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21:4)
해마다 8월6일을 맞이하면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을 맞이한다. 원폭 투하로부터 58년이 경과했다. 그 사이에 핵전쟁의 위기는 몇 번인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핵병기는 세계에서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핵병기는 왜 사용되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화를 통해 핵병기가 인류의 멸망이라고 하는 악몽으로 연결된다라는 공포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국제사회에서의 핵의 불확산운동은 결정적으로 무너지고만다. 유일한 피폭 체험국으로서 일본은 절대로 핵을 보유하지 않고 핵무기 폐기를 요구해 가는 것을 재확인하여야 한다.
나는 지난 2월초에 출장차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양형춘목사댁을 방문하였다. 재일대한기독교회의 총회장을 역임하였던 양목사님은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시면서 모처럼 오하이오주를 방문한 기념으로 데이튼(Dayton)에 있는 라이트·패터슨 공군 기지에 병설된 공군 박물관을 안내해 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공군 박물관으로 라이트형제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발명하여 시작된 날부터의 흥분이 될만한 매력적이고 독특한 비행기의 발전의 역사를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은빛의 기체를 빛내고 있었던 1대의 B29가 전시되고 있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박스카」이다. 매년 전세계로부터 100만명이상의 방문객이 찾아가는 곳으로 300대이상의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고 기념 사진을 찍는 방문객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제2차 대전을 끝내게 한 비행기의 표제 아래에 일본 상륙 작전을 하면 연합군측의 사망자는 25만~100만명으로 추정되어 원자폭탄의 투하없이 일본이 항복했는지 어떠했는지 모른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미국인은 일반적으로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도덕적인 딜레마를 느끼지 않았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상공으로부터 찍은 나가사키에 원폭투하를 하여 파괴된 모습의 사진은 있었지만 버섯모양의 구름 아래에서 불에 탄 사람들의 모습은 없었다. 사망자수도 쓰여있지 않았다. 거기에서는 지금도 피폭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피폭자를 상상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할 것이다. 핵병기를 없애고 싶다라고 하는 피폭지의 생각은 전혀 전달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히로시마시에서「피폭자의 모임」이 열려 22개의 피폭자 단체가 모였다. 이만큼 많은 피폭자가 연대하여 핵무기 폐기를 호소하는 것은 실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한사람 한사람의 피폭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생지옥의 체험을 말로 전하려고 모여왔다.
수천도의 열선이 피부 속 깊은 곳까지 태워 피부의 껍질이 벗겨지고 떨어져 나갔다. 파리가 알을 낳아 낫지 않는 상처에 구더기가 생겨 파먹힘을 당하면서 죽어 갔다. 몸을 통과한 대량의 방사선은 지금도 암이나 백혈병 백내장등을 일으켜 몸을 파먹고 있다는 생생한 증언들이다.
하지만 무력감에 사로 잡히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남은 여생을 과거의 전쟁 피해의 체험을 말해 두고 싶은 것이라고 하는 피폭자도 적지 않다. 히로시마시에서 열린 국제 평화 심포지엄에서 패널리스트들이 일치한 것은 군축과 핵 불확산의 중요함을 다음의 시대를 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치자고 하는 것이었다. 히로시마 평화 기념 자료관은 전시물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버추얼·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불에 탄 제복이나 새까맣게 탄 도시락, 전신 화상으로 괴로워하는 피폭자의 사진외 피폭자의 증언도 들을 수 있다. 일본어판과 영문판이 있어 해외로부터의 접속도 증가하고 있다.
일본은「힘의 지배」가 아니고 평화 헌법의 정신을 호소해 가야만 한다. 원자폭탄 피폭국으로서의 비참한 체험을 구체적인 외교에 활용해 일본이 핵무기 폐기를 향해 주도권을 취하는 노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원자폭탄을 맞은 날에 그 결의를 새롭게 하기를 바란다.
재일대한기독교회 총간사 박수길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