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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재외동포 NGO대회 참가기-동포여, 어깨걸고 함께 나가자

입력 : 2007-12-06 06:44:41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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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재외동포 NGO대회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참석자로 다녀왔습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NGO대회는 지난 2004년 시작했으며, 그동안 국내에서 열리다가 올해 처음으로 일본에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재외동포 NGO대회는 우리 민족의 현대사 속에서 재외동포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미래 민족사의 희망을 밝히기 위해 국내 및 재외동포간 연대의 틀로 기능해 왔습니다. 

4회 대회는, ‘역사의 현장에서 재외동포의 미래를 찾다’라는 주제로 일본 오사카와 교토를 오가며 이뤄졌습니다. 한국에서 35명, 중국 동포 5명, 사할린 동포 대표 7명에 일본 현지 코리안 NGO센터 및 제 단체 실무자를 포함해 대략 6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일정은 11월 8일~12일, 오사카 민족학교 방문 및 교토 우토르마을 방문, 세미나와 기자회견 등 강도 높게 진행됐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입니다

첫째 날 숙소로 묵을 나가이유스호스텔에 짐을 풀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강연과 개막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둘째 날은 일본 내 ‘민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민족학교란 재일동포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글,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세워진 학교를 일컫는 말입니다. 

현재 일본에는 3가지 형태로 민족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민단계열의 민족학교입니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금강학원이 이에 해당합니다. 금강학원 안에는 소학교(우리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함께 있습니다. 

금강학원의 교육은 여느 일본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교육과정 가운데 우리말과 문화에 대한 과목이 개설돼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특성화학교와 흡사한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금강학원의 각급 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내 다른 학교로 진학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총련계열이 운영하는 민족학교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꾸노조선초급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총련계열의 학교는 각급 학교를 소학교나 중학교가 아니라 초급, 중급, 고급학교로 명칭하기에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총련쪽 민족학교는 명칭 뿐 아니라 교과과정도 사뭇 다릅니다. 무엇보다 모든 수업이 우리말로 진행됩니다. 이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총련계열 학교에서 일본어는 단지 한 과목일 뿐입니다. 당연히 학교 과정을 마쳐도 일본 내 다른 학교 진학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공립학교의 경우는 더욱 어렵습니다. 이런 애로사항 뿐 아니라 총련쪽 민족학교는 북일관계의 정치적 기상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때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민족학교와 일본당국의 마찰은 표면적으로는 각각의 이유를 달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깔려 있습니다. 

총련쪽 민족학교 사정은 얼마 전 영화나 TV를 통해 ‘우리학교’, 에다가와조선학교가 소개되는 등 이제야 조국의 남쪽에 조금씩 알려지고 있습니다. 민족교육의 세 번째 방식은 일본 공립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진행하는 민족학급입니다. 

민족학급에 필요한 경비는 동포학생의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달리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여전한 일본사회에서 민족의 말과 글, 문화를 지키기 위해 남다른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우리 동포들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됩니다. 

특별히 이꾸노조선초급학교를 담당자로부터 들었던 얘기가 가슴에 깊이 남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조국이 있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일본 방문 셋째날,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날씨가 오후가 되자 결국 비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우토르 마을, 정식 행정명칭은 교토부 우지시 우토르. 우토르란 ‘하늘로 닿은 마을’이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우리가 우토르에 들어서자 그동안 우토르 동포의 지난한 사정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하늘에서는 세찬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소나기는 마치 우토르 동포들의 뜨거운 눈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원래 우토르 마을은 1943년, 교토부가 비행장 건설을 위해 우리 동포들을 강제 징용하고 그곳에 합숙소를 지으면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패망후 비행장 건설은 중단됐고 1962년, 우토르는 닛산이라는 일본기업에 팔렸습니다. 하지만 우토르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7년, 닛산은 우토르를 다시 서일본식산에 매각했습니다. 우토르를 매수한 서일본식산은 1989년, 건물수거토지명도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주민들에게 퇴거령을 내렸습니다. 하루아침에 200여명의 우리 동포들은 거리로 내몰릴 처지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인들로 구성된 ‘우토르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돼 일본 사회의 양심에 호소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우토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2005년에는 ‘우토르 국제 대책회의’가 구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한국 정부 역시 우토르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면서 결국 서일본식산과 우토르 마을 매입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동포들이 거주하는 우토르 전 지역을 매입하고자 했지만 워낙 매입가격이 높아 절반의 땅만을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11월 23일, 국회 본회의는 우토르 마을에 대한 30억 원의 지원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로써 전체 매입금액 40억 원 가운데 상당 부분이 정부 지원금과 시민사회 단체 후원금(5억 원)으로 충당됨에 따라 우토르 마을 문제는 해결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더구나 도쿄에 사는 동포 1세 30명이 3억 원이 넘은 기부금을 익명으로 지원하는 등 우토르 마을은 우리 시대 감동적 기적의 현장이 돼가고 있습니다. 우토르 마을을 방문한 날 저녁에는 마을에 위치한 근로자복지회관에서 대회 참가자와 주민 모두가 어울려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교일 주민회장은, “이제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조국이 있는 한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라는 인사로 자신들을 도와준 한국 정부와 NGO대표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처음으로 참석한 재외동포 NCO대회는 제게 ‘민족’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요사이 어쩐지 ‘민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진부 혹은 식상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민족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게 된 셈입니다. 

이미 전 세계 178개국에 7백만 명의 재외동포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좁은 한반도에 우리 민족을 가둬둘 수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구촌 각처에서 한민족으로 살고자 고군분투하는 재외동포를 향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