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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민주의의 백성은 불확실성 속에서 태어나고, 불확실성 속에서 살다가, 불확실성 속에서 죽고, 그리고 불확실성의 경계에서 일한다. 신식민지의 백성들은 ‘너는 정체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따라서 신식민지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할 수 없다. 신식민지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것이 아닌 문화적 담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반드시 자신들을 둘러싼 멍에를 뚫고 나와야 한다.”<나루딘 파라(Naruddin Fara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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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티 (Djibouti) 통계인구: 77만 9천명 정부형태: 공화국 언어: 아랍어, 프랑스어 문자해독률: 남자 60%, 여자 32% 종교: 이슬람교, 소수 기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없음 역사 지부티 공화국은 1977년 프랑스의 옛 식민지였던 아파르(Afar)와 아이싸스(Issas)가 통합하여 세운 나라이다. 매우 작은 나라이지만 홍해 입구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고원지대로 들어가는 물품들을 실은 배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요충지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화물선의 왕래가 빈번한 지역이며 아라비아 반도의 유전들로 인해 이 지역과 중동지역을 함께 주시할 수 있는 중대한 요점이기도 하다. 지부티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동쪽 갑(岬)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Eritrea)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영토 대부분이 황폐한 땅으로, 가파른 절벽들과 깊은 계곡들이 발달된 건조한 불모의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1846년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후에 프랑스의 해외 영토가 되었다. 유목민인 아파르 부족과 정부의 간의 계속된 폭력 사태는 결국 1991년부터 1994년 사이의 내전으로 발전되었다. 또한 에티오피아의 유목민들과 소말리아 출신의 아이싸스 부족 간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지부티는 해외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국내 실업률도 50%에 달한다.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간의 전쟁으로 유입된 피난민들로 인한 급격한 인구증가도 이러한 문제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지부티의 국민 대부분은 이슬람교도들이며, 기독교인 비율은 인구의 5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1883년 로마 가톨릭교회의 프랑스인 사제들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로마 가톨릭 교인들은 외국인들이지만, 지부티 주민들 가운데 개종한 교인들이 있는 기독교회 역시 가톨릭교회가 유일하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노동자들과 이민자들로 구성된 에티오피아 정교회가 지부티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기독교회이다. 소말리아 민주공화국 (Somali Democratic Republic) “소말리아는 시(詩)의 나라입니다. 서너 살 먹은 어린 아이들도 양들을 돌보며 스스로 만든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만일 당신이 양들을 보거나 수공업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시는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무언가 부탁하고 싶다면 시로 표현하는 것이 이 나라의 전통입니다. 사람들은 시가 없이는 일을 못합니다. 어떤 면에서 시는 음식과 같이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또한 시는 이 사회를 움직여가는 유일한 동력이기도 합니다.” <하드라위(Hadrawi)> * 본명 모하메드 이브라임 바르사메(Mohamed Ibrahim Warsame). 1943년생. 소말리아의 초등학교 교사이며 유명한 시인, 작곡자. 통계인구: 800만 명 정부형태: 공화국 언어: 소말리아어 문자해독율: 남자 36%, 여자 15% 종교: 이슬람교 99.8%, 기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없음 역사 소말리아는 인도양에 접한 동아프리카의 뿔처럼 돌출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에티오피아와 케냐에 접해있다. 에티오피아의 국경과 접해있는 오로모(Oromo) 지역이 소말리아에서 유일하게 행정력이 미치는 지역이며, 육지에 둘러싸인 에티오피아는 소말리아의 항구 시설을 사용하고 있다. 소말리아의 국토 대부분은 거친 사막이며 북부지역은 평평하거나 고저가 심한 고원과 산악지역이다. 7세기 경 쿠쉬트(Cushitic) 원주민들은 아랍과 페르시아의 무역상단에 종속하였고, 9세기 초 예멘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지배하던 코레쉬(Koreishite)의 아랍 술탄국의 영토가 되었다. 15세기와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의 상인들이 여러 항구도시들을 지배하였고, 그 후 잔지바르(Zanzibar) 술탄국이 탈환하였다. 19세기 들어와 유럽의 제국들이 이곳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차세계대전 후에, 영국 점령지였던 북부지역과 이탈리아 점령지였던 남부지역이 영국과 에티오피아의 공동보호령으로 들어갔다가, 1960년 독립하였다. 1970년대 중반 소말리아에서 망명한 이들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 에티오피아 지역과 인접한 오가덴(Ogaden) 지역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소말리아는 서방사회에 원조를 요청했고, 1984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이 이 지역에 들어왔다. 22년간(1969-1991) 집권했던 시아드 바레(Siad Barre) 독재가 1991년 축출되면서 부족들 간의 이해를 둘러싸고 내전이 시작되었고, 소말리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무정부상태에 빠졌다. 1991년 중반에 예전 영국령 소말리랜드였던 북부지역의 부족들을 중심으로 소말리랜드 공화국(Republic of Somaliland)이 독립을 선언하였다. 아직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한 부족이 지배적인 통치권을 발휘하고 있고, 영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의 군사원조 프로그램으로 남겨진 경제적 기반과 사회기반시설들을 사용하면서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가적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남부지역의 사정은 북부지역과 많이 다르다. 한 때 이탈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던 이 지역은 발의 실각 이후 여러 지역으로 분열되었고, 영토와 권력을 둘러싸고 부족들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1993년에 찾아온 극심한 기근으로 국제연합(UN)이 주도하는 국제구호 활동이 시작되었고, 외형상 한때 수도였던 모가디슈(Mogadishu) 해안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대를 비롯한 평화유지군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인명피해를 입으면서 기아상태의 해결과 질서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미국의 계획이 모두 실패하면서 1995년 철수 압력을 받았다. 1998년 다른 지역이 일정한 형태의 정부조직을 갖추지만 독립국의 지위를 원하지는 않는 소위 푼트랜드(Puntland) 자치령을 공포하였다. 최근 들어 푼트랜드 역시 남부지역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내전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과 그 전신인 아프리카 연합기구(Organization of African Union)를 중심으로 소말리아에 정부조직을 설립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어왔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00년, 지부티에서 열린 부족 대표들의 회합을 통해 소말리아 임시정부(Transitional National Government: TNG)가 구성되어 신임을 받았으나 2003년 별다른 후속 조치 없이 해산하고 말았다. 최근 들어 에티오피아와 케냐의 노력으로 인해 보다 긍정적인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무기업자들과 부족 지도자들이 모가디슈와 남부지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오십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내전으로 인해 난민이 되어 떠돌고 있다. 남아있는 주민들의 70퍼센트에 이르는 이들은 가축들에 생존을 의지하는 유목민이거나 반유목인들이다.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그들의 상황 역시 악화되고 있다. 만성적인 영양실조와 전국적으로 부족한 깨끗한 식수, 그리고 의료시설의 부재로 인해 인구의 75%에 달하는 주민들이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과 다른 전염병들에 노출되어 있다. 소말리아는 이슬람이 소말리아의 종교라고 연방헌장에 명시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수는 인구의 1%에 불과하다. 1972년 정부는 교회의 모든 재산을 국유화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1976년에는 주로 메노나이트(Mennonites) 선교사들이 주축인 개신교 선교사들을 추방하였다. 소말리아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기독교는 에티오피아 정교회로 대부분의 교인들은 인접한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온 난민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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