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까지 배우고 일해 왔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지금 살고 있는 광주 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려고 합니다”
1985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로 활동하고, 서울여대 교수와 러시아 볼보그라드 시에서 선교사로 활동해왔던 윤영애 권사가 지난 해 11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정착해 다시금 새로운 일을 위해 기도 중에 있다.
윤 권사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러시아 볼보그라드 시에서도 떨어져 있는 농촌 마을 노보니꼴쓰꼬에서 선교사로 활동해왔다.
그녀는 “고려인들에게 한글과 사물놀이 역사 등 우리 문화를 가르치며, 민족 정체성과 자연스런 선교를 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아주 아름답고 모범이 되는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경 그녀가 출석하던 높은 뜻 숭의교회 김동원 목사로부터 러시아 고려인들의 고통을 함께 보고 듣게 되면서 러시아 선교사로의 뜻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1937년 사할린과 연해주에 삶의 터전을 삼았던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으로 집단 이주됐다. 하지만 소련연방이 무너지고 러시아로 되면서 러시아는 자국민 우선 정책을 폈고, 또 알알해(과거 흑해)가 가물어 농사에도 문제가 발생해 우즈베키스탄으로 거주해 있던 고려인들은 다시금 오갈 곳 없는 처지가 됐다.
다행히 볼보그라드 주에서 고려인들의 수용 의사를 밝혀 이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주지역인 노보니꼴쓰꼬는 연중 최하 최고 온도가 영하 37도에서 영상 37도를 오르내리는 가혹한 환경으로 척박하고 외진 곳이어서 이들의 삶은 대단히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곳을 윤영애 권사는 찾았고, 선교사로 파송되기 전 한글 교육을 위해 2년간 재교육을 받고 웹디자인도 배우는 등의 준비 후 러시아를 찾아갔다.
“60가구 정도의 이 마을에 처음 정착했을 때는 교회 세우는 일도 어렵고 외지인 이라는 이유로 어려움도 많았다”며 “하지만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 배우고 실천했던 열린 마음과 포용에 대한 정신 때문에 잘 견뎠고 또 떠나기 전엔 아름다운 마을을 함께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처음 한글 교육을 고려인 마을 아이들에게 시켰죠. 그런데 놀랍게도 단순한 교육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한글 교육을 통해 문화 교육도 자연히 이뤄졌고, 선교도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요”
“해외나 우리나라 내부에서의 이주민 선교에 한글 교육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열린 마음이 먼저 선행 돼야겠죠”
정 권사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에서 이주민과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사업을 기도 중에 있다. 러시아에서의 선교활동 경험을 돌아와서도 살려 내자는 취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