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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공화국 (Republic of Ireland)
통계 인구 : 390만 명 정부형태 : 다당제 공화정 언어 : 아일랜드어, 영어 문맹퇴치율 : 100% 종교 : 기독교 97%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이슬람교와 기타 1%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아일랜드 교회(Church of Ireland). 아일랜드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of Ireland) 역사
아일랜드 공화국은 영국 서쪽 대서양에 위치한 아일랜드 섬의 8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섬의 북부지역은 영국에 속해 있다. 아일랜드 말(게일어/Gaelic)로 에이레[Eire]라고 하는 아일랜드 공화국은 최근 들어 상당한 안정기를 누리고 있다. 이민 시대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오고 있다.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라는 호칭을 이 나라에 부여해도 충분할 만큼 경제적인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가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이농과 도시 집중화가 계속되고 있으며, 수도 더블린(Dublin)의 비대화는 심각한 상황이다. 농촌 문화는 특별히 아일랜드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공동체들의 생존에 특별히 중요하다.; 아일랜드어는 사용 인구의 감소라는 위협에 계속 직면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BC 6백 년에서 150년 사이에 도착한 켈트족의 정착으로 이루어졌고, 기독교는 AD 2백년 경에 전해졌다. 그 후 5백 년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시기에 따라 부침은 있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이 굳건하게 뿌리를 내렸다. 켈트족 선교사들과 로마의 성인들이 초기 아일랜드 그리스도교 선교의 헌신적인 공헌자들이었는데, 이들의 헌신 때문에 기독교 신앙이 계속 중요하게 여겨졌다.
12세기부터 잉글랜드의 침략이 시작되었고, 그 후 앵글로족(Anglo)과 아일랜드족(Irish) 간에 끈질긴 저항과 잔인한 진압이 반복되는 치열한 전투가 7백 년 이상 계속되었다. 1916년 “부활절 월요일의 봉기”(Easter Monday Rebellion)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 후 몇 년간 지속된 치열한 게릴라전의 도화선이 되었고, 마침내 1921년 남부의 26개 주(州)가 UK(영국)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러나 북부(얼스터/Ulster)의 여섯 개 주는 대영제국의 일원으로 남았다. 1948년, 아일랜드는 영국연방에서 탈퇴하였고, 1973년 유럽연합에 참여하였다. 아일랜드 정부와 무장혁명가들(the Irish Republic Army/ IRA)은 얼스터와 아일랜드의 통합을 위하여 치열하게 싸웠다. 19998년의 평화협정(성 금요일 조약[Good Friday Agreement]으로 알려졌다)이 체결되기 전까지, 가톨릭, 개신교 의용군과 영국군 양 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얼스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영국과 얼스터, 아일랜드 공화국에 의해서 평화 협정이 서서히 실현되고 있는데, 어려움도 뒤따랐다.
종교개혁 기간에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개신교인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아일랜드인들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 남았다. 오늘 날에는“영국- 아일랜드에서 교회들이 함께”(Churches Together in Britain and Ireland)라는 조직과 이 안에 있는 선교위원회, 인종 정의위원회, 종교간대화위원회, 국제학생위원회를 통하여 교회들 간의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아일랜드의 역사 전반에 걸쳐서 국가적 정체성 형성과 도덕적, 정치적 성향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 위상과 교세가 감소하고 있다. 사제들을 배출하는 신학교육 과정이나 교인들을 위한 훈련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의 숫자가 아주 적어지고 있으며,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숫자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고,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많이 추락하였다. 아일랜드에서 소수라고 할 수 있는 작은 개신교회들은 그러한 경향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아일랜드 개신교회는 아일랜드에 밀어닥치고 있는 소비주의가 사람들의 영혼을 망치지 않게 하려는 일에 가톨릭 교회와 함께하고 있다.
교회 구조 때문에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 아일랜드가 구별되지는 않는다.;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전체 아일랜드를 기초로 해서 조직되어 있다. 이 점은 에큐메니칼 영역에서도 동일하다. 아일랜드 교회협의회(Irish Council of Churches)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 공동체를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 사이에 대화를 나누는 덜 공식적인 수준의 아일랜드 교회간 대화 모임이 있다.
영국 (United Kingdom)
(대영제국과 북 아일랜드/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통계
인구 : 6,100만 명
정부형태 : 입헌군주제 언어 : 영어; 또한 웨일즈어(Welsh), 게일어(Gaelic)와 기타 문맹퇴치율 : 94% 종교 : 기독교인 83% (대부분 영국 성공회, 로마 가톨릭, 자유교회), 이슬람교 2%, 유대교 1%, 시크교, 불교, 기타 1%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영국 침례교 연합(Baptist Union of Great Britain),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 영국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영국지역 및 EFBU 모라비안 교회(Moravian Church British Province and EFBU), 연합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 역사
대영제국과 아일랜드는 과거 여러 세기 동안 한 나라로 있었다. 1284년 영국과 웨일즈가 통합하였고, 1707년 스코틀랜드가 합류하였고, 1801년 영국과 아일랜드가 법적인 통합을 이루었다. 오늘날 대영제국을 구성하는 세 나라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정치적인 결합은 각각 다른 수준의 자치 정부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아일랜드는 영국이 직접적인 통치력으로 지배하는 지역으로 영국의 보호 아래 의회활동이 정지되기도 했던 반면에, 맨 섬(Isle of Man * 역주: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작은 섬)이나 채널 제도(Channel Islands * 영국과 프랑스 노르망디 사이의 여러 섬으로 된 지역)는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영국은 19세기 산업과 해양시대를 주도했는데,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 종교와 문학,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전성기에 대영제국은 전 세계의 사분의 일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십세기 전반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식민지들에 불어 닥친 독립의 물결로 인하여 영국의 힘은 급격하게 쇠락하였다. 현재 영국은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다.
잉글랜드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는데, 계층 간의 분열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반 세기동안 카리브해와 아프리카, 인도 등 예전의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들어온 많은 이민자들은 그들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들어와 영국 내 여러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예를 들어, 런던에 사는 사람 중 세 명에 한 명은 소수인종이며, 런던 시내의 교인들 중 둘 중에 한 명은 흑인이다. 인종 정의는 전체적으로 교회와 영국 사회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종교적 상황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류 교단들은 급격한 교세 감소에 직면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가장 큰 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자유교회(Free Churches)가 상당한 수준으로 있다. 26명의 성공회 주교들이 영국 의회 상원에서 오른쪽 자리에 앉는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새로운 교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개는 은사 갱신 운동 영향 아래 있고,- 주로 오순절 흑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많은 교회들과 함께- 이 교회들이 성장과 활력을 대변하고 있다.
영국의 에큐메니칼 상황은‘영국에서 교회들이 함께’(Churches Together in England)의 지도력 아래 ‘교회들이 함께’ 그룹들이 조직되어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도 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교단 배경을 가진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역에서 함께 협력하고 예배 드리면서 진행하고 있는 수백 개의 지역 에큐메니칼 사업들이 있다.
북 아일랜드 (Northern Ireland)
역사
북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섬의 북동부지역으로, 아일랜드 공화국의 북 쪽이다. 1923년 이래 북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공화국과 결합해서 하나의 아일랜드 공화국을 세우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영국의 한 부분으로 계속 남아있기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복잡한 투쟁이 계속 되어왔다. 인구의 반을 좀 넘는 개신교인들은 대부분은 영국 시민으로 남기를 원하고, 아일랜드 공화국과 통일을 반대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인들이 인구의 4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통일을 원하였다. 준 군사조직들, 특별히 IRA와 개신교 얼스터 방위군(Protestant Ulster Defence Force)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폭력과 테러에 의지했다. 1969년에서 1999년 사이에 3,200명 이상이 이 갈등 과정에서 사망했고, 수천 명이 부상을 당하거나 도피 생활을 했다. 1970년대에 평화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1994년 IRA가 정전을 선언할 때까지, 난항을 겪었다.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1998년 성 금요일에 평화협정이 조인되었고, 북부 아일랜드는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교회가 화해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개신교회와 가톨릭 교회 양자가 지역 조직들을 대화로 이끌어내는데 주도함으로써 평화를 이루는데 기여했다.
스코틀랜드 (Scotland)
통계
인구 : 500만 명
정부형태 : 런던의 영국 의회와 1999년부터는 에딘버러(Edinburgh)의 스코틀랜드 의회에 동시에 통치를 받는다. 언어 : 영어, 게일어(Gaelic), 이민자 공동체의 언어들 종교 : 대부분 기독교인,그 외 소수의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불교인들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 스코틀랜드 성공회(Scottish Episcopal Church), 스코틀랜드 연합자유교회(United Free Church of Scotland) 역사
스코틀랜드는 1999년 독립적인 의회를 구성함으로 국가 정체성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다른 사회단체들과 함께, 독자적인 의회와 시민 사회의 역동성의 불변의 표현인 시민포럼(Scottish Civic Forum) 설립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가 부흥의 감격은 여러 예술들을 통하여 신선한 에너지들을 분출하는 것으로 축하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기구들과 폭넓은 문화들로 제기된 도전은 빠르게 등장했다. 내부 지향적인 사회가 보다 넓은 세계에 자신을 개방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집요한 종교적 분파주의와 편협함(특별히 서부지역의 산업중심지에서), 공격으로 드러난 다인종 사회적 현실에 대한 저항, 그리고 피난처를 구하는 사람들을 어정쩡하게 맞이하는 것이 교회의 사회적 증언의 배경이 되었으며, 이것은 소규모이고, 서서히 전문적인 경제에 대한 세계화의 여파로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도전에 대한 교회의 즉각적인 대응을 2001년에 열린 제 1회 스코틀랜드 에큐메니칼 총회(Scottish Ecumenical Assembly)를 통하여 시작하였고, 이 일련의 과정을 “새로운 땅의 개척”(Breaking New Ground)이라고 불렀다. 스코틀랜드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스코틀랜드에서 교회들이 함께 햄동’(Action of Churches Together in Scotland/ ACTS)이 주도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두 개의 교회, 스코틀랜드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 그리고 다른 여섯 개의 작은 교단들이 참여하고 있다. ACTS는 영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회들이 함께’(the Churches Together) 모델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 모델은 협의체 구조처럼 자신들을 위한 것에 강조하지 않고 서로 함께 행동하는 것에 강조를 하고 있다.
웨일즈 (Wales)
통계
인구 : 300만 명
정부형태 : 카디프(Cardiff)의 웨일즈 의회와 런던의 영국 의회가 통치 기능을 공유하고 있다. 언어 : 웨일즈어(Welsh), 영어, 이미자 공동체의 언어들 종교 : 대부분 기독교인임, 여기에 소수의 이슬람교인, 힌두교인, 불교인들, 유대인들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웨일즈 교회(Church of Wales), 웨일즈 장로교회(Prebyterian Church of Wales), 웨일즈 독립교회 연합(Union of Welsh Independents) 역사
웨일즈는 자신의 왕들과 왕자들, 성인들의 역사를 가진 하나의 국가이다. 13세기에 웨일즈는 독립권과 기관들을 빼앗겼고 (언어는 제외), 당시 강대국이었던 “잉글랜드”국가에 복속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영국의 자치권 이양에 따라 자치권을 얻었고, 현재는 국가 의회를 가지고 있다. 현재 웨일즈는 하나의 나라에 두 개의 공용어(웨일즈어와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거리나 교회,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이 두 언어를 함께 들을 수 있다. 많은 교회들은 웨일즈어로만 예배를 드리고 있고, 그러나 두 언어로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다.
웨일즈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삶과 선교(Life and Mission)와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의 두 부분에서 모두 적극적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경우와 같이 1990년에 이전 웨일즈 교회협의회를“싸이툰”(CYTUN) (웨일즈어로 “함께”를 뜻한다)으로 발전시켰다. 성공회와 일군의 자유교회들은 연합 계약 안에서 이십 오년 이상 함께 사역하고 있다. 또한 다른 자유교회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하나의 연합교회를 설립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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