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전광표 사관(구세군대한본영 사령관)의 인도로 나명환 목사(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장)의 기도, 성영자 장로(여성위원회 부위원장)와 윤석민 회장(한국기독청년협의회)의 성경봉독, 성공회 사제 중창단의 특별찬양에 이어, 박경조 주교(회장)의 말씀이 있었고, '교회의 갱신과 일치를 위해', '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해', '소외된 이웃과 사회정의를 위해' 안영로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박원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서상식 목사(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가 각각 특별기도를 드린 후, 백도웅 총무의 인사와 신경하 감독회장의 축도로 마쳤다.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박경조 주교는 “지금은 한국교회가 또 한번 결단해야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전망하고, “안전과 명성과 권력을 포기하고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민중들의 고난의 현장에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자”고 전했다.
아래는 백도웅 총무의 인사와 박경조 회장의 설교 전문이다.
2006 신년인사
병술년 새해에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에는 유달리 자연재해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과거사청산문제를 비롯해 황우석 사건, 사학법, 북한인권법, 쌀개방 등 사회적 쟁점들로 인해 혼란을 거듭하였습니다. 그 여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기독교가 이 일에 앞장서는 듯 사회적으로 비춰진 것입니다.
올해 몇 가지 문제는 더욱 논쟁이 될 것으로 보여 집니다. 남북관계의 화해와 협력을 비롯한 한반도의 평화, 민주적 변화를 위한 과거사청산과 개혁, 생명이라는 근본적 가치기준에 입각한 발전 등입니다. 이에 대한 상호간의 이해의 부족으로 혼돈과 극단이 심화되리라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분명 화합과 일치를 지향하는 거룩한 구성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006년 2월에 세계교회협의회 제9차 총회가 <은총의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키소서>란 주제로 포르트 알레그로에서 개최됩니다. 주제에서 보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은총에 의한 변화가 필요한 곳입니다. 이러한 고백 위에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와 함께 지구화 문제와 폭력성에 대해 공동 대응하는 데 힘을 모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올해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국제회의인 ‘스위스 글리온회의(1986년) 20주년’을 맞습니다. 지난 해에는 남북교회가 <금강산 기도회․ 성가제>까지 치러냈습니다. 이제는 우리 기독교가, 세계 교회의 기도에 힘입어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교류와 협력 사업을 강화시키고, 온 민족이 실질적 평화통일의 삶을 열어갈 수 있도록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더불어 생명문제, 인권문제, 정의와 평화의 문제 등에 대한 성서 신학적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사업들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초교파적으로 대 사회적 책임과 참여에 보다 헌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총회에서 결의된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향후 교회협이 명실공히 한국교회를 아우를 수 있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지혜 모아주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세월, 교회협은 분명 교회 내외적으로, 우리 역사 속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 역사는 교회협에 애정을 가지신 많은 분들의 변함없는 지지 가운데 자라왔고 열매 맺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진일보를 위한 여러분들의 관심과 헌신적 참여를 부탁드리며, 새 희망으로 시작하는 올해에 여러분들과 함께 한국교회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6년 1월 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 무 백 도 웅
신년 하례회 설교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세상의 날수로 보면 오늘이 병술년 새해가 되는 때이지만 교회의 전례력으로 따지면 성탄후주일입니다. 해아래 새것이 있을 수 없고 어제와 오늘이 서로 다를 수 없습니다만 우리가 새해라고 이름을 짓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지나간 과거를 정리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결심하고 새로운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반도의 역사는 동과 서가 만나는 자리요. 러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륙권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권의 세력이 서로 다투는 자리이며 남과 북이 서로 만나는 곳이며 어제와 오늘이 서로 만나고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 자리는 혼돈의 자리요 갈등과 다툼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삶, 새로운 평화의 삶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성서의 말씀은 세계성서 정과표에 따른 본문입니다. 요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입을 빌려 예수를 소개하면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로다.”
공동번역은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오신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던지 우리의 삶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지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과 본능, 그리고 우리의 집단의식은 언제나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을 바라봅니다.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좋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고 좋아 보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취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성공과 안전을 바라보고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서 투쟁합니다. 명예와 권력을 바라보고 그것을 취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그것을 위해 경쟁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싸우고 죽입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를 바라보며 그곳으로 가기위해 투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 NCC도 한때는 예수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고난을 받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예수를 따라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NCC가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오늘 성서에 나오는 세상-코스모스-라고 하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 지고 있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세상은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가치가 아닌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무한경쟁의 살벌한 세상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한가운데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가치가 아닌 새로운 가치가 지배하는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열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본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다른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본성은 명예를 바라보며, 권력과 힘을 바라보며, 성장과 숫자를 바라보며, 나의 성공과 승리를 바라봅니다. 참으로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것을 포기해야만 예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길이 부끄러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돌이켜 예수가 가신 길을 따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또 한번 결단을 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단은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눈을 들어 예수를 바라보는 결단입니다. 우리 자신을 과감히 포기하고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를 따르는 결단입니다. 자신의 힘과 권위를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히 하늘의 음성을 따랐던 예수 그리스도의 길, 자신의 안전과 명성과 권력을 포기하고 숨어계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 땅위에 실천하심으로 하느님을 드러내셨던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결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골 갈릴리 처녀의 몸을 통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위에 보내시고,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함께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지금도 아무도 몰래 우리가운데 탄생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노숙자들 가운데서 이주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현장의 한가운데서 농민들의 분노와 한숨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 속에서 주님은 지금도 탄생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예수께서 옛날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것처럼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민중들의 고난과 한숨과 고통가운데 현존하시며 그들과 함께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를 바라보며 우리도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이 세상의 갈등과 분열과 전쟁과 폭력을 짊어지고 가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자는 그에게서 구원의 희망을 바라보고 그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새해 병술년을 맞이하는 오늘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 오신 것처럼 그렇게 다시한번 우리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 나라의 백성들이 이 KNCC를 통해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