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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신년예배

입력 : 2005-01-04 10:41:47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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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새해 신년예배로 KNCC 첫 업무를 시작했다. 1월 3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드려진 예배에는 교계 인사들과 언론인 등 약 200여명이 참석하여 새해를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출발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배는 김상근 목사(부회장)의 인도로 정철범 주교(대한성공회 관구장)의 기도, 유영희 목사(여성위원회 위원장)와 김진홍 회장(한국기독청년협의회)의 성경봉독, 감리교 목회자합창단의 특별찬양, 신경하 감독(회장)의 말씀, 백도웅 목사(총무)의 신년인사, 김태범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또한 특별히 '한국교회의 갱신과 일치를 위하여',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가난한 이웃과 정의실현을 위하여', 성주형 장로(기독교대한복음교회 부총회장), 김동원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전광표 부장(구세군대한본영 사령관)이 각각 기도했다.

 

아래는 백도웅 총무의 '2005년 신년인사'와 신경하 회장의 "허물 때와 세울 때"라는 제목의 설교 전문이다.

 

 

 

2005년 신년인사

 

새날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더불어 여러분들과 한국교회에 감사와 찬미가 끊어지지 않는 복된 올 한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05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또한 을사조약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 근대사에 분수령이 되었던 사건들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숙고할 좋은 기회입니다.

 

식민국가의 멍에를 벗자마자 민족은 분단국가라는 굴레를 쓰고 말았으며, 분단의 60년은 독재와 이념의 갈등,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전통적 가치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이방의 종교이었기에 민중은 낯 설은 종교에 의심의 시선을 던졌지만 교회는 자신의 경계를 지키기보다 민중의 삶에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울고 웃음으로 민족의 종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낯 설은 얼굴로 도심에 우뚝 선 교회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전통이 지향해 온 길은 한국교회의 나아갈 바임을 믿습니다.

 

2005년에는 짧게는 지난 60년, 길게는 지난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민족 수난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가깝게는 분단의 상황을 극복하고 민족 공동체를 공고히 해야 하며 좀더 멀리는 국제질서 속에서 끊임없이 혼란을 겪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확고히 하는데 주체적인 지도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해답은 역사의 현장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땅의 울음과 하늘의 울림에 응답해야 합니다. 지난 2000년의 역사는 하늘의 울림에 제대로 응답한 교회가 제 소임에 충실하였던 교회임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암울했던 시절 국가권력으로부터 침묵을 강요받았지만 강요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늘의 울림을 따라 민중의 편에 섰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53회 총회를 통해서 2005년에는 금강산 기도회의 성공적 개최와 과거사 청산과 평화문제, 그리고 아시아교회로서 정체성을 드높이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것과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교회의 사회봉사 활동의 폭을 넓혀 가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결의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연말 인도양 일대를 강타했던 지진과 해일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었습니다. 복구와 재난 시스템 확보를 위한 지원에 많은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 일에도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물적 심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판단됩니다. 저는 오는 5일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현장을 둘러보고 긴급히 준비한 구호금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전통을 이어감은 물론 우리 역사의 아픔과 아시아교회로서 자리매김을 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새해 첫 인사에 너무 무거운 주제들로 채워서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다 잡아 올 한해를 충실히 채운다면 올 연말에는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올 한해 민족사의 아픔에 동참하는 교회협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2005년 1월 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백도웅

 

 

 

2005년 NCC 신년예배 설교

허물 때와 세울 때

전도서 3:1-8, 마태복음 16:1-3

 

을유년 새해입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새 천년을 맞는다고 분주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벌써 2005년입니다. 올해에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교회에 큰복을 내리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또한 여러분 모두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05년은 한국 교회와 우리 민족에게 크게 의미 있는 해입니다. 교회는 선교 120년을 맞으며, 또 우리 겨레는 광복 60주년과 동시에 분단 60주년을 맞이합니다. 마치 시간의 정거장에서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반성과 함께 희망을 진단하는 기회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며 우리는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기독교의 시간은 목적이 있습니다. 세월은 쏜살같이 빠르게 날아가지만, 그 방향과 목적이 있음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닭띠 해라고 합니다. 고 김재준 목사님이 지으신 261장 찬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어둡던 이 나라에도 어김없이 닭울음이 울고, 그 소리는 새벽을 깨우고, 역사의 어둠을 밝힌다는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둡던 역사의 굴곡을 겪을 때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얼마나 큰 위안을 얻고 희망을 발견하였습니까?

 

본문에서 전도서 기자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두 28가지의 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출생과 죽음, 파종과 수확, 슬픔과 기쁨, 획득과 상실, 침묵과 외침 그리고 전쟁과 평화는 모두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인의 상식이고, 역사의 경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 그 때 닥칠 때마다, 언제나 ‘코앞의 일’에만 머물러 시시비비를 가리고 진통을 겪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비록 매일매일 우리에게 닥치는 일상일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를 느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며, 따라서 겸허하게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날이 흐릴지, 맑을 지에 대한 눈앞의 관심을 넘어서서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고 역사적 안목을 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시대에 대한 증거와 시대를 분별하는 표적을 바로 보기 위해 순결하고 온전한 믿음을 지니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개인이나, 국가나 우여곡절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새해에 대한 경제전망은 여전히 짙게 먹구름이 끼어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0일 갤럽조사 발표에 따르면 조사 대상국 62개 국 중 한국인들이 경제문제에 대해 두 번째로 비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눈이 어둡습니다. 언론도 희망보다는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고 있어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어깨가 더욱 움츠러듭니다. 물론 우리는 현실에 민감해야겠지만 보다 더 멀리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코앞에 닥친 현실은 결코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 경제는 얼마나 성큼 성장과 도약을 이루어 왔습니까? 우리 사회는 얼마나 비약적으로 민주화되고, 인권이 개선되었으며, 남북관계가 발전하였습니까? 지금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나 퇴보가 아니라, 나날이 진보하고 있음을 분명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비관하는 백성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감사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지닌 예언자의 능력입니다. 비록 우리는 천기를 누설할만한 지혜와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맡겨주셨습니다. 모두가 절망하고 눈앞이 캄캄하다고 좌절하는 가운데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용기입니다.

 

우리 NCC는 지난 해 8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한국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또 민족의 고난과 분단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역사를 향한 쉼 없는 행진을 해왔다고 자랑스러워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선배들이 꿈꾸어왔던 대로, 예언자의 목소리를 높여온 대로, 세상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민주화, 인권, 정의와 평화, 남북화해 등 시대를 향한 깨우침은 놀랄만한 천기누설과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를 자랑하는데 익숙할 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억압의 시대에 헌신했던 NCC의 수고는 다가올 평화의 시대에는 더 다양하고, 더 무게 있게 그 역할이 찾아올텐데 우리 회원교회는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덴마크 속담에 “오래된 착오는 새로운 진실보다 지지자가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비판하면서 그 대상과 닮아가지 않았는가 하고 돌아봐야 합니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을 탓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았는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이 시대에 잃어버릴 것이 많은 사람처럼 불안해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가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이루었다는 착각 아닌 착각이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는 가운데 우리 자신을 소외시킨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합니다. 어쩌면 지난 10여 년 간 우리가 당면해온 어려움은 우리가 갈등에 익숙해 있고, 평화를 조율하는데 미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를 열어 가는 일은 먼저 우리 자신이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분별하는데서 부터 비롯됩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60년 대 이래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산업화 시대를 선도해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물론 그 와중에서 사회적 병리도 흡수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아직 산업화 과정에 머물러 있거나, 더욱 몰입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사회는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발전하고, 성장과 물량보다는 성숙과 삶의 질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민주화는 완성되지 않았고 숱한 개혁의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들은 나날이 경제적 궁핍과 실업, 사회적 소외에 시달리고 있어 복지의 신장이 시급히 요청됩니다. 인권의 개념이 확장되어 교회의 손과 발을 통한 섬김이 확대되었습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한 수고, 그리고 남북관계 등 이제 우리는 말뿐 아니라 삶 전체를 드려 헌신할 숱한 과제를 쌓아 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임박한 구원의 때를 의식하면서 지혜롭게 우리의 삶의 터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말합니다.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헐 것과 세울 것,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기 위해 우리 교회는 더욱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단절할 것과 계승할 것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면, 세상은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역사는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진통은 헐 때와 세울 때를 분간하지 못하는데서 온 것입니다. 묵은 땅을 깊게 갈고, 쟁기질을 제대로 해야 희망이라는 씨앗이 바로 자리를 잡고 싹을 움틔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선교 120년을 맞는 우리 한국교회는 또 하나의 기념행사로 역사를 정리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60년은 구한 말 척박한 땅에 복음의 뿌리를 내리고 일제 강점기 속에서 고난과 함께 교회가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두 번째 60년은 해방과 분단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성장과 분열을 함께 겪어온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 번 째 60년을 맞이합니다. 이제 우리가 준비할 것은 평화를 이루어 가는 교회요, 통일시대를 여는 교회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성장하는 시민 사회 속에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교회를 넘어서 사회적 리더쉽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로서 교회다움을 회복하고, 타자를 위한 교회로서 섬김의 자세를 회복하며 그리고 미래의 희망으로서 교회가 예언자의 능력을 회복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 NCC도 결코 예외 일 수는 없습니다. 그 동안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해 온 ‘정의와 평화’라는 핵심적인 비전을 품고, 시대의 변화와 징조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어 봅시다.

 

새해는 해마다 반복하지만, 그 시간의 신비는 질서와 조화를 통해 사람들을 희망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믿음의 눈은 어둠조차 창조의 신비를 품을 만한 징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희망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역사는 다가올 미래에 이루어질 존재에 대한 희망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유토피아는 희망을 가능케 하는 힘이었습니다.

 

진정한 어둠을 경험했던 우리 민족은 진정한 아침을 맞을만한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사모하는 오늘의 교회를 통해 이 땅에 새로운 은총의 빛이 열리기를 꿈꾸어 봅니다. 새해를 맞는 여러분과 우리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