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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기 한국 기독교 신학선언

입력 : 2003-03-10 01:10:4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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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기 한국 기독교 신학선언

전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21세기를 맞아 분단 50년의 비극적 역사를 뒤로하고 남북한의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열고 동북아의 평화를 이룩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절감하면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을 모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국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를 친히 이끌어 주셨음을 감사한다. 한국의 기독교는 구한말 서구열강의 침략의 위기 속에 있던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왔다. 선교 초기의 한국기독교는 우리 민족의 계몽과 독립을 위해 앞장섰다. 3.1 독립운동 당시 기독교가 중심에 섰고, 신교육을 소개했으며, 민족의 지도자들을 배출하고, 젊은이들을 위해 근대적이며 민족적인 교육을 제공하였다. 봉건적 가부장제도 하에서 고난받고 있던 민중들과 여성들을 사회의 동등한 일원으로 참여케 하였다.
민주화와 반 독재 투쟁을 선도하고 민중운동을 통하여 민주화와 인권, 노동과 도시빈민 운동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한반도 분단체제 종식을 위한 통일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서, 오늘날 남북간의 경제 문화교류 등 민간분야 지원의 물꼬를 텄다. 이러한 교회의 활동은 다가올 통일시대를 대비한 평화선교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일제에 협조하고 신사참배에 참가하였으며 교회내의 민족운동을 홀대하였으며 해방 후 반공 기독교로서 분단한반도의 냉전체제에 대한 옹호적인 노선을 걸었고, 70년대에는 유신독재에 협력하여 민주화의 대세를 거스르기도 하였다. 또한 지나친 반공 기독교의 입장을 내세워 북한을 기독교의 적으로 간주하는 등 남북분단과 갈등의 심화에 한몫을 하였으며, 교파분열을 거듭하고 보수 진보로 양분되어 민주화와 인권 옹호보다 맹목적 교권 수호에 급급하였다. 우리는 한국기독교가 민족역사 속에서 저지른 잘못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통렬한 마음으로 고백한다.

한국교회는 새천년의 문턱을 넘어 다시 새로운 세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시대적 과제를 적극적으로 대면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내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근대화과정에서 이룩한 고속성장에 발맞춰 한국교회는 성장제일주의로 내달아 왔다. 교회 운영에서의 비민주적 권위주의와 예산 집행에서의 불투명성, 교단 총회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돈선거, 불평등한 논의구조, 물량주의, 근본주의, 기복주의, 내세주의 등 한국교회의 왜곡된 신앙 행위는 지난 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지속된다. 그리하여 오늘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국 교회는 우리 역사와 사회 속에서 필요한 일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7년 겨울에 들이닥친, 이른바 IMF 경제체제에서 비롯된 경제파탄과 구조조종의 여파로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하였고,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실직과 불완전고용 등으로 고통 당하고 있다. 산천은 오염되어 생태계의 생명이 파괴되고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는 불합리한 관행과 부정부패로 얼룩졌다.

한국 교회에는 부정부패, 비민주성, 지역주의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자본의 원리가 교회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이것이 신앙의 이름 아래 정당화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가진 자의 교회라는 평판을 들으며, 교회재정의 상당부분을 어려운 이웃이 아니라 교회자체의 유지를 위해 쓰면서, 예수의 공동체길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교회의 팽창주의적 물량주의, 성장주의는 이것을 보여준다.
한국교회의 비민주적 제도는 권위적 위계구조와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남녀 불평등과 차별, 성직주의로 드러난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성서해석에 기초한 불평등한 제도와 관행 그리고 전통적 유교 문화가 합하여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일반사회보다 더 심하다. 한국교회의 교인들의 7할이 여성이지만 교회의 정책과 의사결정과정에 여성 참여는 미미한 실정이다. 많은 교회에서 아직도 여성안수를 금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여성들은 교회에서 보조적이고 주변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다. 또한 담임목회자 중심의 교회사역은 평신도의 주체적 참여를 가로막고 있어 교회가 나눔과 평등의 공동체로서의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비정치적, 비사회적, 비역사적 풍토가 아직도 한국교회 안에 만연해 있다. 교회에서의 헌신만을 강조하고, 오로지 개인의 영적인 문제에만 관심 갖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교회는 역사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뿐 아니라, 그것들은 비성서적, 비복음적, 세속적인 일이라고까지 본다. 신앙은 내적인 문제이며, 이 내적인 문제와 사회, 정치, 역사의 문제와는 무관하게 여겨 역사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외면하였고, 신앙을 왜곡하였다.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주시는 하나님인 성령의 사역을 "자본주의화한" 제도 교회들에 의하여 물질적 복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 같은, 원칙과 방향이 없는 성령이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말씀하신 성령의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눅 4:18-19).

한국교회는 카리스마를 잘못 이해하였다. 성령의 은사 즉 카리스마를 특정한 현상에 국한하여 이해하고 이를 교회내 권력형성과 지배력 강화의 방편으로 사용한 예가 적지 않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간과하고 특히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은사를 소홀히 하였다.

한국교회는 기독교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보여 왔다. 또한 우리 나라의 미풍양속을 무조건 미신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배제함으로써 한국의 전통문화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

한국교회의 이 같은 양상은 모습 온갖 피조물이 갈등과 고통을 겪으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세계에 희망이 될 수 없다.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교회는 해방의 복음에 기초한 참신앙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새 시대를 위한 생명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의 갈 길을 비추어 주는 빛으로 고백한다. 하나님을 인간세계 안에서 가장 적합하게 계시해 주는 그리스도와 그의 고난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대로 살도록 북돋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계시하고 새 생명의 동산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당신의 백성들을 살게 하시고 그들을 돌보시며 그들의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고 더 이상의 슬픔과 고통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가자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생명의 원천임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다함 없이 신비한 존재이시지만, 성서를 통하여 창조세계를 주관하실 뿐 아니라,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주로서 깨어진 창조질서 회복을 위해 일하시는 분임을 계시하신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하심을 고백한다. 성령은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시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시는 사랑의 끈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고난 가운데에서 깨닫게 하시고 고난 당하는 피조물의 세계에 동참하시어 생명을 살리고 더욱 풍성케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생명과 해방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통해 우리는 역사와 사회 속에 책임적인 자아로서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하고자 한다. 만물이 죽음의 세력에 지배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도 가려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우리 사회와 역사 속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넘치도록 해야 한다.

생명파괴 현실과 생명신학

오늘날 세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지구적 자본의 자기 이윤의 증대와 확장을 위한 지배 전략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경제의 새로운 전략은 자연환경을 파괴함은 물론 인간 삶을 억압하고 있다.
우리는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해 생명의 암호들이 해독되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만큼 생명이 조작될 위험이 큰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전히 해독되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이 재구성되는 때가 도래할 것이다. 생명공학은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유전자조작을 통한 생활식료품의 양적, 질적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유전자조작은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생명을 복제하고 창조할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위험한 실험이다. 이것은 지구적 거대자본과 정치권력과 결탁한 맘몬의 역사이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야만 한다.
물질적 가치관으로 획일화된 문명 속에서 맘몬의 세력은 자연을 파괴할 뿐 아니라, 세계의 인류,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정치, 경제, 교육, 환경, 종교 등 현대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파고 들어가 사회전체를 생명 파괴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에 교회는 시민사회와 함께 획일화된 문명에 저항해야 하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원천적인 힘은 성령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에 온 생명을 부여하시고 그 생명을 돌보고 살리시는 분이다. 태초에 만물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면서 만물 속에 함께 하셨으며(창 1:2),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성령이 되게 하신(창 2:7) 생명의 힘과 근원이다. 만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으며 인간은 물론 세상 만물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으며 따라서 인간과 세상 만물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상호 연결되고 소통하며 살고 있다. 하나님의 영 루아하(ruach)는 인간과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며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은 만물의 중심에 인간을 두는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관리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말미암았으며, 인간의 뜻에 따라 지배되고 정복될 수 없음을 뜻한다. 세계의 소유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인간은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는 성서의 세계관이 아니라 세상을 정복하고자 한 근대인의 욕구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잘못된 해석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해는 자연의 생명을 지키고 돌보아야 하는 인간의 책임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한다. 인간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창3:19)이며 처음인간 아담을 통해 흙에서 나와 생명을 얻었고, 흙과 더불어 노동하고 생명을 유지하며,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본질적으로 땅과 결속된 존재이다. 인간은 피조물인 자연의 한 부분이며, 온 우주 생명의 한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땅을 경작하며 생존하게 하셨다. 인간의 경제활동은 모든 피조물과 공생하며 창조세계의 평화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허용된다.(창 1:28-30)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확실하게 지시한다.

인간의 사회적 역사적 삶 또한 자연과 운명을 같이한다고 성서는 밝힌다. 인간의 도덕적 타락은 자연의 황폐를 초래하며, 이로써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가 깨어지며, 하나님과의 인간 사이에도 단절이 온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홍수 한발 등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최후의 심판에는 자연 현상에 이변이 일어난다고 성서는 증언한다. 범죄한 주민의 죄가 땅을 오염시키며(사 24:4-6, 18-20), 땅을 오염시키는 죄는 피흘린 죄(민 35:38, 시 106:38), 우상숭배(렘 3:9)에 속한다. 인간이 죄에서 해방되고 인간성이 회복되면 이 자연재해는 물러가고 자연은 회복된다(호 2:21-22). 인류역사가 대정화를 이룩하는 시대가 오면 하늘과 땅이 갱신되는 곧 자연의 대회복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온다(사 65:, 계시록 1:5). 인간의 타락이 자연의 황폐화와 직결되며, 인간회복은 곧 자연회복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의존하기보다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며, 인간은 자연을 통해 알게 된다. 우리는 자연이 언어가 없어 인간과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인식시키는 역할을 하며(욥 12:7-9), 창조주를 찬양하는 지혜를 가르친다(시 8:6).
생명은 창조된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지니지만,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 속에 움직이고 변화하며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 다양한 차원의 생명운동을 통해 생명은 왕성해지고 생명체 상호간에 힘을 주고받는다. 인간은 섬기고 보살피고 생명력을 풍성하게 하는 하나님의 일에 함께 할 책임을 맡았다.

우리는 인간의 삶과 생명의 온전성(Wholeness)이 왜곡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 생명에 관한 성서의 복음에 새롭게 귀기울여야 한다. 온 우주 속에 가득한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고 상처받고 고통 당하는 창조세계를 치유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해가 협소한 것이었음을 인정한다.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인 기독교 전통은 인간 이외의 생명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관심하였으며 생명을 이루는 많은 다양한 차원들과 요소들을 간과해 왔다. 이로써 오늘날 생명은 전지구적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21세기 한국기독교는 생명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비롯하여 더 광범위한 생명이해들을 포괄한 우주적 생명이해를 바탕으로 새하늘 새땅을 일궈가야 한다. 기독교 전통, 민족의 사상과 삶, 아시아 문화, 나아가 세계 원주민의 영성 등에서 생명중심적이고 관계중심적인 요소들을 발굴하여 성서의 생명중심적 복음을 새롭게 해석하고 풍부하게 해야 한다. 창조세계를 하나님의 본래적 축복, 무한한 기쁨, 영광, 은총이라고 보며, 새와 동물과 의사 소통을 하고, 하나님을 어머니로 새롭게 이해한 중세 신비주의 전통도 수용해야 한다. 온 생명을 살게 하기 위한 신학만이 구원의 복음이 됨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생명신학의 관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명을 억압하는 현실들을 주목한다.

가. 경제의 지구화와 가난의 확산
-오늘의 세계는 경제의 지구화로 인해 심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경제의 지구화는 이제까지 인류가 해결할 수 없었던 가난의 문제에 새로운 특질을 부여하였다. 경제의 지구화는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었던 지역 시장들과 국민경제들을 세계시장으로 강력하게 통합시켰고, 금융자본과 생산자본이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이끌었다.

-생산자본은 시장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지역경제와 세계경제에서 더 큰 시장 기회를 차지하기 위하여, 기업·인수 합병을 통해 시장권력을 확대하거나, 경제활동에 따르는 사회비용과 환경비용과 법인세부담을 줄여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거나, 생산자본에 대한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는 지역으로 옮겨가거나, 경제적 효율성 원칙에 따라 비용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서게 된다.

- 가난은 자본이 지구적 차원에서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노동력은 국민경제 영역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더욱 심화한다.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생산자본이 이동하면, 한쪽에서는 공장폐쇄로 인해 실업이 증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환경이 극도로 악화한다. 노동자들이 임금, 노동시간, 노동조건의 향상을 요구하면 자본 소득자들은 생산자본의 철수를 내세워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다국적 기업들은 '정부간 투자협정'을 체결하도록 압력을 가하여 노동자들의 저항을 제도적으로 억압할 수 있다. 가난은 이러한 상황 아래서 노동자들의 운명처럼 굳어진다.
- 가난은 개별 기업이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노동합리화의 한 결과이다. 노동합리화는 기업이 설비투자를 확대하여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킴에 따라 유휴 노동력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기 마련이다. 비용절감을 위해 대규모적으로 추진되는 인력조정은 노동시장의 절대적인 규모를 축소시킬 수밖에 없고, 따라서 실업은 증가한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신규 노동력이 일자리를 얻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워진다. 그리고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장으로부터 어떤 소득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 지구화가 앞세우는 수익성의 논리는 여성의 빈곤화를 촉진한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하여 비공식 부분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수효가 늘고 있으며, 설사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불안정한 고용 아래서, 또한 나쁜 임금조건과 노동조건 아래서 고통받고 있다.

- 경제의 지구화는 농민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농촌경제를 피폐하게 만든다. 지구화가 강제하는 농산물시장의 개방은 이미 농민생활의 기반을 대부분 붕괴시켰다. 농민이 떠난 농촌에는 토지 집중 현상에 더하여 거대 영농지주가 등장하고 있으며, 농촌을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은 해묵은 가난을 감수하거나, 수익 기회가 거의 없는 서비스직으로 이동하고 있다.

경제의 지구화로 인해 점점 더 악화되는 가난의 문제를 인식하면서, 우리들은 노동에 대한 권리와 노동에서 비롯되는 권리를 옹호하고, 소득분배의 정의를 수립하여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좀 더 인간적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기독교 사회윤리의 방향을 제시해 온 성서는, 한편으로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해서 살림을 스스로 책임 있게 꾸려 나가도록 엄격하게 가르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네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그들과 더불어 물질을 나누라고 권면한다. 구약의 십일조는 땅이 없어 생산활동을 하지 못하는 레위지파를 위해서도 쓰였지만, 과부들과 고아들, 남의 땅에서 떠도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바울은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적으로 살림을 꾸려 나갈 것을 가르쳤다. 성서가 일관되게 이자징수를 금지한 것은, 생계대부를 받아야 할 만큼 가난한 사람의 삶이 이자로 인해 송두리째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자금지는 생계대부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사회적 연대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독교의 사회적 가르침은 이처럼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는 성서 전통에 입각해 있다.

오늘 이 사회적 연대는 국가에 의해 조직되어야 한다. 국가는 시장을 통한 소득분배가 왜곡되지 않도록 특히 노동시장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여야 하고, 국민소득이 시장을 통해 분배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조세·재정정책과 사회·복지정책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소득재분배 기능을 수행하여야 한다.

나. 차별
오늘의 세계에서 차별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인류 역사에 뿌리 깊이 도사리고 있는 성차별, 인종차별, 계층차별 등은 성간, 인종간, 사회적 계층간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서 출발하며,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지배와 종속과 배제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차별은 또한 연령을 둘러싼 세대간 차별로도 나타나고 지역 차별이나 성적 성향에 근거한 차별로도 나타난다.
차별은 인간을 우열의 위계주의로 구분하고, 이러한 위계적 관계설정을 통하여 우월한 것은 열등한 것을 무시하고, 지배해도 좋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 성차별은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와 배제를 일컫는다. 성차별 문화 속에서 여성은 한 인간으로서 다양한 삶을 선택할 기회를 제한 당한다. 성차별은 한국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경제의 지구화로 인해 성차별은 악화하고 있다. .

- 성차별은 노동시장에 대한 성별 참여와 노동시장을 통한 소득분배의 성별 차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비정규직 근로 비율은 남성들보다 월등하게 높고, 정규직 근로의 경우에도 여성 근로자의 임금은 남성들의 70% 정도에 불과하다.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의 원칙이 성차별의 장벽에 가로 막혀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 근로자들은 단순 노동에 종사하고 승급 기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 성차별은 여성들이 대부분 종사하고 있는 가사노동의 업적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회구조에 의해서도 제도화한다. 가사노동은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여성들의 노동 역시 평가절하 되는 경우가 많다.

- 성차별은 여성을 한 고유한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상품화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한국사회에서 매매춘, 기생관광, 원조교제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까닭은 성차별이 사람들의 의식과 행위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 성차별은 부계혈통주의에서도 나타난다. 부의 혈통을 이을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한 여아 낙태하여 남녀성비 불균형을 초래하고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강요하는 호주제를 존속시키고 있다.

- 인종차별도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찾아와 우리 사회에 둥지를 틀고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주들은 이들의 불안정한 처지를 이용하여 저임금과 부당한 대우로 이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타민족에 대한 편견으로 이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하고 소외시키고 있다.

인권보호와 차별철폐를 위해 한국교회는 앞장 서 왔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교회 안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외국인 인권문제 등에 대한 관심도 아직 미약한 상태에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21세기에 되살려서 인권선교, 여성평등을 위해 전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 군사주의와 폭력과 분단현실
오늘날 폭력은 우리 사회 전체에 확산되고 있다. 그것은 육체적 폭력은 물론 언어적 폭력, 심리적 폭력, 정신적 폭력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가정 내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폭력,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비롯하여,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집단들 간의 관계에서도 폭력적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고용주와 노동자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폭력, 이를 조정하기 위해 개입하는 국가의 폭력 등은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경험되는 집단따돌림과 폭력은 우리 사회의 폭력의 만연을 말해 준다.
폭력의 궁극적인 모습은 군사주의 특히 전쟁에서 나타나고 있다. 남북이 화해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구시대의 군사주의가 한반도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휴전선 지역은 아직도 세계 최대의 군사밀집지역이며, 남북한의 군대와 무기의 양은 막대한 것이어서 한반도 전역이 중무장한 상태이며, 이것은 무력적 충돌의 위험을 말해 준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 사이의 무력 경쟁이다. 우리 교회는 평화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군사주의와 폭력을 종식시키고 남북의 화해와 통일, 우리사회와 한반도 주변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민족의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보내온 역사 50년을 청산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평화적 방식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교회는 민족적 자주성을 드높이면서 남북교류와 지원협력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지난 6.15일 남북정상이 합의한 공동성명의 내용들이 실현되고 현재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어 군사적 긴장이 완화하도록,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평화에 대한 전망을 뚜렷이 하고 나아가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추구해온 기독교 희년 정신에 입각하여 자주 평화 공존의 기본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새로운 과제들을 실천을 해야 한다. 북의 식량위기 해결을 노력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
남한교회의 교파 중심적인 교회재건사업을 버리고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완수를 위하여 한 단계 높은 대북 선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내면화한 분단구조를 청산하고 북한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인정하는 열린 분위기 형성을 위한 교육에도 우리 교회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라. 환경파괴와 생명조작
오늘날의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은 생산력과 이윤 증대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지구적 자본주의와 안일한 인간중심주의의 결과이다. 좁은 땅에서의 자본주의적 집약적 농축산물의 생산은 땅의 생명력을 죽이고, 전염병을 쉽게 발생시킬 뿐 아니라, 국토와 공기, 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공장에서 쏟아지는 공해물질과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좁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생태계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에 비해서 인간의 환경파괴가 훨씬 빠르게 그리고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서 우리 세대뿐 아니라, 오는 세대들에게 죽음의 생태환경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 우리의 삶과 소비 양식이 바뀌고, 산업 양식이 바뀌지 아니하면 이러한 추세를 막을 수 없다. 그 비극적 결과가 분명히 내다보이고 있는데도 현실에 무감각하다는 데 문제가 더 심각하다.
생명에 대한 위협은 비단 환경파괴에서만 오지 않는다. 생명 조작에 의한 위협은 우리 후손들의 생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거대사업"과 "거대과학"의 협동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는 생명공학은 그 연구동기와 목표가 경제적 동기, 이윤 추구라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최근 유전자 지도의 완성(게놈 프로젝트)과 이를 추동해 온 생명공학은 종을 뛰어넘는 생명 변형과 생명의 복제를 가능하게 하였다. 생명공학의 문제는 참으로 심각하다. 유전자 차별에 의한 인간과 인종의 차별을 조장하는 우생학이 은밀히 부활할 수 있다. 또, 유전자 배합 기술을 통하여 새로운 인류와 피조물들을 창조할 수도 있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창세기를 쓰는 것과 같은 사건이다. 난치병을 고치는 기술이 발전하여 예전에는 기적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일이 일상적으로 가능해 지면서, 생명공학은 또 다른 현대의 우상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생태환경과 창조질서 보전과 생명의 경외심 회복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라고 한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신 30:19).

한국교회의 과제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살리고 죽음의 세력을 몰아내는 일을 성실히 감당해 내기 위해서 먼저 한국교회 내부에 있는 문제점들을 반성하고 갱신해야 한다.
1) 교회는 권위주의를 벗어버리고 민주적인 질서로 스스로를 갱신해야 한다. 담임 목사 세습이 여러 교회에서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가 얼마나 목사를 정점으로 하는 권위적이고, 반민주적인 관행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2) 교회 삶에서 여성의 참여를 높이고 여성의 지도력을 실질적 인정해야 한다. 여성 안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실질적인 평등과 기회가 보장해야 한다. 여성의 지도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교육과 지원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3) 교회 예산집행시 투명성을 지녀야 한다. 소수 지도력에 의한 자의적 예산 운영관행에서 탈피하여 민주적 논의를 거쳐 적절하게 교회재정을 사용해야 한다. 교회 예산의 30 %이상을 사회를 위해 사용해야 하며, 교회예산의 일정액을 교파를 초월하여 합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체계 있게 집행해야 한다.
4) 교회 안에서의 정책 결정과정이 민주적이 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예배와 주요의식에 평신도들의 참여를 보장하여야 한다.
5) 교회는 사회의 선한 세력과 힘을 합하여 국가를 감시하고 이윤추구를 위해 인간과 환경의 생명을 억압하거나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적이며 지구화한 맘몬 세력을 제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는 이제 개혁적 사회운동과 손을 잡고, 이를 지원하며, 인간과 자연 생명의 번성을 위한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교회는 시민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다국적자본과 재벌들의 횡포를 막고, 국가가 약자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과 생태계의 생명을 풍부하게 하는 일에 진력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개혁을 이끌어 가야 한다.

결 어

한국교회는 민족, 민중과 함께 한 소중한 유산을 지녔으면서도, 한편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 탐욕에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적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였다. 교회의 확장을 최고의 목표로 두고 외양적 영광을 추구하여 왔다. 동시에 한국교회는 영적, 도덕적 교만마저 보여왔다.
이제 새로운 세기를 맞아 한국교회는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거듭나야 한다. 한국교회는 성령의 갱신하는 능력을 믿고 오랜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파괴된 창조세계의 신음을 듣고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온 우주를 품는 생명사랑으로 동참해야 한다. "때가 찼다"는 예수의 말씀대로 맘몬과 죽음의 세력 앞에서 하나님과 생명의 길을 선택하여야 할 때가 왔다.

200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