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사전 번역본(한글)
입력 : 2003-03-07 07:01:11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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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예배
예배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시작된 이래 계속해서 중요한 의제가 되어 왔다. 하지만 분열된 교회들 사이에서 예전 운동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이전까지는, 전면에 떠올랐던 주제가 아니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예전 운동은 거의 나란히 발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회의는 그것들을 각기 "교회를 통한 성령의 운동"과 "성령의 은혜의 역사"로서 인식하였다.
예배의 방식. 1927년 로잔에서 열린 제1차 신앙과 직제 세계 대회의 보고서에 나타난 예배에 대한 여러 언급들은 다소 우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1937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제2차 신앙과 직제 세계 대회의 보고서는, 다양한 교회 예배의 특징을 유형별로 연구하여 제시하였다. 예배에 관한 한 신학위원회가, 분열된 교회들을 위해 예배의 상호 관련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위원회는 1951년에야 비로소 간추린 논문과 함께 그 보고서 <예배의 방식들 Ways of Worship>을 출판하였다. 이 자료는 1952는 룬드에서 열린 제3차 신앙과 직제세계 대회의 토의 기초로 제공되었다
이 신학위원회의 사업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예전 운동의 영향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종국에는 이 예전 갱신 운동이 일치의 구현을 위해 큰 역할을 하게 되지만, 초기WCC문서는 예배를 기존 교회 분열의 핵심적인 문제로 이해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회원교회들의 매우 다양한 예전 전통 때문일 것이다.
룬드에서의 예배에 대한 에큐메니칼 성찰은,예배 속에서 "불일치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분열감이 가장 첨예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대회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예배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문제라기보다는 불일치라는 교회의 가장 뚜렷한 죄를 보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그 위원회의 서술적이고 비교적인 접근에 비추어 볼 때 놀라운 것이 아니다. 예배가 처음으로 명백하게 에큐메니칼 토의 의제가 된 이래로, 여러 교회의 다양한 예배 유형에 관한 기본적 개요가 필요했다. 따라서 "예배의 방식들" 1장은 "예전의 요소들"을 진술 및 비교하였고, 제2장은 "말씀과 성례전의 내적 의미"를 좀더 신학적으로 다루었다. 이 두 장은 각각의 교회가 지니고있는 예배의 핵심적인 특징을 요약하였다. 공통 요소를 찾으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 교회들의 각기 다른 예배 유형을 묘사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제3장은 마리아론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예전과 헌신"의 문제를 다루었다. (1950년 성모 승천 교리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표는 이 의제에 영향을 끼쳤다.)
이 보고서는 신학적으로나 에큐메니칼적으로, 여러 다른 성과를 분석하였을 뿐 아니라, 성찬 중심의 예배와 말씀 중심의 예배에 대한 중요한 차이를 대비시키는 한편, 예전 운동의 결과를 집중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보고서는 특히 점차 강조되는 예배의 협동적 측면, 예배의 성례전적의 성격의 재발견, 예배의 초기 형태로의 복귀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기본적으로 서술적이고 비교적인 방향을 지닌 "예배의 방식들"의 모든 부분은 예배의 본질에 관한 에큐메니칼 토의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룬드에서는 위원회의 작업이 "신앙과 직제와 마찬가지로, 예배가 교회의 존재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점을 명백하게 인정하였다.
1952년의 룬드 대회는 예배의 의미와 실천에 관한 기존의 일치점과 미 해결된 문제를 공식화한 첫 시도였다. 삼위일체론의 근거(참조. 삼위일체)와 성령론의 배경(참조. 성령)에 기초한 예배의 이해로부터 합의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곧 삼위일체이신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성령으로 모든 참된 예배에 영감을 주시며, 그를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의 예배가 드려지는 하나님을 경배한다." 이렇게 합의한 예배 이해는 인간론적인 문제(예배는 전 인격이 참여한다), 예전적인 문제("예배의 방식들"을 통해서 인지된 공통된 요소들을 함께 이끌어 법),성례전적 문제(말씀과 성례전의 이해), 교회론적 문제(예배는 항상 성도의 교제 안에서 이루어진다)와의 관계가 뒤따른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주제는 예배에 대한 에큐메니칼 문서에서 계속적으로 강조될 것들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예배를 고찰함에 있어, 우리는 예배의 자리가 세상을 향한 교회의 선교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있다. " 미 해결된 문제는 비교적 특수한 문제이다(예를 들면, 말씀과 성례전의 정확한 관계, 성인과 죽은 자가 예배에서 차지하는 위상문제).
교회에 대한 룬드 회의의 권고는, 일치가 다양한 예배의 유형에 대한 모든 연구의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회원 교회들이 그 동안 그것을 진지하게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몇 가지의 권고가 이후 문서에 다시 등장한다 예를 들면, 에큐메니칼 상황에서 신학 대학 커리큘럼에 예배학의 포함 여부는, 룬드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적절한 것이다.
신학적 접근 : 몬트리올과 웁살라. 룬드와 몬트리을 대회 사이(1964)에 이 예배위원회는유럽, 동아시아, 북아메리카의 세 대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자는 접근법이 상당히 달랐다. 유럽 대륙에서는 비교 연구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성서 안에 나타난 예배 신학에 중점을 두었다("창조와 예배" "구속과 예배", "새 창조와 예배"). 이러한 출발점은 결국 예배의 본질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하게 한다: "하나님의 강력한 구속 행위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예배의 살아 있는 중심을 형성한다." 성서적 접근 또한, 신약의 다양한 예배 형식의 주목하지만(예를 들면 성례전, 말씀 선포, 기도),서로 대립되는 상반된 유형으로 분류되거나 평가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다양성은 오늘날 존재하는 예배의 여러 유형들 사이에서 일치의 가능성을 암시할 수 있다.
동아시아 대륙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행위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예배, 그리고 예배의 토착화에 집중한다. 아시아 보고서가 예배신학 위원회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특히 예배에 대한 에큐메니칼 성찰에서 아시아의 관점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정당한 것인지는, 웁살라 총회(1968)에서 곧 명백해진다
북아메리카 대륙은 두 가지 강조점을 가진다 : 성서의 예배 모형과 현대 북아메리카 교회의 예배 모형이다. 이 지역의 결론은 유럽 지역의 결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즉 예배의 문제에 대해 서술적이고 비교적인 단순한 접근은 교회의 일치를 충분히 증진시키지 못하며, 예전 문제는 좀더 넓은 성서적이고 조직적인 배경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4차 신앙과 직제 세계 대회(몬트리올, 1963)는 예배 신학 위원회의 작업에 대한 반응이었다. <예배와 그리스도 교회의 하나됨 Worship and the Oneness of Christ's Church>씨라는 신앙과 직제 보고서는, 예배의 다양한 유형의 설명 및 비교로부터 예배 안에서 예배를 통한 일치에 대한 확고한 헌신으로 강조점을 바꾸었다. 이것은 예배 자체의 위치에 대한 평가에서 하나의 변화였다. 룬드 대회는 예배가 신앙과 직제 못지 않게 교회 생활에서 본질적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몬트리을 대회는 "예배를 교회 생활의 중심이요 결정적인 행위"라고 보았을 뿐 아니라, 에큐메니칼 대화가 직면한 주요 사업 중의 하나로서 예배에 대한연구를 강조하였다. 또한 몇 가지 근본적인 합의점이 열거되었는데, 룬드에서처럼 삼위일체론적 관점이 예배의 본질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었다: "그리스도교 예배는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새로운 삶을 지속적으로 발견케 하시는, 성자에 의하여 구원받은 인간이 성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다." 합의의 다음 측면은 룬드에서처럼 인간론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론적인 관점이다. 즉 "예배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교회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 이 진술은 명백하게 예배의 근본적이고 교회론적인 적절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교회 존재의 기본적 행위로서 여기서 부여된 예배의 중요성은, 예배에 대한 어떠한 진술에서도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에큐메니칼 토론에서도, 이러한 진술을 진지하게 충분히 받아들여 왔는지를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주 강조되는 예배의 또 다른 측면은, 공예배와 개인적 헌신의 상호 의존성, 예배와 창조 및 새 창조의 연결점, 세례와 성찬의 그리스도 중심적 근거, 예배에 대한 종말론적 관점이다(참조. 종말론). 특히 이 보고서의 여러 부분은 현대 세계 속에서 예배와 선교, 토착화와 그리스도교 예배에 강조점을 두었다. 여기서 후자는 예배에 대한 후속적인 에큐메니칼 논쟁의 중심적 관심을 예시해 준다. 또한 그 강조점은 교회의 다양한 예배 유형을 검토하고 예배의 근본적인 본질과 일치를 탐색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핵심어인 "진정성"(authenticity)과 함께 현대 세계에 나타난 예배의 위기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몬트리올 대회는 에큐메니칼 대화에서 새롭게 발견된 예배의 중요성과 "신학과 예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실천을 넘어 명확한 단계로서 그 대화의 모든 신학적인 작업이 그리스도교 예배에 대한 요구와 문제에 신선한 민감성으로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활력 있는 관심은 계속 지속되지 않았다. 모든 토의는, 대체로 신학적 작업이 예배의 중요성에 대한 통찰력을 상실해 감에 따라, 예배의 구체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었던 것이다.
최근 예배의 위기. 몬트리올 대회 이후, 예배는 제4차 WCC총회(웁살라 1968)에서 여섯 개 토의 분과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예배에 대한 웁살라 대회의 보고서에서, 작성자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를 읽는 가운데 사람들이 실망이나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특히 몬트리올 대회 이후에도 "상당린 애매함"에 반대하여, 예배를 중심적으로 다룬 WCC총회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시도는, 이미 성취된 것의 맥락에서 볼 때 확신을 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실망에는 몇몇 이유가 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는 웁살라 총회의 주제 때문에, 예배 분과의 모임은 현재 교회의 신학적인 위기, 예를 들면 세속화 논쟁과 연결된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그 예배 분과의 본래 토의 주제는 "세속 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였다. 이 제목은 우선 세속화가 아직 교회와 예배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지 않은 국가의 교회에 의해 비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예배가 세속화로 인하여 왜곡될 위험에 직면한 정교회에 의해서도 역시 비판을 받았다. 결국, 제한적이나마 합의된 사항이 "출발점"으로서 출판되었다. 그것은 예배의 삼위일체론적이고 교회론적인 본질에 관한 이전의 합의된 진술을 거의 품고 있지 못한다. 대신에 그것은 예배의 위기와 세속화의 부정적이고 긍적적인 가능성 모두를 강조한다. 예배의 정당화는 거부되었디 "예배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교회에 대한 권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배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제목 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전에 언급했던 것 이상을 넘지는 못했다. 여러 실망스러운 성격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한 가지 점은 지적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세속 시대에서 진정한 예배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점 배후에는 예전과 삶 사이의 근본적인 연결에 대한 중요한 확신이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예배에 대한 대부분의 후속 문서에서 강조되었다.
1969년 제네바의 신앙과 직제 대회가 예배의 주제를 다시 채택하였다 그 관점의 대부분은 이미 1968년 총회 때에 시작된 것이었다. 제목이 "세속 시대의 예배"였지만, 이것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보고서는 세속화에 대한 언급을 빼 버렸다. 보고서는 내용상 그 강조점이 "오늘"이라는 말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예배"(Worship Today)라고 명명되었다. 대회는 현재의 상황 분석으로 시작하는 데 일치했고, 그 다음으로는 진정한 예배가 그러한 분석 속에서도 여전히 가능한지를 물었다. 대답은 분석만큼이나 다양했다. 예전 개혁에 직면하여 제기된 여러 의견은, 형식만 바뀐 예배로는 예배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예배에 대한 웁살라 보고서와 "오늘의 예배"는, 예배에 대한 초기 에큐메니칼 문서들이 지속적으로 견지해온 노선과는 달리 중요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두 보고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지속적인 관심과 관련하여, 이전의 예배에 대한 에큐메니칼 사고로부터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이어받았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에큐메니칼 수렴. 1960년대 말의 이러한 보고서들 이후, 에큐메니칼 운동은 다시금 예배에 대한 노선을 결정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에 부딪혔다. 그후, 예배는 하나의 주제로서 주요한 WCC 포럼의 의제가 되지 못했다. 그 주제가 전적으로 잊혀지지는 않았지만, 예배의 본질로부터 세례와 성찬의 영역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수렴 문제로 관심이 옮겨갔다.
예전 개혁: 1960년대 말 이래로 예배에 대한 에큐메니칼 성찰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배유형을 에큐메니칼적으로 수렴시키는 것에 집중되어 왔다. 이것은 대부분 분열된 교회 사이에서 지속적인 예전 개혁의 결과로서 이루어졌다. 가장 현저한 예전 개혁 중 하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경우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예전 갱신이 에큐메니칼 작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에큐메니칼 분위기가 묻어 났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예전 개혁 이후, 로마 가톨릭 예배의 특징으로 인식된 통일성, 예배 규정주의(rubricism), 그리고 중앙 집중화는, 다수의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예배 유형으로부터 가톨릭 교회 예배를 구별짓게 했다. 예전 언어를 라틴어에서 모국어로 바꾼 사실, 예전 의식의 좀더 명료한 구조, 성서와 설교(말씀), 예전의 문화화에 대한 개방(참조. 문화)등, 이 모든 거룩한 예전에 대한 규정과 후속 예전 개혁의 특징은, 분열된 교회의 예배 유형과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게되었다. 개신교 예전 개혁 역시 이러한 에큐메니칼 수렴을 지지해 온 공통 기원으로 환원되었다. 예전 규정에 대한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포부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일치에 기여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양육하는 것이. 가장 거룩한 공의회의 목적이다."
교파간 대화: 1972년 세계 교파 공동체들(confessional families)의 쌍방 대화에 대한 조사 연구를 기초로 <교파간 대화 Confessions in Kialogue>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여기에서는 "예배와 쌍방 대화"를 다루는 장이 있다. 그것은 신학적인 성찰이나 합의된 질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대화 주제와 그 기반으로서 예배를 관찰한 한 시리즈였다. 매우 흥미있는 것은 쌍방 대화를 지속적인 감사 행위로 언급한 점이다.
신학적으로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이론의 여지없이 슈링크(Edmund Schlink)의 공헌이다. 그는 에큐메니칼 대화에서 예배의 방법론적 중요성을 명확히 하려고 했다. 다양한 교회의 교회법에 따른 교리적 진술은 단순한 비교를 통해서는 합의에 이를 수 없다고 그는 보았다. 그보다는 그런 진술의 진정한 원천이자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교회 및 예배의 기본적인 기능 안에서 걸러져야 한다. 슈링크의 주장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교회들 사이에서 여러 형태의 합의나 그를 위한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배와 에큐메니칼 대화에 가장 중요한 성찰의 상황 가운데서, 다음의 말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행동으로 옮겨지기가 참으로 어렵지만,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또한 결과적으로 일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예배의 중심성은 양도랄 수 없는 에큐메니칼 확신이다." "교파간 대화"는 양방향에서 이러한 진술을 확고히 한다.
회중의 예배: 1978년 WCC 서브유니트인 갱신과 회중의 삶은 "회중의 예배"라는 제하의 워크숍을 크레테(Crete)에서 개최하였다. 그 보고서는 예배에 대한 WCC 초기 문서의 경향과, 세속화 논쟁과 함께 드러난 문제점 및 도전을 한데 묶으려 했다. 비록 예배의 삼위일체론적 관심이 긍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성령론적인 측면, 그리고 교회론적이고 종말론적인 측면은 명확하게 진술되고 있다. 또 예전과 생활 사이의 연결을 강조하면서, 예배를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해했다: "새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성령의 능력 가운데 만나는 곳은 어디든 참 예배 장소이다." 더 나아가 그 보고서는 신실함과 창조성의 문제, 예배와 문화의 문제(상징에 대해 긍정적이고, 또 인류학적인 정당성을 갖고 강조한다), 예배와 사회 참여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 그 보고서가 오늘날 세상이 예배에 제기하는 도전과 예배가 세상에게 제기하는 "급진적인 도전" -세속화 논쟁에 일방적인 초점을 맞추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을 공히 취급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리마 예식서: 성찬 예전이 1982년 리마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 위원회 본회의를 위해 준비되었는데, 그 후 그에 대한 기대치 않은 열광적인 반응은 교리적인 합의와 예전 표현을 병행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였다. 특히 하나의 에큐메니칼 예전을 위한 요구는, 비록 리마 예전이 결국 이러한 요구에 잘 부응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할지라도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된다. 어쨌든 리마의 성찬 본문을 해명해야 하는 임무가 현재 등장하는 편리적 합의에 예전 표현을 부여하기 위하여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참조. 기도의 법, 믿음의 법).
리마 예전의 거행은 WCC 제 6차 밴쿠버 총회가 이룬 절정의 하나였다 벤쿠버 총회는 "모든 총회 중에서 가장 예전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여기에서는 또 예배에 대한 성찰이 참여자에 의한 예배의 사실적 경험으로 취급되었다. 특히 1957년 나이로비 제5차 이래로, 예배에 대한 사고 방식과 행위에서 언급할 만한 특징은, 예전에서 토착적인 자료를 좀더 이해하려는 시도와 또한 그 사용이었다(예를 들어 찬송, 노래 가사, 예복, 몸짓, 예술 등). 여기에서는 각 교파 전통의 풍부한 예전과 아울러 기타 다양한 문화적·언어적 공동체를 더 많이 알게 된다. 예전의 토착화 문제가 몬트리올 총회 이래로 예배에 대한 에큐메니칼 성찰의 한 부분으로 축소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문제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긴급함이 요구되고있다.
결론. WCC 웁살라 총회(1968)의 의제로서 예배의 주제를 제의하기로 한 몬트리을 대회(1963)와 그 후속 결정은, 예배의 본질에 대한 최고의 에큐메니칼 관심이었다. 그 이후, 예배의 위기는 예배가 누렸던 특권보다 더 위협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1970-80년대에 예배의 본질에 내한 토의는 <세례,성찬과 교역 Baptism, Eucharist and Minstry>의 포괄적인 사역에 의해 가려지고 말았다.
그러나 예배의 주제는 거의 모든 교회가 점증적으로 예전 생활을 중요시함에 따라 하나의 에큐메니칼 의제로서 다시 거듭 언급되고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예배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토의해야 한다. 다행히 에큐메니칼 운동은, 시작부터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몇몇 기본적이고 중요한 토대가 이미 WCC자료에서 나타났고, 또 어느 정도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것이 우리가 형성할 수 있고 형성해야만 하는 기반이다. 추구할 만한 가치 있는 목적은 '교파간 대화'의 중 한 사람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영광송은 일치를 위한 모든 노력의 시작과 끝이다. 아울러 그것은 일치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수반된다."
참조. 기도, 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기도의법, 믿음의 법;flak 예식;성례전;영성, 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 예전 ;예전개혁; 공동예배 문서;예전운동; 찬송
TERESA BE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