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노란봉투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노란봉투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노동자의 재산 가압류는 폭력 반 노동정책 입장을 드러낸 정부 노란봉투법은 긴 여정의 출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언론위원회(위원장: 김상균)는 2022년 9월의 시선으로 <노란봉투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노동자의 재산과 임금에 대한 가압류는 기업들이 구사대 같은 직접적인 폭력수단을 쓰기 어렵게 된 이후 노동운동을 효과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으로 자주 활용됐습니다. 금전적인 압박에 못 이겨 노동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드물지 않게 일어났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거액을 앞세워 겁주듯 소송하는 행위 자체가 헌법이 보장한 파업권을 무력화시키는 또 다른 폭력이라는 점에 공감하며, 지금 시대에 필요한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접착제 역할로서의 노란봉투법에 주목하였습니다.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대우해양조선의 파업과 함께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6월 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갔다. 노동조합의 요구 조건은 ‘임금 30% 인상’, ‘전임자 배정 등 노동조합 활동 인정’, ‘단체협상’ 등이었다. 하청노동자가 다시 쏘아올린 작은 공 협상에 진전이 없자 노조는 22일 1독에서 생산하던 원유 운반선을 점거했고, 24일에는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높이 1m의 철 구조물 안에 스스로 가둔 채 농성에 들어갔다. 7월 1일 경찰은 노조 집행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6일에는 박두선 사장이 비상경영을 선포했고, 7일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다. 14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선박 점거는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고, 15일에는 창원지법 통영지원이 점거 중인 조합원 퇴거 명령을 내렸다. 18일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5개 장관이 함께 언론 앞에 나서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담화문을 발표했고, 급기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9일 헬기를 타고 파업현장을 둘러본 뒤 20일 경찰 수뇌부 회의를 주재하며 “경찰 특공대 투입을 검토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경찰특공대의 임무는 테러진압과 폭발물 처리다. 일반 경찰력도 투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책임자가 노조를 테러 집단 대하듯 한 것이다. 다행히 파업은 물리적인 충돌까지 가지 않고 마무리 됐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지 51일째인 7월 22일 노사 협상은 타결됐다. 당초 노조가 요구한 임금 인상폭은 30%였지만 4.5% 인상하는 수준에서 마무리가 됐다. 노조가 요구한 30%는 조선업 전체가 불황에 빠졌던 2016년 당시 임금이 삭감된 만큼이었다. 조선업 경기는 회복됐지만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채로 협상이 끝났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사측은 곧이어 손해배상 청구 카드를 내밀었다.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때문에 입은 손해가 8,000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고, 그 금액의 약 5%인 470억 원을 하청노조 간부 다섯 명이 나눠 내게 해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노동자의 재산과 임금에 대한 가압류는 기업들이 구사대 같은 직접적인 폭력수단을 쓰기 어렵게 된 이후 노동운동을 효과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으로 자주 활용됐다. 외양은 합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용은 구사대 이상의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금전적인 압박에 못이겨 노동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지난 30여년간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청구액이 3,16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노조 손배소’ 방지 노란봉투법, 정기국회서 통과시켜야, 경향신문 사설/2022. 9. 15.). 노동자들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거액을 앞세워 겁주듯 소송하는 행위 자체가 헌법이 보장한 파업권을 무력화시키는 또 다른 폭력이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처럼 정부와 기업의 강공에 대해 이번 국회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이 다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9월 15일 정의당은 기존 발의안에 하청과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까지 포함시키는 보다 확대된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46명도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핵심 내용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8년 노란봉투법이란 이름은 2014년에 처음 등장했다. 쌍용자동차 파업 때 법원이 노조원들에게 회사에 입힌 손해 47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이때 곤경에 처한 노조원을 돕기 위해 한 시민이 <시사IN> 편집국에 4만 7000원이 담긴 노란봉투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이렇게 10만 명만 모이면 노조원들을 도울 수 있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시민들 사이에 ‘노란봉투 캠페인’이 일어났다. 시민 4만 7,547명이 모은 돈은 14억 6,874만원이 쌍용차 노조원 329 가구에 전달됐다. 이 캠페인이 입법부를 움직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은수미 의원이 2015년 4월 일명 ‘노란봉투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이 발의안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도 넘어서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다.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노란봉투법’이 2017년 1월 민주당 강병원 의원 등의 발의됐지만 역시 환노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지난 두 차례의 입법 시도와 비교해봤을 때 이번 21대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민주당은 7대 입법과제 중 하나로 노란봉투법을 선정했고, 패스트트랙에 태워 강행처리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정의당은 ‘제2의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가치를 부여하며 정기국회 통과 의지를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반노동 정부 국회 통과가 유력한 만큼 재계와 정부 여당의 반대도 노골화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노란봉투법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전달했다. 전경련은 의견서에 "노란봉투법은 노조에 면죄부를 주는 ‘노조방탄법’으로, 법 스스로 불법을 보호하는 꼴이 되고 헌법 제23조에 명시된 재산권도 명백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경총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불법쟁의까지 면책하는 것으로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재계는 이 법안의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에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생기는 간극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토론과 타협을 통해 좁히면 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해야 할 정부가 논쟁의 한복판에 당사자처럼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정부는 이미 재계의 입장을 확고하게 대변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부터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 때 노조를 일방적으로 압박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너무 쉽게 내놓았다. “국민이나 정부나 많이 기다리지 않았나?”라거나 “산업현장에서 노든 사든 불법이 방치되거나 용인돼선 안 된다”면서 공권력 투입을 넌지시 암시하는 메시지를 이른바 도어스테핑이라는 형식을 빌어 내놓았다. 파업기간에 있었던 관계장관들의 담화문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특공대 투입 검토 지시 건도 노동자를 향한 이 정부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윤정부의 반노동 정책은 이미 법안으로 존재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지난 8월 기재부가 고용노동부에 중대재해처벌법 및 시행령 완화 내용을 담은 개정방안을 제안했다. 기재부 개정방안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중 안전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을 벌금형으로 완화하거나 아예 삭제하고, 기업 내에 안전책임자를 따로 둘 수 있게 하며, 중대 산업재해를 징벌적 손해배상에서 제외하자는 내용 등이 담겼다. 그 와중에 SPC 그룹 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야간에 열 시간째 일하던 청년이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가 난 공장은 지난 5년 동안 산업안전보건 감독을 여섯 차례 받으며 여덟 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지만, 지난 7년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안전경영인증을 받지 못한 해가 없었다. 사망사고 1주일 전에도 같은 공장에서 끼임사고가 있었지만 회사는 의료지원 대신 사고 라인 노동자들을 불러 30분 동안 질책한 적이 있다. 사망사고 1주일 후에는 SPC 계열사인 샤니 성남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손이 끼어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잇따랐다. 윤대통령은 연이은 산업재해 사건에 대해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지만, 그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관과 정책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김문수를 임명한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재야에서 극우 세력과 보조를 맞추면서 “쌍용차 노조는 자살 특공대”, “민주노총은 김정은의 기쁨조”, “불법 파업에는 손해배상이 특효약” 같은 막말을 쏟아낸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노사정 조정 책임자로 내세웠다는 건 노동계와의 대화 단절은 물론 악마화도 서슴지 않겠다는 엄포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시작일 뿐 지금의 의석 구성이나 발의에 동의한 정당들의 의지만 보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은 어렵지 않게 통과할 것 같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벌써부터 ‘대통령 거부권’을 언급하고 있다. 이미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도 무력화시키려는 세력이니 노란봉투법의 미래도 밝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따라서 노란봉투법 입법은 최종 목표가 아닌 긴 여정의 출발점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 노동환경과 복지는 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의 실물 경제 또한 크게 요동치며 후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기득권 수호’에만 진심인 것 같다. 집권하자마자 내놓은 법인세 인하 등 부자감세안을 필두로 은밀하고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는 각종 공공부문의 민영화 시도들도 잇따르고 있다. 공공 자원은 빠르게 고갈될 것이고, 그만큼 사각지대는 넓어질 것이다. 사회 안정망이 헐거워졌을 때 약자부터 먼저 피해를 입는다. 현 정부가 지금의 기조를 고집한다면, 그 피해의 범위는 중간층까지 넓고 깊게 확대될 것이다. 이런 폭주를 막아 세우기 위한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노란봉투법은 단순한 일개 법안이 아니다. 이 법안은 지금 시대에 필요한 힘있는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이 손가락이라면 사회적 연대가 바로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인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 뜻있는 세력들을 최대한 많이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혹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그 연대는 지속·강화돼야 하고 이어질 새로운 싸움들에 대비해야 한다. 노란봉투법 통과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김태훈 소장입니다.
2022-10-25 10:21:45
- 「8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최옥란과 수원 세 모녀>
- 최옥란과 수원 세 모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언론위원회(위원장: 김상균)는 2022년 8월의 시선으로 <최옥란과 수원 세 모녀>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지난 22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를 우선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현 제도는 스스로 가난을 ‘떳떳하게’ 증명하지 않고는 사회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더욱이 찾아가는 행정도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난 22년간 수많은 빈민들은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는 보장받지 못한 채 쓰러져갔습니다. <8월의 시선>은 지금도 어딘가에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고통 받는 이웃이 있는 현실을 주목하면서, 이제라도 입법과 행정에서 찾아가는 복지를 만들어내기를 촉구합니다.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빈곤을 증명하거나, 궁핍을 배려하거나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한복음 15:15)” 현대 사회에서 가난한 이웃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의 불문율은 헌법을 통해 사회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국가는 책임지고 사회권을 보장해야 한다. 헌법은 시민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국가에 정당하게 요구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을 빈곤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은 정부에 맡겨져 있다. 대한민국에서 빈곤한 이웃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놓여있다. 하나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 소득을 증명하거나 사회적 신분을 비교할 필요는 없다. 빈곤에 몰려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의 친구라면, 그가 필요로 하는 만큼 나누면 되는 법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친구에게 궁핍한 이유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수요를 증명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이때부터는 친구가 아닌 주인과 종의 관계가 된다. 누군가에게 군림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헌법은 정부가 사회권 보장을 위해 ‘찾아가는 친구’가 될지, ‘궁핍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주인 노릇’을 할지는 온전히 정치인과 행정가에게 맡기고 있다. 2) 빈곤의 연대기, 보장받지 못한 ‘사회권’ 1998년2월25일, 외환위기로 졸지에 국가부도 상태에 놓인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으로 한국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취임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혹독한 사실상의 ‘총독정치’를 당하면서도 경제난을 헤쳐 나갔고, 2000년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실업과 채무, 빈곤으로부터 사람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도록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였다. 이제는 가난하더라도 시민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국가에 정당하게 요구할 권리를 보장받은 것이다. 그러나 2002년3월26일, 뇌성마비 여성 장애인 최옥란은 과산화수소 두 병과 수면제 20알을 복용하고 자신의 고통스런 운명을 정지시키며 비현실적인 기초생활수급액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허울뿐인 기초생활수급의 민낯을 고발한 것이다. 1970년대 전태일처럼 최옥란은 외롭고, 소외된 존재였지만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는 절규와 함께 본인을 희생하였다. 최옥란은 시작이었다. 행정은 변하지 않았다. 가난은 가난한 자 스스로 공개적으로 증명하여야 했다. 2003년2월25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의원이 취임하였다. 2004년 12월, 대구시 동구 불로동에 있는 한 단칸방 장롱 안에서 4살짜리 아이의 주검이 발견되었다. 영양실조로 인해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났고, 함께 발견된 여동생도 영양실조 상태였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5년여가 되었지만, ‘극빈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엄격한 소득·재산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통과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5년 정부는 긴급복지지원법을 제정하여 주 소득자의 사망 등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울 때 우선 생계비를 지원하도록 했고,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콜센터 129를 신설하였다. 129는 아동학대(1391)와 노인학대(1389), 푸드뱅크(1377), 위기가정(1688-1004), 노인치매(1588-0678) 상담 전화를 하나로 통합하여, 국민 보건과 복지에 관련된 모든 상담과 정보를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2006년에는 의료급여제도에서 부정수급을 막겠다는 의도로 본인부담금 제도를 도입했다. 인권변호사의 시대에도 헌법이 보장한 사회권은 정당한 권리로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다. 이때부터 기초생활수급자들은 ‘부정한 무임승차’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고 살아야 했다. 신자유주의적 공공행정 관리의 서막이었다. 2008년2월25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평사원에서 대기업 경영인으로 성공했던 이명박 전 현대건설 회장이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국민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줄 알았다. 그러나 2010년 정부는 효율적인 국가경영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근로능력평가제도를 도입하였다. ‘일하지 않는 자’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는 대원칙이 제시되었다. 또 정부는 통합전산망을 구축하면서, 수급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일할 수 있거나, 일할 수 있는 누군가 곁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기초생활 수급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대적인 기초생활 수금 탈락통보가 이어졌다. 2010년10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가난한 아버지가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의 수급권을 지켜주기 위해 자살했다. 그 해 겨울.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서류상 이혼 처리를 하고 1인 수급비로 함께 생활하던 노부부가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2011년4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받지 못하던 노인이 폐결핵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갔지만, 치료도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2011년7월, 남해 노인요양시설에서 등등..... 그렇게 CEO의 잔혹시대가 끝났다. 2013년2월25일,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13년5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조차 받지 못하던 한 주민이 쪽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2013년7월엔 장애등급 조정으로 수급탈락을 우려한 의정부의 한 주민이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목숨을 끊었고..... 2014년2월,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사망했다. 단독주택 반지하에 세들어 살던 이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집세와 공과금 70만원, 그리고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그러나 정부는 대책보다는 2014년 부정수급 콜센터를 먼저 설치하였다. 여전히 ‘부정수급자’ 때문에 복지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몰아갔다. 정부는 100억 이상 부정수급을 적발했다고 발표했지만, 대부분 수급자가 아닌 제공기관의 부정행위였다. 2015년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등 복지3법이 ‘송파 세 모녀 법’이라고 이름으로 제·개정되었다. 통합급여가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되었고, 단전, 단수, 보험료 체납 등 18종의 위기가구 관련 정보를 입수하여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입수 정보는 9월부터는 39종으로 확대했다. 2017년에는 기초생활 보장 적정급여 TF를 만들어서 또다시 ‘맞춤형 부정수급자’ 사냥에 나섰다. 여전히 기초생활보장은 2.4% 수준일 때였다. 그사이 가난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계속 늘었다. 재난의 시대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2017년5월10일, 촛불혁명을 통해 문재인 변호사가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18년 정부는 복지위기가구발굴시스템을 강화하고, 주거급여부양의무자 기준도 폐지했다. 그러나 2018년4월, 충북 증평군에서 남편의 사망 이후 빚 독촉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세 살 난 딸과 세상을 떠났다. 2018년5월엔 경북 구미시 한 원룸에서 20대 남성과 생후 16개월로 추정되는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됐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극빈가정이었다. 인권변호사의 시대에도 빈민은 가난을 증명해야만 구제받을 수 있었다. 찾아가지 않는 서울시의 모니터링은 위기기구를 알아챌 수 없었다. 2022년5월10일, 제20대 대통령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2022년8월21일,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한 다세대 주택에서 어머니와 두 딸이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됐다. 중증질환을 앓고 있었고, 채무로 인한 생활고로 18개월 치 건강보험료 33만9830원이 체납되어 있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 내역이나 수급을 받은 이력은 없었다. 누군가 찾아가서 건강보험료 체납추징이라도 시도했더라면, 그리고 위기가구를 주민센터에 알렸으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그렇게 지난 22년간 수많은 빈민에게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는 보장받지 못한 채 쓰러져갔다. 3) 여전히 불안정한 기초생활 보장제도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이후 정부가 일관성 있게 추진해 온 정책은 부정수급에 대한 적발과 수급자격 박탈이었다. 2000년대 초반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사회보장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보장제도의 등급화와 엄격한 사후관리체계를 보완적으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유럽처럼 수십 년 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면서 발생한 문제점을 보완해야 할 만큼 사회보장제도가 촘촘한 그물망을 갖춘 게 아니었다. 기초생활 보장제도는 국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급여와 현물을 보조하는 공공부조 제도로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을 통해서 위기가정에 최저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생활 수급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를 발굴하는 행정이 앞서야 하며,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위해 체면과 사회적 평가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대상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제도가 정착되기도 전에 부정수급 적발과 엄격한 대상자 선정에 집착하면서, 누군가의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아왔다. ‘가난을 몸소 이겨냈다’고 주장한 대기업 회장 출신의 대통령 시절인 2010년에 만들어진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 대한 엄격한 근로능력 평가는 수급자 가운데서도 일할 수 있는 몸과 일할 수 없는 몸을 점수로 구분하고 있다. 근로능력이 있는 18~64살 수급자 중 소득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근로 능력이 있는지를 따진다. 만일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다. 정상적인 노동시장에 참가하겠다는 의사가 있어야만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질병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노동시장에 나갈 수 없는 경우, ‘근로 능력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설령 증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근로능력 없음’이 증명되더라도 의료급여나 생계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실제로 2012년부터 근로능력 평가를 담당하는 국민연금공단은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2012년까지 5%수준이었다면, 2013년에는 15.2%, 2014년에는 14.2%로 3배 정도 늘어났다. 찾아가지 않고 서류를 통해 찾아오도록 만드는 행정이 낳은 반사회적인 제도이다. 정부는 2023년 사회복지 예산을 2022년보다 11조4175억 원(14.2%) 증가한 92조659억 원으로 책정했다. 사회복지 예산 중에선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 예산이 37조159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노인 지원 23조1143억 원 ▶기초생활보장 16조4059억 원 ▶아동·보육 9조8206억 원 ▶취약계층지원 4조6026억 원 순으로 늘릴 예정이다. 그러나 예산을 늘렸음에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찾아서 위기가구를 돕는 시스템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도입된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해 지원하는 ‘찾아가는 보건복지 전담팀’(찾아가는 복지팀)을 운영·관리하는 ‘주민복지서비스 개편 추진단’(복지개편단)이 2022년8월31일부로 종료하면서, 나머지 후속업무는 AI복지사에게 맡길 예정이다. 존속기한이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위기가구 발굴은 ‘찾아가지도 않고 판단하는’ AI복지사가 맡고, 근로능력 평가는 서류심사를 통해 국민연금공단이 맡는 ‘비대면 복지행정’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22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송파 세 모녀 법’처럼 수급자를 우선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두 명의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을 역임했어도 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아서 가난을 ‘떳떳하게’ 증명하지 않고는 사회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이다. 더욱이 찾아가는 행정을 약속한 서울시도 주민복지센터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 입법과 행정에서 찾아가는 복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끝 어딘가에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심영섭 교수입니다.
2022-09-19 13:34:04
- 「7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대통령 지지율과 지도자의 자질(Virtu)>
- 대통령 지지율과 지도자의 자질(Virtu)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 언론위원회(김상균 위원장)는 2022년 7월의 시선으로 <대통령 지지율과 지도자의 자질(Virtu)>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직무수행 평가 긍정률)이 20%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취임 후 지난 석 달 동안 대통령이 보여준 언행을 복기하면 ‘정치와 리더십, 그리고 비전의 부재’가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이 세 가지 부재는 결국 지도자의 품성과 자질, 곧 비르투(Virtu)를 의심케 합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지지기반이 다른 세력을 키워 나가는 것인데, 윤 대통령은 지난 1분기 동안 지도자로서 정치와 리더십, 그리고 미래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 채 ‘뺄셈정치’만 해왔습니다. 7.21 '부자 감세' 조치가 대표적입니다. 민심은 국정 지지율이고 국민의 직무수행 평가가 곧 민심입니다.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은 국정 수행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개인의 불행을 넘어선 국가적 불행입니다. NCCK 언론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금 당장 대오각성과 덧셈정치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절박감으로 ‘대통령 지지율과 지도자의 자질(Virtu)’을 주목하였습니다. 2.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직무수행 평가 긍정률)이 20%대까지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7월 넷째 주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물은 결과, 긍정 평가는 28%인 반면에 부정평가는 62%로 나타났다(7월 26~28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0명 대상 조사, 95%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윤 대통령의 이른바 ‘내부 총질’ 문자가 공개된 이후, 코로나19 재 확산과 고물가로 힘든데 ‘내부 싸움질’만 하고 있다는 국민적 반감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대통령 지지율이 10~20%대로 떨어지면 대통령을 때리는 것이 ‘국민 스포츠’가 된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과 노무현 대통령 임기 후반에 겪었던 바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경계한 것처럼, 대중으로부터 미움과 경멸을 받는 치명적 단계다. 여기서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 더는 국정 동력을 상실한 ‘식물 대통령’ 신세가 된다. 탄핵 전의 박근혜가 그랬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의 임기 첫해 첫 분기 직무평가 긍정률의 편차(최저 29%, 최고 81%)는 상당히 크다. 이는 새로운 대통령에 거는 기대감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통령 직무평가 긍정률(또는 국정 지지율)은 어떤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일까? 대통령 지지율 등락에 영향을 주는 3요소 미국에서는 대통령 지지율 등락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시간’(재임기간)과 ‘경제상황’, 그리고 ‘사건(event)’의 효과에 주목해왔다. 미국 대통령 지지율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즉 임기 말로 갈수록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한국은 5년 단임제의 특성상 시간은 절대적인 영향 요소다. 대체로 미국에선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높으면 재선에 성공할 확률이 높고, 단임제인 한국에선 그만큼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정치학계의 이론과 연구결과에 기초해 한국 대통령 지지율 결정요인을 탐색한 ‘대통령 지지도 변화요인에 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대통령 지지도는 ‘필연적 하락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특히 ‘부정적 사건’은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경제상황도 일시적 지지도 등락현상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론 지도층, 특히 언론의 보도 내용 또한 국민의 평가와 인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지지율 등락을 결정한다. 지지율 하락의 본질은 ‘정치와 리더십의 부재’ 탓 윤석열은 여느 대통령보다 불리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직무를 시작했다. 역대 대선 사상 두 번째로 적은 표차이로 당선된 데다가, 야당 지지층의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 담긴 ‘심리적 불복’이 지속되는 가운데, 불과 취임 3주 만에 전국 지방선거를 치르는 통에 임기 초반의 ‘허니문’도 기대 밖이었다. 게다가 집권하자마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외환(인플레이션)과 집권당 대표 리더십의 혼돈이라는 자중지란 속에 ‘탄핵’을 겁박하는 거대야당의 견제에 직면해 있다. 단임제 대통령제 하에서 지지율 ‘하락의 법칙’을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지율 하락에 절대적인 ‘시간’은 이미 윤석열의 편이 아닌 것이다.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남은 요소는 ‘경제상황’과 ‘사건(event)’뿐이다.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처럼, 경제상황은 대통령이 경제에 매진하는 진정성을 보일 때 개선될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의 정책의제는 이념 갈등을 회피할 수 있는 중도실용적일 때 그나마 지지율 상승을 동반할 수 있다. 그런데 취임 후 지난 석 달 동안 대통령이 보여준 언행을 복기하면 ‘정치와 리더십, 그리고 비전의 부재’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 세 가지 부재는 결국 지도자의 품성과 자질, 곧 비르투(Virtu)를 의심케 한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지지기반이 다른 세력을 키워 나가는 것인데, 윤 대통령은 지난 1분기 동안 지도자로서 정치와 리더십, 그리고 미래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 채 ‘뺄셈정치’만 해왔다. 7.21 '부자 감세' 조치가 대표적이다. 우선 윤 대통령은 소통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청와대를 용산 대통령실로 이전한 명분도 ‘국민과의 소통 강화’였다. 하지만 대통령실 이전을 둘러싼 반대 여론이 높음에도 대국민 설득을 생략한 채 용산 대통령실 이전을 밀어붙임으로써 청와대 개방의 긍정적 효과를 다 까먹었다. 또한 대통령실 이전과 함께 야심차게 출근길 기자들과의 문답(도어 스테핑)을 개시했다. 현안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을 피하지 않고 직접 설명하겠다는 취지의 출근길 문답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이는 언론사의 발제 회의 시간을 늦추게 할 만큼 긍정적이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대통령실 사적 채용 문제와 장관 인사, 그리고 경찰국 신설 등의 정책적 사건에서 보듯, 손가락질을 하거나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국민 감정선을 건드리고 민심과 맞서는 태도를 보여 오히려 빈축을 샀다. 특히 윤 대통령은 성희롱, 만취 음주운전 전력 등 부실 인사 논란이 생길 때면 “그럼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반문하는 식으로 전 정권을 탓하거나 전 정권보다는 낫다는 투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대중으로부터 미움과 경멸을 받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뜻밖의 본심(?)을 드러낸 ‘내부 총질’ 문자는 ‘소수동맹론’과 ‘환멸하는 유권자’ 및 ‘엘리트 리더십’ 이론이 작동하는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실 이전도, 경찰국 신설도, 출근길 문답도 대통령 자신의 자세와 태도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런 윤 대통령에 대해 시중에서는 ‘이명박 시즌2’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로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한 점도 비슷하지만 여의도 정치를 불신하다가 국정동력을 잃은 점도 닮은꼴이다. 물론 윤 대통령은 억울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능력 위주 인사로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은 안일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도리스 K. 굿윈의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에 따르면, 1861년 3월 4일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 의회는 분열된 정도가 아니라 화염에 휩싸인 상태였다. 링컨이 당선되고 취임할 때까지 4개월 동안 7개 남부주가 ‘합중국’에서 분리 독립하겠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제퍼슨 데이비스 상원의원을 ‘아메리카연합국’의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 사이에 공화당은 극단적인 의견 대립으로 금방이라도 쪼개질 것 같았다. 링컨은 눈앞에 닥친 엄청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내각을 구성했다. 또한 합중국에서 탈퇴하지 않은 미주리, 켄터키, 델라웨어, 메릴랜드 등 4곳의 ‘경계주’ 의회에 교서를 보내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등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행사하기 전에 모든 타협 가능성을 시도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김대중의 ‘상인의 현실감각과 서생의 문제의식’의 결합에 비견된다. 이런 비상한 노력 끝에 링컨은 마침내 내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노예해방선언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링컨의 내각이 구성된 초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이었다.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대답은 오늘날 링컨의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 – 공감 능력과 겸손함, 일관성과 자기인식, 자제력과 너그러움 – 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미국 대통령 리더십 연구의 권위자인 굿윈의 결론이다. 링컨의 사례를 든 것은 동일선상의 비교가 아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난관에 처한 지도자가 어떻게 난관을 개척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민심은 국정 지지율이고 국민의 직무수행 평가가 곧 민심이다.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은 국정 수행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개인의 불행을 넘어선 국가적 불행이다. 민심은 바다와 같아 배를 띄우기도, 뒤집기도 한다.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박근혜도 국정농단 사건으로 ‘식물 대통령’이 되어 탄핵됐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을 막아줄 팬덤이나 정치적 지지 기반도 취약하다. 지금 당장 본인의 ‘태도’를 바꾸고 ‘덧셈정치’로 전환하지 않으면 지지율 붕괴는 ‘국민 스포츠’를 넘어 ‘심리적 탄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NCCK 언론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금 당장 대오각성과 덧셈정치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절박감으로 ‘대통령 지지율과 지도자의 자질(Virtu)’을 2022년 7월, ‘이달의 주목하는 시선’으로 꼽았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김당 부사장입니다.
2022-08-05 12:10:06
- 「6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시대착오적인 윤석열 정부의 경제 행보>
- 시대착오적인 윤석열 정부의 경제 행보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언론위원회(위원장: 김상균)는 2022년 5월의 시선으로 <시대착오적인 윤석열 정부의 경제 행보>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활필수품 물가는 하루가 멀다 하며 전 방위적으로 들썩입니다. 물가인상 만이 아니라, 금리 인상에 인플레이션까지 겹쳤습니다. 국민 대다수의 생활형편은 코로나로 인해 피폐해진 절망의 구렁텅이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손실보상금 소급적용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민이 느끼는 경제고통지수는 지난달 8.4를 기록해, 2001년 9.0 이후 21년 만에 가장 높습니다.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서민과 취약계층뿐입니다. 정부의 경제 행보는 아무런 희망적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선>이 윤석열 정부의 6월 경제정책 행보를 주목한 이유입니다. 2.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들리는가, 이 비명이 ‘경유도 삼겹살도. 소비자 물가 5.4%↑ 14년 만에 최고.’ 안 오르는 게 없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5.4%를 돌파하더니, 6월은 6.0%를 기록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물가인상 만이 아니다. 금리 인상에 인플레이션까지 겹쳤다. ‘런치플레이션’, ‘누들플레이션’이 횡행한다. 코로나로 망가지고 피폐해진 절망의 구렁텅이였다. 코로나 손실보상금 소급적용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민이 느끼는 경제고통지수는 지난달 8.4를 기록해, 2001년 9.0 이후 21년 만에 가장 높다.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서민과 취약계층뿐이다. 국가는 이 비명을 듣는가, 눈물과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아니다. 바로 2022년 6월 시선이 윤석열 정부의 6월 경제정책 행보를 주목한 이유다. 윤석열 정부의 6월 경제 행보를 돌아보니 서민과 노동자의 비명이 처절한데, 정부의 민생대책은 없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할 대통령은 아침 브리핑에서 금리대책을 묻는 취재진에게 거꾸로 이렇게 물었다, “인상 외에 다른 방법이 있나요?” 고민이 없다, 고통을 공유해야 한다는 기본인식조차 없다. 안이하고 무책임한 인식은 6월 한 달, 윤석열 정부의 행보와 대응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6월 16일, 한 달 만에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핵심은 감세와 규제 완화였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고, 종부세 대상과 부담도 줄였다. 주식 양도세도 사실상 폐지됐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한한다며, 연내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을 암시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도 시사했다. 이날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은 하나다. 언제든 기업인은 연락하라”고 했다. 3일 전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생계가 달린 화물연대파업을 “집단운송거부”로 규정했던 대통령이다. 전형적인 ‘기업프렌들리’였다. 6월 23일, 노동부가 ‘노동시장 개혁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나서 연장근로시간을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주 12시간 가능 연장근로시간이 최대 92시간(기본 40, 연장근로 52)으로 늘어난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 1,928시간은 OECD 평균 1,500시간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난해 노동자 289명이 과로사로 사망했다. “주 최대 52시간”은 노동자의 과로사를 방지하고,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 2018년에 여야합의로 도입된 제도였다. 지난해 7월 시행돼, 채 1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새 정부 들어서며 풍전등화 신세가 됐다. 6월 29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발표했다. 올해보다 460원(5.0%) 오른 9,620원 (월 201만 580원, 209시간 기준)이었다. 경제성장률(2.7%)에 물가인상률(4.5%)을 더한 뒤 취업자증가율(2.2%)을 뺀 금액이었다. 올해 물가상승률 수준도 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민생안정대책, 노동시장 개혁정책, 최저임금 결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친기업, 부자 중심이다. 정책들은 자유주의 시장으로 기업이 성장하고, 그 풍요가 양극화와 갈등을 해결한다는 대통령의 취임사와 연결돼 있다. 정책들은 10년 전 ‘MB노믹스’를 빼닮았다. 폐기된, 이른바 ‘낙수효과’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코로나 이후 시대정신은 망가진 공동체를 살려내고 사회와 시스템을 재개편하는 ‘뉴모럴’이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6월 행보는 정반대의 길이다. 10년 만에 부활한 신자유주의 망령 법인세 감면의 이면 – 실질임금 삭감, 경제력 집중 심화 법인세, 상속세 인하는 재계의 숙원이었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세금을 낮추면 저들의 주장대로 투자가 활성화되고 고용이 늘어나는가?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과 판박이였던 이명박 정부 시절, 법인세 감면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갔다. 법인세 감면을 얘기할 때 주목해야 할 것은 근로소득세다. 통계에 따르면 법인세 비중은 2010년 22.4%에서 2021년 21%로 줄었고, 부가세는 29.6%에서 21.3%로 급감했다. 반대로 소득세는 22.6%에서 34.1%로 급증했다. 소득세 중에도 자영업자의 종합소득세는 2.84배 늘었고, 노동자의 근로소득세는 3.24배로 늘어났다. 두 데이터는 기업의 감세 부담을 노동자가 감당해왔음을 보여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가 세액공제 제도였다. 그러나 근로소득세 납세자 1인당 세액은, 2013년 198만 원에서 2020년 361만 원으로 늘어났다. 2008년 제도 개편 이후, 물가상승만큼 소득세를 보완하는 최고세율 과표구간은 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는 노동자의 실질임금의 삭감으로 이어졌다. 법인세, 종부세를 다 깎았으니, 민생과 사회안전망에 투입할 돈이 없다. 고통은 서민과 노동자가 몸으로 안아야 한다. 세금 감면 이면에 가려진 진실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여전한 노동시장 노동시장 개혁추진방안은 어떤가. 한 달간 쓸 수 있는 연장근로 약 52시간(12시간×4.345주)을 몰아서, 한주에 최대 92시간까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이미 ‘장시간 노동 국가’라는 오명을 받는 우리나라에서 과로 사회를 심화시킬 뿐이다. 노사 합의가 있어야 한다지만, 전체 노조 조직률이 겨우 14%이고 30명 미만 영세사업장은 0.2%,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 부지기수인 우리나라에선 유명무실하다.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주 120시간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과 오버랩되면서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다. 내 월급만 깎이는 시대 – 심화하는 불평등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기업의 이익과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비교해 봐야 한다. 기업들은 지난해 경기 회복과 함께 수익이 크게 늘었다. 2021년 코스피에 상장된 12월 결산기업 영업이익은 전년도보다 74%가량 늘었고, 순이익은 161%나 증가했다. 미국에서도 인플레가 높아진 2021년 기업 이익이 급증했다. 그러나 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은 오히려 하락했다.(이강국, ‘인플레이션, 불평등 그리고 노동자’, 한겨레 6/14)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시대’가 아니라 ‘다 오르는데 내 월급만 깎이는 시대’다. 인플레이션은 계급 갈등과 불평등을 심화한다. 인플레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상도 노동자의 삶을 피폐화시킨다. 금리 인상은 경기를 둔화시키고, 경기둔화는 다시 임금상승을 억눌러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심화한다. 그 결과가 부와 노동의 양극화다. 2021년 우리나라 연간 국민소득에서 상위 1%와 10%가 가져간 몫은 각각 14.7%와 46.5%로, 2016년의 12.2%, 43.3%보다 커졌다.(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 경제대 교수, ‘2022 세계 불평등보고서’) 상위계층에 소득이 몰렸다는 건, 그만큼 불평등이 더 심해졌다는 뜻이다. 이와 연관돼 경제사학자인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발언이 관심을 끈다. “이 바이러스는 검은 백조가 아니었다. 회색코뿔소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기존 데이터로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 위험’을 뜻하는 검은 백조(블랙스완)가 아니라, ‘충분히 예견됐지만 무시된 위험’인 회색 코뿔소(그레이라이노)라는 것이다. 투즈 교수는 ‘시장 경쟁’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서민과 빈곤층을 보호해야 할 보건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은 붕괴 직전으로 방치됐다고 꼬집는다. (제정임, 코로나 팬데믹이 던진 두 가지 숙제, 한겨레 6/7) 해외사례에서 배우는 교훈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금리 인상 외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무식하다. 모르면 공부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정책은 몰랐다고 했다, 무책임하다. 아니, 무능하다. 느끼지 못한다면 현장에 내려가 허리를 낮추고 아픈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왜 방법을 고민하거나 아픔을 공감하지 않는가. 이번 달 시선은 두 가지 해외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둘 다 지난 6월 윤석열 정부가 일방 행보하고 있던 시기에 언론에 보도되었다. 두 사례는 거꾸로, 윤석열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첫 번째는 소위 ‘횡재세(橫財稅)’의 도입이다. 우리의 대기업 법인세 감면과 달리, 미국과 영국은 오히려 대기업의 세금을 늘리고 있다. 영국의 횡재세, 미국의 초과이득세가 그것이다. 예상치 못한 행운에 세금을 매긴단 의미의 횡재세, 이미 영국은 부과를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이 돈을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가구와 장애인 지원에 쓸 예정이다. 미국도 호황을 누리는 석유회사의 초과 이익에 20%대의 세금 부과를 추진 중이다. 두 번째 사례는 유럽의 주 4일제 실험이다. 우리가 92시간 논쟁할 때 영국은 대대적 주 4일제 실험에 들어갔다. 영국은 노동생산성, 삶의 질 동시에 만족시키는 ‘역사적 시도’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국제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 글로벌’이 영국 내 70여 개 기업노동자 3,300여 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임금 손실 없이 주4일 근무 실험을 진행한다. 생산성과 임금을 100% 유지하되, 노동시간은 주 5일에서 4일로 20% 줄이는 ‘100;80;100’ 모델을 지향한다. 배경에는 코로나가 세상에 던진 화두, 삶의 질 향상이란 철학이 깔려있다. 날뛰는 회색 코뿔소를 잡아라 <ncck가 주목하는="" 시선="">이 6월의 시선에 주목하고 있던 7월 2일, 서울광장에 6만 노동자가 모여 전국노동자 대회를 열었다. 노동자들은 물가폭등, 민생대책 마련, 노동 개악 저지, 사회 공공성 국가책임 강화, 비정규직 철폐를 부르짖었다. 구호는 사뭇 처절하다. “노동자는 죽어난다”, “돌봄 국가 책임실현”, “인간답게 살고 싶다”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불평등은 깊어지고, 갈등은 격렬해질 것이다. 삶은 더욱 팍팍해질 것이다.</ncck가> 시대착오적인 신자유주의의 망령 아래, 가진 자와 힘 있는 자 중심의 정책이 자유란 이름으로 위장돼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 시대는 혁명적인 발상과 정책을 요구한다. 서민과 노동자는 코로나에 이어, 경제 위기 쓰나미 앞에서 생존의 백척간두에 서 있다. ‘노동’을 굳이 ‘근로’라 부르는 집권당과 정부의 인식으로는 오늘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사회적 약자인 사람의 눈물과 고통을 외면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노동이 신성시되고, 노동자가 당당한 개별적 주체인 사람으로 대접받을 때 진정한 자유는 온다. 국가는 회색 코뿔소가 거리를 휘젓고 다니게 해선 안 된다. 자유를 앞세우고 친 재벌, 부자 중심의 경제정책으로는 코로나로 심화한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입으로만 외치는 민생이 아니라 온기를 느낄 실질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민생대책을 세워라, 생명과 사람을 중심에 둔 사람공동체를 회복하라. 이 일은 오직 국가만이 할 수 있다. 2022년, 시대가 윤석열 정부에게 내린 지상명령이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장해랑 교수입니다.
2022-08-05 12:07:57
- 「5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510 정부’는 ‘죽음의 행진’을 멈추라>
- ‘510 정부’는 ‘죽음의 행진’을 멈추라 ‘불평등과 구조적 폭력’에 해법 없는 취임사 노동계, 가습기, 요양원 등 계속되는 죽음들 사회적 안전망과 돌봄 구축이 공동체의 대안 국가의 기본이 작동하지 않으면 혁명이 온다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언론위원회(위원장: 김상균)는 2022년 4월의 시선으로 <‘510 정부’는 ‘죽음의 행진’을 멈추라>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2년 전 코로나가 세상을 덮쳤을 때, 위기를 기회로 삼자던 담론들이 무성했습니다. 그 동안의 삶의 방식을 반성하며, 사회 재개편을 통해 생명과 사람이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심과제는 기후위기 극복을 통한 지구생태계 회복, 인간사회 공동체의 부와 노동의 불평등 문제 해결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이 땅의 정치·학계·제 사회단체들이 거품을 물었던 담론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국가는, 정치는 ‘K 양극화’로 더 깊어진 부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어떤 실천을 했는가? 방치되었고 외면했습니다. 이에 5월의 시선은 수렁에 빠진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눈물에 주목합니다. 시선은 오늘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생명과 사람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주창하며, 새로 출범한 정부에 ‘생명과 사람의 길’을 걸을 것을 요구합니다. 2.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5월 10일에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 달의 시선’에서는 새 정부의 호칭을 일단 ‘510 정부’라 부르겠다. 아직까지 방향성과 지향점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작한 날짜를 붙인 무색무취의 이름이다. ‘510 정부’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단으로 갈린다. 국민이 촛불로 만들어준 정권을 5년 만에 내준 무능과 내로남불에 절망해 정치를 외면해버린 한편이 있다. 아무런 비전과 대책도 없다가 상대가 만들어준 후보로 정권을 잡아 환호하는 다른 한편이 있다. 두 진영의 정서와 논란은 접어둔다. 2년간의 코로나 암흑세상에서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새 정부가 감당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엄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정부의 출발은 우려를 넘어 위태해 보인다. 취임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재건”하겠다고 했다. 핵심어는 ‘자유’였다. 무려 35번이나 언급했다. 자유방임이 낳은 구조적 폭력과 성장지상주의 시장경제가 낳은 불평등, 공정과 정의 상실에 대한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새 정부의 시대정신은 ‘생명과 사람의 길’이다 ‘510 정부’가 들어선 5월은 역설적으로 생명이 죽어가는 절망의 달이었다. 5월의 첫날은 노동절이었다. 노동법을 준수하라 외친 전태일이 분신한 지 5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갈아 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에서 과로사로 죽어가고 있다. (김영선, <존버 씨의 죽음>) 7일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제조업에서는 오히려 사망자가 7명 늘어났고, “대부분 사망사고(86.2%)가 중대 재해 발생 위험이 높다고 판단해 지난 1월 특별관리 대상으로 통보한 1만1천여 개 초고위험 또는 고위험 기업 소속 사업장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1분기 산업안전보건감독 결과 발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사에는 노동자의 죽음을 막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비전도 정책도 없었다. 2년 전 코로나가 세상을 덮쳤을 때를. 위기를 기회로 삼자던 담론들이 무성했다. 모두 그 동안의 삶의 방식을 반성하며, 사회 재개편을 통해 생명과 사람이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얼굴로 서 있는가. 담론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국가는, 정치는 ‘K 양극화’로 더 깊어진 부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어떤 실천을 했는가? 5월의 시선은 수렁에 빠진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눈물에 주목한다. 시선은 오늘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생명과 사람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주창하며, ‘510 정부’에 ‘생명과 사람의 길’을 걸을 것을 요구한다. 그 길만이 코로나 담론을 실현하고 현재 진행형인 죽음의 행진을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월에 만난 죽음들 죽음의 행진은 어디에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가. 첫 번째는 노동현장이다. 죽음의 행진은 거의 매일이다. 지역도 전국을 마다하지 않는다. 떨어짐(42.4%), 끼임(11.5%), 부딪힘(8.7%), 깔림/ 뒤집힘(6.6%), 물체에 맞음(6.3%), 그 외 폭발, 빠짐 등의 사고 유형은 상투적이고 반복적이다. 이렇게 한 해 2,000명,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다. 바로 내 아버지, 내 아들이다. 이 죽음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죽음도 이어지고 있다. 5월 3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 씨(54)가 12년간 투병 끝에 사망했다. 1천774번째 죽음이다. 배구선수였던 안 씨는 폐질환과 인과관계가 확인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성분이 들어있는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사용한 피해자다. 폐 이식 수술을 두 차례 받고, 2018년 12월 입원한 뒤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기업들은 책임지지 않는가.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당연시한 죽음들도 있다. 바로 요양소에서 죽어간 이들이다. 5월 16일 한 신문사가 창사기획으로 ‘코로나로 빼앗긴 삶 23709’를 시작했다. 23,709 - 숫자는 당일까지의 사망자 수였다. 수치는 사망자 수 증가에 따라 매일 바뀌었다. 주목한 적이 있는가, 23,709명의 죽음의 의미를. 기획 의도는 분명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냥 흘려보낸 이 엄청난 죽음들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숫자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가족의 죽음이었다. 어떻게 손도 써보지도, 얼굴도 보지 못하고 당한 이 죽음들을 수치로, 어쩔 수 없는 일로 넘길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국가가 그랬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를 거쳐 오면서도 공공의료 시설과 보건인력 확충이란 시대적 요구는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5.5%에 불과하다. 공공영역의 확충은 늘 탁상공론으로 끝났다. 이래도 되는가? ‘생명과 사람의 길’은 ‘뒤를 돌아보는 일’ 이달의 시선은 코로나 암흑기를 거치며 인구에 회자됐던 담론들을 다시 호출한다. 지구 민주주의, 생태적 전환, 뉴노멀, 그린뉴딜, 연대적 공존, 재연결, 초회복, 구조개혁, 사회안전망 구축, 새로운 사회적 돌봄. 담론들이 말하고 있는 본질이 보이는가. 그 중심에 ‘생명’과 ‘사람’이 있다. 바로 시선이 제시하는 시대정신, ‘생명과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은 생명과 사람을 중심에 두는 일이다. 기업을 앞세운 효율과 이윤 중심의 경제시장과 성장주의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바꾸고 사회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이 일은 국가만이 할 수 있다. 국가가 사회안전망과 사회적 돌봄을 구축해야 가능한 일이다. ‘510 정부’의 운행이 시작됐다. 새 정부의 정체성이 담긴 이름은 지금부터 무엇을 우선에 두고,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전원은 켜졌다. 운전하며 뒤를 제대로 살피려면 백미러가 중요하다. 먼저 고정돼 있는 고장 난 백미러를 교체하라. 그런 다음 제대로 백미러를 조정하라. 백미러의 좌우는 중요하지 않다. 좌우 한편만으로는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없다. 두 방향의 전후좌우 방향키를 각각 미세하게 움직여 재설정해야 한다. 백미러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물체와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습니다.” 그렇다, 죽음의 행진이란 현실에 맞닥뜨린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삶과 노동현장의 절박함과 달리, 5월 25일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는 국제기준과 국가경쟁력을 내세우며 중대재해법의 개정을 시사했다. 죽음을 방치한 원청회사 대표가 처벌되지 않고, 사고의 80%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작업장이 제외된 누더기 법마저 손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작업장의 위험요소는 제거하지 않고 로펌에 막대한 비용을 쏟는 기업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했다. 그 사이, 죽음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7명이 퇴근하지 못한다. ‘510 정부’가 부디 ‘생명과 사람의 길’을 걷길 바란다. 위기의 시대, 국가는 국민의 눈물과 아픔을 닦아주는 이가 되어야 한다. 국가가 나서 당장 이 죽음의 행진을 멈추게 해야 한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 최소한의 삶 보장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잊지 말라. 510 다음은 610이다. 5월이 작동하지 않았을 때, 6월의 혁명이 왔다. 6·10 만세운동이 그랬고, 6·10 민주항쟁이 그랬다. 구의역 김 군의 6주기를 기리는 지하철 플랫폼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도 안전합니다.” 한참 농촌 지키기 운동이 일던 90년대 초반에 전국의 농촌에 걸렸던 “농촌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와 같은 맥락이다. 생명의 길은 하나다. 우리는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 연결은 사회적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생태적 전환, 생명과 사람 중심의 거대한 재설정이 필요하다. ‘생명과 안전의 길’은 그 첫걸음이고, 우리 모두를 향한 길이다. 이제 죽음의 행진을 멈추자. 시선은 새로 출범한 ‘510 정부’에 간곡히, 강력히 주문한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장해랑 교수입니다.
2022-08-05 12:05:23
- 「4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부엉이바위에서, 팽목항에서 다시 시작하자>
- 부엉이바위에서, 팽목항에서 다시 시작하자 - 뼈저린 성찰로 검찰공화국을 견뎌내자 -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 언론위원회(김상균 위원장)는 2022년 4월의 시선으로 <부엉이바위에서, 팽목항에서 다시 시작하자 -뼈저린 성찰로 검찰공화국을 견뎌내자->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검찰개혁은 민주계열이나 보수계열을 가릴 것 없이 모든 후보들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과제였습니다. 그만큼 검찰개혁이 절실했지만, 그동안의 개혁이 모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검찰총장출신 검찰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하에 5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법적으로는 사라졌다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검사동일체의 정점이 검찰총장이 아니라 대통령으로까지 확대되어 버린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은 검찰공화국의 발현을 염려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였습니다. 2.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검찰개혁으로 출발한 문재인 정권은 ‘검수완박’ 소동 속에 임기를 마쳤다. 촛불로 탄생하여 20년은 너끈할 것이라던 민주정권이 5년 만에 정권을 내주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검찰총장출신 검찰주의자 대통령 윤석열의 통치 하에 5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검찰개혁을 외쳤건만, 이제 거대한 검찰권력이 대한민국을 장악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라고 공언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선거과정에서 여러 차례“문재인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검찰을 견제하려 할 때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검찰이 이제 검사동일체(-법적으로는 사라졌다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의 정점이 검찰총장이 아니라 대통령으로까지 확대되어 버린 상황에서 어떤 공포 또는 괴기영화가 연출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한겨레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개혁과제로 단연 검찰개혁(31%)을 꼽았다. 두 번째 정치제도 개혁은 21.3%였고, 우리 국민들의 큰 관심사인 재벌개혁(12.7%), 언론개혁(11.8%), 교육개혁(9.8%)을 꼽은 비율을 합친 것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검찰개혁을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로 여기고 있었다. 사실 검찰개혁은 촛불정권만의 과제가 아니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검찰개혁은 민주 계열이나 보수계열을 가릴 것 없이 모든 후보들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과제였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 중에 검찰 없는 나라 없고, 선거 안 하는 나라 없겠지만, 30년 넘게 선거 때마다 검찰개혁이 모든 후보의 주요 공약으로 제기된 나라는 대한민국 말고는 없다. 그만큼 검찰개혁이 절실했던 것이다. 검찰공화국의 완성? 민주화의 최대의 수혜자는 검찰이었다. 검찰은 안기부와 보안사, 그리고 대공경찰이 물러선 빈자리를 메우며 정권수호의 버팀목으로 등장했다. 특히 1991년 분신정국 당시 검찰은 유서대필사건을 조작해 정권을 위기에서 구함으로써 보수연합 내에서 입지를 확실히 했다. 김영삼은 대통령이 된 뒤에야 검찰의 힘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검찰총장 자리는 장관 20개 하고도 안 바꾼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검찰이 보인 심각한 문제점 때문에 역대 정권이 시도한 검찰개혁은 오히려 개혁에 대한 검찰의 내성만 키워주어 더 막강한 검찰을 탄생시켰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은 과거 정권의 비리를 열심히 파헤쳐 새로운 정권의 신임을 얻는다. 문재인 정권도 윤석열을 중앙지검장으로 발탁해‘적폐수사’를 맡기면서 검찰개혁의 골든타임을 허비해버렸다. 정권이 후반기에 들어서면 검찰은 죽어가는, 그러나 아직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에 칼을 들이대 한편으로는 정의로운 검찰의 이미지를 세우며 다른 한편으로는 야당이 검찰개혁의 방파제가 되도록 만든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검찰은 BBK 사건을 덮어버림으로써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최고의 킹메이커가 되었다. 그리고 15년 뒤 검찰총장 출신이 검찰왕국의 ‘킹’이 되었다. ‘검수완박’ 하면 검찰개혁이 될까? 대선과정에서 너무도 많이 나온 이야기지만, 윤석열을 키운 것은 문재인 정권의 정략적인 적폐수사와 어설픈 검찰개혁이었다. 검찰개혁의 실패가 결국 검찰 출신 대통령 윤석열을 낳았고, 윤석열과 검찰이 다스리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황망함이 ‘검수완박’을 낳았다. ‘검수완박’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검찰개혁을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 매우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검수완박’을 밀어붙였을까? 그리고 저 허점투성이 법안대로 ‘검수완박’하면 진짜로 검찰의 수사권이 박탈되고 검찰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검수완박’ 법안은 여론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것은 내용과 추진과정에 모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보수언론 탓만 할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검수완박’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민주당 의원들이 법무장관 후보자 한동훈이 청문회에서 ‘검수완박’이란 용어를 사용했다고 난리를 치는 지경에 몰렸을까? 청문회에서 ‘검수완박’을 주도한 의원들의 민망한 헛발질은 왜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게 되었는가를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나중에는 '검수완박'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검찰선진화법'으로 고쳐 말하는 이도 있었다.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했으니,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왜 검찰개혁의 대의에,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에 적극 찬성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서, 특히 그 처리방식에 대해서 펄쩍 뛰며 반대했을까? 다수의 전문가들이 밑바닥에서, 현장에서 지적하는 문제에 대해 늦었지만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중수청을 시급히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청 하나 신설하는 것이 단기간에 가능할까? 윤석열 정권이 한동훈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한다면, 이제 민주당은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지만. 상설특검제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로 인사검증 권한까지 틀어쥔 법무장관의 칼춤에 우왕좌왕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검찰공화국을 다시 민주공화국으로 검찰공화국의 도래는 현실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치하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공화국일 수 있을까? 뒤늦었지만 어쩌다가 정권을 내주게 되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복기와 반성이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겠지만, 다시 소를 키울 것이라면 외양간을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겠는기? 먼저 대단히 높은 국민적지지 속에 출발한 검찰개혁이 어떻게 ‘조국 수호’로, ‘공수처 설치’로, ‘운석열 짜르기’로, 그리고 대선 패배 이후 ‘검수완박’으로 변해 갔는가를 아프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민주진영에서는 정권을 내 준 것이 가장 뼈아픈 것이지만, 검찰개혁과 관련해서 말한다면 첫째, 박근혜 탄핵을 같이 외쳤던 촛불대오가 갈가리 찢겨 나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조국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검찰권 남용으로 분노한 시민들도 많았지만,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특히 젊은 층들이 권력핵심에 자리 잡은 386들에 대해 더 큰 위화감을 느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당장 지방선거가 코앞이라고 난리이다. 지방선거 잘 치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대선 패배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반성이 필요하다. 어쩌면은 먼저 좀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놀라운 성취를 거듭해 여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이 모양일까? 놀라운 성취의 바로 뒤에는 믿을 수 없는 실수 또는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정말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파친코>의 등장인물들처럼 역사가 망쳐놓은 그들의 운명을 견뎌내면서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에 힘입은 성취를 잘 유지발전시켜야할 책임을 지닌 정치엘리트들이나 지식인들은 과연 그 역할을 다했을까? 성찰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과거의 민주진보진영이라 할만한 영역은 지리멸렬한 지 오래 되었다. 가장 주된 책임이 있는 정치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시민사회나 비판적 지식인들도 매우 답답한 지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회의원이나 ‘어공’의 주요 공급원이 되었던 시민사회는 권력감시로 쌓아온 신뢰를 거의 상실했다. 여러 차례의 촛불항쟁을 거치면서 촛불시민들은 시민단체의 영역을 딱 연단 차리는 정도에만 인정해 주었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공’이나 다른 자리로 빠져나가다 보니, 시민단체의 감시역량 자체가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비판적 지식인들도 해체되어 버린 지 오래다. 믿을 것은 촛불시민들뿐인데 시민들의 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 사실 2016~2017년의 촛불항쟁은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말았지만,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이뤄 낼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니었을까? 많은 나라의 대중운동은 촛불을 보고 감탄하며 그 모델을 따라 보려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5년 만에 촛불혁명의 성과를 말아먹고 만 것이다. 촛불정권을 어떻게 5년 만에 내주게 되었을까? 필자는 여러 가지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에 관계해 왔지만, 한국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진실로 진상규명이 필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시민들에게 다시 촛불을 들자고 말할 수 있을까? 촛불은 여전히 유효한 대안일 수 있을 것인가? 전후 일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마루야마 마사오가 ‘회한의 공동체’란 말을 했다. 일본이 군국주의에 빠져 전쟁으로 치달아갈 때 그것을 막지 못한 지식인들의 책임을 지적한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일본군국주의 잔재의 부활을 막고,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진상규명운동에 든든한 벗이 되었던 일본 양심세력의 성격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다. 기억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빈소에서 “우리는 폐족이 되었다”던 어떤 정치인의 울부짖음을! 그 때 한국의 진보진영은 회한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데 실패했다. 너무 빨리 출세해 버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폐족 신세였던 사람들에게 놀라운 기회를 제공했다. 비서실장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고, 폐족이라 울부짖던 정치인은 한 때 차세대 지도자로 각광 받았지만, 민주당 정권 몰락의 상징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정권교체로, 그리고 2020년 총선으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지지율 놀음과 정치공학에 빠져 기회를 놓쳐 버렸다. 돌이키기 싫지만 부엉이 바위로, 팽목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거기서부터 그 아픔을 뼈 속 깊이 새기며 성찰의 공동체를 시작해야 한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한홍구 교수입니다.
2022-08-05 12:03:24
- 「3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유튜브, 혐오의 공론장인가 대안의 공론장인가?>
- 유튜브, 혐오의 공론장인가 대안의 공론장인가? 정파적 보도 치우친 2022 대선은 ‘최악의 선거 공론장’ 유튜브, 혐오팔이 범람하는 가짜뉴스 만연으로 위험수위 ‘출처확인’ 등 비판적인 미디어 활용교육으로 극복해야 ‘대의 민주주의’ 한계, 강한 민주주의인 ‘숙의 민주주의’ 대안 ‘진실’이 모호한 시대 디지털 공간에서 개인의 욕망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내뱉어진 말과 글, 그림, 사진, 영상으로 떠돌아다니고 흉기가 되어 누군가를 찌르지만, 한번 네트워크에 들어간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공간에서 개인은 욕망을 절제하며 신성한 ‘노동’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래된 전통’을 순종하며 도덕적으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개인은 자아실현과 자기만족, 배설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성취하고 책임질 뿐이다. 2022년 3월 9일에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축제가 아닌 혐오와 차별, 배제의 도가니였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고 불릴 만큼, ‘차악이냐 차선이냐’를 두고 선택하는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다투는 양당 대선 후보가 모두 범죄 혐의로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사실검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론은 사실검증 원칙에 의한 보도보다는 정파적 보도에 치우쳤고, 대안언론으로 떠오른 온라인공간에서는 확증편향만 강화하는 최악의 ‘선거 공론장’이 만들어졌다. 결국, 선거기간 내내 대통령 후보자들은 자신이 추구하려는 정치보다는 사생활을 변명하기 바빴고, ‘오래된 전통’을 대표하는 신문과 방송은 변명을 받아쓰기에 바빴다. 새로운 사회적 공론장으로 등장한 온라인공간은 ‘혐오’와 ‘허위정보’로 넘쳐났다. 선거기간 동안 유권자들은 ‘전통언론’과 ‘대안언론’이라는 ‘쓰레기통과/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밤을 새웠다(한하운의 시 ’목숨‘중에서)’. 대안언론이 쏘아 올린 ‘혐오’와 ‘허위’라는 쓰레기를 전통언론은 받아먹었고, 그렇게 배설물은 배설물을 낳았다. 무엇이 가짜인가? 대안 공론장으로 불리는 유튜브에서 유통되는 정보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제20대 대통령선거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정치 현안보다는 양당 후보의 부인이야기로 뒤덮였고, 살아있는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아날로그 무속인들’과 디지털공간에서 혐오로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디지털 무속인들’이 쏟아내는 예언과 주장이 내일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망쳐놓았다. ‘혐오’라는 망령은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오직 배설에만 심취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망각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개인방송이 있었다. ‘가짜뉴스’가 만연하는 인터넷 개인방송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짜뉴스는 본래 대략 ‘잔혹한 기사 제목이나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진과 영상을 혐오목적으로 마치 기사처럼 거짓으로 꾸민 거짓말, 선동’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가짜뉴스’는 인터넷을 활용한 봇(Bot)과 플랫폼(Platform)서비스에 길든 이용자의 의식을 조작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만들어진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자신들이 읽은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는데, 이 ‘좋아요’는 중독성과 함께 경제적 효과도 높다.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인터넷 개인방송에 뜬 계좌번호로 후원금을 송금하거나 별 풍선을 쏜다. 온라인공간에서 ‘혐오 팔이’를 통해 얻는 영향력의 뿌리는 확증편향이다. 그래서 ‘가짜뉴스’가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영역이 정치이다. 주로 거짓 주장이나 만들어진 스캔들은 정치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데 이용된다. 정치적 혐오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해서 여론을 극단적으로 나뉘게 한다. 이를 통해 선거에서 투표결과로 연계시킨다. 정치에서는 진실을 찾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목적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알리기보다 온라인공간을 배회하며, 확증편향을 강화하려고 시도한 이유이다. 가짜뉴스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는 내용은 비록 허위이지만 현실적 악의가 없는 오보이다. ‘조작된 정보(Disinformation)’는 정보를 제공하는 자가 허위로 만들어 낸 내용을 현실적 악의를 갖고 유포하는 경우이다. ‘악의적 정보(Mal-information)’는 정보 내용은 사실이지만, 누군가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사생활을 침해하기 위한 악의를 갖고 유포하는 정보이다. 이 경우에도 현실적 악의를 갖고 정보를 제공하지만, 정보 자체는 역사적 사실이거나 진실이다. 잘못된 정보(오보)든 조작된 정보나 악의적 정보든 모두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가중시킨다. 가짜뉴스는 잘못된 정보와 조작된 정보에만 해당한다. 그러나 사실을 적시하는 악의적 정보도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키고 개인에게 큰 피해를 주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가짜뉴스는 정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서 사회적 신뢰가 상실되게 만든다. 또한,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이를 구분해내기 위해 많은 사회적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유튜브의 경우, 정치영역에서는 여전히 혐오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 시절의 선거운동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이전에도 대중매체와 SNS를 이용한 간접적인 선거운동은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나, 이제는 미디어를 활용한 선거운동이 재래적 선거운동보다 더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핵심지지층이 많은 정당은 당원을 통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미디어를 통해서는 부동층을 설득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정치가 선거운동을 위한 플랫폼으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나쁜 정치’와 ‘좋은 정치’를 구분할 수 있는 수단도 되지만, 동시에 ‘나쁜 정치’에 악용되는 현상도 발생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환경에서 선거운동의 핵심 플랫폼으로 온라인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에서도 TV가 여전히 선거운동의 핵심매체로 기능하지만, 1990년대부터 선거운동에서 온라인은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실시간 방송 시청률이 점점 더 떨어지는 환경에서 온라인 플랫폼은 선거운동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부상하였으며, 선거후보자는 온라인을 통해서 목표그룹에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수용자(유권자)와 개인적 친분을 쌓은 도구로 사회적 관계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선거운동에서 온라인 플랫폼은 정당과 후보자는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자와 정책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를 맥락에 맞게 제공할 수 있다. 또 정당과 선거운동원들은 정당지지자는 물론 잠재적인 지지자인 유권자와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다. SNS에서 친구나 팔로우일 경우에 논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정당 및 후보자와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유권자를 투표장에 나갈 수 있도록 유인하고, 설득하는 것으로 자당이나 자당 후보를 지지하게 하는 게 가장 최선이다. 트위터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망을 이용한 선거 전략은 더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댓글을 자동으로 다는 방식과 같은 여론조작을 넘어서 유권자에게 직접적으로 친근감(연대)을 표시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망을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망을 비롯한 미디어를 활용한 선거는 미디어가 갖는 속성 때문에 자칫 유용한 도구보다는 씻을 수 없는 피해를 가져다주는 독이 될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2021년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뉴스와 시사 정보를 텔레비전(54.8%)을 통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이어서 인터넷 포털이 36.4%, 온라인영상플랫폼이 2.8%, 종이신문 1.7%, 인터넷뉴스사이트 직접 접속 1.3%, SNS 0.9%, 라디오 0.8%, 메신저 서비스 0.8%의 순서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디어 이용자의 자발적인 뉴스 이용은 주로 검색엔진 및 뉴스수집서비스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수행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1> 조사에서는 디지털뉴스를 이용하는 경로가 검색 엔진과 뉴스 수집 서비스라고 응답한 비율이 한국은 72%, 일본 69%, 대만 56%, 체코 50%, 이탈리아 47%, 터키 46%, 인도 45%, 프랑스 44%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뉴스이용자들은 시사 정보를 이용할 때 검색엔진과 뉴스 포털에 대한 경로 의존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뉴스 포털이 뉴스링크를 종합하여 포털 내부에서 뉴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편리함도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뉴스이용과 동영상을 이용한 뉴스이용이 증가하면서, 혐오와 허위정보를 걸러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밖에 없다. 혐오와 허위정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미디어활용교육이 중요하다. 미디어활용교육은 크게 ‘자세히 관찰하기’, ‘심사숙고’, ‘비판적 읽기’, ‘출처확인’등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모든 정보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다. 만일 헤드라인이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면 의심해볼 만하다. 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선동하는 주장만 있다면 의심해야 한다. 둘째는 자세히 관찰한 결과 정보에 의심이 간다면, 그 주장을 전달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야 한다. 셋째는 비판적 읽기이다. 이러한 허위정보의 전형적인 전달 방식은 문장을 따옴표에 넣는 것이다. 기자나 전달자가 직접 취재하거나 확인하지 못했고, 누군가 “그렇다고 하더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의심이 드는 정보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이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넷째는 뉴스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이다. 누가 의심스러운 정보를 퍼뜨리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보가 누락되었다면, 그것은 조작된 정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혐오와 허위정보를 구분해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제도설계를 통해서 혐오와 허위의 악의성, 오용가능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 첫째, 뉴스 생산자의 윤리적 기준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모든 제도의 1차적 대응방안은 자율적인 교정과 실천이다. 이러한 자율적 기준 확립과 책무성에 대한 논의는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이익을 얻는 전문적 주체들이 책무성을 인지하고, 스스로 규율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둘째, 뉴스생산 주체만으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책무성 실천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감독기구를 통해서 협치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과 이를 작동시킬 수 있는 규율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셋째, 법치의 영역이다. 이미 통치수단으로 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법률을 중세처럼 악의적 허위정보를 유통시켰다는 이유로 사람을 화형 시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볍게 볼 만한 사안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쯤 어딘가에 해법이 있어야 한다. ‘규율을 통한 자율규제’를 실천하지 않고, 허위든 혐오든 ‘목적이 선하면 수단은 악해도 된다’는 확증편향팔이에 몰두할 수 없도록 법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상호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뢰 구축은 숙고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선출된 정치인들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통해서 통치하는 정치 행위를 대의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과정이 제한된 ‘약한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대의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시민이 직접 숙고할 수 있는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숙의 민주주의는 “분산된 공동체의 형태로, 다양한 공론과 현대사회와 합치될 수 있는 시민조직이 존재”하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공론장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지역공동체를 인구 1,000~5,000명 정도로 설계하여, 모두가 공론화 과정에 참여하도록 할 수 있도록 할 때만 가능하다. 이러한 공동체에서는 “시민사회에서 시민의 위치를 정치와 사적인 공간 사이에 두고, 공권력 독점 없는 정부를 통해 공동체의 결속을 다짐으로써 공공의 복지를 확대하는 참여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시민이 광장(공론장)에서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강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면, ‘약한 민주주의’라고 불리더라도 대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시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인과 정당이 숙의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선거를 통한 감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디어는 숙의 민주주의를 위한 토론의 도구이자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추인 받는 플랫폼(공론장)으로 기능해야 한다. 또한, 공론이 만들어지는 정치 과정을 시민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결국, 대의민주주의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보도가 수용자에게 이용될 만큼 뉴스 가치가 있어야 한다. 유튜브와 같은 대안언론은 보조적 수단으로 기능해야 한다. 만일 전통매체라는 기성언론이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면, 대안언론과 자리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심영섭 교수입니다.
2022-08-05 12:01:05
- 「2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StandWithUkraine>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StandWithUkraine (‘푸틴의 전쟁’과 국제적 연대의 힘) 푸틴의 핵 선제공격 협박은 오판 국제 연대의 힘으로 고립되는 푸틴 전쟁을 끝내는 일에 적극 나서야 인류 전쟁의 역사는 때로 상상을 뛰어넘는다. 러시아가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과 이웃한 벨라루스에 10만 병력을 배치할 때만 해도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력시위나 국지전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21세기 짜르’는 2월 24일 ‘형제국’이라고 불렀던 이웃나라와 서방 세계의 허를 찌르는 전면적 침공을 감행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상상할 수 없던 유럽의 전후 질서를 뒤흔든 전쟁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내전이 아닌 국가 간 전쟁이 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 세계에 믿기 힘든 충격으로 다가왔다. 6.25 한국전쟁과 참전국, 의료지원국, 물자지원국 흔히 국제정치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한다. 스스로 힘을 키우지 않으면 주변 강대국들의 위세에 휘둘리는 것이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약육강식을 막기 위한 장치로서 국제법과 국제연합(UN)을 두고 있다.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지만 정부 수립 당시부터 유엔과 밀접한 관계였다. 특히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의 침공 사실은 당시 한국에 주재하고 있던 국제연합감시단에 의해 보고되었고, 미국이 전쟁 발발 당일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소함으로써 유엔군사령부의 설치와 파병이 이뤄졌다. 거부권을 가진 소련이 마침 중공(중국)의 대표권 문제 해결에 불만을 품고 안보리 출석을 거부하고 있던 때여서 한국에는 ‘천우신조’로 안보리의 신속한 조치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안보리 결의가 있었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16개국이 참전했고, 안보리가 회원국에 한국에 대한 원조를 권고함으로써 의료지원국(6개국)과 물자지원국(14개국)을 합친 36개 지원국이 탄생했다(16개 참전국과 6개 의료지원국은 모두 물자를 지원했다). 6.25 전쟁 발발 당시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었고, 남아메리카 국가들도 경제적 기반이 취약해 한국을 지원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가가 물자지원에 동참했다. 또한 그 해 10월 유엔 총회는 한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한 원조 및 재건을 임무로 하는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의 설치를 결의했다. 6·25전쟁 중에도 해마다 한국 문제가 유엔에 상정되었으나, 번번이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방해를 받았다. ’푸틴의 전쟁’과 유엔의 대응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가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엔은 이번에도 안보리 긴급회의와 긴급특별총회를 소집했다. 긴급특별총회 소집의 근거가 된 '평화를 위한 단결'(Uniting for Peace) 결의는 한국전쟁 기간에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 기능이 마비된 것을 계기로 채택된 바 있다. 안보리 제재 대상국이면서도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 제재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하지만 유엔은 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했다(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181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 유럽연합(EU)이 주도한 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한국은 찬성표를 던진 반면에 북한은 결의안 채택에 반대했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당사국인 러시아와 벨라루스, 시리아, 북한, 그리고 '아프리카의 북한'으로 통하는 에리트리아뿐이다. 이들 5개국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개인독재 국가라는 점이다. 러시아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과 인도, 이란, 쿠바 등은 기권했다. 이번 결의안은 "러시아의 2월 24일 '특별군사작전' 선언을 규탄한다"며 "무력사용 또는 위협으로 얻어낸 영토는 합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최근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운용부대의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한 데 대해서도 "러시아의 핵무력 태세 강화 결정을 규탄한다"고 지적했다. 푸틴은 그동안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만이 자국의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문서로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불가’를 약속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굳이 유엔 결의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번 ‘푸틴의 전쟁’은 그러한 안보 문제 해결 주장이 기만 전술이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푸틴의 핵 선제공격 협박과 ‘오판’ 푸틴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동기는 전 KGB 장교이자 동독 지국 책임자로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목격하면서 느낀 좌절과 분노에서부터 NATO의 동진(東進)정책에 따른 군통수권자로서의 안보 위협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다. 소련의 붕괴로 중령 계급을 마지막으로 KGB를 떠난 그는 1998년 옐친 대통령 때 KGB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처음이자 마지막 민간인 신분의 국장을 지냈다. 주권국가에 대한 침략과 전쟁범죄는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 냉전 종식 이후 인류의 보편적인 컨센서스다. 그런 점에서 푸틴의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침공에 대해 국제사회가 푸틴을 비난했을 뿐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이번의 전면전을 낳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돌프 히틀러의 선례가 증명하듯, 독재자를 응징하지 않으면 더 대담하게 만든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하지만 실패의 경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8년 전의 성공에 도취된 푸틴이 이번에도 국제사회의 저항이 미미할 것으로 판단했다면 이는 오판이다. 더욱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핵 선제공격 협박을 가하는 치명적 실수를 했다. 푸틴은 연설에서 “러시아는 소련이 붕괴되고 핵 잠재력의 상당 부분이 상실된 후에도 현재 가장 강력한 핵 보유국 중 하나”라며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잠재적 침략자에게 패배와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국제사회의 개입을 경고했다. 지금까지 핵 보유국 간의 묵계는 핵 선제공격을 자제하지만 상대방의 핵공격 징후가 농후할 때는 선제적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푸틴은 자신이 공격하는 대상을 돕는다는 이유만으로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협박을 했다. 북한 김정은의 미국에 대한 ‘핵공갈’ 선례가 있지만,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핵 보유국의 핵공갈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러시아의 노골적 대외 팽창 의도가 확인되자 당장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가 NATO의 문을 두드리고 조지아, 몰도바 등 유럽 중간지대 국가의 나토 합류 움직임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또한 2014년 크림반도 침공 때도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던 영세중립국 스위스마저 대러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 러시아와 거래가 많아 소극적이던 유럽의 경제대국 독일이 가장 적극적인 우크라이나 지원국이 된 것이 가장 극적인 변화다. 독일은 전쟁 전 우크라이나의 지원 요청에 헬멧을 보내기로 해 국제사회로부터 조롱을 당했다. 하지만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차대전 이후 외국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던 금기를 깨고 의회에서 “우리는 결단했다. 우크라이나가 나라를 지킬 수 있게 무기를 보낼 것이다”라고 밝혀 기립박수를 받았다. 푸틴을 고립시키는 국제 연대의 힘 푸틴의 오판에 더해 전장의 환경이 달라진 점도 푸틴과 러시아를 점점 더 고립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국가가 독점했던 위성 정보자산이 민간영역에서 손쉽게 공유∙확산돼 전쟁의 의도와 양상 그리고 참상까지 공유되고 전세계 시민들의 공분과 연대를 확산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상업위성 맥사(Maxar)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배치돼 훈련을 개시한 때부터 지금까지 이동∙집결을 담은 위성사진을 언론에 제공하고 있다. 수백 명의 다국적 기자들과 국제 NGO 단체가 우크라이나 전역과 접경지역에서 실시간으로 러시아군의 사용이 금지된 집속탄(Cluster Munitions) 공격 만행과 전쟁범죄를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인터넷망을 차단해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구 반대편까지 삽시간에 전해지는 참상은 세계의 여론을 뒤바꾸고 있다. 이 모두 ‘푸틴의 전쟁’이 자초한 일이다. 현재(2022. 3. 8.)까지 해외에서 2만여 명이 국제의용군으로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온라인 상의 #StandWithUkraine 캠페인이 세계 시민들에게 정의의 편에 설 것을 소구(訴求)한 결과이다. 그것은 유엔의 압도적 결의를 왜곡하는 상임이사국의 횡포에 맞선 국제 연대의 힘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에 "외롭게 싸우고 있다"던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대신, 이제는 푸틴과 러시아가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은 이미 졌다. 우크라이나를 실패 국가로 만들어 위성국가로 두려는 푸틴과 러시아가 오히려 실패 국가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젤렌스키 정부를 즉시 무너뜨릴 수 없는 푸틴의 군대는 이제 밤낮으로 민간인들까지 포격하고 있다. 포위된 도시에서 전기와 물 공급이 중단돼 인도주의적 재앙이 임박한 가운데 150만 명의 피난민이 떠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불의의 전쟁을 끝내는 데도 ‘회색지대’는 없다.- 이번 달의 필자는 김당 대기자입니다.
2022-03-10 17:09:21
-
커뮤니티
- 「1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이른바 ‘이대남 현상’이 요구하는 대선 메시지>
- <이른바 ‘이대남 현상’이 요구하는 대선 메시지> 20대 남성, 일명 ‘이대남’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했다. 양쪽 세력의 경쟁이 팽팽하게 지속될 때 승패를 결정짓는 캐스팅 보트 역할이 그들 손에 쥐어지지 않을까 하는 전망 때문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정서는 한 마디로 ‘당혹’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역동적인 부동층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연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는, 선거를 대하는 20대 남성들의 표심 변화는 가히 역동적이다. 오마이뉴스-리얼미터가 진행하고 있는 ‘매일조사’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지난 해 12월 하순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약 한 달간 20대 남성들의 변화추세는 드라마틱하다 못해 현란하다. 특히 같은 기간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20대 여성들의 지지율과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먼저 변화의 순간들을 짚어보자. 원래 20대 남성은 30% 대 40% 수준으로 윤석열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 해 12월 마지막 주에 이재명에 대한 지지율이 40% 가까이 오르면서 윤석열을 20%대로 밀어냈다. 이른바 ‘나라를 구했다’는 삼프로TV의 인터뷰가 공개된 시점이다.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에 관심이 많았던 남성들은 이 영상에 즉각 반응했다. 곧이어 올해 1월 초 ‘탈모 공약’이 나오면서 이재명 캠프는 20대 남성들의 지지세를 굳히는 듯했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극적으로 화해한 직후인 1월 7일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이 윤후보의 페이스북 계정에 공개되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여기에 이재명 후보가 페미니즘 성향의 유튜브 계정 ‘닷페이스’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겹치면서 지지율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40%에 달하던 이재명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고, 반대로 윤석열의 지지율은 60% 수준까지 치솟았다. 겨우 일곱 글자에? 겨우 페미니즘 성향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 때문에? 중장년층은 20대 남성들의 너무나도 급작스런 반응에 당황했지만, 20대 남성들은 실제 움직였고, 지금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여론 지형으로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그들만의 소통 메커니즘 : 커뮤니티와 사이버렉카 사실 20대 남성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로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오늘날 주목받는 이유는 특정 이슈에 대해 마치 하나의 세력처럼 움직인다는 데 있다. 이들의 존재감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시점은 2021년 4월 7일에 열린 재보궐선거였다. 선거가 끝난 직후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은 72.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고 밝혔고, 기성세대가 이 숫자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정치적인 결집이 가능했을까? 모든 현상에는 전조가 있다. <급진의 20대>를 쓴 김내훈의 지적대로 오늘날 20대 현상의 첫 번째 전조는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일어난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에 대한 반대여론이었다. 미사일 위기를 딛고 극적으로 성사된 남북단일팀이 공정성 문제로 20대 여론의 도마에 오를 줄 기성세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같은 해 여름에는 제주도에 수용된 예멘 난민이 젊은이들의 이슈가 됐고, 2019년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 검증 과정이 ‘부모 찬스’라는 이름으로 20대 여론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런 신호들에도 불구하고 20대가 정치판을 뒤흔들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이듬해 열린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보기 좋게 압승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공정’을 부르짖는 20대의 목소리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선거 직후 ‘인국공 사태’로 불리는 인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화 문제에 20대 여론이 들끓을 때도 정부는 언론의 왜곡보도만을 탓했지 이렇다 할 처방을 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이 20대, 그 중에서도 남성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론을 결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극우 커뮤니티로 불리는 ‘일베저장소’를 제외하더라도 ‘에펨코리아’, ‘디시인사이드’ 등의 남초 커뮤니티(남성 유저의 비율이 높은 사이트, 혹은 그런 성향이 강한 사이트)들이 새로운 여론 저수지이자 발전소로 성장했다. 원래 이들 커뮤니티는 스포츠, 게임, 사진 등 다양한 취미 관련 게시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용자가 불어나면서 다양한 주제의 게시판이 만들어졌고, 현재는 정치 여론까지 만들어내는 종합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커뮤니티가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는 개혁 성향이 강해 좌파 커뮤니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논란들이 거듭되면서 이들 커뮤니티는 ‘반문재인’ 성향을 강하게 띠게 된다. 특히 페미니즘과 노조, 난민문제 등에 대해서는 극우에 가까운 시각으로 극렬 반대하고 있다. 조금 더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들 커뮤니티에서 대부분의 여론은 ‘사이버렉카(Cyber-wrecker)’를 통해 만들어진다. 사이버렉카는 사실 확인이 잘못됐거나 부족한 여러 의혹성 정보를 그럴듯하게 정리하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콘텐츠로 댓글 반응을 촉발할 수 있는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이 담기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산된 커뮤니티 여론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공간으로 확산된다. 이 단계에서는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해 가을 미의회 상원에 페이스북 내부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건이 증인으로 출석해 페이스북이 증오와 폭력이 담긴 콘텐츠가 널리 확산되도록 일부러 방치했다고 폭로했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세계적인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치밀한 알고리즘과 개인화된 인공지능(AI) 기술을 동원해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정치적인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생산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여론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을 타고 증폭된 결과가 현재 20대 남성의 여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겨우 일곱 글자 공약에 지지 후보가 뒤집히는 현상 아래에는 어떤 사회적인 하부구조가 형성돼 있을까? 여기에는 20대 세대 전체가 처한 일반적인 상황과 그 중에서도 남성이 겪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일반적인 상황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한계’를 꼽을 수 있다. 더 이상 개발독재 시대의 고도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기술 혁신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구체화 되면서 사회적인 계층 이동과 경제적인 분배 시스템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기후 변화와 감염병 위기가 겹치고, 미·중간 신냉전 시대까지 도래하면서 미래를 비관하는 정서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지금의 청년 세대를 표현하는 문구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말이 있다. 전체적으도 가난을 걱정하겠지만, 특히 청년 개인은 계층 하락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다. 한 번 미끄러지면 다시는 회생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오늘날 청년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여기에 남성들은 ‘병역'이라는 특수 조건을 하나 더 감수해야 한다. 20개월 안팎이란 시간을 사회에서 격리된 채 보내야 하지만 그에 대한 제도적인 보상은 거의 없다. 남성들이 보기에 여성은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고, 또 ‘할당제’라는 이름의 제도적인 혜택도 받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세대의 상대성에 대해 연대감보다 경쟁심리가 먼저 발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여성의 유리천장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대기업 취업률은 8대 2로 남성이 압도적이고, 공기업도 6대 4의 비율로 남성이 많이 선택 받는다. 성별 임금격차도 여전하다. 같은 스펙을 가졌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17.6% 적게 받는다. 특히 여성의 경력 단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0대가 되면 경제활동 참가율이 남자 대 여자가 90대 64로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이 세대부터는 여성이 더 이상 남성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연령대를 낮춰 보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남녀간 고등교육의 격차는 2000년대 초에 사라졌다. 2008년부터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20대의 경제활동참가율도 2013년부터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다(노무현재단의 유튜브 프로그램 <알릴레오 북’s> 45회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에서 권김현영 소장의 발언 중). 성별 임금 격차도 20대만 떼어놓고 보면 선진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20대 남성은 20대 여성보다 가난할 확률이 높다. 특히 남성들이 피할 수 없는 병역 의무는 그 격차를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게 만든다. <20대 남자>를 쓴 천관율과 정한울은 그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보수화’가 아니라 ‘억울함’이라고 지적한다. 기성세대는 물론 동년배 여성들과 비교해도 부당하게 차별 받고 있다는 믿음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두 저자는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라고 이름 지었다. 스스로 소수자라고 여기기 때문에 분노와 혐오의 감정에 쉽게 노출되고 휘둘린다. 김내훈은 이런 정서를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해석한다.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이 누적되면서 올바르진 않지만 간편하게 자기를 평가 절상할 수 있는 ‘경멸’과 ‘혐오’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다가올 위기와 과감한 개혁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 기성사회가 우려하는 이른바 ‘이대남 현상’이 한국만의 특이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청년들의 불안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4월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중국, 영국, 호주, 노르웨이, 덴마크, 인도, 한국 등 국가에서 35세 이하 청년 1,700명을 대상으로 설문과 인터뷰를 실시해 “밀레니얼 세대가 더 큰 불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위기감을 불안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영국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통과된 것도, 다른 유럽 국가에서 극우파들의 발언권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같은 원인의 다른 증상들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20대 청년들의 움직임이 기성세대 눈에 돌출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만큼 절박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20대 청년들, 그중에서도 남성들의 언행을 마치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미래사회에 닥칠 위기를 미리 알리는 일종의 ‘전조(前兆)’라고 해석하면 어떨까. 어떤 면에서 몸부림일 수도, 아우성일 수도 있는 그들의 움직임을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내훈은 20대가 “정치적 상상력이 협소한 탓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어떤 변화를 지향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들의 상상력으로 그 새로움이란 정권 교체 정도에 머문다”고 평가했다. 그가 말한 정치적 상상력이란, 궁극적으로 바꾸고 싶은 우리 사회의 미래상과 비슷한 말인데, 지금의 20대는 신자유주의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다른 사회체제가 가능하다는 상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불가에 “손가락을 보지 말고 아니라 달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이른바 이대남 현상은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기성세대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심각한 문제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은 한계에 봉착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과 문제들 아닐까? 그들이 ‘정권 교체’ 구호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현상 유지를 전제로 한 온건한 변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메시지 아닐까? 지금의 이대남은 불과 5년 전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고, 선거에서도 문재인과 심상정 등 개혁세력에게 평균 수준의 표(47%, 선거일 직전 한국갤럽이 조사한 예상 득표율 결과임)를 던졌던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대남은 성평등 분야에선 다른 어느 세대와 성별보다 진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최종숙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상임연구원이 2020년 3월 발표한 논문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 20대와 3040세대의 이념성향과 젠더의식’을 보면,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이 20대 여성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남성의 육아를 수용한다’, ‘여성의 주도’와 같은 항목에서 20대 남성은 20대 여성보단 점수가 낮았지만, 30대 여성보단 높거나 비슷한 수용도를 보였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20대 남녀 모두 진보적이라는 중앙일보 조사 결과도 있었다. 물론 이대남을 비롯한 젊은 세대의 우경화 현상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간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이 맞부딪히는 한반도에서 정치지향이 우경화되는 것은 어렵게 쌓아올린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대남 현상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정치권과 기성세대는 능동적으로 신속하게 응답할 필요가 있다. 불안과 억울함의 정서에서 비롯된 우경화 움직임이 구체적인 세력으로 굳어지기 전에 흔들리는 정체성을 붙잡아줄 수 있는 밧줄을 던져줘야 한다. 아울러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정치적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분노의 에너지를 변화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큰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상황, 미중 대결 양상도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기득권 혁파까지 포함하는 과감한 개혁을 가능케 할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물론 개혁의 도전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역행 또는 퇴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 이대남 현상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앞으로 나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김태훈 소장입니다.
2022-02-14 10:03:29
- 2021년 <주목하는> 시선 종합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는 2016년 6월부터 매월 그 달의 현안과 이슈를 선정하여 ‘<주목하는> 시선’을 선정, 발표하고 있다. 2021년 12월 현재 통산 67회를 기록했다. 동 언론위원회는 1. 생명과 인권에 기초하여 힘없고 가난한 자의 목소리를 담는 시선, 2. 사람이 소중하다는 철학으로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는 시선, 3. 감추어진 의미와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을 기록하고 소통하는 언론 등에 주목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NCCK가 주목하는 시선’ 선정 작업은 기존 언론에 대한 리터러시를 통해 매체 비평 나아가 메타 비평을 실현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미증유의 충격을 받았던 2020년을 거치면서 2021년 한 해는 인권, 노동, 복지, 평등 등 우리 사회의 ‘기저 질환’에 각별히 주목했다. 현상의 대증적(對症的) 측면에 유의했던 2020년에 비해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천착한 것이다. ‘흰 눈 내리던 날, 그 코트와 장갑’(1월) 편을 필두로, ‘다시 길에서’(2월), ‘선거민심은 ‘미친 집값’ 잡으란 긴급명령’(4월), ‘두 죽음의 시선이 ‘모범택시’로 향하면’(5월),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통해 본 한국 지식인사회의 빈곤’(7월), ‘아프간 난민 수용에 대한 두 가지 시각’(8월), ‘32년 만에 벗은 누명, ‘빨갱이 교사’’(9월), ‘강화유리가 없는 ‘오징어게임’을 중단하자’(10월), ‘‘비 호감 선거’에 가려진 눈물과 고통’(11월) 등 대부분의 기조가 공통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시선>의 이심전심이다. 1월 그 첫 시도는 2021년 1월이 ‘흰 눈 내리던 날, 그 코트와 장갑’ 편이다. 한겨레신문 1면에 보도된 한 장의 사진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포착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준 포토저널리즘의 백미였다. <시선>은 이 사진에 눈길을 보내면서 깊은 성찰을 도모해 보았다. “....펑펑 쏟아지는 흰 눈 속 정경은 평화롭고 아늑해 보이지만, 생존 위기에 처한 사람의 절박함과 사회안전망의 부재 속에 자신의 모든 걸 내주는 시민의 마음을 읽는다. 이들은 우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공동체 구성원이고 함께 연대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동반자다. 이들이 희망이 되려면 미담과 시스템을 결합해야 한다....” 2월 2월 15일 김석균 전 청장 등 해경 구조 관련 책임자 9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충격적인 재판 결과에 대해 <시선>은 ‘다시 길에서’ 편을 통해 “... (이제) 관료 뒤에 숨어 있을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과정과 결과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책임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만 떠넘기고 침묵하는 ‘위험의 외주화’로는 다가오는 일곱 번째 4월에 너무도 부끄러운 촛불 정부가 될 것이다. 이제 선한 기억을 만들기 위해 병풍도 앞바다에 침몰한 진실을 인양할 시간..”이라고 회한과 울분을 토로했다. 3월 3월의 <시선>은 ‘벌거벗은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의 민낯’ 편이다. 2020년 신문수송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한 결과, 신문지국에 도착한 발송부수의 상당수는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에서 폐지업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조선일보는 3월 18일 국가보조금법 위반, 형법상 사기죄 등의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문체부 자료 등을 통해 볼 때 보조금 배분기준에 ABC협회 부수공사 결과를 직접 지표로 활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일보는 부수공사 조작의 결과로 일정 수준의 보조금을 부당하게 수령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언론위원회는 이런 현상이 언론개혁의 과제임을 지적하며 3월의 시선으로 주목했다. 4월 4.7 재·보궐선거는 집권당이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18.32%p와 28.25%p라는 비교적 큰 격차로 패배한 것으로 끝났다. 민주당이 패배한 결정적 원인으로는 “주택, 부동산 등 정책 능력의 문제”(43%)가 가장 높은 가운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의 문제”(18%) 등이었다. 그러나 여당 일각에서는 민심을 읽어야 한다며 종부세 완화론과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NCCK언론위는 지금은 긴급재정명령권에 준하는 조치를 취해서라도 ‘미친 집값’을 잡을 때이지 한가하게 종부세 완화 카드나 만지작거릴 때가 아니라고 일갈했다. 바로 ‘선거 민심은 (종부세 완화가 아니라) 미친 집값을 잡으라는 긴급 명령’ 편이다. 5월 5월 23일 아침, 부산의 보건소 직원이 코로나바이러스 격무에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코로나 업무뿐만 아니라 여타의 다른 업무에도 극심히 시달렸다는 증언이 있었다. <시선>은 5년 전 5월의 죽음을 소환했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김 군'은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시선>은 5년 간격 두 죽음의 본질을 직시하면서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모범택시>를 떠올렸다. 이 드라마는 “정의가 실종된 사회, 전화 한 통이면 오케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사적 복수 대행극이다. <시선>은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기묘한 착종을 직시해야만 했다. 6월 6월 11일에는 36세의 야당 정치인 이준석씨가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이때 <시선>은 “영(零 0)선인 그가 중량급 야당 의원들을 제치고 대표로 선출된 사건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독일의 보수정당이 선택했듯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일지, 아니면 ‘부끄러운 현실을 감추기 위한 화장술’일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후 주지하듯이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었고, 지지율 하락 속에 내홍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평가가 끝난 것인지 혹은 더 두고 보아야 하는지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7월 건강하던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고용노동부는 조사를 거쳐 일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시선>은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과 한국 지식인 사회의 빈곤’ 편을 통해 이는 잘못된 조직문화와 열악한 노동환경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식인사회의 위선이 드러난 단면으로 보았다. 서울대로 대표되는 한국 지식인 사회의 빈약한 밑천을 고스란히 노정된 것이다. 언필칭 미사여구를 늘어놓다가 막상 자기 이해가 걸리면 집단의 논리와 이익에 매몰되는 지식인의 이중성과 교언영색이 여지없이 폭로됐다. 8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20년 만에 철수했다.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이들의 보복과 박해를 두려워하는 탈출 행렬이 이어진 가운데 난민 신분으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우리나라는 정부·기관과 관련된 업무에 함께 했던 현지인과 가족 390명을 ‘특별기여자’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였다. <시선>은 국가적 유·불리를 넘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정부는 난민을 폭넓게 포용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난민단체 관계자들의 말에 주목하였다. 난민의 문제는 2018년 6월 ‘제주 예멘 난민과 한국 사회의 소동’ 등을 통해서 그동안 시선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 온 주제이기도 하다. 9월 32년 전인 1989년 5월, 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충북 제천지역 제원고등학교 강성호 교사(59. 현 청주 상당고교 교사)의 ‘6.25 북침설 수업’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전교조 결성을 앞두고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안기부)가 주도한 치밀한 공안 조작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강 교사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은 국가권력이 교육 현장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지켜야 할 금도까지 짓밟으며 무자비하게 한 개인을 파멸시킨 잔혹한 국가폭력의 상징이다. <시선>은 ‘32년 만에 벗은 누명, ‘빨갱이 교사’’ 편을 통해 재심 법정에서 밝혀진 이 사건의 진실과 역사적 의미를 주목했다. 10월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 한드 <오징어 게임>이 지구촌을 강타했다. <시선>은 조금은 다른 눈길로 이 신드롬을 보았다.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이용자들은 <오징어게임>에 왜 열광할까? 현실이 더 비참하기 때문은 아닐까? 너나없이 안온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강화유리보다는 일반유리를 밟을 가능성이 99.9%일 수도 있다. 어쩌면 매일같이 세계 곳곳에서 <오징어 게임>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타인을 짓밟는 굿판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시선>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아닌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생존게임으로 현실의 <오징어게임>을 환기시켰다. 11월 20대 대통령 선거가 점차 다가오는 가운데 이번 선거는 역대 대통령 선거와 달리 여당과 야당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아 ‘비호감 선거’라 불리고 있다. 11월 시선은 이를 주목했다. 시선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비호감 선거’라는 용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는 삶의 기본조건이 무너지고 생명이 위협받는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을 뽑는 정치 행위를 폄하하거나 왜곡하는 의미라고 보았다. 정치권에 책임을 묻고 해결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접하며, 11월의 <시선>은 대통령 선거를 ‘비호감 선거’로 외면할 수 없는 이유에 주목했다. 12월 2021년 12월의 시선은 당면한 대선 국면을 보다 치열하게 들여다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각 당별로 후보자가 선출되었다. 그런데 선거운동이 본격화된 뒤에도 후보들 간에 치열한 정책토론보다는 후보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나 가족들의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시선>은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의미’ 편을 통해 다시금 ‘비호감 선거’와 같은 냉소주의보다 준비된 대통령을 검증해야 함을 강조했다. 나아가 향후 과제로 87년 체제의 극복, 여기에 온존한 재벌·관료 기득권 청산 등의 과제를 적시했다. 그리고 축출, 피살, 감옥, 먹튀, 여왕. 등 ‘대통령 흑역사’ 끝내야 함을 강조했다.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2년 1월 다시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새해에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이 선거 결과는 향후 우리 사회의 명운과 향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주의의 축제로서 통합과 승복의 정치 과정이어야 할 선거가 오히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킬 것으로 우려도 된다. 본 언론위원회는 시대정신과 휴머니즘을 기본값으로 하여, 앞으로도 지치거나 포기함이 없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성찰하고 직시할 것이다. 비록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될지라도 말이다. * 2021년 시선 목록표 2021년 1월 흰 눈 내리던 날, 그 코트와 장갑 / 장해랑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02020001 2021년 2월 다시 길에서 / 심영섭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03120001 2021년 3월 벌거벗은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의 민낯 / 김 당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04060002 2021년 4월 선거민심은 ‘미친 집값’ 잡으란 긴급명령 / 김 당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05040001 2021년 5월 두 죽음의 시선이 ‘모범택시’로 향하면 / 장해랑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060900012021년 6월 이준석 현상? / 심영섭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07160002 2021년 7월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통해 본 한국 지식인사회의 빈곤 / 김태훈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08050004 2021년 8월 아프간 난민 수용에 대한 두 가지 시각 / 김영주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09030002 2021년 9월 32년 만에 벗은 누명, ‘빨갱이 교사’ / 정희상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10050001 2021년 10월 강화유리가 없는 ‘오징어게임’을 중단하자 / 심영섭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111600022021년 11월 ‘비 호감 선거’에 가려진 눈물과 고통 / 장해랑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112080001 2021년 12월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의미 / 한홍구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201050001
2022-01-13 14:10:18