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역의 모든 교회의 일치
Unity of "All in Each Place"
암스테르담 WCC 제1차 총회에서는 세계의 교파 교회들의 모임을 위한 준비가 있었지정식 행사는 아니었다. 총회의 보고서에는 지역 교회의 일치에 대해서 “몇 개의 눈에 띄는 연합교회”를 낳은 “용기와 모험”에 간단한 찬사를 돌릴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WCC 제1차 총회 직후, WCC조직의 교회론적인 의미에 대해 신랄한 논쟁이 있었다. WCC는 회원 교회로 하여금 특정한 연합의 형태를 취하도록 하고 있는가? 이들 교회로 하여금 연합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인가? WCC는 하나의 “초교회”(super-church)가 되고자 하는가? 토론토 중앙위원회의 모임(1950)에서 이런 질문이 구체적으로 다루어졌으며, 여기에서 차후 논의에 하나의 시금석이 될 선언문이 채택되었다(참조 토론토 선언). WCC회원이 된다는 것은 특정한 일치의 형태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치 추구에 대한 헌신을 공언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일치 모델이 여럿 나와 있었다. 정통적인 교회로의 재결합, 유기적 일치 등 램버스 4강령(Lambeth Quadrilateral)에서 제시된 것과 세계 교파 공동체 간의 연맹 관계(참조, 연방주의)가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WCC 자체가 일치의 바람직한 형태이기도 했다. WCC는 이러한 모델 중에 어느 하나를 선호할 수 없었으며, 단지 세계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의 연합과 연합을 위한 계획을 정기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연합과 일치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룬드 신앙과 직제 대회(1952)와 에번스턴총회(1954)는 전례에 따라 지역적 연합을 의제로 삼지 않았다. 다만 이 회의들이 있은 후에 WCC 지도층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합교회”들의 대표가 모여 비공식적인 회의를했다. 룬드 대회의 참석자 중 신생교회 가운데 몇몇 대표들은, 자신들의 일치에 대한 열정이 ‘아시아 민족주의의 한 부산물일 수 있다는 오해’에 대해 반박할 필요성을 절감했다.(룬드 보고서, 130). 이 논의는 토론토에서 다시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선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이 분명해졌다. 즉 WCC가 일치를 위한 어떤 특정 모델을 가입 조건으로 명시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회원 교회들은 그들이 일치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결국 어떤 형태의 모델을 선택하여 추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점이다. 에번스턴 총회의 한 강연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즉 “교회 일치의 적합한 형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한다. “첫째로, 어떤 곳에서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곳에서 가시적인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그러한 지역 공동체들은 전체와의 연계가 이룩됨으로써 모든 곳의 모든 그리스도의 사람과, 나아가서는 지나간 모든 사람과 앞으로 올 모든 세대와도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한 표현은 다음 5년 동안에 더 구체화되고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이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일치의 특질”이라는 주제로 모인 북미 교회들의 한 협의회로부터, WCC중앙위원회가 토론토 선언에 나타난 신앙과 작제 문제에 대해 논찬을 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부터, 또 신앙과 직제의 미래를 위한 위원회의 임명등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58년 이 위원회는 단지 협조만을 요구하는 듯 보였던 유형과는 대조적으로, 일치의 “교회적인”(churchly) 한모델을 지지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다음 해에 신앙과 직제 실행위원회에 낸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일치란 하나님의 듯이자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게 주시는 선물이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각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세례를 통하여, 같은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의 빵을 떼며, 공동의 삶을 살면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증언과 봉사를 함으로써, 서로 친교에 완전히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것임을 믿는다. 동시에 이들이 모든 장소와 모든 시대 그리스도인의 교제에 연합하되 모든 교역과 모든 교인이 서로 용납하며 하나님이 부르실 때마다 함께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교제가 되도록 하는 일치여야 한다.”
논의가 더 진척된 후, 이 입장은 약간 수정되어 뉴델리 제 3차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수정 가운데 하나는 “지역”과 “전세계적인 보편”을 나누어 놓는 세미콜론(;)을 없앰으로써 두 부분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문장의 두 부분을 합하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끈 것은 “지역”에 대한 강조였다. 몬투리올의 제4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1963)는 지역 교회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 대회에서는 “일치의 실험장은 지역 교회”라고 확언했으나(80), 지역 교회의 새로운 형태는 결국 분열의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타났다. 몬트리올 회의 보고서에 세미콜론이 없어진 그 중요한 자리에 쉼표(,)가 대신 들어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이 분명하였다! 제4차 웁살라 총회(1968)는 그 동안 한쪽으로 기울고 있던 것에 다시 균형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일치의 세계적인 차원이 강조되었고, “진정으로 보편적인 공의회가 모든 그리스도교를 대신하여 다시 한번 말할 수 있는 날을 열기 위해 WCC의 회원 교회들이 서로 신뢰하며 함께 일해야 한다는 ”(The Uppsala Report, 17)희망이 제시되었다.
“진정으로 보편적인 공의회”라는 비전은 신앙과 직제 위원회의 다음 모임(루뱅, 1971)에서 다루어졌다. “공의회성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에는 일치의 비전이 “교회들의 공동체적 협의 과정을 통해 친교”라는 형태로 묘사되었다. 이와 같이 감조점이 전이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지역 안에서 유기적인 연합을 위한 운동이 10년 전까지만 해도 매우 전망이 밝다고 보았는데, 이제 와서는 악화되고 있다. WCC의 활동 속에서 정교회의 역할이 커지고 있고, 그 교회가 과거 교회사 속에 나오는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역할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요인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1960년대 이래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강력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교회는 일치와 연대의 지역적 구도보다는 세계 교단간의 쌍방 대화의 구도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 하나의 세계 종파인 RCC(로마 가톨릭 교회)에게는 그 대화 상대자가 다른 세계 그리스도교 종파여야 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대화의 역할은 과거 수십년 동안보다 훨T니 더 중요해졌다. 새로운 몸으로 통합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조직을 포기해야 하는 유기적 연합의 아픈 경험보다 “공동체적 협의 과정을 통해 친교”가 훨씬 더 끌리는(덜 부담스러운)것 같다. WCC의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까지 세계 교파간의 쌍방 대화는 약 50회에 달하고 있다(Confessions in Dialogue, 1975).
일치에 대한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의 관계는 살라만카 회의(1975)에서 다루어졌다. 그리고 이 모임의 성과에 기초하여 같은 해에 열린 나이로비 제5차 총회에서 다시 다루어졌다. 즉 “하난의 교회는 진정으로 연합된 지역 교회간의 공동체적 협의 과정을 통한 친교로 그려질 수 있다. 그러한 친교 안에서, 각 지역 교회는 다른 교회와의 유대 속에서 충만한 보편성을 가지며, 같은 사도적 신앙을 증거하고, 이로써 다른 교회들도 같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하며 같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Breaking Barriers:Nairobi, 1975, 60).
이와 같은 입장의 수용은 자연스럽게 “진정으로 일치된 지역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뉴델리 총회는 이미 “장소”(place)라고 하는 의미가 하나의 단순하고 명백한 뜻을 가진 것이 아님을 인식하였다. 이 대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그들이 공부하고 있는 각 학교에서, 그들이 일하는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그들의 예배드리고 있는 가 교회 회중 속에서 발현되어야 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그 “장소”란 단지 지역 공동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확대된 영역, 즉 국가, 지역, 민족 등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이 확언되었다(The New DElhi Report, 118). 1976년 12월 WCC에 의해 소집된 한 협의회에서 논쟁점을 분명히 정리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모임은 제 3차 총회(뉴델리)에서 “장소”라는 용어를 교회생활의 모든 차원에 적용하여 사용함으로써 이 개념의 정의를 분명하게 내리지 않고 있음을 주목했다. 이 모임은 “교회는 장소라고 하는 현실로부터 분리하여 생각될 수 없다”는 점을 확언했다
이 모임은, 선교의 의무는 복음을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있는 특정 집단의 특수성에 연결시키는 데에 있다고 보았으며, "한 장소란 단지 지도에서 발견될 수 있는 지역적인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시간적인 차원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는 ‘지역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지역 교회란 그리스도인이 쉽게 만날 수 있고, 증언과 봉사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는 한 영역을 의미한다. 모든 지역 교회는 대개 하나의 성찬 예배를 중심으로 모인다. 상황에 따라 여러 구분된 예배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도 구분된 공동체들이 하나의 성찬적 친교 안에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의 특정 교회 회중을 형성하는 데 있어,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정당한 근거로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지역의 특정한 성찬적 회중을 특정한 언어, 종족, 문화 등과 같은 요인에 기초하여 생각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일치된 대답은 없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 집단에게 선교의 손길을 뻗는 과정에서 “잠정적인 조처로서, 피선교 지역의 문화 안에 그 문화의 언어를 말하고 그들의 삶의 스타일을 나누는 회중의 형성이 가능해야만 한다. 이러한 회중을 통해서 그 문화의 전정 풍부함이 보편적인 교회의 삶속에 꽃필 수 있게 될 것이다” 미래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이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많은 지역에서 작은 집단과 친교 공동체들의 공통의 관심과 이해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고”, 많은 경우 “교회 일치를 위한 그들의 헌신은 그들로 하여금 미래의 공도 사귐을 예견하게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지역의 일치”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6차 총회(밴쿠버, 1983)는 나이로비 선언을 재확인했고, 나아가서는 사도적 신앙의 공동 이해를 위한 작업과 세례와 성만찬과 교역의 상호 인정의 추구를 통하여(참조, 세례, 성찬과 교역), 그리고 공동의 결정 과정을 통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키려고 했다. WCC는 또한 연합 교회들의 자체 협의 모임들을 비롯하여,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를 포함한 교파별 세계 공동체와의 연합 모임을 후원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사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