낙담케 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우울하게 하는,
이러한 상황들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저희를 사용하셔서, 사랑과 정의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삶이 다치지 않고
이러한 악을 드러내고 고발하게 하옵소서.
연약한 사람들의 모임을 강하게 하셔서,
씨앗 뿌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소망과 인내가 우리 안에 활짝 피어나게 하옵소서.
<베티 헤르난데스 까릴로(Betty Hernandez Carrillo), 멕시코>
(8)
평화를 위한 아침 기도
생명의 하나님,
이 새로운 날의 이른 아침 빛 속에서,
주님의 평화에 싸여 깨어나도록,
주님께서 주신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 원합니다.
오늘 여러 가지 다른 상황들과 마주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주님께서 제게 쉼을 주신 지난밤과 비교하여
이 세상은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화가 생명과 함께 저에게 용기를 주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화의 아들이시여,
오늘, 제가 주님의 평화를 선포하게 하옵소서.
미움과 증오, 학대와 거짓말, 그리고 편협함을 깨트리고,
민족들과 가족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종식시키고,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그들 자신과, 또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과 화해시켜
그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평화입니다.
일치의 영이시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주님의 모든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들과
이 겸손한 기도가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평화, 주님의 정의, 주님의 은혜로 저희를 감싸주시고,
저희가 새로운 평화의 인류로서
하나가 되어 살아가게 하옵소서.
<베티 헤르난데스 까릴로(Betty Hernandez Carrillo), 멕시코>
(9)
라틴 아메리카 여인의 애가
이 사회와 교회가 여인들의 지혜와 창조성에 대하여
인정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 것을 슬퍼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를 둘러싼 그러한 불의를 볼 수 있겠습니까?
(나의 원주민 자매들과 형제들인) 힘없는 사람들에게 권력의 힘이 사정없이 누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미처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주지 않고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매 맞고 동물들처럼 팔리던 노예였던 것을 슬퍼합니다.
우리는 많은 여인들과 소녀들이 가난하고,
그들을 계속 고통스럽게 하는 경제적 조건에 따라
백인들에 의하여 소외되며,
교회에서도 여인들의 참여가 허락되지 않아
적은 수의 여인들만이 참여하는 것을 슬퍼합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여자로서 우리는,
언제나 남자들에게만 집 밖에서 공부하고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우리 여자들이 공부하고 경험을 쌓으려 할 때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입히고
그들을 건강하게 보살피는 방법을 걱정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지금까지 희생해왔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여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집을 관리해야 하는지 생각하지만,
남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성서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온 세계에서 수천의 문화와 민족들이 사라진 것을 슬퍼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기독교의 진정한 사명을 실질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람들 안에 모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가 여자들이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얼마나 무력감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얼마나 여자로서 존중받고 인정받고, 그리고 이해받기를 간절하게 원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이 모든 고통들과 이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들,
가난과 기아, 젊은 세대에 대한 경시,
그들의 가족을 위하여 울고 있는 어머니들을 보시고,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원주민 여자들과 농사짓는 여자들이 한 나라 안에서 하녀가 되어,
다른 여자들에게 학대받고,
주인과 주인의 아들들에게 강간당하는 것을 슬퍼합니다.
우리는 많은 원주민 여자들과 농사짓는 여자들이,
배척과 억압으로 인하여 아주 어린 나이에 매춘부로 전락하는 것을 슬퍼합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차별, 빈곤, 권력”(Discrimination, Poverty and Power)이라는 주제로, 2002년 6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교회협의회 여성분과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회의 참가자들의 기도문>
(10)
주님, 우리 사회에서 이 여인이 설 자리를 갖기 원합니다.
그녀는 부유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남편을 잃고, 홀로 자녀를 키우며,
매를 맞았던 여인입니다.
불의로 인하여 그러한 상황이 계속될 때에,
법의 보호를 받게 하시고,
사회 모든 사람들에게 속한 재물을
몇몇 사람들을 위하여 쌓으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입니다.
주님, 저를 가르치고, 저를 인도하셔서 다른 여자들과 연대하고,
우리의 저항하는 목소리가 들리게 하옵소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권리가 인정받고
우리나라가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주님께서 뜻에 따라 우리의 자원을 공유하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아우라 드키로스(Aura de Quiroz), 과테말라
통계인구: 2백8십3만 명
정부형태: 의회제 공화국
언어: 영어
문자해독률:
종교: 로마가톨릭 53%, 개신교 28%, 소수 이슬람, 힌두교, 유대교, 전통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카리빅 중앙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감리교, 서인디아 지역 교회(성공회)
역사
벨리즈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작고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이다. 동쪽으로 카리브해, 남쪽과 서쪽으로 과테말라, 북서쪽과 북쪽으로 멕시코와 접하고 있다. 이 나라에 남아있는 수많은 유적들은 250년부터 900년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던, 백만 명 이상의 마야 인디언들이 모여 살며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문명의 발달상을 보여준다. 오늘날 적은 수의 후손들이 벨리즈에 살고 있다. 이들은 특별히 최남단에 위치한 톨레도(Toledo)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1638년, 베이맨(Baymen)으로 알려진 영국인 목재업자들이 이 지역에 처음 정착한 유럽인들로 알려지고 있다. 베이맨들은 마야 인디언들을 사로잡아 로그우드(logwood)를 벌목하는 노예로 부렸다. 로그우드는 보라색과 붉은색 염료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이들 초기 정착민들은 그 후 150년간 주변 나라들에 정착한 스페인 정착민들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1763년 파리조약으로 베이맨들이 귀국하는 길이 열렸으나, 스페인 정착민들은 계속하여 공격하였다. 1798년 영국 해군의 지원을 받은 베이맨들이 큰 승리를 거두면서 스페인 정착민들과의 전투가 종결되었다.
영국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서서히 확대시켜갔고 1840년 영국령 온두라스를 건설하였다. 그 후 벨리즈는 이웃한 과테말라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갈등을 빚다가 1981년에서야 독립국이 되었다. 과테말라는 벨리즈는 자국의 영토로 간주해왔다. 오늘날 벨리즈는 영국 연방의 일원이며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OAS)의 회원국이다.
벨리즈는 적은 인구수와 관광산업의 잠재력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이 지역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높은 수준의 생활을 해왔고,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카리브해 국가들과 보다 많은 공통점을 공유해왔다. 인권은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되고, 법적으로 권장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여성부(Women"s Bureau)가 설치되어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
1848년 멕시코에서 인디언들의 폭동이 일어나자 멕시코의 로마가톨릭교회 선교사들이 벨리즈로 건너온 것이 처음 기독교가 전래된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로마가톨릭교회는 벨리즈에서 가장 큰 기독교이다. 1825년 영국의 감리교회가 선교를 시작하였고, 그 뒤를 성공회가 뒤따랐고, 이들이 현재 벨리즈에서 두 번째, 세 번째 큰 교세를 가진 교회가 되었다.
과테말라 공화국 (Republic of Guatemala)
나는 원주민들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가 보다 강력해지는 것을 소망합니다. 그들의 잠재력과 수용하는 마음이 결합하여, 이 지구상의 생명들이 불평등한 구조에서 해방되는 일에 기여하는 것을 꿈꿉니다. <리고베르타 멘추 툼(Rigoberta Menchu Tum), 과테말라, 1992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
통계인구: 1천2백30만 명
정부형태: 공화제
언어: 스페인어와 키체어(Quiche), 카키켈어(Cakiquel), 맘어(Mam), 켁치어(Kekchi), 영어, 그밖에 40여 개 기타 언어들
문자해독률: 남성 75%, 여성 63%
종교: 로마가톨릭 60%, 개신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없음
역사
과테말라는 동쪽으로 카리브해, 남서쪽으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북쪽으로 멕시코와 벨리즈와 접하고 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나라이며, 인구의 55% 이상이 마야 인디언으로, 대부분 농촌지역의 고산지대나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에 살고 있다. 라디노스(Ladinos, 혼혈후손들이나 백인들)들은 과테말라시티와 해안지역, 그리고 동쪽의 저지대에 살고 있다.
과테말라는 15세기까지 마야 문명의 중심지였다. 대부분의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과테말라도 1523년부터 스페인의 통치를 받기 시작하여, 1821년에 독립국이 되었다. 그 후 국내적으로 계속된 야만적인 군사독재자들의 폭정으로 고통을 받았다. 두 차례의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는데, 아레발(Areval) 대통령 재임기(1945-51)와 아르벤스(Arbenz) 대통령 재임기였다. 이 시기에 봉건제를 폐지하고 농민들을 지원하는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아르벤스 대통령이 제정한 토지개혁법은 과테말라 경제의 십분의 일을 차지하면서 1901년부터 면세품목으로 분류되어 특혜를 누려오던 바나나 농장을 소유한 미국인 농장주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아르벤스 대통령이 과테말라 정부에 세금을 낼 것을 요구했을 때, 과테말라에 55만 에이커의 바나나 농장을 가지고 있던 미국 과일회사(United Fruit Company)는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둘레즈(John Poster Dulles)와 그의 동생이었던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알렌 둘레즈(Allen Dulles)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1954년 6월, 미 중앙정보국은 아르벤스가 공산주의라고 선전하면서 과테말라 반정부군을 지원하였다. 아르벤스는 대통력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그 후 미국 바나나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대통령들과 독재자들, 장군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왔다. 인디언들과 민주화 운동세력에 대한 억압이 시작되어 20세기 말에 가서야 약화되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미 중앙정보국과 반공위원회(Committee Against Communism)가 7만 여명의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검거목록을 작성하면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었다. 수백 명의 반정부 인사들이 암살당했다. 노동조합 집회를 습격하여 2백 명의 노조 지도자들을 살해한 날도 있었다. 1960년 초 과테말라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6천 5백만 달러 이상의 군사원조를 받기 시작하였고, 자신들의 군장교들을 파나마에 있는 미군 기지로 보내 미군 교관들에게 군사훈련을 받게 하였다. 저격조 또한 조직되었다. “하얀 손”이라는 뜻의 마노 블랑카(Mano Blanca)는 독재자들과 집권당이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뒤를 봐주던 열 두 개의 저격조들 중 하나였다. 이들은 언론에 재갈을 물렸고, 사제들과 수녀들, 개신교 목회자들과 일반 기초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공포정치를 전개하였다. 1970년까지 1만 명에 달하는 비무장 민간인들이 반정부인사들에 대한 야만적인 보복 폭력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8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루카스 가르시아(Lucas Garcia)장군이 대통령이 되면서, 노골적인 폭력과 공포정치가 시작되어 1982년까지 계속되었다. 사제들과 노조 지도자들, 지식인들과 언론인들, 법조인들과 학생 지도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암살당했으나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인디언들이었다. 1만 명 이상의 인디언들이 루카스 가르시아 재임 중에 살해당했고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천 명의 인디언들이 알티플라노에서 추방되었다.
가르시아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리오스 몬트(Rios Montt) 장군은 거듭난 (born-again)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야만적인 “총알과 콩알”(bullets and beans) 정책으로 2만 명 이상을 살해하였다. 그가 집권한 이후 과테말라는 두 번의 대통령 선거 실패, 두 번의 군사쿠데타, 두 번의 국가비상조치, 두 번의 헌법개정, 11개월의 헌정중단, 네 차례에 걸친 대사면 기간과 네 명의 국가수반이 등장하였는데, 그들 중 세 명이 장군들이었다. 미국의 그린베레 특공대가 과테말라의 군사고문으로 있으면서, 7만 명의 농부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초토화 작전과 전략적인 부락 건설, 민간인 감시단 조직 등을 전수하였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군사독재 기간 내내 침묵을 지키며 이러한 잔학한 실상들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로마가톨릭교회의 진보적인 신자들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활동가들이 이러한 참상을 알리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삼십 명 이상의 사제들과 수많은 신자들이 살해당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참상을 고발하기 위하여 폭력사태에 대하여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간하였다. 고문과 체포, 살해 위험에서 살아남은 6천 5백 명의 생존자들과 인터뷰가 “역사적 기억의 회생 계획”(Project to Recover Historic Memory, REMHI)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고, 1998년, 과테말라 로마가톨릭 주교인 후안 게라르디 코네데라(Juan Gerardi Conedera)가 동일한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코네데라 주교는 이 보고서가 출판된 지 이틀 후에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 이후에 이 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어가는 듯 했으나 기본적인 전제정치 구조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교회들과 에큐메니칼 단체들을 난민들과 추방된 사람들이 귀향하여 다시 정착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국제연합의 화해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지원하고 있다.
오늘날 전체 인구의 75% 이상이 로마가톨릭교회 교인들이며, 가톨릭교회는 국교 차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신자들 대부분은 인디언들인데 반해 교회의 지도력은 대부분이 외국인들이기 때문에 오는 날카로운 긴장이 로마가톨릭교회 내부적으로 자주 일어난다. 또한 계급적인 독재체제를 지지했던 교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는 편에 섰던 많은 교인들 사이에도 긴장이 존재하고 있다.
지난 이십년간 오순절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하나님의 성회는 현재 과테말라에서 두 번째로 큰 기독교회가 되었다. 과테말라의 교회들은 국민들을 위하여 건강보험 제도와 문맹퇴치 운동,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온두라스 공화국 (Republic of Honduras)
통계인구: 7백1십만 명
정부형태: 다당제 공화제
언어: 스페인어
문자해독률: 남성 80%, 여성 80%
종교: 가톨릭 80%, 소수 성공회 침례교 바하이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없음
역사
온두라스는 북쪽과 동쪽으로 카리브해, 남쪽으로 니카라과, 남서쪽으로 태평양, 서쪽으로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와 접하고 있다. 과테말라와 그 밖의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같이 한때 신세계에 건설된 스페인 제국의 일부였던 온두라스는 마야문명의 자랑스러운 중심이었다. 1524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고, 1821년에 독립하였다.
독립 후에 1978년까지 온두라스를 통치한 독재자들은 초기에는 관대한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점차 독선적이고 군사적으로 정부를 운영하였다. 1982년, 온두라스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다당제 공화국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온두라스는 미국의 과일회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1980년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 반군이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하려고 전투를 벌일 때 이 지역을 배후기지로 삼았다. 미국 역시 온두라스를 군사적 필요에 따라 사용하였고, 이 지역에서 저강도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 위하여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군대를 훈련시키는 기지들을 건설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지원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온두라스는 언제나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으며, 때때로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와 전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수십 년 동안 폭력을 피해 조국을 떠난 수천 명의 난민들이 찾아들었다.
또한 이 지역은 잦은 홍수와 태풍, 가뭄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곳이다. 1998년, 허리케인 미치(Mitch)가 강타하여 1만3천 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고, 2백만 명이 집을 잃었고, 미화 50억 달러 이상의 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당시 온두라스는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실정으로 인한 경제와 정치적 위기가 계속되면서 항상 불안정한 상태였다. 2000년에 찾아온 가뭄은 더욱 비참한 상황을 초래하였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 경제개혁과 정부 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민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쉼터와 식수, 위생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국가의 활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하여 로마가톨릭교회가 전래되었고, 오늘까지 온두라스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로 남아있다. 1860년 개신교회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감리교인들이 찾아왔으나, 현재 온두라스에서 가장 큰 개신교회 세력은 독립교회들이고, 그 중에서도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다. 1881년부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교회는 때때로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발언하고 있으며, 특별히 교육과 의료제도 개선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멕시코 합중국 (United Mexico States)
통계인구: 1억4백만 명
정부형태: 연방공화제
언어: 스페인어
문자해독률: 남성 92%, 여성 90%
종교: 가톨릭 90.4%, 개신교 5,2%, 소수 바하이, 유대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멕시코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in Mexico)
역사
멕시코는 세계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가장 큰 나라이다. 이 지역에 인류가 처음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만1천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올멕(Olmec), 마야(Maya), 톨텍(Toltec)의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늘날 수도 멕시코시티가 자리하고 있는 테노크티틀란(Tenochtitlan)에서 발상한 아즈텍 문명은 군사력과 예술, 철학이 발달한 사회였다.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스(Hernan Cortes)가 침략하여 아즈텍과 멕시코를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1810년 멕시코의 독립을 위한 봉기에서 승리하였고, 1821년 독립을 성취하였다.
1836년, 멕시코로부터 텍사스가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 후 멕시코와 미국의 전쟁(1846-48)의 결과로 멕시코의 영토의 절반가량을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1857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로마가톨릭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교육시설들을 환수하였고, 주교들이 가지고 있던 광대한 토지들을 매각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내전이 발발하였고, 전투는 4년간 계속되었다.
19세기 말까지 계속된 독재정권의 실정에 실망한 국민들의 분노가 1910년 멕시코 혁명으로 폭발하여 7년간 혼란이 계속되었고, 1917년 개헌 작업을 시작하면서 종식되었다. 그 후 20세기 남은 기간 동안 멕시코는 명목상으로 민주주의 국가였지만 실제로는 부정부패와 민중들의 항거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계속되었다. 1929년, 제도혁명당(Institutional Revolutionary Party, RPI)이 결성되었고,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그 후 이들은 한번도 정권을 내주지 않고 계속하여 70년간 집권하면서 점차 부패하고 독재적인 정부가 되었다. 1938년, 멕시코 역사상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라자로 까르데나스(Lazaro Cardenas) 대통령이 멕시코의 정유산업을 국유화하였다. 이는 미국을 격노하게 한 사건이었다. 또한 국민들의 열망을 만족시키는 정책들을 시행하여,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고,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토지를 지주들에게서 취하여 가난한 농부들에게 재분배하였다.
1990년대 사이에 멕시코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기를 겪었고, 특별히 남부의 치파스(Chipas) 지역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 수많은 과테말라 난민들이 자국의 폭력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고 막강한 지주들의 착취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몰려들었던 것이다. 1994년, 사파티스타스(Zapatistas)라는 인디언 무장단체가 몇몇 마을을 점령하고 정치경제적 개혁을 요구하였다. 같은 해 말에는 대통령 후보와 고위 정치인들이 잇달아 암살을 당했다. 1996년, 또 다른 반정부 단체인 인민혁명군(Popular Revolutionary Army, PRA)은 추모예배 장소와 경찰서 등을 습격하였다. 멕시코 정부는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요구에 응답하여 1999년, 처음으로 민주적인 예비 선거를 실시하였고, 이 선거에서 제도혁명당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패배하였다.
멕시코의 도시 지역에 사는 소수의 부자들이 미국과 유럽에 버금가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광대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빈민굴에서 생활하고 있다. 농촌 지역의 생활은 1910년 혁명기에 비하여 겨우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시민연합으로 불리는 제도화된 혜택을 보장하는 발달된 사회보장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실업과 영향실조, 기아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1970년대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면서 일시적인 경제적 호황을 누렸지만, 1980년대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경제가 다시 후퇴하였다. 1985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멕시코시티의 여러 지역을 파괴하였다.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과밀화가 가져온 심각한 공기와 토양, 수질 오염은 멕시코가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사회문제들이다.
헌법 상 국교가 없는 세속국가이지만, 멕시코는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로마가톨릭교인들이다. 이들 중에는 영세를 받은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포함이 되는데, 이들은 민속 가톨릭교(folk-Catholicism 가톨릭교와 전통적인 아메리카 인디언 종교가 혼합된)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기존교단이나 독립적인 많은 개신교회 선교 활동이 있었지만, 오늘날 여전히 적은 비율이고, 몰몬교와 여호와의 증인도 멕시코에서 활동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로마가톨릭 교인들을 흡수하고 있다. 교회의 내적인 구조와 사회적 기능에 관한 규정과 제한을 둔 법령도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반-성직자적인 법령들이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고, 국가와 로마가톨릭교회는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 이들 나라에서 난민들과 망명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에서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에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용감하게 증언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에서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의 또띠아(Tortillas), 베리또(Burritos), 엔칠라다스(enchiladas), 선인장, 옥수수, 콩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 과테말라와 벨리즈의 국경분쟁이 평화롭게 정리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과테말라에서 살해당하고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들과 친지들이 위로받고 치유되며, 또한 살인자들에 대한 법과 정의에 따른 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에서 군부에 의한 인권유린이 종식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마야 인디언들과 다른 원주민들의 정의와 교육, 발전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실직자들과 힘들고 위험한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거리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의 교회들과 기독교 지구들에게 능력과 지혜, 인내를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당신은 지금 거리에 계십니다.
우리가 매일 당하는 일상의 투쟁 속에 계십니다.
주님의 이름과 뜻이 드러나기 원합니다.
정의가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누라 하신 것들이 살아나게 하시고,
이 나라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과
다른 나라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양식을 얻게 하시고,
모든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존엄성을 인정받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저희에게 주옵소서.
남자들과 여자들이 새로운 방식의 관계성 안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옵소서.
교만한 마음과 권력을 탐하는 마음에서
저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굶으시고 동행하셨던 것처럼
저희도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수님, 저희를 지켜보아 주시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저희에게 힘을 주사
돈과 특혜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하시고,
이 사회의 소비주의와 위장된 안전에 저항하게 하옵소서.
저희 안에 일치의 영을 불어넣어 주셔서
모든 시험을 이겨내게 하옵소서.
<멕시코 남부의 원주민 여성단체의 기도문>
(2)
선한 목자이신 주님, 주님의 죽음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모범의 인도하심을 따라 저희가 주님을 따릅니다.
진리와 정의를 연단하며,
침묵의 노래에 소리를 불러주며,
유랑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해주며,
가난한 사람들의 시대에 빛을 비춥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그림자 - 힘과 거짓 -로
주님의 형상을 가리려 하지만 쓸모없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빛 가운데 온전하게,
너무나 선명한 모습으로,
평화의 만드는 사람들 편에 계십니다.
주님은 살아있는 교회이며,
새로운 과테말라입니다.
<페드로 카살달리가(Pedro Casaldaliga), 브라질 주교>
(3)
예수님, 저희에게 믿음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옷 입혀주시고, 서로 사랑하며 또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자비로운 눈으로 그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그들의 문제를 저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때에 그들에게 도움의 손을 빌려주어 저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하옵소서. 저희의 마음과 뜻을 열어 모든 장애물을 넘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필요한 도구들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치유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는 진정한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세계기도의 날 과테말라 위원회, 1993년 기도문>
(4)
빈들에서 드리는 기도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시는, 오, 하나님,
언덕들의 주님,
계곡들의 주님,
숲의 주님,
저를 참아 주옵소서.
모든 일들은 제가 막 하려고 할 때 이미 끝나있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제게 경고하려는 것을
주님께 약속드립니다.
저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래 참으시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저는 살기 위하여 주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어떠한 동물도 저를 쫓아오지 않게 하시고,
뱀이나, 전갈이나, 말벌이 저를 괴롭히지 않게 하시고,
큰 나무가 쓰러지거나, 도끼나 벌목용 칼이 저를 상지 않게 하옵소서.
온 마음으로 주님을 위하여 일할 것입니다.
<켁치 마야(Kekchi Maya), 과테말라>
(5)
저는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나라와 교회들 안에 있는
많은 여인들과 같이 성장에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나를 부르셨던 그 자리에까지,
실질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나라와 교회들 안에 있는
많은 여인들과 같이 평등에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나를 위하여 지불하셨던 높은 대가만큼 존엄성으로,
그러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나라와 교회들 안에 있는
많은 여인들과 같이 이해에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순전한 은혜로 내가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나의 소명을 발견하고, 일하고 건설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나라와 교회들 안에 있는
(가장 야만적이고 가장 교묘한 폭력에 희생된)
많은 여인들과 같이 정의에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저는 더 이상 강간과 학대, 침묵하거나 암살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저와,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저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과 모습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의 예배문에서>
(6)
필요한 단 한 가지
오, 주님, 저희가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우리를 취하셔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많은 사명들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위로를
우리 또한 간절히 구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불공정한 경쟁에 깊이 개입되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업적인 문화에 현혹되어
주님의 현존이 복을 잃어버렸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를 도우서, 저희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 주님의 현존을 보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위로와 감동과 헌신을 주사
주님의 통치를 위하여 일하게 하옵소서.
확신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그 어떤 일이나 사람도
주님과 저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베티 헤르난데스 까릴로(Betty Hernandez Carrillo), 멕시코>
(7)
생명의 씨앗
주님, 이 세상에서
우리의 딸들과 아들들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생명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천천히 소리 없이 자라는 씨앗들입니다.
소망의 능력을 주는 열매를 맺을 씨앗들입니다.
그러나 잡초의 씨앗들도 뿌려졌습니다.
그 씨앗들의 열매는 슬픔과 애통과 사망입니다.
그 열매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모든 노력을 죽이려고 합니다.
저희가 기도 가운데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오니,
낙담케 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우울하게 하는,
이러한 상황들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저희를 사용하셔서, 사랑과 정의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삶이 다치지 않고
이러한 악을 드러내고 고발하게 하옵소서.
연약한 사람들의 모임을 강하게 하셔서,
씨앗 뿌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소망과 인내가 우리 안에 활짝 피어나게 하옵소서.
<베티 헤르난데스 까릴로(Betty Hernandez Carrillo), 멕시코>
(8)
평화를 위한 아침 기도
생명의 하나님,
이 새로운 날의 이른 아침 빛 속에서,
주님의 평화에 싸여 깨어나도록,
주님께서 주신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 원합니다.
오늘 여러 가지 다른 상황들과 마주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주님께서 제게 쉼을 주신 지난밤과 비교하여
이 세상은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화가 생명과 함께 저에게 용기를 주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화의 아들이시여,
오늘, 제가 주님의 평화를 선포하게 하옵소서.
미움과 증오, 학대와 거짓말, 그리고 편협함을 깨트리고,
민족들과 가족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종식시키고,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그들 자신과, 또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과 화해시켜
그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평화입니다.
일치의 영이시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주님의 모든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들과
이 겸손한 기도가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평화, 주님의 정의, 주님의 은혜로 저희를 감싸주시고,
저희가 새로운 평화의 인류로서
하나가 되어 살아가게 하옵소서.
<베티 헤르난데스 까릴로(Betty Hernandez Carrillo), 멕시코>
(9)
라틴 아메리카 여인의 애가
이 사회와 교회가 여인들의 지혜와 창조성에 대하여
인정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 것을 슬퍼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를 둘러싼 그러한 불의를 볼 수 있겠습니까?
(나의 원주민 자매들과 형제들인) 힘없는 사람들에게 권력의 힘이 사정없이 누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미처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주지 않고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매 맞고 동물들처럼 팔리던 노예였던 것을 슬퍼합니다.
우리는 많은 여인들과 소녀들이 가난하고,
그들을 계속 고통스럽게 하는 경제적 조건에 따라
백인들에 의하여 소외되며,
교회에서도 여인들의 참여가 허락되지 않아
적은 수의 여인들만이 참여하는 것을 슬퍼합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여자로서 우리는,
언제나 남자들에게만 집 밖에서 공부하고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우리 여자들이 공부하고 경험을 쌓으려 할 때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입히고
그들을 건강하게 보살피는 방법을 걱정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지금까지 희생해왔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여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집을 관리해야 하는지 생각하지만,
남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성서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온 세계에서 수천의 문화와 민족들이 사라진 것을 슬퍼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기독교의 진정한 사명을 실질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람들 안에 모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가 여자들이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얼마나 무력감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얼마나 여자로서 존중받고 인정받고, 그리고 이해받기를 간절하게 원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이 모든 고통들과 이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들,
가난과 기아, 젊은 세대에 대한 경시,
그들의 가족을 위하여 울고 있는 어머니들을 보시고,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원주민 여자들과 농사짓는 여자들이 한 나라 안에서 하녀가 되어,
다른 여자들에게 학대받고,
주인과 주인의 아들들에게 강간당하는 것을 슬퍼합니다.
우리는 많은 원주민 여자들과 농사짓는 여자들이,
배척과 억압으로 인하여 아주 어린 나이에 매춘부로 전락하는 것을 슬퍼합니다.
하나님,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차별, 빈곤, 권력”(Discrimination, Poverty and Power)이라는 주제로, 2002년 6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교회협의회 여성분과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회의 참가자들의 기도문>
(10)
주님, 우리 사회에서 이 여인이 설 자리를 갖기 원합니다.
그녀는 부유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남편을 잃고, 홀로 자녀를 키우며,
매를 맞았던 여인입니다.
불의로 인하여 그러한 상황이 계속될 때에,
법의 보호를 받게 하시고,
사회 모든 사람들에게 속한 재물을
몇몇 사람들을 위하여 쌓으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입니다.
주님, 저를 가르치고, 저를 인도하셔서 다른 여자들과 연대하고,
우리의 저항하는 목소리가 들리게 하옵소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권리가 인정받고
우리나라가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주님께서 뜻에 따라 우리의 자원을 공유하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아우라 드키로스(Aura de Quiroz), 과테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